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2. 간택
* * *
우린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우어어어!!!!”
“사, 살려 줘!!! 끄아아!!!!”
“시, 시발!!!
주변에서 생존자들과 좀비들이 뒤섞여 비명을 지른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차라리 좀비들에게 죽을 거 그냥 인신 공양 찍고 내 손으로 조질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당장은 스킬을 찍고 있을 틈이 없다.
나는 직업 특성상 스킬을 선택하면 극심한 두통이 동반되니까. 아마 지금 스킬을 찍는 순간 주저앉아 침을 질질 흘리며 전투 불가가 되겠지.
좀비 기피 스프레이를 쓴 마당에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다.
우린 옥상에 올라온 특수 좀비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이니까 쓸데 없는 시간 낭비는 금물이다.
“워 보이부터 잡는다!!! 은지랑 하린이가 저 새끼들 다리 부셔!”
“네!!!”
“알겠어요!!!”
옥상에 올라온 워 보이는 족히 십여 마리가 넘어갔다.
놈들은 3미터나 되는 거구로 좀비 사람 구분 없이 박살 내며 옥상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히아!!!!”
하린이가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강화된 근육이 쥐고 있던 몽키 스패너에 오롯이 전달됐다.
쾅!
단 한 방.
그걸로 워 보이의 오른쪽 무릎이 작살났다. 압도적인 근력에 의한 단순 무식한 폭력이 3미터급 거구의 괴물을 거꾸러뜨렸다.
쿵!
“우아아아아!!!!!”
부러진 무릎을 꿇으며 비명을 지르는 워 보이. 딱 됐다. 놈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왔으니.
“죽어!!!”
녹색 진액이 뚝뚝 흐르는 왼손으로 놈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치이이이!!!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연기와 함께 워 보이의 머리가 녹색 점액질로 변해 뜯겨나왔다.
“욱..!!!”
덩달아 끔찍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좀비들이 풍기는 썩은 내도 만만찮은데 부패액에 녹아내리며 발생한 악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우욱...”
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 같아졌어... 그건 하린이도 마찬가진지 안색이 파리해지며 헛구역질을 한다.
“오빠! 여기!!!”
그때 은지가 조금 멀찍이서 워 보이의 양쪽 발목을 작살내 쓰러뜨렸다.
“자, 잠깐...!”
얼른 은지쪽으로 달려가 워 보이의 머리를 다시 녹였다.
치이이익!!!!“
“웁... 시발... 오, 오빠... 냄새가... 우욱..”
미치겠다. 이 좋은 스킬에 이런 빌어먹을 부작용이 있었다니...
“이, 일단 계속 쓰러뜨려! 그럼 내가 죽일 테니까!”
“네, 네!”
“알겠어요!”
그때부터 은지와 하린이는 무자비하게 워 보이들의 무릎이나 발목을 작살 내며 옥상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것도 전부 스프레이가 있으니 이리 쉽게 되는 거지 아니었다면 꽤 고생했을 거다.
“됐다!! 거기 다섯 마리는 일단 남겨둬! 따로 쓸 때가 있으니까!”
“네! 오빠!”
“알겠어요!”
이걸로 워 보이 씹새끼들은 거의 다 조졌다. 물론 실시간으로 계속 기어 올라오고 있지만. 일단 옥상을 어지럽히던 놈들을 줄여뒀으니 그나마 노예나 비 각성자 놈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이겠지.
“다음은 좀비지네! 저 새끼들도 못 기어 다니게 팔다리 다 부셔버려!!!”
“아자!!”
“으아!!!”
은지와 하린이는 마치 여전사들처럼 거친 기합을 내지르며 좀비 지네의 팔을 내려치고 부쉈다.
거칠게 발버둥 치는 지네들. 그래 봤자 다리 잃은 병신들이다.
거침없이 파고들어가 놈들의 머리를 녹여 버렸다.
마나 스탯이 100을 돌파하고 몸에 마나가 흐르게 됐다더니 정말 움직임이 한층 가볍고 매끄러워졌다.
“오, 오빠! 대단해요!”
은지의 응원을 들으며 좀비 지네를 하나둘 지워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옥상에서 좀비들과 치고받고 싸운 걸까.
드디어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밤이 지났다.
새벽녘의 공기가 유독 차갑다. 또한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좀비들의 저항도 더욱 거셌고. 그런데도 우린 버텼다. 결국은 이겨 낸 거다.
