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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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1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주말을 뺀 설 연휴의 첫째 날.
허름한 복도식 아파트의 301호.
어둡고 음습한 방안에 홀로 앉아 있는 한 남자.
가족도, 연인도, 현실친구도 없이, 저장된 연락처라곤 연락하기도 싫은 직장동료뿐인 30세 독신남 장조준.
온종일 집 밖엔 한 발작도 나가지 않고서, 삼시세끼 전부 라면이나 인스턴트로 때우며, 누군가에게 연락 올일 없는 휴대폰은 방 한구석에 처박아 둔 채로 그는 티비 화면에만 집중했다.
그야말로 집돌이의 표본 그 자체인 장조준은 연휴 내내 집구석에 처박혀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바빠서 묵혀뒀던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하아... 즐겁다...”
티비 화면 속 좀비의 머리통을 카타나로 시원하게 날려 버리며 조준은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고민 없이 무지성으로 좀비를 죽이고 있으니 세상 모든 근심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술은 물론이고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그의 유일한 취미라곤 이렇게 집에서 얌전히 콘솔게임을 즐기는 거뿐이었으니.
특히 연휴를 맞아 두 달이나 방치해 뒀던 신작 좀비 파쿠르 액션 서바이벌 게임을 할 수 있어서 그는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진짜 존나 재밌네. 아, 일하러 가기 싫다.”
물론 행복한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조준은 조금 마음이 조급해졌다. 3일 뒤, 이 꿀 같은 시간이 끝나기 전에 게임의 엔딩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이런 콘솔류 게임이란 건 질질 끌면 끌수록 자연스럽게 손이 안 가게 되는 법이니까. 켠 김에 왕까지 가야 제맛이다.
“하아... 그냥 확 다 망해 버려라... 회사 좀 안 가게...”
그건 그저 일하러 가기 싫은 마음에 반쯤 투정삼아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런데 그의 중얼거림을 신이 엿들은 걸까.
어쩌면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 잠들어 있던 악신을 깨웠을지도 모른다.
장조준이 한탄 섞인 투정을 내뱉은 직후, 전 인류는 하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디 어스’를 즐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DLC ’영원의 밤’이 다운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무기질적인 시스템 알림음.
그건 전 세계인들이 동시에 들은 신의 목소리였다.
“시발. 방금 뭐야... 게임 소린가?”
무감정하고 고저 없는 무기질적인 목소리.
불행히도 헤드셋을 끼고 있던 장조준은 신의 목소리를 그저 게임 속의 잡음쯤으로 생각해고 넘겼다. 신의 목소리가 게임 속 AI의 목소리와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준이 목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새도 없이 게임 속 좀비들이 쉼 없이 울어대는 통에 신의 목소리는 그의 기억 속에서 반쯤 묻혀 사라졌다.
그렇게 그는 금방 신경을 껐다.
당장 눈앞에서 팔을 휘둘러오는 좀비를 향해 카타나를 휘둘러야했기 때문이다.
모레면 연휴가 끝나니 조금 이라도 더 빨리 게임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준은 게임에 몰두했다. 연휴가 끝나면 또 언제 이렇게 집중해서 게임만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 삼일이 지났다.
그동안 집 밖이 꽤 시끄러웠지만 술주정뱅이들이나 정신 나간 늙은이들이 많은 동네라 그러려니 하고 대충 넘겼다.
“하아... 존나 알찼다...”
장조준은 곧 있으면 엔딩 크레딧을 볼 수 있다는 뿌듯함에 마음이 들떴다.
설 연휴 안에 게임 하나를 끝냈다는 감회에 젖어 눈가를 문질렀다.
너무 게임만 했는지 눈이 뻐근했다.
장시간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귀도 약간 먹먹했고.
“아오... 하~암... 세수라도 할까...”
엔딩을 보기 직전에 게임을 잠시 정지시키곤 헤드셋을 벗은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이젠 익숙하기까지 한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아씨... 4층 미친 새낀가. 요즘 잠잠하더니 또 지랄이네. 왜 술만 처먹으면 여기로 오는지 몰라.’
술주정뱅이 윗집 아재의 기습 방문.
술에 진탕 취해 층수를 착각하곤 여기로 찾아와 문이 부셔져라 두드린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한 달에 두 세 번은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가 사는 허름한 복도식 아파트엔 별의별 또라이들이 사는데, 바로 위집에 사는 중년 남자도 그런 또라이들 중 하나였다.
쾅쾅쾅!!!
