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63화 (363/395)

-쏴아아아아…

“휴우…”

“힘들었어요?”

툭, 배 난간에 기댄 채 한숨을 내쉬는 아르실에게 다가가자 힐끔, 나를 흘겨본 아르실은 빵빵한 볼을 흔들며 내 팔뚝을 찹, 때렸다.

“힘들진 않지만 무척 피곤합니다. 보물을 빠트렸다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다니…”

“대신 건졌잖아요. 여태 여기 와서 얻은 것 중에 제일 대단하지 싶은데.”

덜컹, 발치에 있는 상자를 걷어차 끼익, 녹슨 경첩 소리를 내며 드러난 내용물은 반짝반짝, 밤하늘에 수놓인 수많은 별처럼 아릅답게 빛났다.

금화, 보석, 장신구, 왕관- 금화 한 장부터 밑바닥에 숨겨진 보석까지 전부 흠잡을 수 없는 보물이었고 나는 이세계에 와 처음으로 로또에 당첨된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모험가의 배를 약탈한 해적선을 약탈하는 해적선이라니, 조금만 늦게 끼어들었으면 하나도 손해만 잔뜩이었을 겁니다.”

“어차피 뒤질 거 보물상자도 버리다니, 참 심보도 고약한 놈들이었어요.”

그렇습니다- 귀여운 대답과 함께 후후 웃는 아르실의 볼을 주무르던 그때, 돛대 가장 위 자리 잡은 선원이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치기 시작했다.

[항구가 보인다-!!!]

“오늘은 레지나가 돌아왔으려나?”

“그러게 말입니다. 황자님도 슬슬 소식이 들려올 때가 아니냐고 연락하시던데…”

“진짜요?”

오베론이 연락했다니, 상사의 안부는 언제나 불안한 소식이 함께했기에 머리를 긁적인 나는 히네라 마을에 있을 여인들을 떠올리며 참 오래도 머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정도 있었는데 체감은 삼 개월이 넘은 것 같단 말이지.

-촤르르르륵!

“빨리빨리 움직여! 오늘 한번 죽어보자, 빨리, 빨리!”

“”“네!!!”””

우연히 부딪힌 해적선에서 대량의 보물을 얻은 뒤 함박웃음이 걸린 선원들, 제국에서 파견받은 병사들이 보너스에 싱글벙글 웃는걸 보니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져 닻을 올리는 것도 돕고 짐 옮기는 것까지 손수 도와줬다.

“아이고, 여기서 힘빼면 카사노님은 오늘 밤에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얼른 끝내고 쉬어야죠. 저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희여멀건 제국남자가 뱃사람이 되는데 한 달이면 충분한 모양, 고상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던 병사는 어느새 내게 짓궂은 농담을 던질 정도로 친근해졌고 나 또한 익숙하게 받아넘긴 뒤 갑판에 얹혀진 짐을 전부 내렸다.

“하아아…”

우드득, 우드득, 가볍게 허리를 꺾어 줄때마다 나는 뼈 소리에 질색하는 표정을 짓자 쫄래쫄래 다가온 아르실이 꾸욱, 허리를 눌러 주며 눈을 빛냈다.

“돌아가시죠. 오늘은 중앙광장에서 서커스가 열린다고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같이 보러 갈까요?”

꾸욱, 차가운 손을 잡고 약하게 움켜쥐자 화악, 조금 빨개진 얼굴의 아르실이 대답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전의 아르실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과, 수줍게 데이트 신청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당장에라도 안아주고 싶었지만 숙소에 돌아가는 게 먼저였기에 나는 잠시 내려 둔 아공간 가방을 메고 조용히 선원들의 뒤를 따랐다.

“하아, 거참- 이런 일도 다 있군.”

“영주님 귀에 들어가면 난리가 나겠어.”

“…?”

익숙한 길가를 지나고 부둣가를 헤집으며 나아가는 와중 들리는 주민들의 걱정. 뭔가 큰 소란이라도 났는지 부둣가에 있는 항구 사람들은 전부 무언가에 대해 떠들썩하게 떠들어댔고 나와 아르실만이 무슨 일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카, 카사노님!”

그러던 그때 내 이름을 외치는 한 남자, 아까 짐내릴 때 도와줬던 선두의 선원이 사색이 되선 내게 달려오곤 허억, 허억, 숨을 고르다가 척,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숙소로 빨리 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게, 지금…!”

“알았어요.”

