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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92화 (192/395)

깡-! 깡-! 깡-! 잘 정돈된 하얀 머리와 고집 있어 보이는 얼굴, 누가 봐도 노장이오- 라는 오오라를 뿜는 노인이 대장간 밖 모루 위에서 검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장간 안팎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제자들과 여러 사람의 모습인 제법 잘 정돈돼있었다.

“실례합니다.”

“누구시오?”

깡-! 깡-! 마구 튀는 불똥조차 상관 않는 노인에게 성큼 다가간 나는 공손히 인사하며 누구냐고 묻는 노인의 말에 미리 풀어둔 서약서를 들고 노인에게 보여줬다.

“백작 부인이 보내서 오게 된 용병, 카사노라고 합니다.”

“…후우-!“

까아앙-!

거친 숨소리와 함께 모루 위에 얹어진 검이 그대로 두 쪽이 나며 하늘을 날았다. 풍덩-! 물 양동이에 빠진 칼은 치이이익- 물거품을 내며 빠르게 식었고 달궈진 철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내게 내민 노인이 흉흉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광석도 안 주고, 지원도 안 해주면서 약속한 물량을 내놓지 않으면 쫓아내겠다 협박하는 부인의 똘마니가 오셨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가게를 뛰어다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집중됐다. 그 모습에 곧바로 양손을 든 난 행여나 쫓겨나기 전 노인에게 재빠르게 대답했다.

“광석은 곧 있으면 들어올 겁니다. 백작 부인도 지금이 아니라 계약된 물량만 확실히 해결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오라 해서 제가 온 겁니다.”

“무리지! 월광석이 온다면 물량은 맞출 수 있지만, 사람이 없다고. 백작 부인의 무리한 주문에 전부 쓰러졌는데 다른 일감은 어떡하란 말인가. 응?”

“다른 일감이 많습니까?”

내 질문에 킁- 콧방귀를 낀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아하니 백작부인과 계약한 대장장이들을 만나러 다니는 거 같은데-“

턱 끝으로 양피지를 가리킨 노인이 불퉁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중 우리가 가장 규모가 큰 대장간일세, 우린 병장기나 요새에 수리용으로 보낼 철괴를 만들어야 하는데 백작 부인의 어거지탓에 하나도 되는 게 없어!”

“제가 하면 안 됩니까?”

월광석은 시에라를 통해 해결하면 끝이다. 그럼 힘쓰는 것만 내가 도와주면 가능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손을 들며 노인에게 어필하니 그는 곧바로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손을 저었다.

“일반인, 아니 용병이 뭘 해! 힘도 없고 제대로 말이나 듣겠어?”

“한 번만 시켜봐주십쇼, 해보겠습니다.”

“월광석이 들어온다면 물량은 해결하겠지만 여기에 적힌 날짜 안엔 무리일세, 미안하지만 돌아가 주게.”

스윽- 노인이 내민 양피지를 받으니 그 기한은 10일이라 돼 있었다. 품속 양피지를 전부 꺼내 비교해보니 대장장이마다 날짜가 다 달랐지만, 기본적으론 10일이 기본값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안에 서약서를 전부 받아와야 했기에 비교적 여유로워 보이는 노인과 상황이 달랐다.

“계약을 어기면 백작 부인이 가만히 둡니까?”

“하, 그럼 우릴 죽이기라도 한다 그 말인가? 그거야말로 개소리지. 돌아가게!”

노인의 읍박에 나는 쉽지 않은 노인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한 시간을 눌러앉았다. 해볼게요- 해보겠습니다- 힘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그냥 두드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노인은 목에 핏대 세워가며 내게 소리 질렀다.

“아 그럼 해보던가!!! 해보게, 그래 자네 마음대로 다- 해봐!!!”

성내는 노인과 나를 노려보는 제자들에게 이끌린 나는 그대로 커다란 모루 앞에 서게 됐다. 달궈진 새빨간 철을 텅- 위에 얹은 노인은 들끓는 눈과 함께 내게 말했다.

