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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202화 (202/395)

록시를 다독여 대장간으로 보낸 나는 그녀가 마무리 작업을 끝내놓기 전 명단에 따로 표시된 대장장이의 대장간으로 이동했다.

교외에 있는 데다 근처 건물은 다 새로 짓기라도 하는지 무너지거나 다 허물어진 폐허 뿐이기에 나는 도리어 쉽게 명단에 적힌 주소에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폐건물 사이를 들쑤시며 지나다닐 때마다 후줄근한 잡배들이 나를 흘겨봤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모루에 걸터앉아 담배 피우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여기 주인인가?”

훤히 드러낸 웃통과 온몸을 덮은 문신, 대장간에 앉아 노가리까고 있지만, 주변엔 제대로 된 공구도 없어 보였다. 왜 백작 부인은 이런 놈과 계약한 걸까? 나는 의문을 던지며 그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볼일있슈?”

낄낄낄- 주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다른 사내들과 눈빛을 나누며 낄낄거리는 모습에 나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스윽- 품속에 손을 넣고 백작 부인이 던져준 유리병을 꺼냈다.

“…!!!”

“[마셔라]라고 말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

부릅- 유리병을 본 사내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모루에서 일어나 다리를 덜덜 떨며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에 친구로 보이는 사내들이 무슨 일이냐고 그에게 물었지만 겁에 질린 그는 턱- 뒷걸음질 치다 모루에 걸려 뒤로 나자빠졌음에도 기는 자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개처럼 기어서 도망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백작 부인이 면포 너머 입술을 달싹이며 ‘마셔라’ 라는 말을 전달시킨 걸 떠올렸다.

그녀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건가? 이대로 그가 도망치게 두는 것만큼은 백작 부인이 예상한 행동이 아님을 깨달은 나는 턱- 모루를 짚고 널브러진 사내를 일으켜 벽에 몰아넣은 후 퐁- 엄지로 유리병을 열었다.

“으붑- 으긋?! 으푸웁!!!”

꾸욱- 입술을 오므려 병을 밀어내는 사내의 행동에 꽈악- 볼을 움켜쥐어 억지로 벌린 나는 텅- 닫힌 이가 방해되 꽈아악- 볼을 더 거세게 누르며 쥐어짜듯 비틀었다. 살이 뒤틀리는 고통에 카흑- 거친 숨과 함께 입을 벌린 사내의 입에 유리병의 내용물을 몽땅 부은 나는 톡- 빈 병을 모루에 얹어두고 그가 뱉어내지 못하게 콱- 입술을 틀어막았다.

“가흑!!! 으붑- 끄흐으윽-!”

겁에 질린 눈동자에서 공포의 부산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턱에 맺힐 정도로 줄줄 눈물을 흘리는 사내의 모습에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여전히 삼키지 않는 그의 행동에 꽈악- 입술을 비틀며 내려봤지만,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

왠지 모를 오싹함에 나는 사내에게서 손을 떼고 몇 걸음 물러났다. 대장간 주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사내의 친구들은 이미 도망간 지 오래였기에 대장간엔 벽에 쿵쿵- 허리를 부딪쳐가며 몸부림치는 사내와 나. 단 둘뿐이었다.

“그하아아아악!!!”

파앙-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대장간에 꽃잎이 사르르 내려앉았다.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대장간 안을 자유로이 비행하는 꽃잎에 의문을 가질 무렵 콰드득- 뿌리 뻗는 소리와 끊어지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무슨…!”

당황해 벽에 붙어있던 사내를 보려 했지만 시야를 어지럽히는 꽃잎에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봐도 그 너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파악- 파악- 팔을 내저어 꽃잎들을 쳐내며 앞으로 걸어간 나는 멍하니 사내가 있던 벽을 바라봤다.

“……”

그곳엔 붉은빛을 머금은 나무 한 그루가 벽을 파고들고 자리 잡고 있었다. 싱그러운 나뭇잎과 봉우리를 맺은 알 수 없는 꽃, 그리고 나무줄기와 껍질은 붉은빛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하아…”

찢어진 옷가지가 가지에 걸려있단 사실까지 발견한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빈 병을 품에 챙기고 대장간에서 빠져나왔다. 다른 대장장이들과 달리 이 대장장이는 확실히 계약을 어긴 인간이겠지. 그렇기에 이런 결실을 본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면 단순히 자기 마음대로 고른 사내에게 이런 짓을 한 걸까? 뒤죽박죽된 머리로는 쉽게 결론 내리지 못했다.

터벅- 터벅-

힘 빠진 걸음으로 나도 모르게 록시의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상상도 못 한 광경에 충격받았음에도 몸은 아직도 그녀가 내린 과제를 완수하려 한다. 쓴웃음과 함께 공포를 잠시 지워낸 나는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록시의 대장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잘 돼 가?”

“어머, 왔구나.”

내 얼굴을 본 록시가 땀에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철그렁- 망치를 내려놓고 단숨에 내게 다가왔다. 땀방울이 맺힌 젖가슴을 흔들며 다가온 록시는 술이 깼는지 정상적인 말투로 까딱까딱- 뭔가 내놓으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응? 뭐 줘야 할게 있나?”

“서약서 말이야, 백작부인과 맺은 계약기한을 지키겠다는 사인만 하면 되는 거지?”

