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42화 (342/395)

“초대받으신 건가요?”

“아니.”

하아, 끈적한 한숨을 내뱉은 필리아는 툭,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고 손바닥에 턱을 괴더니 아련한 눈빛으로 창가를 바라보며 출처에 대해 말해줬다.

“암시장 티켓은 무기명으로 많은 이들에게 제공되지, 떳떳하게 방문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경매장에서도 따로 검사하진 않지만 내가 왔다는 게 운영 측 귀에 들어가면 시끄러울 거 같거든.”

“어차피 다 떳떳하지 않으면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야 레지나 그년도 암시장에 참가할 테니까. 나와 그년 악연은 유명하거든, 운영하는 새끼들은 내 눈치보다 레지나 눈치를 보는 새끼들이라 나를 들여보내지도 않을 거야.”

“이야기도 안 듣고 들여보내지 않다니…”

“왜냐하면 작년에 암시장 내부에 차려둔 카지노에서 그년하고 칼부림을 벌이다 귀족 하나를 죽였거든. 노예 밀거래를 하는 부패 귀족이긴 했지만… 그 뒤로 내 앞으로 초대장을 보내지 않더라고.”

미친년들이었구나. 그러면 안 보낼 만도 하지.

“마법까지 동원해서 큰 규모로 암시장을 여는 새끼들이 쪼잔하게 쯧…”

“레지나가 경매장에 확실히 나타날까요?”

“응, 그런 소문이 돌고 있기도 하고 아마 무조건 나타날 거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그년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물건이 있는데 그게 이번에 나온다 하더라고?”

“그걸 뺏을 생각입니까?”

“그것도 좋고 거기서 그년의 목을 따는것도 좋겠지.”

죽일 생각이구나, 필리아는 나와 이해관계가 알맞다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계속 대화를 나눌수록 우리의 톱니바퀴는 맞물리지 않았다. 나는 레지나 같은 몸매를 가진 여인이 죽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카사노 당신에게 초대권을 양도하려고 찾아왔어, 그리고 경매장에 나를 동행시켜줘.”

“제가요?”

“초대장이 기본적으로 무기명이긴 하지만 이름값이 있을수록 좋거든, 그런 면에서 당신이 최적이지.”

“저 같은 놈이 이름값이 있을까요.”

겸손하게 나가자 쿵, 테이블을 두들긴 필리아는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척, 나를 가리키고 말했다.

“당신도 이근방에서 제법 이름 날린다는 거 알고 있지 않아? 악명, 위명, 어느 것 할 거 없이 당신 정도면 충분하지. 해적놈들은 카사노란 이름을 듣고 이를 갈고 상단은 당신에게 의뢰를 맡기고 싶어해. 이름난 현상금 사냥꾼도 당신에게 줄을 대 항해에 동행하고 싶어 하고.”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요.”

“무기명이라지만 암시장인 만큼 검문과 조사 정돈 할 거야, 어중이떠중이가 초대장을 들고 온다면 샅샅이 수사하고 동행인까지 캐물어들려고 할 테지만 당신 정도 급이면 대충 넘어갈 거야.”

“암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그러면 이제 나와 같이 경매장으로 향해 레지나 그년이 낙찰받을 물건을 가로채고 그걸 빌미로 협박하던 협상을 하던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이미 내가 수락하리라 생각하는 확신 어린 발언, 뭐- 필리아가 어렴풋이 느낀 대로 나는 거절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긴, 지금이야 드레스도 입고 광 좀 냈지만, 필리아가 홀로 찾아갔다면 무조건 걸렸을 게 뻔했다. 핑챙에 안대, 그리고 저 건강미 넘치는 야릇한 몸. 하지만 단순한 동행으로 간다고 들키지 않는단 보장은 없을 텐데…

“그런데 그냥 동행으로 데려가는 것만으로도 검문을 통과할 수 있나요?”

“그, 그, 그그그거에 대해선 생각해둔게 있는데.”

꿀꺽, 입 안에 고인 침을 넘기고 바르르, 붉은 입술을 떤 필리아는 꾸욱, 눈을 감고 크게 소리쳤다.

“카사노! 당신의, 당신의…. 당, 애애애애애애애…!”

무슨 사이렌이냐고, 애애애거리는 필리아의 목소리에 크게 웃음이 터질뻔했지만 겨우 억눌렀다. 입을 틀어막고 크흠, 헛기침을 내뱉자 그제야 진정한 필리아가 콰아, 당차게 외쳤다.

“애인으로 가장하고 당신이 막아줘! 내 여자에게 손대지 말라고!”

쿵, 부끄러웠는지 테이블을 두들기고 고개를 푹 숙이는 필리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과 별개로 제법 합리적인 제안이었기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검문하려고 들면 애인한테 관심 끄라고 넘어가는 건 확실히 통하겠네요.”

“그, 그치! 그치!”

암시장이라, 필리아의 제안을 거부하기 애매한 것도 있었지만, 경매장과 암시장, 카지노가 병합된 곳이라면 여러 정보와 건질만 한 게 많을 게 뻔했다. 이것저것 캐보거나 귀동냥만 해도 이득일 테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애인이라…”

“응?”