“자네가 여기 막대 80개를 오늘 안에 전부 해결하면 내가 서약서에 싸인하겠네, 대신 중간에 포기한다거나 못하겠으면 그냥 조용히 돌아가게. 알았나?”

“갑니다?”

“아 하래도-!”

까앙-! 카앙-! 카앙-!

한 개는 쉬웠다. 어떻게 하면 되냐니 그냥 길게 피기만 하라길래 두드렸다. 깡-! 깡-! 깡-! 힘을 싣고 내려치니 하나가 금세 끝났고 노인은 말없이 제자에게 건넨 후 새로 달궈진 막대를 얹었다.

두 개, 세 개, 열 개. 이쯤 되는 순간 나도 땀이 흐르는걸 멈출 수 없어 뚝- 땀을 흘렸지만 치익-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철 막대 위에 땀이 떨어졌다.

땡그랑!

노인은 갑자기 잘 두드리던 막대를 내던지곤 새로 달궈진 막대를 올렸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입을 열어 말하려 했지만 노인은 먼저 선수를 치며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불순물! 새로 하게!”

누가 봐도 고집이었다. 개 같은 노인네- 바쁘다면서 내 옆에서 막대나 쥐여주고 있으면서 뭘-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새로 두들긴 나는 저 멀리서 다른 대장간을 구경하는 운디네를 마음속으로 부른 후 뒤에서 끌어안아 달라 부탁했다.

[이러면 되는 거야?]

끄덕- 몸이 식는 느낌에 망치질은 탄력을 받아 점점 빨라졌다. 물론 몸을 움직이느라 달아오른 몸이기에 땀은 뻘뻘 흘렀지만 없는 것보단 몇 배는 좋았다.

중간중간 팔이 움직이지 않을 땐 마나까지 사용하며 팔을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움푹 들어가는 막대와 수월한 진행이 이어졌지만 마나가 고갈되면 좆되는건 나였기에 최대한 아꼈다.

대망의 60개, 노인은 어느새 물러가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기계 같은 노인의 제자만이 텅- 텅- 막대를 모루 위에 올려주며 나와 합을 맞췄고 나는 팔과 몸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막대를 두들겼다. 정말 피기만 하면 되는 건지 제자들과 노인은 지나가면서 한 번도 간섭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했다.

70개, 해가 점점 저물기 시작했고 대장간 사이를 지나던 인파는 줄어들었다. 다른 대장간은 여전히 불꽃을 피워올리며 어두워지는 골목을 환하게 밝혔지만 가장 크게 빛나는 곳은 내가 있는 곳이었다.

75개, 팔이 삐걱거렸다. 내가 이렇게 약했나? 하루나도 이겼었는데 이 정도라고?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이겼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였다. 내가 이렇게 약한 인간이었단 말인가?

77개가 되니 처음 두드렸던 망치질은 이제 와서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이가 할아버지의 어깨를 안마하듯 통- 통- 두드리기만 하는 행동에 나는 결국 아끼고 아꼈던 마나를 끌어올려 그대로 망치를 내려쳤다. 깡- 얇게 펴진 막대와 함께 이리저리 둘러본 제자는 말없이 옆 모루에 그것을 넘겼다.

“하아, 하아, 후우, 후우- 후욱!”

까앙-! 새로 얹어진 막대에 체중을 실어 그대로 내려쳤다. 사방에 튀는 불똥과 움푹 들어간 막대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정말 나약해졌구나! 카사노, 개 같은 곳에 떨어져 살겠다고 그렇게 발버둥 치다가 이제 먹고살 만하니까 세상이 그냥 개좆으로 보였나? 마나도 생겼고 기사도 이겨봤다고 이제 단련은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 건가?

모루 위에 얹어진 막대는 더 이상 막대가 아니었다. 해이해진 나 자신을 내려치고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찌그러지고 두들겨지고 담금질 될수록 나는 강해질 수 있었다. 터엉- 전부 펴진 막대가 사라졌다. 텅- 새빨간 봉 하나가 다시 위에 얹혔다.

