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교도가 뭐라고 하던데?”
하아암- 늘어지는 하품을 찍 내뱉으며 질문하는 레지나. 선장의 품격이라곤 한 톨도 없는 모습에 피식 웃은 메파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 설명했다.
“곧 돌아올 그분을 위한 어쩌구저쩌구~ 인사말은 똑같아요. 근데 물자 요청량은 저번보다 배는 많아요.”
“저번에도 배 두 대 분량이었는데 배는 많다고?”
쿵, 깜짝 놀라 발을 구르며 감탄하는 레지나.
이교도라 부르는 놈들은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지 밀수하는 병장기나 물자들을 제국과 왕국 해역을 주름잡는 레지나에게 매번 요청했고 레지나 또한 분기마다 있는 벌이인 만큼 거절하지 않고 물건을 구해다가 제값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제국으로 넘기면 되는 거지?”
“그렇죠?”
제국, 그 이교도란 놈들이 제국에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레지나는 물건만 넘기면 됐기에 전쟁의 여파로 병장기가 넘치는 코팔 왕국이나 사막 왕국에서 밀수하기로 하고 다음으로 물건을 받아줄 밀수꾼을 떠올렸다.
“그 여자한테 맡기자. 노예해방단 그년들이 수상시장에서 노예 팔지 말라고 전에 찾아와 설칠 땐 개좆같긴 했는데- 제국 쪽 물건 넘길 땐 수월하잖아?”
“네, 길드에 따로 연락해서 물건 받아달라고 요청할게요. 애들한테도 일정 정해졌다고 이야기해놓을 테니 저놈만 처리하면 큰 건은 전부 끝나네요.”
“그렇, 지.”
‘우우, 욱신거려…’
꿀꺽, 카사노를 보자 간지러워지기 시작한 유두. 든든한 부하 메파의 눈을 피해 가슴을 긁고 흐으응- 콧소리를 흘린 레지나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깊은 생각에 빠진 메파를 바라봤다.
“무슨 고민 있어?”
“네? 아, 아뇨. 아는 정보가 적어서요. 수도 근처에서 사람 모으는 건 알아도 뭐할지 모르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 제국이라도 한번 엎을 모양인가 보지. 제국 돼지 새끼들은 제 발밑도 못 보는 혹을 달고 있으니 영악하게 잘 노렸다고 생각해.”
쿵, 쿵, 쿵, 갑판을 발로 두들기며 곧 벌어질 수도 있는 전란을 떠올린 레지나, 메파와 머리를 맞대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레지나는 큼직한 일이 전부 끝났다는 메파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고 슬쩍 툭, 메파의 어깨를 두들기며 확언을 듣기 위해 질문했다.
“그으, 이제 나 따로 할 거 없지? 필요 없는 거지?”
“네에? 뭐, 그렇죠. 지금 밀수하기로 정해진 김에 물건 떼러 다른 항구에 가도 선장이야 원래 따라오지도 않았고- 다시 쐐기 이빨 항구로 가도 술만 먹고 할 거니까 선장이 할 일은 없잖아요?”
“그, 그럼…”
꿀꺽, 기대감에 침을 삼킨 레지나는 조금 수줍은 얼굴로 카사노를 가리키며 거짓을 씨불였다.
“나는 저 새끼 심문 좀 할 테니까, 애들한테 나 찾지 말라고 해. 알았지?”
“심문 맞죠?”
묘하게 들떠 보이는 얼굴에 흠칫, 흠칫,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떨어대는 몸. 무슨 짓을 할지 몰라도 딱히 좋은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한 메파는 차게 식은 얼굴로 물었지만 제 발이 저렸던 레지나는 꽤액- 소리치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아! 그럼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진짜 너무하네, 메파 너 언니 못 믿어?! 응?!”
괜히 양심에 찔려 크게 화낼수록 한번 의심한 메파는 가늘게 뜬 눈으로 제 선장을 차갑게 바라봤다. 결국 선장에게 져주기로 결심한 메파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믿죠, 선장이 알아서 잘할 거라 믿어요. 그럼 애들한테도 말해둘게요.”
철그럭, 대화가 끝났음을 짐작한 카사노는 팔다리를 옥죄는 사슬을 바라보며 허리춤에 찬 검을 바라봤다.
제발, 제발 그냥 넘어가라.
“그래, 식사 때 되면 저 새끼 먹을 거랑 내 것 준비해서 문 앞에 두라 그래. 도, 돌아가는 내내 심문할 새, 생각이니까!”
화악, 흥분에 젖어 붉어진 얼굴을 파르르 떨며 명령을 내리는 레지나. 뭔가 수상쩍은 모습에 메파의 눈이 다시 가늘게 뜨였지만 이미 믿겠다고 했으니 넘어간 메파는 부풀어 오른 선장의 가슴을 흘겨보며 조용히 넘어갔다.
“알았어요, 애들한테 말해놓을게요.”
“그래그래.”
“…어차피 방음 마법 걸어뒀으면서.”
“메파!”
“알았어요.”
“후후후, 가자 이새끼야!”
덜렁, 카사노의 뒷목을 잡고 일으킨 레지나는 자신을 흘겨보는 부하들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고 희희낙락 갑판 위를 걸었다.
‘구속구도 채웠겠다, 별일 없겠지!’
오늘은 되는 일만 한가득하구나. 필리아 그년 콧대도 눌러주고 카사노도 붙잡고 벌이 괜찮은 건수도 잡았네- 콧노래를 부르며 선실로 들어선 레지나는 선장실로 내려가다가 무언가 꺼림칙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내가 뭐 까먹은 거 같은데?’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포로로 잡힌 놈들의 속옷까지 벗겨 검사하는 푸른 파도 해적단이었지만 인어와 인사를 나눈다고 부하들을 무르고 일 이야기하느라 카사노를 방치하고 밤일을 기대하는 레지나가 마지막 기회까지 놓친탓에 카사노는 허리춤에 찬 검을 뺏기지도 않고 선장실까지 도착했다.
