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무리인데, 요…]
소니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 말도 못 하는 운디네를 노려봤다. 험악한 눈빛에 히익- 운디네가 쪼그라들자 화들짝 놀란 그녀가 눈빛을 풀고 다정한 목소리를 가장하며 말했다.
“그게, 미안 하네. 그- 하아-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
소니아의 사과에 안 된다고 단언한 자신이 초라해진 기분이 든 운디네는 불룩- 몸을 부풀리며 원래 크기를 되찾은 후 찰랑이는 몸과 함께 천막 밖을 살폈다. 멀리서 카사노가 높아 보이는 아저씨와 대화하고 있었기에 꾸욱-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운디네는 마나를 끌어모으며 집중했다.
주르르륵-
조그마한 손바닥을 가득 채운 투명한 치료수를 목격한 소니아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스으- 눈을 뜬 운디네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 후 벌어진 지크의 입에 쪼르르륵- 치료수를 넘겼다.
“아, 입을 벌려- 아…”
물도 제대로 못마시고 흘린 게 생각나 운디네를 말리려 했지만 달콤하며 혀끝에 늘러붙는 치료수에 쩌억- 지크의 입이 벌어졌다. 쪼르르- 물줄기를 그리며 입안에 쏟아지는 치료수를 전부 받아먹은 지크의 몸이 움찔 떨려왔고 잠시 후 스으- 빛이 나기 시작했다.
“몸에서 빛이 나다니.”
[마나가 몸에 받아들여지는 현상이라고 스승님이 그랬어-]
우득- 우득- 카사노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한 농도의 치료수를 만들었기에 금방 뼈가 붙는 소리가 났지만 뚝- 빛이 꺼지며 소리도 멎었다. 이틀간 방치되고 영양상태도 엉망인데다 다리만이 아니라 온몸이 상했기에 치료수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아…!”
다만 처음 송장같던 지크의 얼굴에 혈색이 도는걸 확인한 소니아는 벼랑끝에 만난 여신 같은 운디네를 콱- 끌어안았다. 몸을 조이는 허그에 켁켁- 숨을 내뱉은 운디네는 성큼성큼- 천막 너머 걸어오는 카사노의 걸음을 확인하고 힐끔- 소니아를 바라본후 나지막이 속삭였다.
[카사노-]
**
화악- 천막을 젖히고 들어간 나는 묘하게 혈색이 도는 지크의 모습과 우물쭈물 뭐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치를 사리는 운디네, 그리고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운디네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소니아의 모습에 사태를 파악했다.
“도와 줬구나.”
[응, 근데-]
“괜찮아. 운디네가 착해서 그런 건데 내가 뭐라 하겠어? 잘했어-“
조금 굳은 내 얼굴과 어투에 운디네는 곧바로 사과하려 들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제지한 후 서 있는 운디네를 꽈악 끌어안아 주며 그녀를 칭찬했다. 생명을 살리겠단 판단을 내린 건 운디네 자신이었고 그건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헤헷- 응, 아- 이제 둘이 이야기해. 나는 그 콧수염아저씨한테 치료수를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장하게도 스스로 할 일을 떠올린 운디네는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숙제를 스스로 하는 딸 같은 모습에 엉덩이를 토닥여 준 나는 갔다 올게- 라며 날아가는 운디네를 내보낸후 소니아를 바라봤다.
“저렇게 착한 아이를 이용하다니, 후후- 마냥 철부지 아가씨는 아니었네요.”
“왜, 왜 나한테만 그렇게 말하는 거지? 방금까지 그 아이를 칭찬해 놓고선…!”
이유 없는 악의에 가만히 있는 인간은 없다던가? 운디네와 명백히 다른 태도에 분개한 소니아는 부들부들- 주먹을 떨며 나를 바라봤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지크와 소니아를 번갈아 보며 싸늘하게 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각자 기준이 있잖아요, 그리고 전 제껄 탐하는 놈을 챙겨줄만큼 착한놈은 아니거든요.”
“누가 네꺼야…!”
확- 자기 몸을 팔로 가리며 새빨개진 얼굴로 노려보는 소니아, 거하게 착각하는 것같아 나는 크게 웃으며 정정해줬다.
“운디네를 이용하는 소니아님을 챙겨줄만큼 착한 놈이 아니거든요.”
“이이익-!”
분개한 소니아가 꽈악- 주먹을 틀어쥐며 나를 노려봤지만 이내 그녀의 주먹이 풀렸다. 확연히 혈색이 좋아진 지크의 상태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후우- 한숨을 내쉰 소니아는 차분해진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부탁한다. 마일드경에게 지원하는 치료수를 한 병씩만이라도 내게 다오, 아니 여유가 있다면 지크가 완치될 정도로-“
“아마 완치는 불가능할 겁니다. 다리가 아작난 걸 고치는 게 최대거든요.”
