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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207화 (207/395)

쿠웅-! 꽤 묵직한 나무상자를 벽 한쪽에 잘 세운 나는 병사들과 뒤섞여 짐을 나르는 기사들의 뒷모습을 쫓다 소니아가 없는 걸 발견하고 코웃음을 쳤다.

종자를 아끼는 잘난 기사님은 그새를 못 참고 떠나간 모양이었다. 뿌득- 몇 시간째 허리도 제대로 못 펴 허리를 펴자 뼈 소리가 났고 그 행동에 주변의 병사나 기사들도 잠시 허리를 곧추세우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물자정리도 끝났고, 내일이면 보급이니 전부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기사가 병사들 사이에 뒤섞여 커다란 목소리로 그들을 격려했다. 기사의 격려에 땀을 뻘뻘 흘리던 병사들은 투구를 벗고 땀을 닦아내며 손을 내저었다.

“저희보다 경들이 더 고생하시는 걸 저희도 압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병사와 기사가 훈훈하게 감사를 전하는 모습에 나도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하하- 병사와 기사들의 웃음소리가 요새를 떠들썩하게 채울 동안 소니아는 그저 천막에 홀로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 마침 목이 말랐는데 다행이군.”

텁- 텁- 텁-

꿀꺽- 꿀꺽- 병사가 건네준 물통을 말없이 받아낸 나는 한 병을 그대로 비워내고 그윽- 속으로 트림을 내뱉었다. 그런데 툭- 아직 떠나지 않은 병사가 물 한 통을 내 팔에 문지르며 턱짓했다.

“같이 일하신 기사님한테도 드려야죠, 응? 근데 안 계시네.”

요새 밖 하천에서 물을 떠 온 병사는 내 짝이 없는 걸 알고 의아하다며 물러났지만 그걸 들은 기사들의 표정이 일제히 안 좋아졌다. 부상자 천막이 모여있는 곳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자 물자를 정리하는 중 달려 나간 소니아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종자가 소중하다지만 공사 구분을 해야지…”

쯧- 혀를 찬 기사와 함께 옆에 서 있던 기사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이러다 죽으면 아예 드러누울 지경이야.”

아무래도 내가 오기 전부터 소니아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모양인데 오늘 이후로 기사들의 불만이 점점 증폭되는듯했다. 꾸욱- 손에 쥔 물병을 강하게 움켜쥔 나는 기사들에게 묵례하며 소니아가 있을 천막으로 향했다.

펄럭- 치마 뒤집듯 천막 입구를 젖히고 들어간 나는 신음하는 종자의 옷을 벗기고 붕대를 열심히 가는 소니아의 뒷모습을 마주했다. 펄럭이는 소리에 뒤돌아본 소니아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며 소리 질렀다.

“네놈이 왜…!”

짐승이 그르렁거리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경계하는 통에 나는 양손을 들고 항복하는 자세와 함께 물통을 들고 다가갔다.

“물자정리가 전부 끝나서요, 고생했다고 한 병씩 주길래 소니아경께도 드리러 왔습니다. 도중에 가셨어도 일은 하셨으니까요.”

뼈있는 말에 화악- 얼굴이 새빨개진 소니아가 부들부들- 나를 노려보다가 입술이 메마른 지크를 내려다본 소니아가 꾸욱-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홱- 내 손의 물통을 채갔다.

꼴꼴꼴꼴-

“흐으-“

“옳지, 전부 마셔라.”

흐르는 물줄기에 겨우 입을 벌린 종자는 질질 흘리면서도 조금씩 물을 받아먹었다. 흘러내린 물을 닦아준 소니아는 본인도 갈증이 났는지 입맛을 다시며 얼마 남지 않은 물을 그대로 넘겼다. 통- 텅 빈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은 소니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 내 과실은 내가 수습할 테니 나가도록. 여기까지 가져와 준 건 고맙다고 생각하네.”

딱딱한 말투로 축객령을 뱉는 소니아의 모습에 나는 알겠다며 순순히 물러났다. 물통 없이 천막에서 내가 빠져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와 병사들은 고개를 내저을 뿐 내게 딱히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땡떙땡-!

종탑 근처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병사와 기사들이 고개를 일제히 돌리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화악- 멀리 펴져 있는 천막에서도 소니아가 눈을 빛내며 종탑으로 향했고 다른 부상자의 간병인들도 일제히 향했다.

주륵- 퍽- 주륵- 퍽-

뒤늦게 행렬을 따라가니 기쁜 표정으로 줄 선 병사들의 그릇에 아무거나 넣고 끓인 멀건 수프가 떨어졌다. 기사들도 별 차이는 없었지만 그나마 건더기라는 게 눈에 보였기에 나는 고민하다 얌전히 병사 줄에 섰지만 나를 발견한 마일드가 크게 소리치며 나를 불렀다.

“오! 얼른 이쪽으로 오게, 고생했네!”

