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62화 (362/395)

카사노의 방에서 돌아온 레지나는 온종일 선장실에 틀어박혀 고민했다. 이대로 쾌락에 안주하면 카사노가 지껄이는 헛소리가 일어날 것만 같아 유약해진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을 종일 이어 나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하나.

유약해졌다면 강해지면 된다, 어릴 적 바다의 왕이 되어야 한다며 어머니에게 배운 수련법과 타고난 신체, 그리고 카사노를 죽이겠다는 지금의 동기라면 이전에 포기했던 그곳에서도 잘 해낼 수 있단 생각이 든 레지나는 곧바로 찝찝한 몸을 씻고 갑판 위로 나섰다.

“선장, 위험해요!”

“맞아요, 해수랑 어인이 매일같이 상륙하는 쓰레기 같은 섬이잖아요.”

카사노를 만나기 전, 모험을 즐기다 발견했던 섬 하나, 바다에 득실거리는 해수들이 섬 주변 바닷가에 즐비하고 밤이 되면 이지를 상실한 어인들이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섬 곳곳을 누볐다.

바다의 악몽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을 지은 레지나는 선의의 마음으로 쐐기 이빨 항구에 소문냈고 레지나를 믿지 않은 용병들이나 해적들이 들렸다가 모조리 침몰당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난 곳이었다.

온종일 틀어박혀 있더니 이젠 다짜고짜 거기에 홀로 내려달라니, 카사노를 만나고 간혹 하루 이틀씩 사라지는 선장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던 선원들과 메파는 선장의 옷소매를 움켜쥐고 말렸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레지나는 단호하게 손을 밀어내며 피레아와 가방을 챙겼다.

“언니!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래요, 전에도 피떡이 돼서 울면서 도망쳤는데…”

“야이 씨발 말은 똑바로 해! 애들이 다 다쳐서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린 거지, 그리고 내가 같이 가제 씨발? 혼자 내려달라고! 꼭 욕을 안 하고 부탁하려고 해도 욕이 나오게 해요.”

“지랄맞은거 보면 언니 맞는데… 거기 쳐다도 보기 싫다고 했잖아요?”

비겁하게 진실만으로 덤벼오는 메파, 항상 뛰어난 두뇌로 도움을 주는 귀여운 책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덤벼들 때면 레지나는 메파가 지랄맞은 꼬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지해져야 할 때. 레지나는 꼬질꼬질한 부하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비상금을 담아둔 주머니 하나를 메파에게 던져주고 낮은 목소리로 이별을 고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이틀간 휴가니까 알아서 잘들 쉬고 이틀 뒤에 데리러 와. 그동안 나는 볼일 좀 보고 있을 테니까… 알았어?”

약탈에 돌입하기 전 진지하게 명령을 내리던 그때의 눈빛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레지나의 눈빛.

그 맑은 눈빛에서 선장의 진심을 읽어낸 부하들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고 메파 또한 레지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하아, 한숨을 내쉬며 돈주머니를 품에 챙겼다.

“알았어요, 식량은 다 빠짐없이 챙겼어요?”

“…뭘 하는지는 안 묻고?”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죠, 우리 선장이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언니!

메파의 신뢰가 가득 담긴 말 이후 배를 울리는 부하들의 열띤 응원, 지금의 감정을 마음속 깊이 담아낸 레지나는 카사노에 대한 분노와 함께 강해지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기로 하고 선두에 서서 피레아를 뽑아 들었다.

“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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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옥 같은 이틀이었어.”

정말 매정하게 내려주자마자 배를 돌려 사라진 부하들.

순간 레지나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미 배는 떠났고 적은 레지나를 제외한 섬 그 자체였다.

상륙과 동시에 숲을 가르고 튀어나오는 짐승들, 그것들의 두개골을 한칼에 쪼갠 레지나는 거처부터 마련하기 위해 나무들을 박살 내고 대충 통나무를 듬성듬성 쌓아 안락한 우리 집- 이라는 이름의 쓰레기더미를 쌓았다.

이후 밤이 되자 불붙은(정확힌 횃불을 만들었지만 넘어지면서 통나무집에 불이 옮겨붙었다) 거처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어인들의 상대한 레지나는 수없이 몰려드는 물고기들의 목을 썰며 손쉽게 목을 자르는 검로를 알아채고 그걸 손에 익혔다.