텁, 테이블에 얹힌 필리아의 주먹을 움켜쥐자 찌르르, 감전된 것처럼 손끝부터 어깨를 떤 필리아는 화악, 순식간에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기왕 잠입하는 거 진짜 애인처럼 붙어봐야겠죠?”

쑤욱, 벌어진 주먹 사이에 검지를 밀어 넣고 말려있는 손가락을 펴 굳은살 박힌 손바닥을 쓰다듬었다.

“응히잇!”

쿠웅, 무릎으로 테이블을 걷어차며 순식간에 쏘아 올리듯 튀어 오른 필리아, 그 탓에 테이블이 엎어지긴 했지만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은 그녀는 후웃, 후으- 거친 숨을 뱉으며 벌벌 입술을 떨다가 갑자기 홱, 손을 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합류할진 사람을 따로 보낼 테니 제대로 말끔히 차려입고 준비하고 있도록 해 한번 다녀오면 돌아오는 데까지 총 이삼일은 소요될 테니까 다른 곳에 이야기 새지 않게 조심하고!”

래퍼마냥 쉬지도 않고 우수수 쏟아낸 필리아는 쿵쿵쿵, 바닥을 뚫을 기세로 발을 구르며 가게 밖으로 향했고 쿠웅! 거칠게 문이 닫히자 부스스, 천장에 매달린 먼지가 떨어지기까지 했다.

필리아가 나가고 벌컥, 열린 문으로 선원들과 주점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러자 부서진 테이블과 먼지가 득한 바닥을 보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챙겨둔 초대장으로 어루만지며 시선을 돌린 나는 조용히 방으로 올라갔다.

***

“잠입, 이라고요.”

쿠웅, 돌덩이로 얻어맞은 기분. 그렇게밖에 설명 못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진 아르실은 아득한 기분을 느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이삼일은 없을 거 같네요. 필리아 님의 제안이라 거부하기도 그렇고 황자님한테 좋은 소식일 거 같아서 그냥 그 자리에서 수락했어요.”

‘변태, 음흉남, 거기다 제멋대로이기까지…!’

아르실은 코끝을 긁으며 짐 정리하는 카사노의 옆모습을 보고 울컥, 무언가가 치솟았다. 가야 한다고, 가겠다고 선포한 그는 자신의 속도 생각 하지 않고 저리 해맑게 준비하다니, 속에 천불이 들끓었다.

물론 카사노야 아르실이 전에 말했던 필리아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과 오베론에게 득이 될만한 이야기다- 라고 말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별생각 않고 있던 거지만 그녀가 카사노 본인이 아닌 이상 모를 일이었다.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또, 또 돌아오지 못한다면…’

현재 자신이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 거기다가 돌아온 카사노와 별다른 교감도 못 했는데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쉽게 밝히지 못한 속마음이 아쉬운 티를 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속마음인지라 카사노는 볼 수 없다는 게 흠이었고 결국 아르실은 카사노를 보내주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바크문과 다른 선원들에겐 설명해두겠습니다.”

“레지나도 거기 온다니까 이번엔 확실하게 잡아 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레지나, 익숙한 이름을 듣자 쿵, 쿵, 쿵, 얌전했던 심장이 날뛰고 그날의 향취가 떠올랐다.

커다랗기만 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코끝이 간지럽다. 수인이란 가증스러운 몸은 그날 카사노에게서 느낀 진한 수컷 향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음탕한 반응을 보이며 씨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기까지 했다.

거기다-

‘이대로 레지나를 체포하고, 황자님께 보고드리면 카사노님은 원래 살던 그 마을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터덜터덜, 손가락질받으며 황궁 복도를 걷는 자신의 뒷모습, 날개를 퍼덕이며 몸을 가려도 작은 키 탓에 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 무척이나 외롭고 고통스럽던 그 시절을 떠올린 아르실은 부르르, 몸을 떨며 로브 안 축 늘어뜨린 팔을 모아 팔짱을 끼고 가슴을 짓눌렀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울컥해서-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거기다 그 여자, 레지나와 또 몸을 뒤섞고 돌아온다면…’

그땐, 자신도 참지 못하겠지.

지나친 외로움 탓에 외면하던 욕망과 마주하기로 결심한 아르실은 조용히 카사노에게 속내를 감추고 그가 떠나기 전 그에게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고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따로 필요한 물건은 없습니까? 지원금은 넉넉하니, 말씀만 해주시면 뭐든 준비하겠습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런 지원금은 사람 많은 데에다 써야죠.”

배려를 보이다니, 하지만 압니다. 부잣집 영애와 이삼일이나 자리를 비우는데 지원금 따위보다 더한 돈으로 호의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베푸는 호의라는걸…

“아.”

“괜찮아요?”

톡, 뜨거운 이마에 얹히는 뜨거운 손바닥.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눈동자를 들여보는 카사노의 옅은 미소에 아르실은 부정적인 감정에 먹힌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우면서도 카사노에게 너무 많이 이끌렸다는 걸 다시금 자각했다.

이러면 안됐다.

너무 많은 감정을 건네면 안됐는데…

차라리, 내 손에 쥐는 걸 바라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아르실은 초점 없는 죽은 눈으로 카사노의 뒷모습을 눈에 담아내며 스윽, 방금까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 이마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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