예전 운디네를 데리고 다니던… 뭐였지? 기억도 안 나는 꼬맹이의 아작난 다리를 치료한 후 히네라 마을과 미네르바의 오두막을 오가며 실험해봤지만 마나의 농도를 늘리거나 마나의 양을 늘려도 치료수의 성능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운디네의 격이 높아지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네요오-‘
미네르바의 말을 떠올린 나는 손을 내저으며 소니아의 희망을 짓밟았고 꾸욱- 주먹을 움켜쥐고 입술을 잘근 깨문 소니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렇다 해도 부탁한다. 중태에 빠졌지만 아무도 이아이를 살리려 하지 않아.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
지고지순하네. 나한테 당한 상처가 저렇게 컸다니 괜한 죄책감이 되살아나면서 동시에 탐욕도 치솟았다. 손도 못못댄거 같은 농익은 소니아를 저놈에게 넘겨 주기엔 너무 아까웠다.
“저 종자한테 소니아님이 필요한 건 몰라도 소니아님은 필요 없죠.”
“함부로 지껄이지 마-“
“소니아님한텐 제가 있잖아요.”
성큼- 소니아가 눈치채지도 못하게 접근한 나는 부웅- 휘둘리는 주먹을 붙잡고 얼굴을 내밀었다. 분노와 치욕에 물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뻐억- 어깨를 두드리는 남은 손 마저 붙잡은 나는 부들부들- 온몸을 떠는 소니아의 입술에 입을 덮었다.
쪼옥-
“우웃, 우움, 하웃-!!!”
빠악- 입술이 세 번쯤 얽혀들어가 서로의 타액을 문지를 때 머리를 휘두른 소니아탓에 이마가 빨개졌다. 웃으며 손을 떼고 거리를 벌린 나는 파바바박-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 소니아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소니아님이 그렇게 부탁하니까 하루에 치료수 한 병, 충분히 드릴수 있죠.”
“큭…”
하도 문질러 빨개진 입술을 질끈 깨문 소니아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미약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너무 신나하는 모습에 심술난 나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검지를 펼쳤다.
“대신 저도 작은 대가를 받아야죠. 저도 백작 부인의 명령으로 보름간 이 요새에 있는데 영- 빼려고 해도 뺄수가 없더라고요.”
빼다- 라는 문장에 움찔- 소니아의 눈가가 떨리며 푸른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결투에 패배해 울먹이던 철부지 아가씨에게 부탁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 나는 그때처럼 소니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매일 밤, 종탑 뒤로 와서 쌓인걸 풀어 주셔야겠네요. 가능하시죠?”
“그대는, 정말 악랄하구나.”
추욱- 꽉 쥔 주먹의 힘이 풀리고 바닥을 향해 늘어졌다. 지나친 분노에 화낼 기운도 안 남은 소니아는 그저 경멸과 분노만 담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조곤조곤 말했다.
“목숨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물건을 자기 성욕을 해소하는데 사용하다니.”
“제 물건 제가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크으으읏-“
분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까칠한 비명을 내지른 소니아는 결국 푸욱-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다. 하지만 약속한 치료수는…”
“물론이죠, 운디네한테 이야기해서 매일 저녁 종자에게 먹이라 하겠습니다.”
“믿겠다.”
믿겠다- 라는 한마디가 조금 내 안에 울려 퍼졌다. 나를 불신하고 증오하고 탓하던 소니아는 종자의 목숨이 걸리자 총기를 되찾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여인이고 내가 지기 무거운 책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릴다를 되찾고 레미아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는 지금의 나라면 소니아를 품을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여인을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오늘치는 받아야겠죠. 아, 오늘밤 종탑으로 오기 전에-“
스윽- 경계하는 소니아에게 가까이 붙은 나는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귀에 바라는걸 속삭였다. 움찔- 움찔- 주인을 따라 떨리던 귀는 이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새빨개졌고 경악한 소니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그런 파렴치한-!”
“그럼 오늘 자정에 뵙도록 하죠.”
스윽- 천막을 걷으며 나간 나는 콰앙- 땅바닥에 발을 구르며 분개하는 소니아를 상상하며 웃음을 참았다. 터덜터덜- 종탑 근처로 향하니 운디네가 뽈뽈뽈 하늘을 날아다니며 손바닥 가득 채운 치료수를 병사들의 입에 물뿌리개로 뿌리듯 흩뿌리고 있었다.
빗나감 없이 스며든 치료수는 미약한 빛을 내며 병사들을 치료했고 경상을 입은 병사들은 하나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멀쩡하게 일어났고 몇몇 병사들만이 신음을 내뱉으며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었다.
파앙-!
“카사노! 우리의 영웅 카사노가 왔군!”
몇 번 들어 본 영웅 칭호에 머리를 긁으며 마일드를 바라보자 눈에 띄게 밝은 미소를 지은 마일드가 나를 향해 침을 튀겨 가며 운디네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한 정령이군! 만약 자네가 없었다면 기사와 병사들이 불침번을 번갈아 돌며 와이번을 경계하고 제대로 된 대응도 못했겠지. 정말 감사하네.”
파앙-! 파앙-! 먼지털듯 등을 두들기는 마일드의 손찌검에 나는 미소를 머금고 얌전히 맞아줬다. 기사단장의 호의는 거절할게 못되니까. 등을 얻어맞으며 슬쩍 하늘을 바라본 나는 점점 저무는 달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늘밤 자정, 한참 굶주린 소니아의 여체를 맛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