손에 쥔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닌 손이 검처럼 느껴지는 하나의 경지, 피레아가 하나도 무겁지 않았고 타악, 한 걸음을 내딛고 내지른 검격은 한 놈이 아닌 수십의 목을 잘랐고 불타는 거처를 보며 몰려온 어인들은 하나의 육편이 되어 해변에 떠밀려온 해수들의 한끼가 됐었다.

‘잊어버리면 안돼…!’

누구보다 적이 절실한 상황, 어인들의 이빨과 녹슨 병장기에 베여 피가 흐르는데도 레지나는 홀린 듯이 어두운 숲으로 숨어들었고 야자잎으로 뒤덮인 칠흑 같은 숲을 날아다니며 노란 눈의 짐승들의 목을 취했다.

서걱-

검 끝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사지를 가른 파도는 허리를 펴고 짐승을 덮쳤고 파도에 휩쓸린 짐승은 그대로 베여 두 쪽이 나 바닥에 철퍽, 널브러졌다.

레지나는 검에 홀린 광인처럼 숲을 뛰어다니며 짐승들을 휩쓸었다.

재해가 된 파도처럼, 나무를 휩쓸고 짐승들의 안식처를 베어 넘기고 도망치는 미물들까지 파도로 뒤덮었다.

하룻밤 사이에 섬을 정리한 레지나.

그녀는 상쾌해진 정신과 마음속 짐을 전부 내려놓은 지금, 두 눈을 편하게 감고 검을 휘두르며 자신을 되돌아봤다.

뭐, 그러던 와중 카사노와 있었던 불쾌한 일을 떠올려버려 달아오른 몸을 다 타버린 통나무 옆에서 가볍게 해소했지만, 레지나는 작은 즐거움으로 치부하고 본격적으로 어머니, 아우리아가 알려줬던 수련을 시작했다.

-츠르르르르르!

해변가로 다가가자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다가오는 수많은 해수.

짐승들의 피를 마시고 살점을 씹으며 허기를 채웠음에도 피에 굶주린 해수들은 가느다란 바늘 같은 이빨을 세우며 레지나에게 다가왔고 피비린내 가득한 바다에 풍덩 몸을 담근 레지나는 두 눈을 감고 마나를 일으켰다.

‘아…’

어릴 적부터 가족과도 같았던 바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이 기분, 이빨을 들이미는 해수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는데도 점점 깊이 잠수한 레지나는 해류를 타고 다가오는 해수의 적의를 무시하며 마나를 일으켰다.

-츠르르르…

허리에 찬 피레아는 미동도 없는 상황, 체내에 쌓여있던 마나 만으로 바다를 통제한 레지나는 갑옷처럼 온몸에 해류를 두르고 다가오는 해수의 흐름을 통제해 뚜둑! 해수의 목을 꺾고 시체를 흘려보냈다.

목이 꺾이다 못해 아예 뒤틀려 뼈가 튀어나오고 해류를 타고 흐른 피는 저 멀리 깊은 수심속 해수들까지 자극했다.

섬을 정리했다면 지금은 바다를 정리해야 할 때, 레지나는 지친 몸으로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마나를 일으켰고 수족이 된 마나는 파도를 일으키고 해류를 조종하며 레지나의 팔다리가 되어 몰려오는 해수들을 모조리 쳐 죽였다.

그렇게 이틀간 바다의 악몽이라 직접 지어준 이름의 섬을 깨끗이 청소한 레지나.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선장의 부탁대로 배를 끌고 도착한 메파는 이틀 전과 같은 섬이라고 칭할 수 없는 풍경에 깜짝 놀라 경악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저게 뭐야. 저건…”

섬에 빼곡히 심겨 있던 나무들은 베이고 꺾이고 파도에 부딪혀 젖은 상태로 뿌리채 뽑혀있었고 해변가 주변은 떠밀려가다 다시 돌아온 수많은 어인과 해수들의 시체로 즐비했다.

근방에 있는 모든 해수의 씨가 말라 시체를 먹을 해수도 없는 상황, 흙과 모래만 남은 텅 빈 섬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던 레지나는 저 멀리서 들려온 메파의 목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번쩍 들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짐승들을 베어 넘기며 수없이 경험한 수많은 검로, 그리고 바다의 품에 안겨 마나를 두르며 익힌 마나의 활용법.

이틀뿐이지만 이전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실력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레지나는 강해졌지만 안타깝게도 단 하나의 벽에 부딪혀 넘어가지 못했다.

