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44화 (344/395)

“오.”

“어때? 생각보다 제대로지?”

“그렇네요.”

묘하게 들뜬 목소리, 하지만 필리아의 호언장담대로 암시장 안, 구획과 상단이 나누어져 진열된 상품들을 보니 이전에 그녀가 온갖 인간군상이 몰린다고 설명했는지 이해가 갔다.

약탈품과 특산품, 여러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정해진 구역 내 가게를 차린 해적이나 상단원들이 침 튀겨가며 물건 팔기 바빴다.

암시장이 아니라 박람회라도 온 듯한 느낌, 거래의 열기로 후끈한 내부 분위기에 붕 뜬 나는 꽉 움켜쥔 필리아의 손을 조물거리며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래도 다 보던 물건이네요.”

“진짜는 경매장에만 나오니까. 저 정도는 우리 항구에도 충분하잖아?”

자랑스러워하며 툭,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는 필리아, 초반의 데면데면한 분위기 탓에 낯가려 했던 필리아였지만 어느새 친근함을 느끼는지 필리아는 암시장에 들어서고부터 잦은 보디 터치를 해왔다.

손잡고 있는 것도 당연시여기고 있고 말이야.

가랑비에 서서히 젖듯, 냄비 속 개구리가 천천히 익듯 내게 익숙해지는 필리아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상점 구획을 나온 그때, 턱시도를 차려입은 직원 하나가 가면 두 개를 들고 우리 앞에 섰다.

“실례합니다, 카사노님 맞으십니까?”

“네, 무슨 볼일이죠?”

나란히 선 필리아를 등 뒤로 밀고 까칠하게 대답하자 척, 한 걸음 다가온 직원이 민무늬 흰가면 두 개를 나와 필리아에게 내밀고 공손히 대답했다.

“카사노님을 경매장까지 안내해드리라는 명령이 있어서 모시러 왔습니다. 안내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툭, 수락하라는 팔꿈치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고 받아든 가면을 필리아에게 건넨 후 남은 하나를 받아 얼굴에 덮었다.

묘하게 안심되는 느낌에 감탄하던 그때 “그럼 안내해드리겠습니다.”라는 직원의 말과 함께 척척척, 직원이 앞장서 우리를 안내했다.

“잘됐네, 어차피 볼 것도 떨어졌고 지금부터가 본론이니까.”

“너무 생각대로 흘러가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당신과 적대할 생각은 없을 거야, 레지나와 동등한 실력을 갖춘 패는 장사꾼들에게도 부르는 게 값이니까.”

패라, 이미 황자가 쥐고있는 패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고 후회할 수도 있어 입을 닫았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전에 경매장 내부에서 폭력은 허용되지 않고 다소 난동을 피우시는 건 제지하지 않습니다만 항의하며 무대 위로 난입하시거나 입찰하는 손님을 협박하는 몰상식한 행위는 자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하나 경고를 들을 때마다 그걸 하는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뭔가 등골이 싸했다. 하지만 궁금증이 도지기도 해 자리로 안내해주는 직원을 따르며 슬쩍 뒤돈 나는 묘하게 조용한 필리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경고들도 레지나랑 필리아님이 벌여서 생긴 건가요?”

“…나는 입찰을 못 하게 막진 않았어.”

화악, 후드에 가려진 볼이 빨갛게 물들고 본인도 멋쩍었는지 립스틱을 바른 고운 입술을 앞니로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귀여운 반응에 꾸욱, 쥐고 있던 손을 더 강하게 움켜쥐자 톡, 필리아가 내 등에 살짝 기대듯 걸었고 자리에 앉기 전까지 계속 내게 기대왔다.

“24번, 25번 좌석입니다.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보인 직원이 돌아가고 배정받은 자리를 살펴봤다.

