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263화 (263/395)

야릇하게 자리 잡은 짙은 눈썹, 살짝 올라간 도도한 눈꼬리와 오뚝하고 날카로운 콧날. 도도한 비웃음을 짓고 있는 붉은색 입술과 어깨를 덮는 흑단 같은 머리칼까지.

흔히 말하는 고양이상의 표본인 외모에 짧게 감탄한 나는 이내 일그러진 스텔지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건 미안해요, 뭐- 제가 당신이란 남자를 과소평가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봐요. 저와 같이 황자님을 모시자니까요?”

“내가 왜.”

“황자라는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고 그의 권력을 휘두르라고요.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황자의 밑에 무릎 꿇고 그의 행보에 동참하라 이 말이죠! 그러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알량한 이권, 알량한 마을! 전부 지킬 수 있다니까요?”

“그건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어.”

내 단호한 목소리에 꽈악! 주먹을 움켜쥔 스텔지아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흰 못해! 역겹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보고도 그런 대답을 할 셈이야? 연회장을 둘러싼 돼지 같은 인간들이 침 튀겨가며 떠들던 저열한 대화를 듣고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인들을 희롱하고 자만 어린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 떠들어대던 귀족이란 무리, 흘려들었던 대화를 떠올린 나는 스텔지아의 얼굴에 떠오른 혐오와 분노, 울분을 이해했지만, 그녀의 생떼를 더 듣고 싶지 않아 손을 들어 제지했다.

“네가 못했다고 내가 못 하는 건 아니지. 아니면, 내 과제를 통과하면 그 알량한 제안을 들어줄 수도 있는데.”

“크윽…”

꽈악, 입술을 깨문 스텔지아가 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겨우 감정을 조절했는지 후우, 짙은 한숨을 내뱉은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여유로운 목소리와 함께 웃으며 내게 말했다.

“말해봐요. 당신 따위가 준비해봤자 나 같은 마녀에겐 간단한 문제일 테니까, 황자님을 맞이할 준비나 해놓으세요.”

“1년간 내 노예로 지내. 사람 뒤통수나 치는 년을 풀어두기엔 세상이 너무 흉흉하잖아, 안 그래?”

“뭐엇, 뭐, 뭐어…!!!”

카득, 입술을 짓이긴 스텔지아는 주륵,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봤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분노에 스윽, 팔을 쓰다듬으며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

“노예, 노예로 지내라고…!”

역겨운 인간들에게 붙잡혀 묵 빛 쇠사슬을 차고 가축처럼 기어 다니던 그 시절을 떠올린 스텔지아는 찢어 죽일 기세로 카사노를 노려봤다.

비록 더럽혀지지 않았지만, 트로피처럼 자신의 목줄을 움켜쥐고 떠들던 역겨운 인간들, 그들이 피를 쏟아내고 바닥을 기며 개처럼 바닥을 핥을 때 어찌나 통쾌했던지. 그들을 내려다보던 황자의 단죄를 떠올린 스텔지아는 뭉클함에 젖어 들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싫으면 때려치우고, 황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가보지? 그냥 말로 떠드는 거면 나도 볼일 없고.”

“시끄러워요!”

신경질적인 짜증에 어깨를 으쓱인 카사노는 흉흉한 눈빛의 스텔지아를 바라봤다. 능글맞은 표정에 혈압이 치솟은 스텔지아는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자신이 세어놓은 대계를 위해선 카사노의 존재가 필요했다.

‘저딴 남자는 크게 필요 없어. 내가 필요한 건 미네르바와 수인족 마을, 거점 될 그곳에서 황자님의 근간이 되어줄 병력과 군자금을 끌어모아야 해…’

카사노에게 귀족들을 조심하라고 조언하면서 그들보다 더한 탐욕을 속에 숨긴 스텔지아는 딱, 딱- 손톱을 깨물며 고민에 잠겼다.

카사노를 취하면 황자의 세력은 거대해지고 알 수 없는 근본을 가진 황태자의 후원 세력과 맞부딪힐 수 있다, 아니- 시간만 주어지면 뒤엎을 정도로 몽환의 밀림이 가진 기대치는 거대했다.

‘왜 저딴 인간이 족장이 돼서…!’

몽환의 밀림 초입, 가장 큰 히네라 마을의 족장이 카사노란걸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개인의 가능성을 보고 황자에게 추천하려했던 스텔지아는 카사노의 신분을 알고 급하게 계획을 수정했다. 그랬기에 지금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지만 카사노는 알턱이 없었다.

‘황태자의 세력은 마족과 관련 있다는 뜬소문도 있는데… 그걸 파헤치기도 바쁜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한번 꼬리를 문 스텔지아의 고민은 계속해서 끝없이 늘어졌다. 늘어나는 고민과 막막한 현실에 부딪힌 스텔지아는 그제야 카사노의 제안이 차라리 더 쉽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됐다.

“내가 노예가 된다면, 당신은 내게 어쩔 셈이죠?”

뭣 하러 묻냐는 얼굴로 스텔지아를 바라본 카사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육노예, 아니- 더하지. 손댈 수 있는 순간마다 내 마음대로 갖고 놀고 사람을 갖고 논 죄를 몸으로 갚게 해줄 생각이지.”

“역겨워, 더럽고- 저열해. 역시 네놈도 그냥 인간이었구나.”