우우웅, 푸른 마나를 쉽게 일으켜 피레아에 담지만 담아낸 마나는 츠즛, 츠즉, 얇은 막처럼 펼쳐지다 검날에 스며들며 경도만을 보호했고 레지나는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며 마나를 거뒀다.

소드마스터의 전유물 검강은 아직도 먼 상황, 하지만 이틀의 수련으로 충분히 카사노를 뒤따라 잡아, 아니- 완전히 넘어섰다고 확언할 수 있었기에 레지나는 타앗, 흙을 박차고 달려 나가 아직 정박하지도 않은 세리느를 향해 뛰어올랐다.

-쿠우웅!

이후 갑판이 완전히 아작나 메파의 꾸중을 들으며 선장임에도 직접 수리한 레지나는 쉬러 가자는 메파의 권유도 거절하고 곧바로 자신의 고정 항로로 돌아갔고 그동안의 부재 동안 설쳐대던 해적들과 상선들은 한 번에 토벌했다.

그렇게 퍼져나간 악명과 위명, 중간중간 대단한 이름값을 가진 함대나 용병들과도 부딪힌 레지나였지만 소드마스터가 아니어도 파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레지나는 더 이상 그들의 밑이 아니었기에 백병전이 버거울 때면 부하들을 물리고 배를 뒤집는 방식으로 싸움에서 이겼다.

“선장…”

“아직 멀었어. 페리함대의 그 미친년, 그 정도 실력은 돼야 카사노를 손쉽게 죽일 거야.”

“그래도 이겼잖아요. 그만하고 좀 쉬세요, 너무 무리했어요… 애들만 쉴 게 아니라 선장도 쉬라니까요?”

“잠시 다녀올게, 그리고 이긴 게 아니야, 배가 뒤집히니까 자기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러난 거야, 소문은 내가 이겼다고 퍼지겠지만 난 멀었어.”

“선장님…”

점점 멀어지는 듯한 레지나의 모습에 메파는 꾸욱, 손바닥을 손톱으로 누르며 입술을 곱씹었다. 뭐랄까-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좋지만 뭔가 영영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지는 듯한 느낌? 자신의 감정을 말로 정리하지 못한 메파는 그렇게 레지나를 보내줬고 그녀는 사전에 봐뒀던 외딴섬에 내리고 바위들을 부수며 자신의 실력을 점검했다.

“후우우…”

그리고 현재, 바위에 커다란 구멍을 흘겨본 레지나는 숨을 고르며 피레아를 고쳐잡고 파삭, 가볍게 휘둘렀다.

-쩌억!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바위가 짧게 진동하자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이후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한 바위는 쿠궁! 묵직한 소리를 내며 흙먼지와 함께 그대로 넘어졌고 레지나는 이빨 하나 상하지 않은 피레아를 살펴보며 처억, 검집에 넣고 주변을 둘러봤다.

-콰르르르르…

여전히 흙먼지를 풍기며 섬을 데굴데굴 구르는 파편들.

섬에 남아있던 가장 커다란 바위까지 끝장낸 레지나는 섬에 널브러져 있던 수백 개의 바위가 산산이 조각냈음에도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섬에 온 지 다섯시간이 넘어갔기에 품에서 신호 마법이 새겨진 주문서를 꺼냈다.

찌직…

-피융!

이제 신호를 보고 부하들이 오기만 하면 그 자식을 잡으러 떠날 심산이었기에 레지나는 꾸욱, 떨리는 손으로 피레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잠시 고민했다.

모든 걸 쏟아부을 만전, 어머니께 하사받고 한번 입은 뒤 너무나 아까워 아끼고 아꼈던 갑주.

“마지막, 일테니까…”

카사노에겐 마지막이 아니겠지만 자신에겐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레지나는 카사노를 정말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한 번 더 사로잡히면 그녀의 마음은 꺾이고 육체는 몰락할 것이다. 자신의 몸이기에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가진 레지나는 만전의 상태로 카사노의 목을 베기 위해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며 카사노에게 보낼 결투장을 떠올렸다.

“춤추는, 소라게.”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숙소. 하지만 결투장을 남기기엔 적합한 장소였기에 레지나는 저 멀리 바다를 가르며 다가오는 세리느를 바라보며 카사노에게 보낼 결투장의 문구를 미리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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