〈 37화 〉 36. NPC도 공양이 되나요?
* * *
“빌어먹을...! 크하악!!!”
거대한 촉수를 미처 막아 내지 못하고 직격타를 허용한 살인강도.
놈은 덤프트럭에 치인 사람마냥 피를 토하며 다이소 입구 밖으로 적어도 3미터는 날아갔다.
‘진짜 이게 되네!’
살인강도의 웃음기 사라진 얼굴을 보니 답답하던 속이 싹 풀린다.
실실 쪼개고 있던 놈의 면상이 엿 같았는데 고통에 일그러진 놈의 표정은 제법 봐줄 만했다.
[저건 내거다. 내가 먹을 거라고. 알겠어?]
“아, 예. 드, 드릴게요. 드린다고요.”
내가 주겠다고 확답하자 그제야 안심한듯 카쉬낙스는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징징 울리던 소리가 점차 옅어지고 뇌가 떨리는 든한 지끈거림도 사라졌다.
나를 억누르던 신의 압박도 흐릿해졌다.
물론 여전히 내 온몸 구석구석 빤히 쳐다보는 듯한 진득한 시선은 남아 있지만. 이 정도야 이제는 애교로 받아 넘길 수 있지.
‘그런데 NPC도 인신 공양이 되는 거였구나.’
설마하니 NPC까지 공양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자유도가 너무 높다.
'지성체면 진짜 뭐든 다 인신 공양이 가능하구나. 그럼 지성이 모자란 영유아는 과연 공양 대상에 포함될까? 아마 불가능하겠지.’
지성을 가진 존재만이 공양 가능하니까. 지성이 없거나 모자란 존재는 공양물로 취급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크윽! 죽여주마...”
인신 공양에 대한 고찰을 더 이어 나갈 새도 없이 살인강도가 금방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구강소환을 곧바로 사용했다.
“알라쿰플루토!”
놈의 자세가 흐트러진 지금 이 순간만이 구강소환이 먹혀들 유일한 기회다.
저 놈이 멍청하게 똑같은 수에 두 번이나 당해줄 리 없지. 꼬아낸 촉수, 일명 대물촉수에 두 번이나 똑같이 당해주진 않을 거다.
그러니 바닥에 쓰러진 살인강도가 다시 일어서서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저 위협적인 핸드캐논부터 빼앗아야 한다.
저 정신나간 무지막지한 물건은 막을 방법도 마땅히 없을 뿐더러 잘못 맞았다간 즉사를 면치 못하는 커다란 위협이니까.
당장 한태양이 검까지 박살 나며 한 방에 나자빠진 꼴을 보아하니 여기 있는 인간들 중 나 말고는 저 핸드캐논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다.
“르뤼에!”
왼손으로는 다시 한번 대물촉수를 날려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놈을 견제했고 오른손으로 소환한 구강을 조종했다.
빼앗을 부위는 당연히 핸드캐논을 쥐고 있는 놈의 왼팔.
‘핸드캐논 채로 씹어 삼켜 주마.’
쩌억...!
어정쩡한 자세로나마 날아오는 대물촉수를 단검으로 후려쳐 막아낸 강도놈.
겨우 내 공격을 흘려낸 놈의 왼편에서 어둠이 일렁인다.
곧 순식간에 심연의 조각들이 뭉쳐 들며 끔찍한 입이 만들어졌다.
콰직!!!
“끄아아아!!!!!”
잘려 나간 팔을 집어삼키자 심연의 주둥이가 할일이 끝난다는 양 빠르게 흩날려 사라진다.
갑작스레 팔이 씹어 먹힌 살인강도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피가 뿜어져 나오는 왼쪽 어깨를 붙잡고서 재빠르게 도주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는게 겁에 질린 것 같다.
팔을 잃은 상태로 나와 더 싸워 봐야 촉수에 당해 죽을 거라 여겼겠지.
현명한 판단이다. 나에겐 짜증 나는 일이지만.
‘빌어먹을 독 연기.’
당장 달려가 놈을 뒤쫓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 갔다간 효과가 뭔지도 모를 노란 독 구름 속에 들어서고 만다.
