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쿵!
“아잇, 시발 왤케 소리가 커.”
외박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의 심정으로 문을 닫는 데 너무 큰 소리가 나 깜짝 놀랐다.
따로 연락할 수단이 없어 아르실이나 바크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찾아 돌아왔다 알리려 한 순간 후욱- 주점 홀이 밝아지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왔군요.”
쿨쩍, 코먹는 소리와 함께 등불을 들고 있는 한 여인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항상 푹 눌러쓴 갈색 로브가 펄럭이며 후드가 벗겨지자 눈가가 빨갛게 물든 연갈색 머리칼의 아르실이 터벅, 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르실.”
“돌아오지 않는 줄 알고, 여태 계속…”
쿨쩍.
흐르는 콧물을 닦고 다가오던 아르실의 풀린 눈이 날카로워지고 움찔, 움찔, 오뚝한 코끝이 움직였다.
느슨했던 얼굴에 긴장이 맴돌고 다행이라며 옅은 미소를 피웠던 아르실은 어느새 악귀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까득, 이까지 갈고는 터벅터벅터벅,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추궁했다.
“냄새, 너무 진한 냄새가 납니다.”
삐꺽.
나무장판이 눌리는 소리와 함께 코앞까지 접근한 아르실.
벌벌 떠는 작은 손으로 내 가슴팍을 움켜쥔 아르실은 손톱을 세우고 꾹, 꾹, 가슴을 파고드는 손톱을 세워 일자로 긋다가 손을 놓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몇 번 맡을 기회가 있었죠, 숙소에 포박된 그녀를 데려올 때마다 맡았던 진한 냄새… 레지나… 그 여자의 냄새가 납니다.”
찌직, 옷을 찢고 파고드는 날카로운 손톱. 주황빛 눈동자가 분노와 여러 감정에 뒤섞인 칵테일처럼 흔들리는 순간 나는 독수리앞에 놓인 쥐처럼 잠시 온몸이 위축됐다.
꾸욱,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끝이 살갗을 파고들고 지익, 선을 긋자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흉흉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르실은 손가락을 멈추지 않고 도화지위에 그림 그리듯 내 배를 손톱으로 긁으며 나를 노려봤다.
“저는, 저는 카사노님을 무척이나 걱정했습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레지나의 배에 인질로 합류하고, 필리아 영애에게 별다른 언질도 없이…”
“잘챙겨줄거 아니까 별말안 했죠, 그리고 무사히 탈출했잖아요?”
너무 생각 없이 말했던 걸까? 밝은 목소리로 대충 대답하자 푸욱, 날카로운 손톱이 살갗 깊숙이 파고들어 따가움에 펄떡 뛰어오른 난 작은 손을 움켜쥐고 천천히 빼며 아르실을 달랬다.
“미안 해요, 다음부턴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저는, 저는, 저희 때문에 카사노님이 죽게 되는 줄 알고, 근데 당신은… 그 여자랑 온종일…”
꾸욱, 움켜쥔 옷깃을 잡아당기며 내 명치에 얼굴은 파묻은 아르실이 정수리를 가슴에 문지르며 질척하게 매달렸다.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아이처럼 어리광 부리는 모습이 새롭기도 했기에 나는 말없이 아르실의 작은 등을 토닥여줬고 그럴 때마다 푸드덕, 로브에 가려진 그녀의 날개가 요동쳤다.
***
“미안 했어요, 하지만 다 같이 살아나갈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뿐이었어요.”
킁킁, 파묻은 코끝을 땀에 젖은 살결에 문지를수록 진하게 풍겨 오는 그의 체향과 뒤섞인 암컷의 냄새.
편안 해지는 기분을 헤치고 들뜬 머리를 차갑게 식히는 더럽고도 불쾌한 냄새.
아르실은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카사노가 없는 춤추는 소라게는 장례식장과도 같았다.
항상 들떠 있어 해적처럼 변모했던 선원들은 제국의 정신을 되찾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고 배의 선장이라는 직책만 걸치듯 행동하던 바크문은 그가 귀환하면 추후 있을 레지나 토벌에 문제가 없도록 많은 물자를 준비하고 알맞은 의뢰들을 분류하며 매일 잠을 설쳤다.
그리고 자신 또한 모두가 잠들 때 정문 앞에 앉아 싸늘한 밤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기다렸다. 돌아올 거라고, 흐뭇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본 카사노를 생각하면 무조건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은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고 아무런 소식도 없는 그를 되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푸른파도 해적단의 입항 소식이 들렸고 필리아와 아르실은 이른 아침 찾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탈출한 카사노가 돌아왔다, 물론 반기지 않는 불청객의 흔적과 함께.
‘여자를 무척이나 밝히는 남자야. 누가 손댔건, 정말 불쾌한 일이야…’
울컥, 꿀렁이는 목울대에는 분노와 짜증어린 외침이 대롱대롱 걸렸고 당장에라도 울분을 쏟아 내 무슨 일이 있었냐 캐묻고 싶었지만 카사노에게 귀찮은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아르실은 악착같이 참았다.