팡-! 팡-! 다가온 내 등을 두들긴 마일드가 퍼 놓은 수프를 내게 건네준 후 다시 새 그릇에 하나를 받아 나와 함께 걸어갔다. 삐꺽 이는 나무 의자와 탁자에 자리 잡은 우리는 지나친 허기에 머리를 숙이고 정신없이 수프를 들이켰다.

“크으- 오늘만 버티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군. 이게 전부 카사노 그대 덕분이야.”

“아닙니다, 마일드경이 주군을 저버리지 않고 요새를 굳건히 지키는 백작 부인이 베푸는 것이지요.”

입에 발린 말에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마일드가 수프를 뜨며 내게 말했다.

“하하- 자네를 멀리해야겠구만. 옆에서 읊어주는 칭찬을 듣다 보면 기사가 아니라 어디 왕이라도 되고싶구만!”

대놓고 한 농담에 탁자에 앉은 기사들이 크게 웃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짧은 식사 시간이 지나자 기사들의 그릇이 금세 비었다. 몇몇 기사들은 아직도 허기가 졌는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에게 수프를 받으러 갔는데 그 행렬엔 소니아도 끼어있었다.

툭- 툭-

수프를 받아온 기사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릇을 내려놓으며 누군가를 바라봤다. 시선을 따라가니 그릇 두 개를 든 소니아가 고개를 살짝 숙이곤 저 멀리 천막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금세 기사들의 탁자는 조용해졌다.

“후우…”

마일드 또한 대놓고 행동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한 식사지만 종일 요새에서 일하는 병사들도 멀건 수프만 먹으며 끼니를 때우는데 자신의 종자를 위해 기사용 음식을 챙겨가는 소니아가 탐탁지 않은 듯 했다.

저런 행동을 반복하면 요새를 지키는 지친 인간들의 원망은 자연스레 소니아에게 향할 게 뻔했다. 원래 인간이란 게 힘든 순간 하나의 적을 만들면 그만큼 버틸 수 있으니까. 남은 이 주 동안도 저럴 생각인 걸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휘발되고 침묵이 가라앉은 식탁에서 식사를 끝낸 나는 먼저 가보겠다며 마일드에게 인사한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보급이다아!!!”

이른 아침, 싸늘한 공기에서 눈뜬 나는 부스럭거리는 침낭에서 벗어나 천막을 빠져나왔다. 성벽 위에 서 있는 병사는 기쁜 얼굴로 요새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소리 지르며 온 병력을 깨웠다.

“정말인가! 대단하군.”

어느새 달려온 마일드는 흰 순면 잠옷 바람으로 내 옆에서 감탄했다. 나 또한 얼떨떨했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백작 부인을 칭찬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틀 만에 오다니 밤낮없이 달린 모양이군요.”

“그만큼 백작 부인이 우리를 중하게 여기시는거겠지. 하하!”

들뜬 마음에 서로 대화를 나누던 와중 마일드는 그제야 자신의 차림을 파악했는지 내 정신 좀 보게-! 단말마를 외치고 자신의 천막으로 뛰어갔다. 나도 천막 한쪽에 눕혀둔 검을 허리에 차고 성문 가까이 다가갔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과 함께 기나긴 보급 행렬이 들어왔다.

“와아아아!!!”

“고기다! 고기야!”

“수, 술도 있어! 이 정도면 보름이 아니라 한 달도 마시겠는데?”

“제군들!!! 그만 떠들고 정리를 시작하도록! 식량과 물자는 종탑 아래로, 병장기와 기타 물품은 성문 근처에 내려놓도록!”

“““네!!!”””

요새 안을 가득 채운 짐 마차와 보급품에 눈이 돌아간 병사들은 선물 받은 아이처럼 크게 소리 지르며 보급품을 감상했다. 그새 갑옷을 입고 나온 마일드는 보급담당관과 인사를 마치고 크게 소리치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경들과 카사노 자네는 이리로 와주게.”

팔을 걷어붙이고 병사들 사이에 뛰어들려는 기사를 제지한 마일드는 같이 뛰어들려던 나를 붙잡고 마차의 선두로 데려왔다. 모자를 벗고 대기 중인 담당관을 힐끔 바라본 마일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백작 부인께서 ‘개인적인’ 부탁을 하셨다는군, 정말 사실이오?”

“네, 그… 백작 부인께서 경들이 와이번을 토벌해 그 시체를 챙겨줬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음…”

와이번, 드래곤의 하위호환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대표적인 몬스터였다. 용병 생활을 하며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나는 상상 속에서나 들을법한 드래곤보다 차라리 마주치기라도 하는 와이번이 최악의 생물이라 생각했다.

행렬을 급습해 말과 인간을 죽이고 뜨거운 시체를 뜯어먹는 걸 즐긴다, 작은 개체라면 대형 용병단도 잡을 수 있지만 큰 개체는 기사단도 어설프게 준비해선 잡을 수 없는 게 와이번이었다.

인간의 머리통 세 개는 우습게 움켜쥐는 발톱과 통째로 인간을 삼키는 대가리, 가슴을 얻어맞으면 갈비가 한 번에 나가는 하늘을 나는 탱크를 이 병력으로 잡아라?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라 그냥 죽어달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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