점차 퍼져나가고 있는 이 노란 독 안개를 뚫다가 잘못돼서 마비독 같은 거에 중독이라도 되면 큰일이니까 한아람이 뚫어둔 길로 돌아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엔 저놈이 너무 멀리까지 도망칠 것 같았다. 그러니 서둘러 이미 나가있던 이들에게 명령했다.
“저 새끼 잡아!!! 절대 놓치지 마! 그리고 내가 죽일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오빠!”
“알겠어요! 주인님!”
핸드캐논과 함께 왼팔을 잘라 냈으니 굳이 내가 없더라도 붙잡아 둘 수는 있겠지.
살인강도의 가장 큰 위험은 뛰어난 신체 능력이나 엄청난 속도의 단검술이 아닌 빌어먹을 핸드캐논이니까.
내 촉수가 아닌 이상 제대로 막을 수도 없고 대처하기도 곤란한 핸드캐논을 팔과 함께 뜯어냈으니 이제 살인강도는 그냥 외팔이 병신이다.
미리 독을 피해 밖으로 나가고 있던 은지와 하린이는 내가 명령하기도 전부터 이미 놈을 쫓아 달렸다.
역시 척하면 척이라고 놈이 도주하는 순간부터 뒤쫓는 은지와 하린이의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 기껏 다 잡아둔 사냥감인데 놓칠 순 없지.
‘만약 여기서 놓친다면 카쉬낙스가 나를 등신 새끼로 볼 거야. 어쩌면 호감도가 떨어질지도 모르고...’
친히 내려와 촉수 사용법까지 알려줬는데 병신 같이 놓치면 나를 개밥버러지로 볼 수도 있다.
악신의 호감을 받고 있다 버림 받으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서 상상도 하기 싫다. 자신을 실망시킨 벌로 나를 잡아먹으려 할지도 모른다.
‘카쉬낙스라면 진심으로 나를 잡아먹으려 할지도...’
그러니 절대 놓쳐선 안 된다. 그리고 딴 놈이 죽이게끔 빼앗겨서도 안 되고.
저놈은 무조건 내 손으로 찢어 죽여 공양해야만 한다.
카쉬낙스가 저 망할 놈을 잡아먹길 강력하게 원하고 있으니, 그녀의 종복 된 자로서 주인의 바람을 들어 줄 수밖에. 배고픈 악신에게 밥을 줘야 내가 살 수 있다.
“젠장... 오빠... 미안.”
“큭... 미안 해, 태양아.”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한태양을 업고 있던 한아람은 이를 꽉 깨물고선 죽기 직전의 한태양을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살인강도와 싸우는 데 기절한 한태양은 짐짝에 불과하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둘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한태양을 향해 사과에 말을 남기곤 빠르게 살인강도를 쫓아 달려갔다. 내 명령 탓에 가족을 버려야만 한다는 사실이 둘은 힘겨워했다.
물론 힘겨워 하든 말든 관심없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저 놈을 잡을 수 있냐 없냐 뿐이니까.
‘넷이나 갔으니 잘하면 때려 잡을 수도 있겠다.’
그런 와중에 강화영은 내 명령을 또 거부했는지 나와 비 각성자를 번갈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곤 가만히 서 있었다.
“근데 너는 안 따라가고 거기서 뭐 하냐?”
“이, 이 사람들... 두고 가요? 그러면 안되는데. 이 사람들. 버리면... 피... 끄윽...”
내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 강화영의 하얀 피부 곳곳에 핏줄이 울긋불긋 솟아올랐고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또 입술은 얼마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한줄기 피가 떨어졌고 양 눈에 실핏줄도 함께 터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점차 몸까지 덜덜 떨리는 게 주인의 명령에 저항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이대로 다 떠나면 곧 여기로 몰려들 좀비들 때문에 비 각성자들이 죽을 까 봐 이러는 거겠지.’
강화영은 그동안의 내 매정한 모습을 자주 봐와서 그런지 내가 급한 마음에 이들을 다 버리고 갈 거로 생각했나보다.
‘생존자도 얼마 없는 상황에서 아깝게 노예를 버릴 리가 없지.’
나는 오늘 옥상청소하던 노예들의 모습을 보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건 바로 누군가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지. 그리고 각성자들에게 그런 잡일을 시키는 건 엄연한 비전투 손실이다.’
나의 안락한 삶을 위해 뼈가 부서져라 일해 줄 잡일꾼은 필수적이다.