그런데 오늘따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좀 심하다.
평소 같으면 저러다 가겠지만 오늘은 가지도 않고 아주 문이 부셔져라 두드리고 있다.
쾅!쾅!쾅!
‘진짜 미친 새낀가...’
엔딩까지 앞으로 얼마 안 남았다.
좀비 3마리만 더 죽이면 끝난다.
소중한 연휴를 전부 쏟아부은 게임답게 그는 홀로 엔딩의 여운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윗집 또라이의 방문에 영 집중이 안 된다.
“하, 시바. 존나 짜증 나네.”
결국 그는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가급적이면 이웃끼리 얼굴 붉히긴 싫지만 윗집 새끼만큼은 워낙 좆같아서 틈도 안 주고 쌍욕을 처박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아저씨. 여기 아저씨 집 아니라니까...요?”
영 말이 안 통하면 욕이라도 한사바리 처박고 꺼지라고 말하려던 조준은 현관문 앞에 멍청하게 서 있는 윗집 아저씨를 보곤 이게 뭔가 싶었다.
“으어어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윗집 아저씨.
눈에는 백내장이라도 걸렸는지 하얀 이물질이 가득 끼여 있고 온몸에는 누구의 피 인지 모를 피로 칠갑된 상태였다.
특히 찢겨진 볼 사이로 드러난 누런 이빨들과 길게 찢어진 이마의 상처를 보아하니...
그 모습이 꼭 조준이 방금 전까지 화면 너머로 보고 있던 것들과 유사했다.
“좀비...?”
“으어어어!!!”
좀비로 변한 윗집 아저씨가 이를 딱딱 거리며 집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으악! 이 시발!”
당연하지만 좀비로 변한 그는 조준을 물려고 했다.
물어뜯어 맛보고 즐긴 다음 같은 동족으로 만들 속셈이 가득했다!
“우어어어!!!”
들이닥치는 좀비에게 밀려 넘어진 조준. 쓰러진 그의 위로 중년 좀비가 올라탔다.
조준은 이런 엿 같은 상황 하나하나에 일일이 당황하며 비명 지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년간 정신 나간 중소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범함을 가진 사내였다.
“크아아!!!”
그래서 그는 당장 목이 물리기 일보 직전임에도 침착하게 게임 속 캐릭터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취했다.
별거 없다. 그저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어 좀비의 턱주가리에 팔꿈치를 아주 죽어라고 후려쳐 버리는 행동이다.
꽈작! 우지끈!
기습적인 엘보에 뭔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좀비는 턱이 이상하게 꺾이며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이 좆 같은 새끼가! 죽어서도 남에 집 앞에서 개지랄이야!”
그는 벌떡 일어섰고 말에 악센트를 주며 좀비가 된 윗집 중년남의 목을 후려 찼다.
서너 번 발로 까고 무자비하게 목 부근을 짓밟자 좀비는 꿈틀거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시발 년아! 안 그래도 뒤지게 패고 싶었는데 잘 걸렸다! 뒤져!”
조준은 다른 좀비가 더 꼬이기 전에 얼른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무기도 뭣도 없는 무방비한 상태에서 좀비들이 몰려오면 답이 없을 테니.
문을 닫은 조준은 헐레벌떡 부엌으로 뛰어가서 기름때 하나 없이 깨끗한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바닥 딸에 열중하는 좀비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깡! 깡! 깡! 푸콱!
“우어어어억...”
이미 조준의 발길질에 경추가 박살 나 일어서지도 못하고 애꿎은 몸만 비비적거리던 좀비는 저항한번 못하고 조준의 공격을 연달아 얻어맞았다.
그사이 현관 앞에 모여든 좀비들이 기괴하게 울며 문을 치고 긁어댔다.
“다 꺼져! 이 씹새끼들아!”
“우어어어!!!”
저 나약하고 멍청한 좀비들은 당장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올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계속해서 프라이팬으로 부르르 떨고 있는 좀비의 머리를 후려쳤다. 움직임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곧 좀비의 머리가 반쯤 터져 짓뭉개졌다.
푸슛!
깨진 두개골에서 한줄기 썩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이... 퉷, 아씨. 더럽게...”
핏물이 조준의 얼굴에도 튀었다. 그제야 조준은 휘두르던 팔을 멈출 수 있었다. 이미 좀비의 머리는 완전히 으깨진 상태였다. 프라이팬도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구겨져 있었다.