‘모르겠다~!’
정말 마지막 기회, 선장실 손잡이를 덜컥 움켜쥔 레지나가 지금이라도 카사노의 몸수색을 실행하면 그녀가 원하는 미래가 펼쳐졌겠지만 들뜬 레지나는 결국 최악의 선택을 스스로 움켜쥐었다.
-철컥!
“자, 들어가 있어, 카사노 이 씹새끼… 누나가 오늘 복수해줄 테니까…♥”
쿠당탕-!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지는 카사노. 그 모습을 기쁜 얼굴로 바라본 레지나는 철컥, 문을 닫고 메파에게 내렸던 지시를 다시 한번 부하들에게 내리기 위해 배 아래에 있는 선실을 벗어나 갑판으로 향했다.
‘그래, 제깟 게 어쩌겠어.’
카사노에게 두 번이나 붙잡히며 구속구의 힘을 체감한 레지나. 그만큼 구속구의 성능을 맹신한 그녀는 혹여나 뭔일이 있더라고 구속구를 차고있는 한 카사노가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 떨기 의심까지 전부 털어버렸다.
‘씨발년아, 윽, 풀리면 죽인다. 하아, 씨발…!’
-조물, 조물
“으우웃…♥”
거기다 망상까지 시작하는 여유까지.
계단을 오르며 구속구에 포박된 카사노가 침대에 누워 자신에게 깔린 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반항하는 모습을 상상한 레지나는 부푼 가슴을 주무르며 불붙은 몸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두시간이 지나고-
-터벅, 터벅, 터벅
“이년들은 선장이라면서 계속 도와달라고 찡찡거리기나 하고…!”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계단을 내려온 레지나는 배 위를 뛰어다니며 부하들과 함께 뒷정리까지 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한시가 급한데-!
하지만 그만큼 부하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늘기에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운 레지나는 철컥, 문고리를 돌리고 선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터엉!
문을 닫자 살며시 불어오는 싸늘한 공기, 선장실이 이리 추웠나- 생각한 레지나는 어두운 선장실 안을 둘러보며 하고 싶었던 그 말을 외쳤다.
“남창 새끼야, 어딨어?”
터억, 걸음을 옮기며 카사노를 찾던 그때 부딪히는 무언가.
‘바닥에 따로 굴러다닐 만한 게 없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레지나는 치익, 품속에서 성냥을 꺼내고 문 바로 옆에 붙은 벽 램프에 불을 붙였다.
벽에 걸린 제복과 검, 맞은편 벽에 달린 책장 안 다양한 책까지. 실속과 품격을 챙긴 자신의 드넓은 선장실.
잘 정돈한 붉은색 이불까지 깔끔하게 깔려있는걸 확인한 레지나는 힐끔 고개를 내렸다가 턱, 온몸이 굳어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램프가 환히 비추는 광경, 그 밑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묵빛 파편들.
산산이 쪼개진 파편들 가운데 이질적인 하나를 움켜쥔 레지나는 깔끔하게 베인 단면을 보고 주변에 흩날린 수많은 파편을 눈으로 조립하고 하아, 체념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씨발 그 새끼한테 채워둔 거잖아.”
빙글, 탄식 어린 추리결과와 함께 몸을 돌린 레지나, 재빨리 문고리를 움켜쥔 그녀였지만 텁,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 게 더 빨랐다.
-철컥!
거기다 문고리를 움켜쥔 손목을 쳐낸 놈의 손은 철컥, 익숙한 묵빛 사슬을 손목에 채웠다.
추욱, 손목에 채워진 묵직한 존재감을 체감하자마자 떠오르는 지난 기억에 몸부림치려던 레지나는 뿌득, 꺾이는 팔과 함께 철컥, 다시 한번 들려오는 수갑 소리를 듣고 마지막 희망까지 짓밟혔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했다.
잘록한 등에 얹힌 자신의 양손, 그 손목을 이어주는 묵빛사슬이 피부에 닿일때마다 마나 한 톨도 일으킬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체감한 레지나는 콰득-! 입을 막은 손을 깨물고 자유를 되찾은 순간 크게 소리치려 했다.
“이우우우웁-!!!”
퍼억, 입을 틀어막고 퍼억- 침대로 내동댕이쳐지는 자신의 몸. 출렁이는 침대 위를 벌레처럼 기며 입을 틀어막는 손을 피한 레지나는 다시 한번 소리치려 했지만-
“여기 방음 잘되네요, 깡깡- 하루 종일 구속구를 부숴도 아무도 안 내려오더라고.”
그림자에서 벗어나온 남자, 카사노가 히죽거리며 내뱉는 말에 꾸욱, 입을 닫고 말았다.
‘좆됐어, 좆됐다고…!’
조금만 침착했다면, 한 번이라도 부하들에게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면.
자신이 범한 최악의 실수가 곧바로 되돌아온 현실에 분개한 레지나는 쿠웅, 발끝을 구르며 카사노를 걷어찼지만 미소 지은 카사노는 그림자로 자신을 뒤덮으며 천천히 침대에 올라탔다.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최악의 상황, 정말 역겹고 좆같은데-!
‘왜, 왜 젖는거야아아…!’
레지나는 한심한 자신의 몸뚱이를 향해 욕하면서도 스르르, 걷어차기 위해 뻗었던 다리를 침대 위에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