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302화 (302/395)

“부디 이 미천한 놈에게 뭘 모르고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답답하게 구는 카트라에게 이죽거리며 놀리듯 말하자 움찔, 그녀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대놓고 저지른 조롱에 카트라의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린 카트라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진정 노예해방단이 범죄자라 생각합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국에서 노예제를 정식으로 폐지했으면 제국에서 그 뒷수습을 해내야지, 뒤꽁무니에서 해방단이 허가받지도 않고 들쑤시고 다녀 더 난장판이 되면 그게 범죄 아닙니까.”

“그 폐지로 고통받은 게 접니다.”

강하게 움켜쥔 카트라의 주먹이 파르르 떨려왔다. 노예제 폐지의 피해자라며 한 걸음 다가온 카트라는 머리가 욱신거리는지 한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고 애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노예제의 폐지로 제국군의 손에 이끌려 주인에게 해방된 여자 노예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아! 할 수 있는 게 있지요. 노예로 지내며 내준 몸을 돈과 맞바꿔 내준다. 그게 다른 점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대다수의 여노예들은 홍등가로 흘러 들어갔고 저 또한 제국의 홍등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창녀의 손에 이끌려 뒷골목에 버려진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요?”

공허함을 담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누군가가 주워간 아이는 고아라는 이름의 노예가 됩니다. 목줄을 차고, 족쇄를 달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아이를 구해준 게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단장 말입니까?”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카트라가 순순히 단장에 대해마저 말했다.

“맞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제국의 그림자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원해준 게 단장, 라레르바. 그분입니다. 렐 단장이 아니었다면 저 또한 홍등가에서 얌전히 몸이나 팔며 비루한 생을 이어 나갔겠지요.”

후웁, 크게 숨을 들이쉰 카트라가 생기있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자신을 구원해준 렐이란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분은 황제의 대책 없는 정책으로 지옥에 떨어진 수많은 사람을 구원해줬습니다. 노예제와 노예시장으로 자본을 빨아먹던 거만한 귀족들을 견제하고 본인의 권위를 챙기는 황제와는 다릅니다.”

“후우…”

이 세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죄다. 제국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는 카트라의 울분 어린 연설을 들으며 말없이 순응했다.

“저희는 황제와 다릅니다. 진정으로 피해받는 노예, 아니! 노예도 아닙니다. 그들은 진정한 자유민입니다. 탐욕 어린 쓰레기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구출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귀족들을 털어낸 돈을 훔쳐 노예들을 구하겠다며 시장을 들쑤시고 죄 없는 제국민을 다치게 하는 것도 잘한 짓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어-!”

화악, 새빨개진 얼굴로 다시 한번 지껄여보라는 듯이 눈을 부라리는 카트라의 기세에 나는 두 손을 들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나도 본 게 아닌데.

“황자한테 들은 거라 저도 자세힌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는 이야기죠.”

“…황자를 어떻게 알고 있죠? 아니, 애초에 몇 황자를 얘기하는 겁니까. 아니… 백작 부인, 당신, 6황자. 6황자를 이야기하는군요.”

황자라는 단어에 반응한 카트라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추궁하다 홀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추리하기 시작했다. 다만 방금 시작한 추리는 금방 갈피를 잡았고 곧바로 황자의 정체를 알아내 버렸다.

“너무 생각 없이 말했네.”

자조 어린 반성을 내뱉은 나는 무언가 되물으려는 카트라의 입을 막았다. 손바닥으로 덮고 조용히 그녀를 벽으로 몰아넣자 콰직, 손을 깨물며 노려보는 카트라였지만 욱신거리는 고통을 억누르고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튼 노예제건 해방단이됐건 뭐든 간에 거기엔 못 돌려보내겠네. 페리샤가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게 가장 큰 이유고- 나도 순순히 보내줄 순 없게 됐거든. 제국 돈을 받아먹는 사람이 돼버려서 말이야.”

황자의 월급쟁이가 돼버렸으니 카트라의 손을 들어줄 순 없다. 물론 지하수로에서 만났던 그 걸어 다니는 음탕함, 다크 엘프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세상 순리라는 게 다 그런 거였다.

“푸하! 더러운…! 사람을 잘못 봤군요.”

분노를 넘어서 혐오를 담은 눈빛으로 카트라가 나를 노려보며 내 손을 밀어내고 나를 비난했다. 악을 쓰고 손을 밀어내며 나를 욕하는 모습에 나는 덤덤히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네 편을 안 들어주는 게 더러워?”

“물론…! 제국 전체가 잘못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을 구하는데 그걸 막아선다는 게…”

“그럼 공식적인 절차로 구하면 되지. 제국의 밑에 들어가던, 협조를 구하던. 해방단이라는 거창한 이름 내세우고 제국을 들쑤시면서 좋은 소리 들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건, 그건…”

꾸욱, 붉은빛이 도는 입술을 깨문 카트라가 조용히 말했다.

