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많이 알아갑니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그래그래, 은화 하나값 이면 더 말해줄 수 있지.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꽤 기분이 좋은지 입술을 쭉 찢어가며 떠드는 드워프, 기회다 싶었던 나는 곧바로 발치에 놓인 상자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거기 담아 뒀던 건 뭡니까? 괜히 궁금해서 그런데.”
씁- 괜한 사족을 붙였나? 내가 뱉어 놓고도 뭔가 어색한 질문에 드워프의 안색을 살폈지만 드워프는 안색 하나 흐트러지지도 않고 갈고리로 자기 수염을 문지르며 조용히 때가 낀 왼손을 내게 뻗고 있었다.
“...뭡니까?”
“뭔지 알지 않나.”
생기 하나 없지만 탐욕에 절여진 눈, 멍하니 벌어진 입. 생선처럼 펄떡이는 손바닥은 이 드워프가 합의나 대화할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돈 냈잖아.”
살짝 끓어오른 짜증에 한 소리 내뱉었지만 드워프는 기죽긴 커녕 히죽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건 소개료지. 이거 받으면 진짜 더 달라고 안 할게, 응?”
나는 괜한 실랑이로 힘빼기 전에 순순히 드워프의 손바닥에 툭- 은화 하나를 얹었다. 반짝이는 은화에 누런이를 드러내며 웃은 드워프는 주섬주섬 품에 넣곤 침을 튀겨 가며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텅-
“월광석 들어 봤지? 요즘 귀족 나리들도 없어서 못구하는 물건이야.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찾는 사람들 줄세우면 여기가 꽉 찰걸?”
발치에 놓인 상자를 걷어차며 떠벌거리던 드워프는 둑이 무너진 댐처럼 월광석이 얼마나 희귀하냐- 로 시작해서 구하려면 나밖에 없다, 딴 데 가도 나만큼 물량 확보한 드워프는 없을 거다- 며 떠들어댔다.
“흠...”
말하는 본새나 행동거지를 보니 나를 물건 구하러 온 사람으로 착각한 모양인데- 착각을 이용하기로 결심한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드워프를 내려다보며 순진한 얼굴로 그에게 질문했다.
“그런가요? 그럼 물건을 구하려면 여기밖에 없는 거군요.”
여기서 포인트는 발을 턱턱 정신사납게 두드리며 눈을 굴리는 거였다. 일부러 급하다는 티를 내며 행동하자 드워프는 작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살짝 허리를 숙이곤 낮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그렇지, 구하려면 여기뿐이야. 자네도 월광석을 찾고 있구만?”
“물건은 언제 들어옵니까?”
살짝 허리를 피며 드워프에게 질문하자 그는 일부러 과장되게 크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갈고리를 내저었다.
“내가 당장 꿍쳐둔 게 있으면 줄텐데 방금 노예해방단한테 전부 넘겼거든. 그놈들이 뭐에 쓰는진 모르지만 갖고 있는 한톨까지 싹 다 긁어갔단 말이지-”
“흐음- 그런가요? 노예해방단이 굳이 그걸?”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들뜬 드워프는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이게 귀한 광물이잖아, 귀족놈들의 사치로 이용되는 광물로 무기를 만들어 귀족들보다 먼저 선점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걸 과시하는 거지!”
“경고같은 거군요.”
“근데 내 생각에 경고는 못될 거야. 몽환의 밀림에서 온갖 잡것들이 물건을 빼내기 시작해서 점점 풀리고 있거든.”
“그럼 값도 떨어지겠네요.”
내 대답에 드워프는 씁- 쓴소리와 함께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봤다.
“그건 순도도 떨어지고 크기도 떨어지는 잡것들이지. 내가 구하는 건 귀족들한테 납품되는 최상품이야-”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귀한걸 어떻게 구합니까? 아무리 긁어봐도 모자라던데...”
자기가 실언한줄도 모르는 드워프는 넌지시 더 구해야 한다는 내 혼잣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탐욕에 젖은 눈으로 나를 훑어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흐, 그런데 외지인이 이런 하수구까지 와서 그런 귀한걸 찾고 있다니, 헤헤…”
끝말을 흐리며 질문하는 드워프는 마치 미끼를 물고기와도 같았다, 누가 봐도 조급해 보이는 그의 안색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원하는 대답을 가볍게 던져 줬다.
“의뢰주가 눈에 불을 켜고 찾으라고 난리라서요. 얼마던 몇 개던 갖고만 오라고 난리죠.”
-꿀꺽
작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연신 마른침을 삼키던 드워프는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빼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내게 넌지시 묻기 시작했다.
“내가 고정적인 공급원이 있거든, 그쪽이 찾는 물건 확실히 구해다 줄 수 있는데…”
“확실합니까?”
미심쩍어 하는 내 태도에 드워프는 발끈해대며 발치에 있는 상자를 툭 걷어차곤 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거래한 확실한 남자야, 저번에 오고 시간이 꽤 지났으니 지금도 잔뜩 챙겨서 오고 있을 거야.”
호언장담하는 그의 태도에 비웃음을 억누른 나는 순진한 청년을 계속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드워프를 믿으며 생각에도 없는 거래량이나 필요한 양을 떠들어 대니 드워프는 상상만으로도 신났는지 수염을 들썩이며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흐흐, 아 그런데 물건이 생겨도 확실히 대금을 지급할순 있겠지? 내가 괜히 의심하는 게 아니라-“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실실 쪼개던 드워프는 무언가 직감을 느꼈는지 말꼬리를 흐리며 내게 돈은 있냐 물었지만 이미 시에라에게 받았던 돈을 챙겨 온 나는 품에서 슬며시 꺼내 은화 무더기를 살짝 보여 준 후 작은 목소리로 드워프에게 속삭였다.
