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65화 (365/395)

[흐읏, 흐으, 흐으으…!]

하지만 레지나의 저항이 거센탓이었을까? 물감옥을 유지하는 운디네는 일순간 흐릿해지더니 툭, 툭, 물방울을 흩뿌리며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나는 당황해 심음으로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괜찮아? 위험한 거야?’

[으으응, 저 여자 마나가 순간 핵을 건드려서… 더, 더 유지하긴 힘들 거 같아. 10초가 한계야앗…!]

10초, 평상시라면 순식간에 지나갈 시간이지만 지금만큼은 그 10초도 감지덕지했다.

나는 바위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모래밭 위에 늘어진 발을 질질끌며 물감옥에 갇힌 레지나에게 다가갔고 후웅, 힘겹게 들어 올린 검을 머리 뒤까지 치켜든뒤 검을 반 바퀴 돌려 옆면을 세우고 레지나의 안면에 그대로 휘둘렀다.

하지만 내 판단은 틀렸다.

레지나를 마지막까지 사로잡으려는 욕심, 검을 뒤집는 순간 빈틈을 포착한 레지나가 점점 약해지는 물감옥 속에서 팔을 치켜들어 파악- 무언가를 나와 운디네에게 쏘아냈다.

-푸슉!

“크으윽!”

[아야!]

레지나의 손끝에서 쏘아진 물줄기는 팔뚝을 베고 운디네의 가슴을 꿰뚫었다. 소용돌이 친 물줄기가 살가죽과 근육을 헤집은탓에 팔이 저릿하고 머리에 피가 확 몰렸지만 아직까진 레지나를 붙잡는 운디네가 있었다.

[카사노 미안…!]

시발.

레지나가 쏜 불의의 일격에 운디네가 사라진 상황, 퍼억- 물에 젖은 채 해변가에 떨어진 레지나는 쿨럭, 쿨럭- 물을 뱉어내며 몸을 뒤집고 바닥을 짚어 일어나려 했지만 나는 겨우겨우 힘을 짜내 뻐억-! 레지나의 배를 걷어찼다.

“아윽, 씨바알-! 바위도 뚫는걸 버텨…?!”

“빗맞았으니까!”

카아앙-!

배를 걷어차이고 뒤로 엎어진 레지나,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다급히 검을 찔렀지만 어느새 피레아를 되찾은 그녀는 힘겹게 내 검을 쳐 내고 투웅, 스프링처럼 내게 쏘아지듯 달려들곤 내 멱살을 잡았지만 그 힘은 미약했다.

“흐웃, 후우, 후우, 흐으으…!”

핏줄이 도드라진 손으로 멱살을 움켜쥔 채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고르는 레지나, 여유로운 척을 했지만 레지나 또한 포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여러 공격을 시도하느라 많이 지쳤는지 나와 상태가 엇비슷해 보였다.

나와 레지나, 서로가 한계에 내몰린 상황.

여기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건 자만과 실수를 내보이지 않는 인간뿐.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숨을 고르고 레지나의 공격을 받아치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후웅, 후웅, 훅!

“죽어, 죽어, 죽어어어!”

후들거리는 팔로 무리하게 피레아를 휘두르다 목젖을 향해 찔러오는 레지나.

하지만 지친 팔덕에 휘두르는 방향이 전부 눈에 보인데다 속도도 느렸기에 편안히 피할 수 있었다.

“흐윽, 흐으, 흐으, 흐읍!”

후웅, 후웅, 후웅-

바람가르는 소리와 함께 뺨이나 귀, 어깨를 스치는 피레아의 검날.

단숨에 숨통을 끊어 버리려는 레지나의 아집이 느껴지는 검격을 피할수록 나는 그녀가 미련을 끊어내기 위해 무리해서 연달아 공격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흐으으…!”

몇 번이나 상대해온 너를 내가 모를 거로 생각해? 그 정도로 레지나는 몇 번이나 보여줬던 특유의 갈팡질팡하는, 갈피를 못 잡아 방황하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힘겹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터억!