“렐님의 의지입니다. 죽은 남편의 의지를 이어받아, 그 이름을 앞세워 노예들을 구원하겠다고. 그분의 무덤 앞에서 모두가 다짐했습니다.”

“하아…”

신념이 깃든 눈빛, 아무리 억누르고 짓밟아도 꺾이지 않을듯한 그 눈빛에 질려버린 나는 카트라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곧바로 자유를 되찾은 그녀는 짓눌린 몸과 손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나를 바라봤기에 그녀를 위한 조언을 하나 해주었다.

“여기 있는 이상 풀어줄 거란 생각하지 말고, 페리샤가 당신을 원해 내게 부탁하기도 했지만, 순순히 풀어주거나 잘 대해줄 생각은 없어. 내 입장에선 카트라 당신을 잡아다 바쳐도 모자라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미 마녀에게 붙잡힐 때부터 체념한 몸. 고문당해 쓰러지고 수급이 잘려 단장에게 보내진다고 하여도 순응합니다.”

해방단을 모욕한 것 외로는 카트라에게 살고자 하는 욕구는 없어 보였다. 순순히 체념한 모습에 괜히 발끈한 나는 나도 모르게 카트라에게 마음에도 없던 소리를 즉흥적으로 내뱉었다.

“당신에게 이것저것 신세도 진데다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그렇게 쉽게 죽이진 않아.”

“그렇습니까… 그럼 다행입니다.”

묘하게 귀가 가벼워 보이는 카트라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슬쩍 떠보기 위해 그녀가 발끈할만한 말을 내뱉었다.

“거기에 단장, 그 사람도 꼭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모르는 것도 있고- 모든 걸 단정 지을 수 없으니까.”

“역시…! 당신도 알아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평범한 제국민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건…”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허술했나? 긴장이 풀리고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는 카트라에게 하나 더 실험해보고 싶은 게 생긴 나는 곧바로 그녀를 천천히 벽에 몰아넣고 냉혹한 표정의 카트라를 내려다봤다.

“뭡니까?”

풍만한 젖가슴, 무표정한 얼굴. 꾸욱, 가슴 끝이 닿이는 감촉에 음심을 드러내며 스윽- 나무를 휘감는 뱀처럼 카트라의 몸을 쓰다듬자 혐오감에 물든 목소리가 나를 힐난했다.

“하, 역시 음란한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저에게까지 이빨을 드러내다니…”

음란한 남자라니, 무슨 책 제목 같은 평가에 피식 웃은 나는 무표정한 카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라면 어쩔 수 없지. 남자라는 생물은 다 그렇다니까?”

한번 화내보라고, 그녀를 도발하듯 이죽거리며 말했지만, 카트라는 눈가를 파르르 떨다가 꾸욱, 눈꺼풀을 닫고 잠시 정적을 가진 후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덤덤히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저를 욕보인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단장을 기다리는 것뿐.”

“흐음…”

아, 애매하다. 풀어주기도 애매하고 압박하기도 애매해, 그렇다고 페리샤 곁에 남겨주자니 후환이 있고 노예해방단 정보도 챙겨 돌아가고 싶고. 카트라를 꼬드기는 게 가장 편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 고민이 됐다.

그렇게 카트라와 나의 첫날밤이 조용히 지나갔다. 더 이상 문답을 주고받을 것도 없고 쥐어짜도 카트라의 대처는 동일할 거 같아 일단 후퇴를 선택했다.

다음날, 산책 후에 시에라에게 상단 일을 배우기로 했다며 조잘조잘 떠드는 페리샤에게 나는 카트라의 귀가 좀 얇지 않냐며 넌지시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카트라는 예전부터 그랬어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라며 말려도 계속 떼를 쓰고 해주면 내가 뭐 할 텐데~ 라고 넌지시 물으면 결국 허락해줬어요.”

귀가 얇고 밀어붙이면 결국 허락해준다고, 얼핏 보면 페리샤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에 메이드는 주인을 닮는 건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했어요.”

“응, 잘 부탁드려요… 카트라를 포기하진 않았지만… 어제 이야기를 나눠본 카트라는 도저히 제가 설득할 수 없었어요. 제가 모르는 여자가 카트라를 대신해 상대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렇겠지, 예전의 메이드, 잠입했던 마음 여린 카트라가 아니라 노예해방단의 간부로서 대했을 테니까. 하지만 페리샤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던 걸 나는 알고 있었기에 나중에 좋은 소식과 함께 페리샤에게 전해주기로 하고 시무룩한 그녀를 다독이며 카트라와 만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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