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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219화 (219/395)

7일째가 되자 비번인 소니아는 저번 비번 때 지크의 곁에 붙어있던 것과 달리 요새 안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무언가를 찾는듯한 행동에 웃으며 몸을 숨긴 나는 식사 시간이나 회의 때나 모습을 드러냈고 그럴 때마다 소니아는 내게 다가왔다.

“저기, 그대한테 할 말이…”

“잠시 헤나 양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식사 때를 놓치고 이를 갈았는지 회의가 끝나고 기사들이 흩어질 때 콰악- 내 어깨를 움켜쥔 소니아가 조금 험악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카사노, 할 이야기가 있다. 가만히 좀 있어 다오…!”

“왜 화를 내시는 겁니까? 소니아경이 불편하게 손도 안 대고 그렇게 끔찍이 아끼는 종자도 챙길 시간을 줬는데 저를 괴롭게 만드시는군요.”

“뭐, 뭣! 내가 그대를 괴롭게 해…?”

“네. 저도 소니아님한테 상처 주고 재회에서도 무례하게 군건 압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소니아님한테 점점 쏠리는 마음에 저열하고 비겁한 행동인 걸 알면서도 결국 협박을 했죠. 하지만 소니아님은 끝까지 지크에게 향하지 않았습니까?”

소니아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되는대로 내뱉은 말로 그녀를 압박했다. 물론 진심이 대다수였지만 여러 이야기가 난잡히 섞인 내 대답에 소니아는 뒷걸음질 치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종자를 아끼는 그 마음에 저와 나눴던 사랑은 전부 밀려난 거 아닌가요? 그렇게까지 종자를 챙기겠다면 저도 제 마음을 접고 물러나겠다. 이겁니다. 근데 왜 자꾸 제게 다가옵니까?”

“난, 난 몰랐다. 그대가 나를 상처만 주고 떠났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꾸욱-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소니아는 빙빙 돌아가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뒤죽박죽 뒤섞이는 소니아의 머릿속을 더 헤집기 위해 나는 울컥- 서럽다는 표정과 함께 그녀에게 일갈했다.

“하긴 타인의 목숨으로 협박한 간악한 인간과 다신 이야기하고 싶지 않겠죠! 죄송했습니다.”

타다닥! 소니아가 붙잡기 전 나는 재빠르게 발을 옮겨 장소에서 벗어났다. 터덜터덜- 느린 걸음으로 돌아가는 소니아를 훔쳐본 나는 자정이 돼도 소니아가 찾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운디네를 불러 그녀의 사랑스러운 보지를 기분 좋게 맛봤다.

6일째, 나는 마일드의 명령으로 소니아와 요새 근처를 정찰하러 나섰다. 와이번의 침공도 낌새가 안 보이고 간혹 산맥에서 내려오는 고블린이나 오크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저, 저기…”

“……”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카사노, 그대의 생각과 내 마음. 그게-“

“잡담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니아경.”

“왜, 왜애…”

꾸욱- 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소니아는 결국 질끈- 입술을 깨물곤 체념했는지 몸을 돌렸다. 철부지 같은 아가씨가 너무나 슬퍼하는 모습에 예전 토벌 때 나무 아래 울던 그녀의 모습이 겹쳤지만 나는 꾹 참았다.

여기서 소니아를 제대로 길들이고 그녀의 상처를 봉합해야 아무 문제 없이 그녀가 날 따라온다. 성욕으로 소니아를 제압하고 어영부영 데려온다고 해서 소니아의 마음속에 남은 지크의 부채감은 무시할 수 없다.

나를 따라오면서 다른 남자를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품는다? 안될 말이지. 홀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잔디를 짓밟으며 주변을 둘러봤고 소니아는 챙겨온 망원경을 들어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다.

그렇게 한 시간, 두시간 정찰이 지속해 산맥 초입 근처까지 다가온 우리는 저릿저릿 왠지 모를 불길함에 뒷걸음질 쳤다.

“카사노…”

“네, 돌아가죠. 이건… 뭔가 이상하네요.”

불안한 무언가가 있다고 해서 단둘이 산맥에 들어가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일, 마일드에게 보고하고 그의 판단에 맡기거나 정말 만의 하나의 사태가 벌어지면 백작 부인에게 보고하면 될 일이다.

“……”

“……”

우리는 결국 침묵 끝에 요새로 복귀했다. 중간중간 소니아가 생각을 많이 해봤다- 던가 그대의 마음이 조금 이해 간다, 정말 되돌릴 수 있는 걸까? 등등 군침이 도는 미끼를 내던졌지만 나는 끝까지 무시했다.

“오! 돌아왔군, 그래, 혹시 들판에 마물들의 사체가 있다든가 하진 않았나?”

“네. 그냥 산맥 자체에서 내려오지 않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산맥에 관해서 드릴 말이…”

소니아와 눈을 마주친 나는 산맥에서 느낀 불길한 기운과 오싹했던 그 순간을 설명했고 흐으으음- 침음을 내뱉던 마일드는 가라앉은 눈으로 기사들을 둘러보고 조용히 화두를 꺼냈다.

“와이번이 요새에 오는 게… 와이번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겠군. 산맥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네.”

“거대한 무언가라면…”

“나도 잘 모르겠네. 전설로만 듣던 흉악한 마수가 산맥에 자리 잡았다던가 거인이 자리 잡았다던가 하다못해 드래곤이-“

“하하, 드래곤이 무슨 저런 산맥에 자리 잡겠습니까? 인간들의 왕국과 겹치는 지점도 많고 크기도 작지 않습니까.”