물론 조금 전 지옥으로 보내버린 꼰대 영감이나 할 줄 아는 거라곤 일본어 밖에 없는 돼지 년 같은 것들은 예외지만.
내 마음에 안 들거나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놈들은 초기에 싹을 잘라 인신 공양해야한다.
도움 안 되는 버러지들까지 밥 먹여 가며 챙겨 줄 생각 따윈 1도 없다.
인류구원 같은 되도 않은 환상은 내 목적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고, 인류애나 인간성 따위는 멸망을 인지했던 첫날 노예낙인을 얻으며 쓰레기통에 처박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강화영이 비 각성자들을 지키려는 이유는 이런 나보다도 더 단순했다.
그녀 역시 인류애나 자애심 따위로 이들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
그저 자기 식량을 사수하고자 하는 짐승의 거친 반항일 뿐이지.
그만큼 그녀가 가진 피에 대한 갈증과 열망은 대단했다. 다른 일이라면 잘 반항하지 않는데 식사에 관련된 일에선 유독 타협이 없는 그녀다. 피를 먹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분명 자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했는데도 그것까지 어기고선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너는 안 쫓아가도 되니까 그냥 이 새끼들이나 잘 지켜.”
“네...”
살인강도를 쫓으라는 명령을 해제하고 따로 그녀에게 이들을 지키라 명령하자 그제야 강화영은 인상을 풀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밥그릇을 지켰다는 만족감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내 말에 아재와 아줌마들 그리고 애새끼가 안도의 눈빛을 보냈다.
그들은 급박한 전투 상황에 넋이나가 몸이 얼었는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멍청하게 서 있었는데. 도대체 이런 새끼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지 또 다시 의문이 생겼났다.
“뭘 보고 서 있어! 다들 나가.”
“네, 넵!”
그제야 노란 독 안개가 차오르는 다이소에서 허둥지둥 빠져나가는 인간들을 보며 한숨 쉬었다. 실로 마음에 안 드는 족속들이다. 수동적이고 나태하다.
분명히 이곳에 빌붙어 겨우 살아남았을 밥버러지들일 텐데 그나마 노예낙인이라도 찍어 두니 빠릇빠릇하게 움직이려해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기껏 얻은 노예들이 이런 폐급새끼들 일 줄 알았다면 어젯밤 양아치들을 조금이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했을 텐데.
오히려 인성 글러 먹은 양아치 놈들이 눈치도 빠르고 더 써먹기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깨진 유리창을 넘었다.
그러곤 여전히 아스팔트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한태양을 내려다 봤다.
‘아직 살아 있네?’
한태양은 한아람이 내던진 모습 그대로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숨은 겨우 붙어 있지만 언제 끊길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방금 먼저 빠져나간 네 명의 버러지들은 그 누구도 바닥을 비비적거리고 있는 한태양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을 챙겨준 강화영의 곁에 딱 달라붙어 좀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오직 본인들의 보신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저러니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나보다.
이기심은 멸망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니까.
와중에 강화영은 한태양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온화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둔 짐승과도 같았다. 강화영은 그저 한태양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을 뿐이다.
난 엎어져 부들거리는 놈을 슬쩍 발로 밀어 살펴봤다. 눈이 뒤집혀 발작을 떨고 있는 게 꼭 쇼크사로 죽으려는 모양새다.
“제기랄 놈.”
지금 바로 인신 공양 할까? 이 정도 녀석이면 맛있다고 카쉬낙스가 좋아할 것 같은데.
아니면 그냥 강화영보고 먹으라고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군침을 몇 번이나 삼키는 꼴을 보아하니 피를 빨고 싶어 죽겠는 모양이다.
‘아냐, 이놈을 벌써 죽일 수는 없지. 이 새끼는 자기 누이동생들이 나에게 따먹히는 걸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만 해.’
한태양은 살아남는 것보다 여기서 죽이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아직 제대로 갖고 놀지도 못했는데 망가지면 안 되지.’
“슈드세라아캄.”
놈의 벌어진 상처를 치유했다. 스킬의 효과로 인해 억지로 살이 차오르며 몸 곳곳에 박혀 있던 쇳조각들이 툭툭 떨어져 나온다.
내 스킬이 빠져나간 피까지는 채워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당장 상처를 틀어막았으니 바로 죽지는 않을 거다.