자신의 죄악을 직시한 스텔지아였지만 저열한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카사노의 모습에 그녀는 혀를 내두르며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카사노 또한 여태껏 못할지 다 해놓고 깨끗한 척 구는 스텔지아가 역겨워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년이 한 짓은 생각 못해? 황자를 위한답시고 해온 개짓거리는 뭐 잘한 짓인가?”

“크읏!”

할 말이 없던 스텔지아는 혀를 차며 눈을 돌렸고 카사노 또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며 스텔지아의 몸매를 훑어봤다. 순간적으로 제안한 노예 1년이었지만 솔직히 스텔지아가 보여준 음탕한 행동과 몸매를 생각하니 잘 제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깔끔한 아이디어까지 떠올랐다.

“흐으으…”

‘잘생각해보자, 자기가 해봤자 얼마나 해대겠어? 여자가 좀 많은 거 같아도 기껏 해봤자 며칠 갖고 노는 정도겠지.’

위치크래프트에서 벌였던 일들과 카사노의 여성 편력을 쉽게 생각한 스텔지아는 점점 저울을 기울였다. 1년, 길다면 길지만 짧으면 짧다. 그 노고의 시간이 어느 정도일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황자의 성장과 비교하면 저울은 충분히 기울만 했다.

“좋아요.”

결단을 내린 스텔지아는 결심어린 눈으로 카사노를 바라봤다. 그냥 찔러본 이야기가 체결되자 카사노는 떨떠름한 눈으로 놀랐지만 풍만한 스텔지아의 육체와 그녀가 설득한 대로 황자를 등에 업는다면 여인들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을 느꼈기에 카사노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깔끔하지 못하네, 뭔데?”

‘뭐야 이 남자,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 말놓고 대들고 있잖아?’

건방진 카사노의 태도에 까득, 이를 간 스텔지아는 그를 노려보면서도 휙, 휙 손가락을 저어 공중에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내가 건 조건을 당신이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은 파기된다. 이걸 전제로 두고 조건을 말하겠어요.”

“좋을 대로.”

무슨 조건을 걸든 개같이 따먹을 생각뿐인 카사노는 그런 걸 막는 조항만 반대할 생각에 쉽게 수락했다.

[스텔지아에게 고통을 주는 상해를 입히지 말 것, 하루 한 번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것, 혐오 혹은 기피하는 행동을 강제로 수행시키지 말 것]

“무슨 조건이 이렇게 길어?”

눈썹을 찌푸리며 마법진에 맺힌 조항을 지워내려던 카사노는 드문드문 구멍이 뚫린 조항과 악용하여 스텔지아를 나락에 처박을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떠올리곤 조용히 손을 거뒀다.

“수락한 건가요?”

손을 휘젓는 카사노의 모습에 이를 갈며 저주하던 스텔지아는 갑자기 수락하는 카사노의 모양새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툭, 스텔지아의 손가락에 닿은 문자는 마법진에 스며들었고 수긍한 카사노 덕에 문제없이 조항이 추가됐다.

“대신 조건이 있는데, 난 두 개만 하자고.”

“그래요, 당신이 내준 만큼 되갚는 게 도리니까요.”

“먼저 라우라를 공증인으로 세우자고.”

까득, 조용히 이를 간 스텔지아는 거부하려 했지만 가라앉은 카사노의 눈을 보고 자신이 숙일 때임을 자각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그리고?”

점점 피곤해져 간단히 물은 스텔지아는 능글맞은 미소를 보고 하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하나는 마지막에 하지. 먼저 라우라를 불러줘.”

허공에서 수정구슬을 뽑아 든 스텔지아는 하아, 하아! 연거푸 한숨을 내뱉으며 카사노를 노려봤다. 자신이 제일 혐오하는 라우라의 공증 하에 노예, 그것도 성노예 계약을 체결하자니, 그건 너무나도 치욕스러웠다.

[스텔지아? 네가 먼저 연락할 줄이야. 호르미아에서 도망친 거 아니었나]

“닥쳐요! 지금 당신을 찾아대는 인간 때문에 건 것뿐이니 그딴 소린 나중에 해요.”

[나를 찾아? 누가, 아!]

탄식과 함께 미소 지은 라우라는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카사노를 바라봤다.

[카사노, 오랜만이군]

“저도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죠?”

[후후, 그대덕에 조용할 날이 없지. 그래도…]

“저기요? 너희끼리 시답잖은 이야기 시작은 하지 마시죠? 당신도 저년에게 얼른 부탁이나 하세요.”

피곤함에 찌든 스텔지아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둘의 대화를 끊고 카사노를 노려봤다. 히스테릭한 스텔지아의 반응에 피식 웃은 카사노는 순순히 라우라에게 계약에 관해 설명하고 공증인으로 서달라는 부탁을 전했다.

[그런, 스텔지아가 그대의 육노예가 된다는 계약이라니, 후후…]

짙은 웃음을 띤 라우라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스텔지아를 바라봤다. 그 덕에 안 그래도 짜증이 몰린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삿대질했다.

“닥쳐요! 안 할 거면 조용히 꺼지던가, 왜 마녀 속을 긁어대죠?”

[알았다, 공증인이 돼주지. 마나로 이뤄지는 맹세를 진행하겠지만 그전에, 공증인이 됐으니 하나 말해둘 게 있군]

“뭔가요?”

짜증 어린 되물음에 쿡, 웃은 라우라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사노가 제안한 계약인데도 스텔지아, 너에게 유리한 조항뿐이니 카사노도 조항을 추가로 넣어야겠지. 안 그런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