“후우... 시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손등으로 얼굴에 튄 피를 대충 닦아내며 움직임을 멈춘 좀비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비릿하며 지독한 피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조준은 외투 주머니를 뒤져 담배하나 꺼내 물고는 죽어 있는 윗집 아재의 시체 앞에서 불을 붙였다.
즐겨 피지 않는 담배가 오늘따라 엄청 당겼다.
그리 담배연기한차례 내뿜은 그때 그의 눈앞에 무언가 떠올랐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직업이 생성됩니다.]
[클래스: 컬티스트]
[직업스킬을 선택하십시오.]
[업적 달성! ‘퍼스트 킬!’]
[업적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좀비 처치로 5코인을 얻었습니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아직도 놓지 않고 있던 프라이팬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곤 이마를 문질렀다.
[장조준]
[레벨: 1]
[클래스: 컬티스트]
[근력: 13]
[민첩: 12]
[체력: 11]
[의지: 18]
[마력: 10]
[행운: 666]
“하아... 내가 미친 건가..”
곧 상태창은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손은 물론이고 입고 있던 옷과 현관이 전부 좀비의 피로 범벅이 되었다.
상당히 불쾌하고 비위생적인 광경이다.
더 엿 같은 건 죽은 시체에서 풍겨 오는 시취(??)와 진득한 피비린내였다.
“하아, 이 개새낀... 진짜 왜 죽어서도 우리 집에 기어 오고 지랄이야.”
얼마 안 남은 담배를 끝까지 빨아 피우곤 죽은 좀비의 몸에 대충 비벼 껐다.
담배를 비비니 그나마 썩은 시체 냄새가 조금은 가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오.. 이걸 언제 치우냐고.”
좀비의 시체를 치울 생각하자 벌써 속이 답답하다.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결국 당장의 문제를 외면하기로 했다.
“후우.”
그는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로 갔다.
손을 씻고 얼굴에 묻은 피를 지워냈다.
세안을 마친 그는 다시 티비 앞에 가서 앉았다.
일시 정지한 게임을 켜서 엔딩까지 얼마 남지 않은 좀비들을 마저 죽였다.
마치 기계처럼 사무적으로 좀비들을 찾아 카타나로 썰어 죽였다.
THE END.
티비 화면이 검게 변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조준은 잠시 화면을 보다 이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곤 눈을 감았다.
깊게 몰려오는 현타. 연휴를 갈아 넣은 끝에 볼 수 있었던 게임의 결말이 주는 깊은 여운.
그걸 만끽하며 조준은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있었다.
10분 정도 그렇게 여운을 즐긴 그는 다시 일어나 죽은 윗집 아재에게 다가 갔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일이 꿈인지 생신지 구분도 잘 안 갔다. 그러나 죽어 있는 시체를 다시 보니 역시나 이건 꿈이 아니었다.
기분 나쁜 악몽 같은 게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현관 바닥엔 여전히 썩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시체가 있다.
조준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건지 의문이 생겼다.
구석에 처박아 두곤 며칠간 보지 않았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긴급재난문자(132)]
재난경고 문자와 여러 개의 산발적인 신변확인용 문자들이 와 있었다.
문자들은 하나 같이 비일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가령 좀비가 나타났다거나 하는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경고들이었다. 직접 좀비를 보지 못했다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문자냐며 고개를 저었을 내용들이다.
그런 문자조차 어제 이후로 더 이상 오지 않은 모양이다.
‘새해에 때 아닌 좀비바이러스라니.’
그는 좀 더 문자를 자세히 확인했다.
백여 개의 재난문자 중엔 좀비보다 더 신박한 내용의 문자도 몇 개 있었다.
‘이 세계가 사실은 게임이었고... 삼일 전에 신규 콘텐츠가 시작되었다고...? 이게 무슨 개소리야...’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세상이 망했고, 좀비가 돌아다니며,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처럼 상태창이 보이는 인간들도 몇 명 있단다.
마치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다는 문자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조준은 자신이 미쳐 버린 건지 아니면 세상이 미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며칠이나 방에 틀어박혀 모니터 속의 좀비를 잡아 죽이다 보니 기어코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끔찍한 현장은 정신이상이 가져온 환상이라기엔 너무 리얼했다.
머리가 터져 죽은 좀비와 코를 후벼 파는 듯한 악취, 더구나 아까 전부터 계속 현관을 치고 있는 다른 좀비들의 울음소리까지.
이것들이 전부 환각이고 가짜일 리가 없다.
“좆 박았네. 시벌...”
조준은 자기 삶은 물론이고 전 인류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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