툭, 가방을 벗고 아르실에게 맡기자 작은 몸집으로도 가방을 손쉽게 멘 아르실은 내게 손을 흔들어줬고 나는 곧바로 숙소가 있는 곳으로 마나까지 일으켜 달렸다.

인파를 뚫고 달릴수록 소란스러워지는 걸 보니 사람들이 떠들어 대던 건 우리 숙소에 대한 이야기였던 모양.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며 숙소를 향해 달렸고 타닥, 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매케한 연기가 후욱- 바람을 타고 내 얼굴을 덮었다.

“저런…”

“누가 그런 거야? 본 사람 있어?”

“모르겠어, 가까이 가 본적이 없으니- 저기 뭐라고 써져 있긴 한데.”

원래라면 부둣가 근처에 자리 잡았을 건물, 춤추는 소라게. 소라모양 지붕을 얹고 커다란 간판을 집게로 고정한- 이름에 걸맞은 모양의 숙소였다.

하지만 지금 그 소라게의 지붕은 완전히 박살 나 가루가 됐고 집게는 완전히 찌그러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거기다 집게에 고정됐던 간판은 반으로 쪼개져 춤추는/소라게가 됐고 건물 자체도 폭삭 내려앉았다.

하루아침에 숙소를 잃은 상황.

나야 가진 짐을 라우라가 선물해준 아공간 가방에 넣고 다녀 잃은 게 없다지만 숙소를 거점삼아 모든 짐을 놔둔 다른 선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임이 분명했다.

“본 사람이 있냐고 묻잖아! 너, 언제부터 구경했어. 어!”

“지, 진정해! 나도 이제 막 왔다고!”

울분이 가득한 얼굴로 구경꾼들을 핍박하는 선원들, 뒤따라온 아르실을 발견한 나는 그들을 흘겨보며 아르실에게 턱짓했고 고개를 끄덕인 아르실은 후드를 푹 눌러쓰고 발광하는 선원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표면상 바크문의 선원과 내 부하들이지만 엄연한 신분은 제국의 병사들, 자칫 소란을 일으켜 티치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떤 처분을 받을지 몰랐다. 물론 필리아와 친분이 두텁다곤 해도 이 무법항구의 주인은 엄연히 티치였기에 그에게 밉보여선 곤란했다.

“제가 둘러볼게요.”

“아, 네! 사람들을 물리겠습니다.”

“괜한 싸움 없게 중재 좀 잘해주세요.”

물론이지요. 담담하게 대답하는 바크문을 뒤로한 나는 무너진 숙소를 찬찬히 둘러봤다. 망치라기보단 압도적인 중량을 가진 무언가로 부순듯한 잔해.

어제 아침에 항해를 나가 오늘 아침에 돌아왔으니 범행은 밤에 벌어진게 뻔했다. 저녁에 이 정도 소란이 났으면 주민들이 진작 경비대에 신고해 수사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왜 이제 와 구경꾼들이 몰렸나 였다.

“흐음…”

완전히 박살 난 벽의 잔해에 느껴지는 물기, 잔해들을 손으로 헤집은 나는 몇 가지 정보를 얻었고 잔해들을 파헤치다가 깔끔하게 잘린 벽면을 발견하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범인은 처음 건물을 검으로 베어낸 이후 돌아가 아침에 다시 찾아와선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무언가로 남은 건물을 오늘 아침에 돌아와 박살 냈다.

“하아… 편지가 있었네?”

완전히 박살 난 숙소, 그 주변을 맴돌다 부둣가를 등진 벽 뒷면에 선 나는 빨간 글씨로 쓰인 숫자를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자로 잰듯이 완벽하게 잘린 정사각형의 벽. 그 중앙에 쓰인 숫자와 눈에 익은 칼자국까지- 물기, 검, 원한, 이 모든 조건을 부합하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18 28 38 N 102 28 18 S]

유난히 욕설 같은 숫자가 많아 보이지만 뱃사람에게 N과 S가 포함된 숫자라면 하나뿐이었다.

좌표.

레지나는 건물을 부수고 보란 듯이 좌표만을 남긴 채 유유히 사라졌다. 아마도 여기로 찾아오란 편지겠지.

“카사노님…”

“아, 수습은 잘됐어요?”

끄덕끄덕.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는 아르실의 모습에 조금 굳은 입가를 벌려 푼 나는 아르실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에게 지도를 보여달라 말했다.

