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박자감 있는 노크가 나를 깨웠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한 나는 스륵,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저기요홋!”
하암, 늘어지게 하품하며 나를 부르던 라엘라가 깜짝 놀라며 튀어 올랐다.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모양새에 감탄하고 있는 무렵 나는 스윽, 그녀의 시선을 읽고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아, 실수입니다. 무슨 일이죠?”
자는 동안 더웠는지 내 몸은 팬티 한장만 걸치고 있었다. 어쩐지 시원하더라- 하고 넘긴 나는 새빨개진 라엘라에게 용건을 물었지만, 뻐끔뻐끔 먹이 먹는 잉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라엘라는 끼기긱, 녹슨 기계처럼 몸을 돌리며 조용히 대답했다.
“어,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세오!”
뭉개지는 발음과 함께 사라진 라엘라, 머리를 긁적이며 쿵, 문을 닫은 나는 벗어둔 옷을 대충 걸치고 끼익, 문을 열어 거실로 나왔다.
터벅터벅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라엘라에게 호출받고 왔는지 라우라가 단정한 정장 차림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인사를 받은 나는 아침부터 완벽한 그녀의 모습에 감탄하며 물었다.
“따님이 절 부르고 도망치던데, 하하- 뭐 하실 말씀이 있었나요?”
“미안하다. 마을 밖을 나가보지 못한 마녀라 그대의 모습에 많이 놀라는 듯 하는군.”
익숙해져야 할 텐데- 자그맣게 속삭인 라우라는 큼, 무표정으로 헛기침하곤 스윽,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아, 네.”
풀썩, 탄력 있는 소파에 주저앉은 나는 스윽, 유려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다리 꼰 채 나를 바라보는 라우라의 눈을 마주 봤다.
“음, 너무 빤히 바라보는 거 아닌가?”
내 시선이 어색했는지 스윽,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긴 라우라는 살짝 빨개진 귀 끝을 매만지곤 하아,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이야기했던 마녀들의 지원을 마감했네. 그대가 잠들고 나서부터 모집했지만 제법 빠르더군.”
“그런가요?”
“음, 어제 카야님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대를 본 마녀들이 이야기를 해댄 모양이야. 요즘 떠들썩한 물약의 주인이 나타났다고.”
큼큼, 자꾸 헛기침한 라우라는 부스럭, 정장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펴곤 스윽, 내게 내밀었다. 편지지보다 큰 종이에는 빼곡하게 적힌 이름과 마녀들의 이명이었다.
“물의 마녀, 숲의 마녀, 바람의 마녀, 뭐,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수많은 마녀의 정보와 이름, 거기다 각오가 엿보이는 지장이 꾸욱, 이름 옆에 눌러져 있었다. 술술술 목록을 읽으며 아래로 내려간 나는 50번이라 적힌 마녀의 이름으로 끝을 맺은 명단을 곱게 접고 나서야 라우라를 바라봤다.
50번째 마녀의 이름은 라우라였다.
꾸욱, 하얀 이가 붉은 입술을 짓이겼다. 무표정한 라우라는 드물게 감정을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인간 세상을 오가며 아이를 향한 열망을 가진 가녀린 여인들이지.”
“그런, 가요.”
“일단 50명도 간추린 숫자지만, 후우- 워낙 원성이 많아서 말이야. 그대에게 부탁이 있는데.”
“말씀하시죠.”
유독 부탁이 많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홍조를 띤 라우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오늘 밤 연회를 열 예정이다. 마녀들이 모여 다 같이 행운을 즐기고 행위를 즐길 생각이지.”
“연회라…”
커다란 연회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마녀를 상상한 나는 꾸욱, 허벅지를 조이며 라우라를 바라봤다. 자연스레 발기됐지만 라우라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건물 2층엔 손님용 방도 많으니 그대와 단둘이 보내길 원하는 마녀들과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부탁의 내용이다만…”
화악, 무감정한 라우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사과처럼 윤기 나는 뺨을 스윽, 기울이며 시선을 돌린 라우라는 더듬더듬 얇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연회장에서 그대와 다 같이 즐기고 싶어 하는 마녀들도 있는데 괜찮겠나?”
요컨대 1대1로 하고 싶은 마녀도 있고 단체도 있다 그 말이군. 이해한 나는 수줍어하는 라우라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으셔도 되는 부탁이군요. 알겠습니다.”
“아니다, 남성이 혼자서 50명을 품는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힘든지는 들은 게 있어 알고 있다. 쾌락도 적당해야 쾌락이지 과하면 고통 아니겠나?”
라우라의 말에 지나친 쾌락에 침대 위에서 뻣뻣하게 굳어 온몸을 떨거나 실신해 눈을 까뒤집는 여인들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공감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갈수록 넘쳐흐르는 정력과 체력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왜 점점 늘어나는진 모르겠다만 주어진 능력을 휘두를 뿐이니 천벌 받을 일도 없겠지- 가볍게 생각한 나는 수줍어하는 라우라를 강렬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인들의 부탁인 만큼 이뤄드려야죠.”