중앙이 아니라 오른쪽이긴 했지만, 중앙에 다른 좌석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반면 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일행과 나란히 앉기 편하게 소파가 준비돼있었기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다른 사람들하고 거리도 머니 둘이서 뭘 해도 모르겠네요.”

“자, 자, 장난치지 마라, 경매에 집중해야지.”

“장난 아닌데.”

쇼파에 필리아를 앉히고 팔걸이에 기대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자 화악,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필리아가 툭,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며 제지했다.

“지, 지금은 안대애, 안대니까아…”

안된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묘하게 들뜬 음성, 그래도 잠잠했던 분위기에 물결을 일으킨다는 목적은 달성했기에 나는 둘렀던 팔을 빼고 얌전히 반대편 팔걸이에 몸을 기대 경매장을 꽉 채운 다른 손님들을 둘러봤다.

우리처럼 로브를 푹 뒤집고 후드까지 눌러쓴 손님도 몇몇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가면만 쓰고 있었다.

“떳떳하다 자랑하는 놈들이지, 우리야 레지나를 좆 패려고 하니 숨어야 하지만 다른 놈들은 그런 게 없으니까.”

좆 팰 생각 없는데… 저절로 내뱉을뻔한 딴지를 삼킨 나는 항구에서 머물며 스치듯 지나간 얼굴 몇몇이 있는 걸 보고 툭, 필리아의 어깨를 두들기며 슬쩍 가리켰다.

“유명한 사람들이 많네요?”

“어디 보자, 저긴 톰슨, 저긴 그리폰상단의 하빈, 오! 사막 왕국의 롬말. 확실히 유명한 놈들이네.”

가리킨 손님들의 이름을 줄줄 읊어준 필리아는 웃는 얼굴로 저 귀족이 무슨 사업을 벌이네 저 해적이 턴 상선이 무슨 사업을 하고 있다- 내게 알려주기 시작했지만, 흥미가 없었던 나는 대충 호응만 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턱, 필리아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저기 있네요.”

“사막 왕국도 많이 힘들 거야, 정식 국가 명칭을 짓고 싶어도 연합이 반대하니까아아아악!!!”

귀를 찢는 고음과 함께 퍼억, 옆구리를 찍는 단단한 팔꿈치. 당황한 나는 한 손으로 필리아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지른 고음 탓에 손님들의 시선이 잠시 이쪽으로 향했고 무척이나 다행히도 시선은 금세 흩어졌다.

“레지나가 도망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저, 저, 씨발년…!”

처억, 손가락질하면서 욕까지 내뱉는 필리아 탓에 그녀의 손을 잡아내린 나는 손끝이 가리켰던 곳을 바라봤다.

“흐웃, ~~~~, 하, 흥!”

준비된 좌석에 녹아내리듯 불량하게 앉은 푸른 머리칼의 해적, 평상시 입던 갑갑한 제복은 어디 가고 헐거운 재킷만 걸친 그녀는 힐끔힐끔 주변을 둘러보며 다리를 벌리고 가슴 단추를 풀고 머리를 까딱까딱 흔들어댔다.

뒤통수 후리고 싶네, 동글동글한 머리를 바라보며 욕구를 꾹꾹 눌러 담은 나는 조교 당한 몸이 욱신거려 건들거리는 레지나를 보며 생각보다 민감한 그녀의 몸을 보니 더 빡세게 굴려도 되겠다 결론짓고 필리아를 바라봤다.

“흐으, 흐으, 흐으, 흐으으…!”

되게 싫어하는구나, 투우장에 놓인 황소처럼 들썩이는 필리아를 보고 있으니 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지만, 나중에 묻기로 하고 레지나를 관찰하던 그때 텅, 텅, 텅, 경매장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이 하나씩 꺼졌다.

[아, 아, 아~~~!!! 안녕하십니까? 대륙 각지에서 모인 훌륭하고도 위대하신 귀빈 여러분, 오늘의 경매를 진행할 덤보라고 합니다!]

“저 씹새끼.”