79개째는 더 이상 무리였다. 정말이었다. 아무리 어깨를 돌리고 팔에 힘을 줘도 내 팔은 여전히 망치를 쥔 손을 벌벌 떨며 숨죽이고 있었다.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이젠 기억도 안 났기에 목적을 잃은 팔은 아예 식어가기 시작했다.

[힘들어? …치료수 만들어줄까?]

도리도리- 마시면 완전히 되살아나겠지,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막대를 두드리고, 언제 왔는진 모르겠지만 제자 대신 막대를 잡고 있는 노인의 콧대도 박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됐다. 불순물이 들어간 막대가 버려진 것처럼 나는 불순물이 들어간 카사노가 돼버린다. 그렇게 다짐한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까앙- 까앙- 힘없는 망치질을 이어나갔고 겨우겨우 노인의 합격을 받아 끝낼 수 있었다.

80개, 마지막 막대가 조용히 모루 위에 올라왔다. 이걸 끝내면 서약서에 사인을 받는다, 받으면 뭐 하지? 아, 페리샤를구한다. 구한다라니- 페리샤가 어디 납치당했나? 그런 건가? 빙글빙글-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망치를 휘둘렀지만 캉- 힘없는 망치가 애꿎은 모루만 두들겼다.

“…힘을 줘, 허리에 힘을 주고 쥐는 손도 잘못됐어.”

허리에 힘을 줬다. 바닥에 붙은 발을 틀고 꾸욱- 쥔 손을 풀고 다짐하듯 으스러지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망치를 굳게 쥐었다.

“들고, 끝까지 들고- 내려쳐!”

까아앙-!

처음 노인을 찾아왔을 때 들었던 청아한 소리가 내 손끝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홀린 듯이 팔을 굽히고 망치를 들어 그대로 한 번 더 내리쳤다.

까아앙-!

까아앙-!

까아앙-!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대화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입을 다물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페리샤도 이렇게 자기 일을 하고 있겠지, 그렇게 곤히 자는 나를 배려하고 나갔던 거지. 백작 부인의 인성을 잘 알고 무슨 짓을 저지른 여인인지 알아 겁먹었으면서도 나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내가 걱정할까 봐 이른 아침 그녀의 부름에 나간 거였다.

까앙-!

약속했다. 뭘 하든 지키겠다고. 그 약속이 마을에 있는 어느 여인들이였든 난 지킬 거다. 그건 이번에 새로 품게 된 페리샤도 통용되는 약속이니까-

까아앙-!

마지막으로 얇게 펴진 막대 위에서 망치를 치운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서약서를 건넸다.

“근데 갖다주는 거 맞나? 이래놓고 물건도 안 주면 골통을 깨러 찾아갈걸세.”

“걱정 마세요, 불퉁한 노인네 아니랄까 봐 꼬치꼬치 캐묻네.”

“뭐?”

딸랑- 딸랑- 노인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 주머니에 넣어둔 방울이 떨렸다. 아 갑자기 떨린 게 아니라 운디네가 주머니에서 꺼내 흔들고 있었다.

인사 대신인 악담도 나눴겠다. 나는 조용히 운디네와 함께 골목에서 몸을 돌렸다. 터벅- 터벅- 땅에 발바닥이 들러붙는 기분에 혀를 내두르며 갈 때쯤 쩌렁쩌렁 노인의 목소리가 날 멈춰 세웠다.

“이봐!!!”

“왜요.”

불퉁한 대답에 큭- 웃은 노인이 허리에 걸린 내 검을 가리켰다.

“다 낡아빠진 골동품 같던데 한번 맡기러 오게.”

“…내일 올게요.”

덜커덩- 덜커덩- 싸늘한 어둠이 찾아온 호르미아 속, 마차가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에 휩쓸린 도시 속에서 눈을 감은 나는 흐름에 몸을 맡겨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말하자면 그냥 쓰러졌단 얘기다.

[무거워어-]

질질- 쓰러진 내 목깃을 잡아끄는 운디네에게 이끌려 일어난 나는 어느새 도착한 마차에 몸을 싣고 다시 한번 찾아온 수마에 몸을 맡겨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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