그건 그랬다. 드래곤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드래곤쯤 되는 크기라면 성국과 제국 사이를 틀어막는 조그마한 산맥이 아니라 제국 너머의 산맥에 머물러야 할 게 분명했다.

“아무튼 이만 해산하지.”

네! 일제히 대답한 기사들이 마일드와 함께 천막을 빠져나갔다. 나 또한 계속 눈망울을 빛내는 헤나와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바라보는 소니아를 외면하고 조용히 천막으로 와 품에 넣어둔 그것을 꺼냈다.

사락- 사락-

곱게 접힌 종이가 펴지고 스륵- 종이를 스치며 꽃잎들이 일어섰다. 차곡차곡 뭉치고 합쳐진 꽃잎은 하나의 새가 됐고 스윽- 엄지로 턱을 긁어준 나는 먼저 말했다.

“백작 부인, 듣고 계십니까?”

[후으으…♥ 건방지네요. 먼저 연락이나 하고 말이에요. 시답잖은 이야기면 이 건방짐을 어떻게 갚아줄지 심히 걱정되네요?]

부르르 떠는 꽃잎 새의 턱을 쓰다듬으며 백작 부인의 엄포를 들은 나는 좆된건가? 싶다가도 결국 그녀의 흥미를 이끌기 위해 천막에서 나눴던 이야기와 겪었던 일을 말하며 마지막에 덧붙였다.

“정말 산맥에 드래곤이 있는 겁니까?”

사실 드래곤이라 생각한 이유는 단순했다. 회의에서 생각했던 ‘드래곤이 아닐 수밖에 없는 이유’와 별개로 와이번이 계속 내 머릿속을 헤집었기 때문이다.

마수나 거인, 하다못해 다른 커다란 마물들이라 해도 바위산에 둥지를 트는 와이번이 굳이 산맥 아래 요새까지 내려와 말을 집어가려 한다던가 먹이를 채가려는 이유가 있을까?

그 행동에 오늘 마일드가 꺼낸 가설을 합친 결과 드래곤이 산맥에 둥지를 틀어 기세에 눌린 와이번이 요새에 드나든다. 였다.

물론 그걸 회의에서 꺼냈다간 기사들의 눈총과 불신 어린 비난을 들을 게 뻔했기에 숨겼다. 백작 부인의 전령인 입장에서도 나댈 이유는 없었고 나중에 대피만 같이하면 되니까.

하지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백작 부인은 후후후- 후후후-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부리를 떨곤 이내 쫙 벌린 부리 너머로 떠들기 시작했다.

[귀엽네요. 그냥 겁먹었던 일화와 기사들의 허황된 이야기를 합쳐서 드래곤이란 결과를 내뱉다니요. 후훗- 카사노 작가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

헛다리였어? 너무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놀려대는 백작 부인의 대답에 나는 귀가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말이 되긴 하겠네요. 요새의 기사들에게 백작 부인이 개인적인 후원을 한 이유는 핀델백작의 드래곤 사냥으로 토사구팽이 될 기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함과 와이번의 부산물이라도 얻으려는 이유이고- 핀델백작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은 것도 그가 얻을 드래곤의 부산물을 나눠 받기로 약속해서 요새에 지원을 보낸 거고요.]

“……”

[아, 핀델 백작이 산맥 반대에 있는 게 다인 요새에 기사들을 배치한 이유도 알 수 있겠네요. 텅 빈 요새에 핀델 백작의 깃발을 걸어두는 것보다 인간들이 가~득한 요새에 깃발을 걸어둬야 도주하는 드래곤이 깃발을 알아보고 버러지 같은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시간을 들일 테니까요.]

[그리고 그 틈에 준비해둔 병력으로 드래곤을 어떻게든 해보겠죠? 뭐, 저는 크래프톤에서 만들어낸 용사냥을 위한 무구와 장치들을 믿진 않아요. 너무 허술해 보이거든요]

“저보단 백작 부인이 작가를 하셔도 되겠군요.”

내 칭찬에 피식 웃은 백작 부인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명성보다 기사를 원해요. 요새를 지키기로 한 한 달 중 마지막 날. 꼭 기사들을 데리고 호르미아로 돌아와 주길 바래요 카사노군.]

사락- 꽃일 새가 그대로 무너지고 꽃잎이 흩어졌다. 사각- 사각- 곱게 종이를 접은 나는 품에 종이를 넣고 탁- 탁- 내 팔뚝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민했다.

‘백작 부인 말대로 드래곤이 요새를 습격하는 게 사실이라면, 데려갈 기사부터 정해놓는 게 맞다. 여기서 진실을 말하는 건 무리야.’

지금 곧바로 마일드에게 달아가 당신네 주군이 드래곤먹이로 골랐답니다. 백작 부인에게 갑시다! 라고 하면 그들이 따라올까? 아니다. 인간은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않는다 하는데 안 믿는다면 모르겠지만 내 말을 믿는다면?

기사들은 핀델백작에게 들고 일어나기 위해 백작부인과 협상하거나 곧바로 백작을 찾아갈 게 뻔했다. 거기에 얽히는 건 사양이었기에 나는 숨기기로 작정하고 데려갈 기사들을 꼽으며 에릴다가 챙겨준 주문서를 확인했다.

‘양은 충분하고 병사들만 도망치라고 부추기면 되겠지… 응?’

조금 이질적인 주문서 한 장, 히네라 마을로 가는 주문서와 마법 진과 문자는 거의 동일하지만 조금의 차이와 색이 달랐다. 안섞이게 대충 분류한 나는 잘 포개 품에 넣은 후 결심했다.

“일단 소니아를 확실히 길들여야겠네.”

내게 남은 건 5일, 천막에서 홀로 끙끙 앓고 있을 소니아를 떠올린 나는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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