이제 곧 해가 떠오른다. 살아오며 이렇게 아침 햇볕이 그리웠던 적이 또 있을까.
점점 해가 떠오름에 미친 듯이 날뛰던 좀비들도 슬슬 지쳐가는 모습이다.
“해뜬다!!! 시발!!! 해가 뜬다고!!!! 진우야!!! 우리 살았어!!! 이 새꺄!!! 살았다고!!!”
밤을 견뎌 내고 끝까지 살아남은 하진성이 눈물 젖은 포효를 내질렀다.
동생 하진우가 발이 접질려 주저앉은 이후부터 하진성은 눈에 귀기가 어렸다 표현해도 좋을 모습으로 다가오는 좀비들을 미친듯이 패죽이며 해가 뜰 때까지 악착같이 버텼다.
그랬던 하진성도 이제는 온몸이 좀비의 피에 젖어 눈 까지 반쯤 감긴 모습이다. 극도로 피곤해보인다.
“형.. 흐윽... 시발...”
하진우도 벅차오르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아직 울 때가 아닌데. 여전히 좀비들이 남아 있다.
“오빠!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래... 다들 고생했어.”
일반좀비는 다른 노예들에게 맡기고 나와 은지, 하린이는 몇 안남은 특수 좀비를 중점적으로 노렸다.
싸워보니 확실해졌다. 특수 좀비들은 하나같이 그냥 패 죽이기엔 무리가 있을 만큼 튼튼하다. 두개골의 골밀도가 남다르다고 해야하나. 단순히 빠루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죽지 않는 터프함을 가졌다.
물론 그것도 스킬 ‘부정한 손길’이 내뿜는 진득한 녹색 부패 액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부패 액에 닿은 놈들은 저항한번 하지 못한 채 비명 지르며 녹아내렸다. 그게 워 보이든 좀비지네든 일절 상관없이 공평하게.
은지와 하린이가 워 보이의 다리를 부수면 쓰러진 놈의 머리통을 부정한 손길로 녹여 버리는 작전은 아주 좋았다.
“여기!!! 여기 지네 새끼 올라와요!!!”
황수민이 팔에 상처 입은 이은혜를 돌보다 말고 급하게 소리질렀다.
“자, 잠깐만! 아이고 허리야..”
날밤을 새가며 좀비를 죽이다 보니 허리가 빠질 것 같다.
은지와 하린이랑 질펀하게 나뒹굴 때보다 허리가 더 뻐근하고 아프다.
“우리 오빠 허리 나가면 안 되는데...”
“주인님. 제가 처리하고 올게요. 좀 쉬세요.”
허리 아프다니까 바로 걱정해주는구나... 감동적이야...
역시 은지랑 하린이는 좋다. 보고만 있어도 활력이 난다.
평소 같으면 아랫도리도 같이 불끈 거렸겠지만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내 똘똘이가 반응을 안 한다.
“괜찮아. 오빠가 할게. 너희 이제 마나도 없잖아. 잠시 쉬고 있어.”
“그렇지만...”
“네...”
나를 걱정해주는 은지와 하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손이 너무 더러워서 안 되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황수민이 손가락질한 난간쪽으로 걸어갔다.
“하... 시발... 진짜 징글징글하다...”
오늘 하루를 견디며 이미 수십차례 생각한 건데 진짜 좀비 새끼들 많아도 너무 많다. 죽여도, 죽여도 어디서 또 기어 나오니. 무슨 바퀴벌레를 잡는 기분이다.
아무리 잡아 죽여도 어느샌가 또 생겨 있다.
해도 떴고 이제 얼추 옥상이 정리되어가는 분위긴 데 이 빌어먹을 새끼들은 눈치도 없이 자꾸 기어 올라온다.
‘그래도... 해 떴으니 이제 좀 낫겠지...’
자기 새끼마냥 일반좀비를 등 뒤에 가득 달고서 마트의 외벽을 기어오르는 빌어먹을 좀비지네가 한 마리 보인다.
넌덜머리나는 생김새에 팔도 많아서 보는 것만으로 혐오스럽고 짜증 나는 녀석이다.
“날 밤 샜는데 이제 좀 쉬자... 이 개새끼들아... 나 피곤해!”
손을 휘둘러 벽을 기어오르던 놈의 머리를 녹여 버리고 매달린 좀비들과 함께 추락사 시켰다.
“우어어!!!”
“우아아!!!”