-말캉, 말캉.
어릴 때부터 카사노를 만나기 전까지 불편하다고만 생각한 큰 가슴, 불필요한 살덩이가 그의 복부를 문지르고 찌그러져 위협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딱붙은 카사노의 고간에서 움찔, 움찔, 무언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따.
‘나한테도 흥분하고 있어, 나를 손대고 싶어해…♥’
술김에 벌어졌던 짧은 추억, 카사노가 기억할진 아르실도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녀에겐 무척이나 달콤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수인으로 제국에서 살아오며 여태껏 받은 모멸과 차별을 잊게 해준 달콤한 추억, 여자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끈적한 시선에 부엉이수인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당장에라도 이 수컷의 씨를 받으라 재촉했다.
‘이래서 로브를 못벗어…!’
첫 만남 이후 카사노와 지내면 지낼 수록 진한 수컷의 체향과 그가 보여주는 호감탓에 조금씩 넘어가 버린 아르실은 레지나의 배에 인질로 붙잡혀 사라진 카사노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순간 확신했다.
‘나도 카사노님에게 홀려 버린 거야…’
듬직한 팔, 커다란 손, 순박한 미소. 그 모든 걸 떠올리면 단단한 그의 복부에 문지르는 가슴 끝이 간질거리고 온몸이 움찔움찔, 씨앗을 받아 내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아르실은 참았다. 모든 건 임무가 끝나고.
그게 올바른 수순이었기에 지금은 날개를 접을 때였다.
“보고 싶었어요.”
“으웃…”
‘또, 또그래…’
항상 듣기좋은 말,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바람둥이 같은 남자.
“저,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찌직, 날카로운 손톱으로 셔츠를 찢고 옷깃을 강하게 움켜쥔 아르실은 둥실둥실, 하늘을 나는 기분 좋은 부유감을 즐기며 하루라도 빨리…
레지나를 붙잡고 카사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하며 조용히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코오, 작은 숨소리를 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
묘하게 달라붙는 아르실과 간단한 화해 이후 나는 바크문과 선원 모두와 재회했다.
“카사노님!”
“믿고 있었다고!”
“살아있을 줄 알았습니다!”
“다시 항해 시작이다!”
내 재회를 울먹이며 기뻐하는 남정네들과 항해를 나갈 수 있다며 기뻐하는 일부의 엉덩이를 걷어찬 나는 레지나에게 복수해주자고 선원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텅텅 비어 버린 숙소 [춤추는 소라게] 그곳에 홀로 남은 나는 아르실이 잘 챙겨둔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가방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주문서를 수북하게 쌓아 두고 홀로 분류하다 벽에 가로 막혔다.
“아니 왜 이렇게 많아?”
색이 비슷하다거나 새겨진 마나가 비슷해 보이는 종류들을 분류하고 분류해도 산처럼 쌓이는 주문서. 뭐 이리 많이줬나 싶다가도 위치 크래프트에서 보냈던 황홀한 나날들을 생각하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락할 방법이…”
목에 걸쳐져 잘그락거리는 목걸이를 움켜쥐고 미네르바에게 연락하자 예민한지 까칠한 목소리로 연락을 받은 그녀는 불퉁한 태도로 내게 대답했다.
[가방에 한번 수정구가 있나없나 찾아봐요… 안 그래도 당신한테 줬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다고 뾰로통하던데…]
“그래요? 고마워요.”
[남들은 애 가지면 남편이 이것저것 챙겨 주다못해 매일 같이 붙어 있는다고 하는데 나는…]
중얼중얼, 짜증 가득한 불만에 주륵, 땀 한 방울이 흘렀지만 일이 끝나면 그만큼 메우겠다는 약속을 건네고 나서야 까칠한 미네르바와의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임신한 여자는 무섭구나. 조만간 날 잡고 레이첼과도 통화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가방에 손을 넣고 수정구를 떠올렸다.
-차압!
미끈한 유리감촉과 함께 손바닥에 달라붙는 무언가. 망설임 없이 가방에서 손을 꺼내자 손에 쥐어진 하늘빛 수정구가 햇빛을 머금고 반짝, 빛났다.
“목걸이랑 별다른거 없겠지?”
툭, 책상 위에 수정구를 올리고 검지에 마나를 모아 수정구에 흘려보낸 뒤 의자에 등을 기대 가만히 기다렸다.
마나를 빨아들인 수정구는 우웅, 짧게 공명하곤 환한 빛을 내뿜더니 우웅, 무언가를 벽에 비췄고 이내뿜어진 빛은 하늘거리는 사각창이 되어 고정됐다.
[그대는 연락이 무척이나 늦는군.]
부우, 가볍게 부푸는 매끈한 볼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라우라. 언제 나와 똑같은 새하얀 머리칼과 단정한 외모,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이젠 확연히 티나는 감정표현이었다.
“잘지냈죠?”
쪽, 수정구를 향해 장난스럽게 입맞추자 화악, 새하얀 라우라의 볼이 발그레해졌고 큼큼, 헛기침을 내뱉은 라우라 또한 쪽, 내게 키스를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