풀썩!

“큭!”

그때 레지나의 검을 피하다가 엉켜 버린 다리. 레지나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는지 뒤로 넘어진 내 몸을 덮치듯이 달려들었고 푸욱, 역수로 쥔 피레아의 검날은 뺨을 스치고 모래밭 깊숙이 박혀 버렸다.

“크우웃…!”

말캉, 커다란 젖가슴을 가슴에 문대며 급하게 상체를 일으켜려는 레지나. 하지만 간만에 잡은 역공의 기회였기에 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힘겹게 뻗어 레지나의 얇은 골반에 휘감았다.

-꾸욱!

“놔아! 이거 놔 씨발!”

저급한 욕설과 함께 퉁, 퉁, 가볍게 튕기는 골반.

춤추듯 허리를 털며 나를 떨쳐 내려는 레지나였지만 한번 휘감긴 다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나는 곧바로 모래밭에 두 손을 박아넣은후 후웅-! 온 힘을 다해 몸을 돌려 그대로 레지나와 나의 위치를 뒤집어 버렸다.

-뿌득!

“아흑, 으으으윽!”

모래에 피레아가 꽂힌 채 몸이 뒤집히자 팔목이 무리하게 꺾인 레지나. 살벌한 뼈 소리와 함께 비명을 내지른 그녀는 모래밭에 꺾인 손을 얹고 벌벌 떨며 나를 노려봤고 나는 그녀를 기절시키기 위해 두 손을 그녀의 목에 뻗었다.

-꾸우욱…!

얇은 목을 옥죄는 손, 기도를 압박하는 손가락이 하얀 살결을 짓누르며 레지나의 숨통을 틀어막았지만 꺽꺽 넘어가면서도 두 눈에 핏발을 잔뜩 세운 레지나의 반항 또한 남달랐다.

“곱게는, 안 넘어가…!”

우웅,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레지나의 두 눈동자와 함께 섬을 뒤덮는 그림자. 투둑, 투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무심코 고개를 든 카사노는 너무 어이없는 광경에 코웃음을 치며 옥죄던 두 손의 힘을 풀고 말았다.

“미친 거 아니야?”

섬을 뒤덮은 그림자, 그 정체는 섬을 덮다 못해 휩쓸어버릴 규모의 커다란 파도였다.

***

‘더 이상은 안 돼, 이대로면 또다시 붙잡히게 될 거야…’

까득, 이를 갈며 자기 위에 올라탄 카사노를 노려본 레지나는 굳은 결심을 매듭짓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피레아의 손잡이를 겨우 움켜쥔 뒤 전신에 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모았다.

철썩, 철썩-

해변가 곳곳에 울리는 청량한 파도 소리.

마나에 이끌려 덩치를 불린 파도는 몰려오는 파도를 먹어치우고 그 크기를 키워나갔고 카사노가 숨통을 조이며 승리를 직감하던 그때 화악- 커다란 파도의 그림자가 섬을 뒤덮었다.

-주륵!

한계 이상의 파도를 일으킨 탓에 망가져가는 레지나의 몸. 흘러내리는 코피와 별개로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섬을 파도로 뒤덮고 마지막 파도로 빠져나간다면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 분명하리라.

억지나 다름없는 계획이지만 이대로 카사노에게 붙잡혀 끔찍한 쾌락을 맛볼바에 당당하게 바다의 전사로 죽는 게 더 행복할게 뻔했다.

-콰아아아아아!!!

눈을 질끈 감자 떨어지는 파도, 옥죄이던 숨통이 편안해지는 순간 거친 파도가 레지나를 휩쓸었고 최후의 보루로 피레아를 움켜쥔 레지나는 엄청난 물쌀속에서 애써 눈을 뜨곤 방금까지 죽이려들던 카사노를 찾았다.

‘내 손으로 죽일 거야…!’