떨어지며 멍청한목소리로 비명 지르는 좀비들의 모습이 이젠 무슨 비인간적인 좀비 개그 쇼 같고 웃기다.
떨어져 죽는 좀비들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자 누군가 다가왔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친 동생을 부축해 다가온 하진성이었다.
“어.. 너도 고생했다. 거, 동생 지킨다고 난리던데.”
“별거 아닙니다.”
“야, 하진우. 발목은 괜찮냐?”
“예! 괜찮슴돠! 조금만 쉬면 금방 낫습니다!”
하진우는 혹여나 내가 자기를 버릴까 봐 겁에 질린 눈으로 힘차게 외쳤다.
내가 하진우를 빤히 보고 있자 동생이 버림받을까 걱정된 하진성이 얼른 이야기를 돌렸다.
“형님. 이제 저 새끼들만 죽이면 끝입니다.”
하진성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워 보이 다섯과 도망치고 있는 김준민과 김일우가 보였다.
“으아!!! 시발!!! 형님!!! 언제까지 도망만 다녀야 합니까!!!”
“으아!!! 저리 가!!! 이 개새끼들아!!!!”
워 보이 다섯 마리를 주렁주렁 뒤에 달고서 아슬아슬하게 도망 다니고 있는 김민준과 김일우.
“야! 너희들 더 빨리 달려!!! 그러다 잡히겠다!!!”
내가 머리를 좀 썼다. 워 보이들로 일반 좀비들을 죽이기 위한 작전이었지.
좀비지네는 등반에 특화된 놈들답게 고지대에 있는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진화했다. 덕분에 단순 전투 능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았다.
그에 반해 이 미친 근육질 좀비들은 전투에 특화된 괴물들이었다.
주먹질 한 방에 전사 김일우가 쪽도 못 쓰고 날아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놈들은 강하고 투박했다.
‘그리고 무식하지.’
다행히 워 보이들은 협동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좀비들이었다.
통솔 되지 않는 3미터 급 거구의 근육질 좀비들이 날 뛰니 자연스럽게 주위에 있던 일반 좀비들까지 휘말려 때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우리 중에서 발이 제일 빠른 김민준과 그나마 체력이 좋은 김일우를 시켜 아슬아슬하게 놈들의 공격을 피하게끔 명령했다.
저 둘이 아슬아슬하게 피한 공격은 주변의 다른 일반좀비가 대신 맞아 죽는다.
그래, 차도 살인이라고나 할까. 아니지 이미 죽은 놈들을 또 죽이는 거니 살인이 아니구나.
아무튼, 저 둘은 내 명령에 충실히 워 보이들을 유인하며 옥상에 남은 일반 좀비들을 치우고 있었다. 덕분에 비각성자들도 몇명 살아남은 것 같다.
“이, 이거! 어, 헥... 헥.. 언제까지 달립니까! 이... 헥... 이제 더는...”
결국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 김일우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야! 시발!! 거기서 넘어지면 어떡하냐!!!”
의리남 답게 김민준은 얼른 뒤돌아 넘어진 김일우를 부축하려 했다.
“알라쿰르뤼에.”
푸확!!!
촉수다발이 뿜어져 나가 김민준과 김일우를 잡아 찢으려던 워 보이들을 모조리 육편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터져 나간 놈들의 육편이 둘에게로 쏟아진다.
“윽...퉷! 퉷! 씨바... 입에 들어간 것 같은데...”
“우웩...!”
김민준은 터져죽은 워 보이들의 피와 살점을 정통으로 뒤집어쓰고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손에 묻은 살점을 털어낸다.
김일우는 아예 바닥을 짚고서 토하고 있다. 더럽게...
“오빠! 고생했어요!”
“주인님!”
나에게 달려온 은지와 하린이. 이제 진짜 끝났다. 다 죽였다....
“우어어어!!!”
“또 남았어?!”
그때 옥상에 남은 마지막 좀비가 나에게 걸어왔다. 아마 죽은 좀비 지네 아래에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우어아아아!!!!!”
“으으... 끝이 없냐고...”
콰직!!!
무의식 중에 부정한 손길을 사용했다.
그러자 손에 닿은 좀비의 머리가 순식간에 녹색 점액질로 변해 녹아내렸고.
동시에 매캐한 연기가 발생하며 코를 잡아 뜯고 싶을 정도의 악취가 퍼져나갔다.