미네르바를 찾아온 언니로서가 아니라, 한명의 여자로 찾아온 라우라를 눈에 담았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에는 욕망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가 비췄다.
“그, 그런가. 그럼 오늘 저녁 광장 근처에 있는 큰 건물로 와줬으면 하는군. 나는 이만 다른 마녀들과 일이 있어 가보겠다.”
스륵, 소파를 짚고 일어난 라우라는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총총걸음으로 자기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하얀 정장 바지에 덮인 탄탄한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리는 순간 잘빠진 골반을 콱 움켜쥐고 맛보고 싶었다.
도도하지만 그 속에 어느 음탕함을 갖고 있을지 모를 라우라에 대한 기대가 커진 나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힉!”
뿌드득- 굳은 몸을 풀며 고개를 슥 돌리자 벽 뒤에 숨어있던 라엘라가 화들짝 놀라 숨어버렸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에 웃은 나는 터벅터벅 소리 내며 다가갔고 흡- 입을 틀어막은 라엘라가 꿈뻑꿈뻑 나를 바라봤다.
“뭐하십니까?”
“그, 그냥 숨어있었을 뿐이에요!”
커다란 고깔모자가 없어진 라엘라의 외모는 귀여움 그 자체였다. 성인 여성처럼 보이지만 하는 행동과 순진한 얼굴을 보다 보면 아이 같은 면모도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스윽, 은빛 양 갈래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쥔 라엘라는 끝을 교차해 자기 입을 틀어막고 나를 올려다봤다. 라우라를 닮은 흑진주 같은 눈동자가 꿈뻑꿈뻑 거리는 순간 파사사삭- 그녀의 머리를 헤집었다.
“끼야아앗!”
“하하하!”
끼야앗이라니, 강렬한 비명에 웃은 나는 퍽, 퍽- 낯가림도 잊고 내 다리를 걷어차는 라엘라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녁까지 일정도 없는데 마을 구경이나 시켜주시죠.”
“그, 그럴 의무는 없는데요? 간만에 쉬는 날이라 언니들하고 꽃동산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똑똑똑
[라엘라? 이 잠꾸러기야- 아직도 자는 거니?]
[가서 또 깨워줘야겠네- 실례하겠습니다-]
인사와 함께 벌컥 열리는 문. 마녀들 사이엔 딱히 보안이나 배려가 없나? 생각한 나는 열린 문 앞에 선 주황 머리 여인과 검은 머리 여인과 그대로 눈이 맞았다.
“흐읏!”
“하앗!”
헤엑- 크게 숨을 들이켠 둘은 퍼석- 손에 쥐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트리고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반짝반짝 밤하늘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빨개진 귀 끝, 동동 구르는 발과 함께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온 둘은 크게 소리쳤다.
“이분이 그 손님 아니야?!”
“진짜! 라엘라 이 계집애 숨기고 있었어? 아니 그것보다 되게 친해 보인다-!”
돌고래처럼 치솟는 여인들의 고음에 내 손을 밀어내던 라엘라가 히죽- 웃었다. 언니라고 하던 걸 보니 언니들의 동경과 칭찬에 우쭐해졌는지 그녀는 읏흠- 헛기침과 함께 작은 가슴을 내밀고 말했다.
“맞아요! 어찌나 귀찮게 구는지, 저랑 친해지고 싶나 봐요.”
다만 제대로 생각도 안 한 우쭐거림은 번잡한 문장으로 쏟아졌다. 갸웃, 고개를 기울인 두 여인은 이내 철부지 라엘라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터벅터벅- 내게 다가와 나를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반가워요, 저는 미란다라고 해요.”
“저는 나리엘이에요.”
덥석- 활발한 주황 머리의 미란다가 내 손을 움켜쥐고 붕붕 흔들고 나리엘이라는 검은 머리 여인은 스윽, 내 옆에 붙어 나를 올려다봤다. 뭔가 복합적인 시선에 당황하고 있을 때쯤 하아, 끈적한 한숨이 내뱉어졌다.
“오, 오늘 저녁에야 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놀랐어요.”
“동경하던 미네르바 언니의 짝이라니. 대단하세요.”
화악, 노을처럼 붉어진 얼굴을 숙이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미란다와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빨아들일 듯이 바라보는 나리엘, 둘의 공통점은 준비된 암컷의 표정이었다.
“우읏…”
“이, 이럴 게 아니라 같이 가셔요! 마을 뒤편 꽃동산의 꽃이 활짝 피어서 정말 이쁘답니다.”
“맞아요, 아- 도시락이… 아, 괘! 괜찮아요! 이런 거 금방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공통적인 화제에 제외된 라엘라만이 분하다는 듯이 꾸욱,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봤고 이것저것 떠들어대며 나를 잡아당기던 둘은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이끌더니 그대로 라엘라와 함께 꽃동산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