“끄르륵...”
한태양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고통을 느끼는지 상처가 치유될 수록 몸을 더 심하게 덜덜 떨며 게거품을 물었다.
“다됐다.”
죽음으로 도망치려던 한태양을 억지로 되살렸다.
후유증이 남을 지도 모르겠지만 거기까진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후유증이 남으면 남는 대로 적당히 인디크론 호감작을 위한 장난감으로 써먹고 공양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래, 이놈은 인디크론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내 피폐 장난감이 되어 줘야 해. 인간의 절망감을 좋아하는 인디크론을 위해서. 너를 철저히 망가뜨려주마.’
거리로 나온 것 때문인지 과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재에게 한태양을 적당히 떠넘기고 나는 한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쪽으로 다가 갔다.
다행히 아직 살인강도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놈은 미쳐 날뛰며 네 명의 여자들을 팔 하나로 압박 중이었다. 전투가 누적되다 보니 다들 마나가떨어져 제대로 스킬을 못 써서 그런지 아직도 놈을 잡지 못했다.
“크아!!!”
놈이 휘두른 단검을 전투망치로 겨우 막아 낸 한아람이 뒤로 튕겨 나갔고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 은지와 하린이도 놈의 발길질에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아름이 휘두른 사슬낫의 쇠추마저 가볍게 피해낸 살인강도는 쓰러진 한아람을 끝장내기 위해 달려들었고 나는 빈틈투성이인 놈을 향해 촉수를 내뿜었다.
“르뤼에.”
투쾅!!!
촉수 뭉텅이에 기습당해 옆구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살인강도는 격하게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놈은 그대로 일어서지 못한 채 한참이나 입으로 온갖 걸 토해내더니 나를 노려봤다.
“카학... 칵... 시발.. 비겁한 새끼들... 다구리를 쳐...”
“꼬우면 너도 친구 부르던지.”
“제기랄 놈... 어서 죽여라...”
더 싸워봤자 결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놈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좋은 선택이야. 자비롭게 ‘인신 공양’해 주마.”
“뭐? 자, 잠깐. 인신 공양?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놈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촉수가 놈의 숨통을 조이고 입을 틀어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읍..! 으읍!!! 아, 안 돼!!!”
“바칩니다! 카쉬낙스님...!”
콰자작!!!
살인강도의 몸이 짓눌리고 으깨지며 한 덩이 육편이 되었다.
[‘살인강도’를 퇴치하셨습니다!!!]
[살인강도의 품에서 1만 코인이 발견되었습니다!]
[‘잃어 버린 등산모’가 드랍 됩니다.]
[잃어 버린 등산모: 실종된 어느 보부상의 등산모입니다. 보부상 NPC에게 이 유품을 전달할 경우 호감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1회에 한해 물건이 반값이 됩니다.]
[업적달성! ‘모범 시민’]
[업적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노예 ‘이은지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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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노예들의 레벨 업 알림을 들으며 낡아빠진 등산모를 주웠다. 곳곳에 구멍이 뚫린 더럽고 냄새나는 모자다.
이걸로 보부상을 만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호감도를 올려 준다는데 안돌려주곤 못 베기지.
어쩌면 살인강도는 이런 선물을 주기 위해 애써 나를 찾아온 요정같은게 아니었을까.
그런 요상한 생각을 하며 죽어 버린 강도에게 심심한 명복을 빌어 주고 있으니 뭔가를 으적으적 씹어 먹는 소리와 함께 카쉬낙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방금 먹은 강도의 맛을 음미중인 것 같다.
[까드득... 꿀꺽.]
[음. 달다.]
그게 끝이었다.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느껴지는 걸 보니 꽤 맛있었나 보다.
‘미친년... 소름 끼치네.’
이거 일부러 나 소름끼치라고 먹는 소릴 들려준 게 아닐까?
'일본에선 맛있으면 후루룩 거리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설마 고맙다고 인사차 들려 준 건가?
정말이지 최악의 악신답게 그녀의 순수한 행동조차도 나에겐 악의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샌가 촉수 덩어리 괴물을 ‘그녀’라고 여기는 내가 있다.
"나도 점차 미쳐가는 구나."
너무 피곤하다. 이제 돌아가서 좀 쉬고 싶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