부정한 손길은 효과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의 스킬이다. 닿았다 하면 모조리 부패시키고 녹여 버리니 상대가 누가 됐든 그저 손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쓰러뜨릴 수 있었다. 마나 소모도 꽤 저렴하고.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좀비를 죽일 때 더럽게 끔찍한 냄새가 난다는 거다.
스킬을 사용할때 손바닥에서 분비되는 이 녹색 점액질도 상당이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이 점액질과 좀비가 닿으며 발생하는 냄새는 참기 버거울 정도였다.
“우웩...”
상상 이상의 썩은 내에 헛구역질만 벌써 스물아홉 번째다. 아무리 맡아도 적응이 안 된다. 이쯤 되면 그냥 코가 마비 될 만도 한데 스탯이 높아서 그런지 그럴 기미도 안 보이고 죽을 맛이다.
‘빌어먹을...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은...’
이게 더 엿 같은 점은 나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은지랑 하린이도 피해를 보고 있단 사실이지.
“웁... 오, 오빠... 그 좀...”
“저, 음.. 아니예요. 우욱....”
“아, 저기. 그 뭐냐. 미안 해. 무의식 중에 써버렸다...”
“괘, 괜찮아요... 주인님... 우욱...”
“아니...”
토하려고 하면서... 애써 괜찮은 척하지 마...
“이, 일단... 그래도 다 죽여서 다행이다.. 그쵸?”
“그, 그러게. 이제 슬슬 스킬 꺼도 되겠다.”
옥상에 올라와 있던 좀비는 방금 죽인놈을 끝으로 다 죽었다.
워 보이는 30마리에 좀비 지네 27마리 쯤 죽인 것 같은데. 그밖에 이름 모를 특수 좀비도 다수 섞여 있고. 우리 셋이서 진짜 무지막지하게 죽였다.
덕분에 레벨이 무려 내가 5개, 은지와 하린이가 각각 4개씩 올랐고. 하씨 듀오와 나머지 노예들도 제법 올랐다.
‘더구나 특수 좀비를 죽이면 아이템이 떨어진다니...’
하룻밤을 꼬박 새며 놈들을 죽이고 나니 사이사이에 반짝이는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다.
전투 중에 깨달은 사실인데 특수 좀비를 죽이면 확률적으로 무기나 방어구를 떨구는 모양이다.
분명 아까 공지에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급한 상황이라 하나하나 읽고 있을 틈이 없었다.
“다들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 주워!”
“예!”
땅바닥에 떨어진 장비품들은 보부상이 파는 물건들처럼 전부 ‘아이템’들이었다. 아이템은 설명이 보인다.
가령 이 단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의식용 단검: 구불구불한 검날이 특징입니다.]
별다른 효과는 없는 물건이지만 생긴 게 제법 살벌하다.
이건 내가 써야겠군.
“다 모아왔습니다.”
“이 다섯 개가 끝이야?”
“예. 더 뒤져도 안나왔습니다.”
내가 주운 단검과 길이가 모호하게 짧은 검 2개. 도끼 하나 그리고 철로 만들어진 헬멧이 하나.
전부 특이한 점이라곤 1도 없는 평범한 물건들이었다.
단검은 내가 가지고 숏소드 두 자루는 은지에게 줬고 하린이는 도끼와 헬멧을 줬다.
“좋아.. 다 끝났다..”
해가 뜬지 한 시간쯤 지났다. 이제 완전히 좀비 웨이브가 끝났는지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마트 옥상.
“살아남은 새끼들은 다들 이 보부상 쪽으로 와!”
비 각성자들 중에도 아직 살아남은 놈들이 몇 있었다. 난 그놈들을 불렀다. 그런데...
“크윽.. 저, 저기 저 물린 것 같아요..”
“이런 시발! 진짜 물렸잖아!”
이 빌어먹을 양심 없는 호로 새끼 같으니라고.
물렸으면 곱게 짜져 있지 왜 여기로 오고 지랄이지?
“아, 그래.”
지금이 딱 인신 공양을 써먹기 좋은 순간이구나.
어차피 좀비로 변해 죽을 거 내 '업'이 되어라.
“스킬선택!”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1. 인신 공양]
[2. 만마의 총애]
[3. 심연관측]
[4. 무아의 마안]
[만마의 총애: 이계의 존재들에게 관심과 호감을 얻습니다. 계약조건이 완화됩니다.]
‘또 이상한 스킬이네... 일단은 인신 공양 선택!’
지끈.