나를 의심하진 않지만 백작 부인에 대한 불신이 깔린 말투에 나는 품에 곱게 말린 양피지를 록시에게 건네주며 넌지시 물었다.

“백작부인이 악평이 자자한 건가?”

“뭐어, 아는 사람만? 귀족 나리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 넓~은 호르미아를 다스리는 영주의 부인이니까 악평이 없을 순 없지.”

“흐음…”

나도 딱히 백작 부인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만 내놓았다. 내 반응에 긁적- 펜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긁은 록시가 사각사각- 사인을 하며 말했다.

“영주님과 결혼식을 올릴 때만 해도 딱히 별 이야기는 없었는데, 영주님이 쓰러지고 백작부인이 권력을 잡으면서 안 좋은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있어. 전쟁을 준비하는 거 같단 말도 있고.”

“그래?”

텁- 돌돌 말린 양피지를 내 손바닥에 얹은 록시는 스윽- 기름에 젖은 앞치마를 벗으며 푸릉거리는 젖가슴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야릇한 손놀림과 침에 젖은 축축한 혀가 마른 입술을 핥는 걸 목격한 나는 푸욱- 품속 깊이 양피지를 집어넣고 말캉- 눈앞의 젖가슴을 힘껏 움켜쥐었다.

“흐으응-♥”

“그냥 가려고 했더니 이렇게 유혹해서야.”

“먼저 준비해두라고 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와 애욕에 젖어 음탕함이 뚝뚝 떨어지는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았다. 푹푹 찌는 열기를 뚫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선 나는 남편과 이혼하기로 했다는 록시를 안아주며 마지막 어리광을 부리는 그녀에게 진한 사랑을 가득 퍼부어줬다.

“후우-“

헤어지기 아쉽다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를 외치며 들러붙는 록시를 실신시킨 나는 킁킁- 온몸에서 풍기는 살 내음과 음탕한 냄새에 눈썹을 찌푸리며 골목을 나섰다.

대장간에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백작 부인의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 간단히 씻고 갈 요량이었지만 골목을 빠져나오자 눈에 보이는 건 익숙한 마차였다.

저벅-

앞으로 한걸음 나선 메이드가 꾸벅 허리를 숙이며 내게 인사한 후 문을 열었다.

“백작 부인께서 보고를 듣고 싶다 하여 마중 나왔습니다. 타시죠.”

숙이는 폼이나 손놀림, 어투와 목소리를 들으니 몇 번이나 마주쳤던 메이드임을 파악한 나는 면포 너머 얼굴을 상상하며 그녀의 말대로 마차에 올라탔다. 내 뒤를 따라 오른 메이드가 문을 닫고 철컥- 잠금과 동시에 채찍 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덜컹-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마차 안, 킁킁- 냄새를 맡자 곧바로 맡아지는 음탕한 살 내음에 나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눈앞의 메이드를 바라봤다.

“……”

눈앞의 메이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정면을 응시하며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무릎 위에 얹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드르륵- 냄새의 정체를 알아낸 메이드의 모습에 부끄러워진 나는 창문을 열고 너머 펼쳐진 호르미아의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봤다. 다그닥- 다그닥- 귀를 밟는듯한 발굽 소리와 함께 커다란 도시를 누비는 수많은 인파를 구경한 나는 어느새 공기가 맑아진 느낌이 들어 드르륵- 다시 창문을 닫고 정면을 바라봤다.

펄럭-

창문을 닫다 기습적으로 불어온 바람이 면포를 펄럭였다. 요정의 장난처럼 펄럭이며 휙- 말려 들어 가던 면포는 재빠른 손놀림과 함께 푸욱- 가라앉아 원상태로 돌아왔다. 메이드는 돌풍에 뒤집어진 치맛자락을 가리듯 꾸욱- 작은 손이 면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펄럭이는 순간 엿보인 익숙한 눈동자를 곱씹으며 마차가 한시라도 빨리 멈추기를 기도했다.

덜컹- 덜컹- 점점 힘없어지는 바퀴 소리와 살짝 덜 닫긴 창문 너머 들리는 말들의 투레질 소리, 몇 번 봤다고 익숙해진 저택의 광경에 감탄할 무렵 벌컥- 눈앞의 메이드가 재빠르게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백작 부인께서 호출하실 때까지 대기하시면 됩니다.”

꾸벅- 익숙하다는 듯 허리 굽힌 메이드의 등을 멍하니 바라본 나는 결국 그녀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벌컥- 문을 열고 순식간에 옷가지를 벗어 던진 나는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고 온몸을 두들기는 물방울을 눈감은 채 맞이했다. 투두둑- 머리를 적시고 온몸을 두드리는 물방울의 감촉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 나는 오늘 봤던 사내의 말로를 다시 머릿속에 되새겼다.

아직도 그녀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마법사인가, 아니면 연금술사? 물약을 매개체로 무슨 짓을 벌인 걸까. 결론 나지 않는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길이를 늘려나갔고 뜨거운 물줄기에 몸이 익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가 돼서야 마음을 접은 나는 끼릭- 샤워기에서 물러났다.

“뭐가 됐든 도망치지 않는다.”

백작 부인에게 하겠다고 나선 것도 나고페리샤에게 걱정 말라 한 것도 나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페리샤와 나 자신을 지키는 것, 그리고 백작 부인의 음흉한 술수에 당하지 않는 것.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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