“덤보 씨발년아, 도망가놓고 감히 내 앞에서 낯짝을 내밀어?!!”

데굴데굴 굴러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퉁퉁한 남성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에 오르자 동시에 쏟아지는 두 여인의 목소리. 물론 필리아가 내뱉은 욕설은 나만 들었지만, 후자는 경매장 안의 모두가 들었다.

[하하하! 훌륭한 귀빈 가운데 더더욱 대단하신 분이 계셨군요, 지금 여러분이 앉아계신 경매장, 아울러 카밀라스 암시장을 운영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레지나 선장의 환호, 잘 들으셨습니까~!]

“닥쳐 씨발아! 넌 경매 끝나면 뒤졌어, 그 좆같이 뒤룩뒤룩한 살덩이들을 도륙 내고 니애미한테 보낼 거야! 알았어?!”

주룩, 레지나의 험악한 협박과 살기 가득한 외침에 아무런 제지가 없자 덤보라 불린 사회자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진행을 멈출 생각은 없었는지 주룩주룩, 땀방울과 눈물을 흘린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진행을 이어 나갔다.

“진짜 제지 안 하네요, 레지나한테 받은 게 많나 보다.”

“저 씨발놈이 말한 대로 많은 도움을 줬으니까.”

“저 사람도 나쁜 새끼예요?”

“상단만 터는 씹새끼야, 아주 좆같애.”

[그, 그럼 지금부터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처, 흐윽, 처음은 가볍게 시작해야겠죠…! 사막 왕국, 그것도 라필리움 갱도에서만 피는 광물의 꽃! 핑크 다이아몬드 입니다!]

“오.”

핑크 다이아몬드라, 덤보가 뽈칵, 케이스를 열자 무대 뒤 벽에 걸린 새하얀 벽면이 스르르, 색이 입혀지고 핑크 다이아몬드의 자태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첫 경매니 가볍게 10골드로 시작하겠습니다!]

가볍게라, 지구- 그것도 한국 기준으로 화폐가치를 굳이 비교하자면 1골드면 백만 원이었으니 저 좆만 한 다이아몬드가 천만원이란 이야기였다.

아르실과 이야기해서 현상금이랑 남은 지원금도 들고 왔겠다, 히네라 마을에 있을 부인들과 위치 크래프트, 더 나아가 아르실, 필리아에게 줄 선물을 암시장에서 구하자 마음을 굳힌 나는 곧바로 소파에 놓여있던 팻말을 들었다.

“20골드.”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24번 귀빈께서 20골드에 입찰하셨습니다!]

싸아, 싸늘한 침묵에 갸웃거리며 팻말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나에게 쏟아지는 조롱의 시선. 왜 그런지 몰라 슬쩍 필리아에게 머리를 숙이니 필리아가 곧바로 내게 상황을 알려줬다.

“그, 라필리움 갱도에서 대량의 다이아가 발견돼서 온 대륙에 이미 퍼질 대로 퍼진지 오래야. 거기다 핑크면 갱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다이아몬드라…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국 어느 보석상을 찾아가도 살 수 있어서. 아무도 경매장에서 사지 않을 거야.”

이런 씨발, 지구의 상식으로 입찰했다가 개쪽을 보다니. 지구에선 핑크 다이아몬드면 귀했다고.

-탕탕탕!!!

[자아, 기념비적인 첫 입찰! 사내대장부다운 포부를 보여주신 24번 귀빈께 모두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귀빈분들께 다음 물건이야말로 제대로 된 경매의 시작이라 선언할 수 있습니다!]

씨발, 가볍게 시작하자며. 레지나가 왜 저 새끼를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지, 필리아가 왜 개패고 싶어 하는지 공감하게 된 나는 불퉁한 표정으로 경매를 지켜봤고 필리아 또한 팔짱을 낀 채 레지나가 입찰하는 경매만 끼어들며 그녀에게 훼방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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