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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18화 (318/395)

“존나 얕보는 듯이 웃고 있네.”

쿠웅, 쿠웅, 저 멀리서 덩치가 발을 구르며 내게 다가온다. 방금 날려 보낸 놈처럼 해주겠다는 포부어린 미소를 보자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래도 요즘 활약한 게 문제인 거 같습니다. 아니면 정말 단순한 시비이거나.”

아르실의 추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지만 단순한 시비가 아닌 미리 정해둔 개짓거리라고 짐작한 나는 다가오는 덩치를 천천히 훑어봤다.

부푼 가슴, 축 처진 옆구리, 족발 같은 다리와 허벅지 안에 차놓은 작은 단도. 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지만, 허벅지를 힐끔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음을 확신했다.

“카흑, 이런 씨발 새끼가…!”

그때 테이블에 널브러진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접시와 잔을 걷어차기에 나는 들고 있던 맥주잔으로 후욱, 내려찍었다.

-뻐억!

“아각!!!”

안면에 꽂히는 맥주잔과 함께 으스러지는 감각이 잔을 타고 느껴졌다. 남자가 기절한 걸 확인한 나는 아르실의 등을 토닥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덩치에게 먼저 다가갔다.

“음, 미안하게 됐수다.”

퉤엣, 껄렁하게 발끝을 까닥이며 사과하는 덩치.

“싸우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친구만 조용히 데려가.”

스윽, 뒤에 널브러진 남자를 가리키며 조용히 넘어가자 했지만 내 대답을 들은 덩치가 히죽 웃더니 이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분개한 목소리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어디서 명령질이야? 쥐좆만한 새끼가. 어련히 알아서 할텐데- 지랄 말지?”

정신병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갑자기 발끈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든 소란을 크게 키우려는 수작질에 헛웃음을 내뱉은 나는 덩치가 바라는 대로 협조해주기로 했다.

“미안, 너희 집에서 한판 즐길 때 니 애미가 돼지우리마냥 집안 더럽히는 애새끼한테 윽박지르던게 생각나서 말이야.”

“…근데 꽤 많이 컸네, 그 애새끼.”

와하하, 지켜보던 손님들이 가게가 떠나가라 웃으며 지들끼리 술잔을 부딪쳤다. 다만 패드립을 들은 덩치의 얼굴이 일그러지긴커녕 싸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순간 나는 곧 가게가 뒤엎어질 거란 걸 직감했다.

“이런 개새끼가…”

툭, 소란스러운 와중 덩치의 손이 조용히 허벅지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가게 내부와 사람들의 웃음에 뒤섞여 보지 못할뻔한 은밀한 손놀림에 나는 곧바로 주먹을 후려갈겼다.

-투욱

살에 갇힌 턱을 제대로 후리는 감각이 주먹을 스쳤다. 덜컥, 턱이 돌아간 덩치의 눈이 뒤집히고 쿠웅! 커다란 거구가 힘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실 끊긴 인형처럼 사지를 꿈틀거리던 돼지의 허벅지를 짚고 있는 손을 보니 단검은 이미 반이나 뽑혀있었다.

“죽여, 살려?”

진짜 뽑았네, 누구 사주인지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까 데려는가볼까- 생각하던 그때 우르르, 발소리가 울리며 우리를 둘러싼 손님들이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잠깐만?”

나를 불러세우는 청아한 목소리, 이미 들은 적이 있음을 어렴풋이 상기시키는 듣기 좋은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와 마주 봤다.

“우움, 우리 선원이 폐를 끼쳤네… 데려가도 될까?”

터벅, 터벅, 가죽 부츠 소리를 내며 갈라진 관중 사이를 뚫고 나온 아름다운 해적, 레지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워킹하듯 걸으며 다가올 때마다 출렁이는 젖가슴과 살랑살랑 흔들리는 푸른빛 머리칼은 한순간 주점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쪽 배에는 여자 선원만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런 신사분을 용병으로 쓰셨나?”

툭, 엎어진 덩치의 정수리를 걷어차자 신비로운 푸른빛 눈동자가 살짝 일그러졌다.

“우리 안나가 많이 거칠어도 배 안에선 누구보다 친절해, 풍만한 몸매처럼 자비심과 배려심이 넘치는 착한 아이라고. 내 앞에 있는 쪼잔한 어떤 새끼랑은 다르게 말이야.”

피식, 풍만한 몸매와 자비심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우아한 여성분이신걸 첫눈에 알아챘으면 친절하게 대해드렸을 텐데 말이야.”

비꼬는 식으로 말했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뒤룩뒤룩 뒤덮인 살과 추레한 몰골에 여자인지 전혀 몰랐다. 여자였으면 때리는 순간 조금이라도 주저했겠지.

“친절하게 대한 꼴이 이 결과일까?”

“아니, 진짜 몰랐다니까? 여자 냄새도 안 나고 그냥 탈출한 돼지 한 마리인 줄 알았지.”

히죽 웃으며 레지나의 선원을 모욕하자 꾸욱, 미소 짓던 레지나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화난 미소를 유지하며 터벅, 터벅, 내 코앞까지 다가온 레지나는 손바닥을 검 손잡이에 걸치고 후욱, 달콤한 숨결을 내뱉으며 속삭였다.

“그래 무슨말 하는지 잘~ 알겠어. 그럼 데려가도 되는 거겠지?”

“근데 그건 좀 곤란한데.”

빠직, 내 거절에 레지나의 목울대에 핏줄이 잠시 도드라졌다.

“한번 시비를 걸었으면 끝장을 봐야지. 죽이진 못해도 죗값은 치러야 할거 아니야.”