정령을 부리다니, 예상치 못한 변수에 휘둘린 탓에 잠시 밀렸을 뿐, 실력으론 카사노를 이기기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레지나는 섬을 헤집는 파도 속을 유영하며 카사노를 찾았고 마침 밧줄을 움켜쥔 채 보글보글, 거품을 내뱉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령도 없고 의식도 없어 보이는 카사노, 언제 묶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무에 묶은 밧줄을 손에 휘감고 파도에 휩쓸리는 카사노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본 레지나는 힘겹게 파도를 가르며 천천히 다가갔고 후웅, 피레아를 겨우 치켜든 순간-

-철썩!!!

섬을 내려찍은 파도가 몰려오는 파도에 부딪혀 상쇄된 순간, 해류의 중심에 끼어 버린 레지나와 카사노는 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려 보글보글-! 거품을 내뱉으며 파도가 이끄는 바닷속으로 끌려갔다.

‘씨발, 실수했어…!’

자기 힘으로 일으킨 파도라 생각하고 방심했다. 일으킨건 자신이지만 통제권을 잃은 순간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된 파도는 레지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자연스레 흐르던 파도와 부딪힌 커다란 파도는 통제할 수 없는 파괴력으로 레지나와 카사노를 끌어당겨 깊은 바닷속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르르르르-!”

벌어진 입을 밀고 들어오는 거친 물살, 겨우 뱉어내고 입을 닫았지만 이미 파도에 짓눌린 몸은 물먹은 솜마냥 축 늘어졌고 마나를 일으켜 파도에 불어넣어보아도 이미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진 바다는 레지나에게 대답 하나 돌려주지 않았다.

너무나 오만했고 멍청했다.

카사노를 죽이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 흥분에 먹히지 않고 침착하게 목을 자른다던가 변수를 보일 때도 얌전히 기회를 노려 빈틈을 완벽히 찌를수 있었다.

카사노와 보낸 수많은 밤, 행복한 기억은 아니지만 몸에 각인을 남긴 아찔한 경험은 매번 레지나가 살수(殺手)를 뻗기 전 그녀의 숨통에 손을 얹고 마음을 흔들었다.

‘정말 괜찮을까? 이 남자가 사라지면, 여태껏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좁디좁은 인간관계와 바다의 왕이 되겠다는 포부만 가득했던 삶에 깊숙이 스며든 카사노.

어느새 그를 죽이는 것을 망설이게 된 레지나는 어떻게든 자기 속마음을 외면하고 오늘 그 종지부를 찍으려 했지만 결국 이뤄내지 못했다.

그 결과는 스스로 불러낸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기 직전, 레지나는 밧줄이 묶인 나무에 따라 출렁이는 카사노의 몸을 바라보곤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쳐보기 위해 피레아를 고쳐잡고 마나를 불어넣던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파아아앗!

빛무리로 물드는 카사노의 몸, 애워싼 빛이 공기 방울로 뒤바뀌고 보글보글 헤엄치던 방울이 하나로 뭉친 순간 푸른빛의 여인이 카사노의 곁에 나타났다.

[…]

푸른 여인과 눈이 마주친 레지나는 순간 몇 번이고 뒤집히는 판단에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고 쿠르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파악- 바다를 뒤덮는 커다란 흙먼지에 레지나는 그대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콰르르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홰액, 뒤집히는 몸. 해류에 휩쓸려 몸이 뒤집히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애써 몸을 가누려 했지만, 이미 하나의 흐름이 완성된 파도속에서 몸을 가눌리가 만무했고 레지나는 이대로 휩쓸리는 건가- 체념하려던 그때 꾸욱, 발목에서 느껴지는 조임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꾸욱!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하듯 잡아당기는 여인, 레지나의 발목에 밧줄을 묶은 여인은 싱긋, 옅은 미소와 함께 물살을 헤집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고 발목에 묶인 밧줄 끝을 움켜쥔 카사노와 눈이 마주친 레지나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꼬륵, 두 눈을 감고 흐름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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