“지도, 말입니까?”

“불청객이 좌표를 선물로 주고 가서요.”

“아 저건…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부스럭, 품에서 고이 접어둔 지도를 꺼낸 아르실은 벽에 새겨진 좌표와 지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꼼꼼히 장소를 찾아냈고 이내 찾아냈는지 반색한 얼굴로 고개를 든 그녀는 찝찝한 얼굴로 표정을 바꾸고 뜸들이기 시작했다.

“그게, 여기는… 그렇게 좋은 소문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어딘지는 알겠고요?”

“일단, 경비대에 신고하고 당분간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범인이 누군지도 알아내야하고 황자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선 숙소도 필요하니…”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이에요?”

황자님의 명, 경비대의 신고- 맞는 말이긴 해도 솔직히 하나같이 쓸데없는 변명이었다. 아마도 아르실은 좌표에 위치한 섬과 숙소를 보고 범인을 알아챘음에도 내가 위험하리라 판단해 이런 시간 끌기를 하는 게 분명했다.

“…바다의 악몽이라는 악명높은 섬입니다. 레지나가 발견한 섬이고 한낱 섬에 무슨 그리 휘항찬란한 이름을 붙였냐며 많은 이들이 찾아가 그대로 침몰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 것도 미리 조사했어요?”

“레지나가 쐐기이빨항구에서 거점을 옮긴다면 해적섬과 그 섬,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에 미리 점찍어둔 곳입니다.”

“뒷정리는 부탁할게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보물 저거, 음… 제 몫으로 숙소도 좀 처리해주고 선원들 개인물건도 좀 보상해 줘요.”

“카사노님이 부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베론 황자님껜 제가 말씀드릴 테니…”

황자의 이름을 담는 순간 조그마해지는 아르실의 목소리. 하지만 내 욕심으로 벌어진 일에 황자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르실의 볼에 손을 얹었다.

“아…”

“레지나가 원한을 갖고 덤벼들어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황자님께 손벌리고 싶진 않아요.”

정말 팩트만 꺼낸 이야기지만 아르실은 뭔가 착각이라도 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동했단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아니, 진짜 내가 풀어 줘서 생긴 일인데.

“…그렇게 깊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선원들에겐 제가 전부 이야기해둘 테니 다녀오십시오.”

아니, 아니라고.

아르실이 숙소를 지키는 동안 저는 레지나랑 섹스하고 조교했어요.

죄악감을 미친 듯이 자극하는 순진한 눈망울에 나는 삐질, 땀을 흘렸다가 시간이 지체될까 봐 아르실에게 가방을 건네받고 쓸 만한 물건들과 혹시 모를 물건들(대부분 성인용품)을 아공간 주머니에 담고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자, 가 볼게요. 근데 이 바다의 악몽이라는 섬 많이 먼가요?”

“멀진 않지만 카사노님이 혼자 수월하게 갈수 있을지는…”

“한 명한테 그 근처까지만 데려가달라 해야죠 뭐, 뱃사람들 배야 항상 남아도니까요.”

“바다의 악몽이라하면 잔뼈가 굵은 뱃사람도 가지 않을 겁니다. 거기다 정박하지도 못 하는 섬에 오래 기다려줄 인품을 가진 사람도 몇없을 테니 그냥 선원 중 배를 몰줄 아는 한 사람과 동행해야 합니다.”

신호 마법이 적힌 양피지까지 쥐어 주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아르실.

양보할 생각이 없는 모습과 그럴듯한 아르실의 논리에 넘어간 나는 동행할 한 명을 바크문에게 붙여달라했고 금세 나온 지원자와 함께 적당히 나포했던 해적선에 올라탄 나는 선원과 함께 바다의 악몽이란 섬으로 향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체념어린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는 아르실. 안전히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파도를 타고 떠난 나는 지루한 항해를 바다 구경으로 때웠다.

실력 있는 선원이라기에 믿긴 했지만 돛을 조정하고 바람을 타고 순풍을 이어 나가기까지. 대단한 실력에 만족하고 있을 때쯤 무언가 상황이 이상해졌다.

-촤아아악! 쏴아아아! 철썩, 철썩!

몰아치는 폭풍우, 배를 뒤집을 기세의 거친 파도.

사색이 된 선원과 바다에 스며든 마나를 느낀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저 멀리 티끌만한 섬을 바라봤다.

레지나, 그녀는 오늘 나를 죽일 작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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