“끄으읍...!!!”
역시나 머리가 으깨질 것 같은 커다란 고통에 몸이 휘청거린다. 당연히 입에서 침도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곧바로 나를 부축하는 은지와 하린이. 그녀들의 몸에 기대 고통을 씹어 삼켰다.
“하아.. 하아.. 시발...”
인신 공양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
‘마나 소모가.. 없다니... 개꿀이군...’
인신 공양의 대상은 '지적 생명체'에 한정되어 있었다. 좀비와 같은 지성이 없는 존재는 인신 공양이 불가능했고 지능이 낮은 짐승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거... 인간을 제외한... 타 종족에게도 쓸 수 있단 건 시발 무슨 개소리지...’
설마... 좀비를 넘어선 외계종족이나 뭐 그런 새끼들도 기어 나올 거란 모종의 암시인가.
몸이 휘청거린다. 좀비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고 이 씹새끼들아...
‘그건 그렇고... 확실하게 바친다는 행위, 즉 퍼포먼스를 할 필요가 있음.... 뭐지..? 바칩니다. 라고 말이라도 하고 죽여야 되는 건가?’
그런 것 같다. 신에게 확실히 바친다는 제스처나 발언을 해야 한다는데, 가령 교회에서 성부와 성자를 이야기하며 성호를 긋는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필요하단다.
“이야... 본격적이네...”
나만의 시그니처 성호부는 일단 나중에 만들고 당장 좀비로 변하기 직전인 저 새끼부터 신님 곁으로 올려 보내 드려야겠다.
“크아아! 아, 아파!!!”
“그래 시발아 좀비로 변하는 중인데 당연히 아프겠지!”
은지와 하린이가 마릴 새도 없이 놈에게 달려들어 깔아뭉갰다.
“바칩니다!!!”
그러곤 곧장 놈의 머리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콰직!
곧 따끈따끈한 피와 뇌수를 흘리며 죽어 버린 비 각성자.
인신 공양은 성공했나?
잠시 기다렸다. 허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아. 달콤하다.]
“끄아...!!!!!”
뭔가... 뭔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더 더 가져와라.]
“끄읍....!”
거대한 악의가 나의 자그마한 뇌를 헤집는 기분이 들며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악신 '카쉬낙스'와 조우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악신의 종복이 되었습니다!]
[악신과 한 발짝 가까워졌습니다!]
[만마의 낙인이 찍힙니다!]
[모든 선신 진영의 플레이어가 당신에게서 모종의 혐오감을 느낍니다!]
[업적달성! ‘미지와의 조우’]
[업적달성! ‘용서받지 못할 자’]
[업적달성! ‘카쉬낙스의 종복’]
[업적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업적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업적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끄아아!!!!!!”
뜨거운 고통과 함께 이마에 무언가 새겨졌다.
마치 가느다란 손톱으로 살을 찢듯 고통이 느껴졌다.... 만마의 낙인이 새겨지는 중인가? 아픔과 함께 나는 완전히 좆 됐음을 느꼈다.
다행히 고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양옆에서 걱정어린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은지와 하린이 덕분에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만마의 낙인: 당신의 영육은 이제 악신 카쉬낙스의 소유입니다. 그분의 종으로서 당신은 만마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성흔을 가진 자들이 당신을 적대시할 것입니다.]
“비, 빌어먹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 안일했나? 내가.. 너무 방심해 버린 건가...
다른 성흔을 가진 자들은 또 뭐지? 나와 같이 신의 관심을 받는 클래스가 또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성흔이라... 그럼 이 만마의 낙인도 결국은 성흔인가?
모르겠다. 아주 좆 됐다는 생각에 불안감만 가득하다.
[스킬 ‘촉수소환’이 개선됩니다!]
[촉수발출: 소환횟수에 제한이 사라집니다. 손바닥에 오망성이 각인됩니다. 주문이 단축됩니다. 마나 소모가 10으로 증가합니다!]
“아, 개꿀이구나.”
개이득이었다. 역시 ‘신’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구나... 이제 복잡하게 오망성을 그릴 필요도 없고. 주문은 르뤼에뿐. 심지어 소환 횟수마저 무제한이라니...
‘그래 불안 할게 뭐 있어. 성흔이든 나발이든 전부 붙잡아 노예로 만들면 그만이지... 카쉬낙스님은 신이고 나는 무적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찌 됐든 해가 떴으니까. 또 하루를 살아남았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