턱, 나 또한 레지나의 손에 맞춰 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덩치를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두목이 시켰다고 조용히 술 먹는 사람한테 칼침놓으려는 씨발년을… 그냥 놓아주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안 그래?”

어깨를 으쓱이며 레지나의 반응을 떠봤다. 칼침이란 단어에 레지나의 속눈썹이 짧게 진동했지만, 반응은 그것뿐이었다.

“할 말은 끝났어?”

요사스럽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받아넘긴 레지나는 어깨에 걸친 제복을 살랑이며 나를 흘겨봤다.

흉흉한 살기를 갈무리해 내게 쏟아붓는 침착한 모습에 꾸욱, 손잡이를 움켜쥐었지만 그건 레지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지나님… 지금 그 여자가…”

“…두고 보자고.”

앙칼지긴.

-철컥

결국 먼저 물러난 건 레지나였다.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손님들과 부하들의 전언을 들은 레지나는 손잡이에서 손을 떼며 몸을 돌렸고 돕겠다는 부하들을 밀어내고 안나라 불린 덩치를 업은 채 유유히 주점에서 사라졌다.

-콰앙!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거칠게 문이 닫히는 순간 조금씩 시끌벅적했던 주점이 환호로 가득 차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카사노님…!”

“대단하십니다!!!”

뭔데, 뭐야.

바크문과 선원들이 부서진 맥주잔을 들고 내게 다가오고 물러났던 아르실 또한 풀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인터넷 썰로 본 믿고 있었다고-! 따위 같은 웃긴 상황이었지만 좋은게 좋은 거니만큼 넘어가기로 했다.

-촤르륵!

“죄, 죄송합니다. 금방 데려가겠습니다!”

테이블에 널브러진 동료를 데려가는 해적단의 모습으로 우리들의 스트레스 해소는 막을 내렸다.

물러나는 바크문과 선원들, 이만 들어가 보겠다는 아르실과 함께 숙소에 들어온 나는 쿵, 문을 닫고 창밖을 바라봤다.

파도가 부딪히고 바다에 비친 밝은 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몽환적인 풍경이지만 저 바다도 내일 아침이면 피에 물들거나 사람 시체를 파도에 실어 보내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겠지.

“하아, 시발 여자가 없으니까 머리가 이상해지네.”

방금 머릿속에 떠올린 사춘기 여자애 같은 생각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져 쿵, 창틀을 내려쳤지만 한번 불붙은 성욕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진짜 못 참겠으면 아무나 한번 안으러 가야겠네, 계획을 세운 나는 조용히 침대에 몸을 던지고 그대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

-끼룩, 끼룩, 끼룩, 끼루루룩!

“뭔 울음소리가 저딴 식인지.”

“칼멕킨의 울음소리는 항상 저렇습니다.”

쏴아아,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범선 위, 나와 아르실은 멍하니 바다를 지켜보며 칼멕킨, 지구로 치면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찝찝한데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번 의뢰는 상선 호위. 다만 처음부터 호위가 아니라 저 멀리 다른 해역에서 이근방으로 건너오는 중간지점에서 합류해 호위해달라고 어느 상단이 아침부터 부탁해왔다.

술도 마셨고 피곤하기도 해서 간단한 의뢰나 받자고 바크문에게 이야기했지만, 바크문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애원해왔고 거절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의뢰를 받아들였다.

“카사노님! 지금 의뢰를 부탁한 상단은 칼파쵸상단입니다. 이근방에서 골드를 제일 많이 쓸어 담고 악명이 있긴 해도 의리는 있는 믿을만한 놈들이죠. 아마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돈도 많고 힘들지 않을 거란 어필에 넘어가긴 했지만, 출항 이후 바크문이 읊는 상단의 정보를 들을수록 나와 아르실은 알 수 없는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죠, 대형범선 상선이 왜 굳이 무법 항구에?”

“그 정도 규모라면 진작에 상선 호위를 부탁하고 쐐기이빨항구가 아닌 타르잔이나 호르미아 부근에 항구로 가서 교역을 끝마치는 게 더욱 수익이 탄탄합니다. 확실히 수상하군요.”

[도착했습니다아아!!!]

아르실과 문답을 나누던 중 돛대 위에 자리한 한 선원이 크게 소리치며 척, 바다를 가리켰다.

상선과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도착했지만, 우리를 반기는 건 망망대해뿐, 바크문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타륜을 돌렸지만, 선원들의 만류가 쏟아졌다.

“선장님! 지금 돌리면 암초에 끼이거나 부딪힙니다. 앞으로 가야 합니다!”

“암초? 아까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이, 이근방 암초들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들어올 땐 별문제가 없지만, 배를 돌리다간 바다 밑에 숨겨진 암초에 부딪힙니다. 마치 통발처럼…”

통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크문과 아르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이, 이런 씨발…!”

“돌리지 못하면 당장 속도를 내야 합니다. 돛을 펼치고 지금이라도-!”

[돛을 펼쳐라!!!]

다급한 아르실의 지시를 뒤덮는 청량하고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졌다.

“레지나.”

-쏴아아아아!!!

“이 개같은 기생오라비년아, 내 가족을 모욕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아름다운 인어 선수상을 필두로 검은 목재로 이루어진 커다란 범선이 파도를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넓게 펴진 세 개의 돛과 우글우글, 갑판을 가득 채운 여해적들. 그 앞에 선 삐딱한 선장모와 검은 제복을 갖춰 입은 레지나는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커틀라스를 뽑고 후웅,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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