“부족하면 말하세요, 의뢰인한테 받아오면 그만이니까.”
“흐흐! 그래, 의심한 건 아니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암!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방 구해다 줄 테니까.”
“연락은 어떻게 합니까?”
달그락달그락- 모루에 얹은 갈고리를 정신사납게 뒤집어가며 고민하던 드워프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흐, 삼일, 삼일만 유예를 줘. 삼일 후에 오면 확실히 매입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해 놓지.”
드워프의 확언에 따로 연락을 취할 수단도 있구나- 생각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냄새 나는 드워프로부터 한걸음 물러섰다. 주변을 살짝 둘러봐도 훔쳐듣는 놈은 없었고 이대로 남작에게 보고하면 끝이었기에 더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아! 하고 귀를 찢는 고음이 나를 불러세웠다.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낸 건지 동그랗게 눈을 뜬 드워프가 갈고리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헤헤- 그 미안한데 내가 깜빡하고 잊은 게 있어서- 정말이야. 이건 수작질이 아니라…”
“또 뭡니까?”
남자의 헤헤 소리를 듣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본론을 종용하자 드워프는 작은 눈을 정신 사납게 굴리다가 질끈 감고는 순순히 내게 토로 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가진 걸 전부 노예해방단하고 거래했거든, 근데 그놈들이 또 찾아올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자네한테 넘기고 싶어도 내가 쉽게 못빼돌리거든.”
“그런데 거기서 좀 오가는 게 있으면 내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네 물량은 챙겨줄 수 있는데…”
결국 이 드워프가 하는 말은 또 돈이었다. 내게 전부 넘기려다 노예해방단과의 거래를 떠올리고 다급히 불러세운 모양인데 이 상황에서도 저울질을 하다니, 호구 연기하긴 해야 했지만 사람을 좆으로 보는 태도에 너무 고역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틀어지면 여태 한 노력이 허사가 되기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값은 얼마든 더 쳐 드릴 테니 물건만 준비해 주시죠. 그런데 노예해방단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겁에 질린 눈에 농담이나 나눠볼까 던진 말이었지만 드워프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냄새 나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내게 노예해방단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쉽게 넘기고 싶진 않은데 거기 단장이 아주 무서운년이야. 시비걸린 놈 턱을 아작내고 자기가 엉덩이를 내놓고 다니는 주제에 누가 손을대면 손목을 잘라버리더군.”
힐끔- 손목이란 얘기에 드워프의 갈고리에 눈이 가 바라보니 괜히 찔렸는지 턱- 등 뒤에 갈고리를 숨긴 드워프는 침튀겨 가며 내게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내 얘기가 아니라! 아무튼 그 정도로 악독한 년이란 거지. 그 성깔만 아니면 아주 끝내주는 년인데-“
“혹시 다크 엘프입니까? 그 단장이라는 사람.”
드워프가 떠들어 대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머릿속에 차곡차곡 떠오르는 모습에 홀린 듯이 말을 끊고 질문했다. 로브에 덮여 있는데도 폭발적인 그 몸매와 음탕한 걸음걸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를 양아치를 공포에 쫓기게 한 잔혹함까지. 모두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오, 어떻게 알았나?”
떠벌떠벌- 침 튀겨 가며 단장이란 여자의 무용담을 떠드는 드워프를 뒤로하고 단장과 뒤에 서 있던 부하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고민한 나는 머릿속이 정리될쯤 알겠다는 말과 함께 드워프의 가게에서 멀어졌다.
터벅- 터벅-
푹푹찌는 인파의 열기와 이리저리 부딪치는 수많은 어깨들에 휩쓸려가며 인파를 뚫은 나는 차분히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되짚으며 지하수로를 빠져나왔다.
터벅… 터벅…
갈수록 적어지는 사람과 음침한 수로의 풍경에 적응될 때쯤 툭- 온몸을 옥죄는 듯한 긴장감이 끊어졌다. 내가 일선을 넘은 게 아니라 돌아간 거겠지. 휙- 재빨리 뒤를 돌아봤지만 나를 반기는 건 바닥에 고인 썩은 물웅덩이와 이끼가 핀 벽뿐이었다.
“하아…”
문득 드워프가 노예해방단이 월광석에 대해 관심이 많다 떠들어 대던 게 떠올랐다. 분명 단장 아니면 그 밑의 부하가 나를 지켜본 거겠지. 그리고 의중은 모르겠지만 갑자기 물러났고- 단순히 물건을 내빼가는 도둑이라 생각해서 지켜본 걸까?
월광석과 노예해방단, 빈델과 페리샤, 아무것도 못한 무력감과 분노. 짝을 찾아 얽히고 섥히는 여러 생각들이 머리통을 휘적이는 동안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한 나는 힐끔- 걸어왔던 칠흑의 통로를 지켜보다 말없이 몸을 돌렸다.
뭐가됐던 빈델과의 이야기는 종지부를 지어야 했다. 터벅- 터벅- 지하수로에 울리는 발소리를 음악 삼아 한참을 걸은 나는 턱- 내려왔던 계단에 발을 올린 후 조용히 계단을 올라 창고로 올라갔다.
끼이익-
텁텁한 먼지탓에 목이 칼칼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걸 보니 경비가 아직 오지 않은 듯 했지만, 이런 걸 보면 여태 창고가 안털리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