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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노예들의 주인이 됐다-166화 (166/395)

톡톡-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놀고 있자 침대에 누워 있던 운디네가 슉- 내 옆으로 날아오더니 불만 어린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가져다 달라고 해서 갔다 줬더니 왜 장난치고 있어?]

귀여운 목소리로 살벌하게 말하니 뭔가 웃겼지만 웃었다가는 한 소리 들을게 뻔했기에 손을 저으며 변명을 뱉었다.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는 중이었지.”

[그래- 그럼 나는 애들하고 놀고 있을게-?]

“응, 가져다줘서 고마워.”

우웅- 운디네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물방울로 이루어진 푸른색 고리가 나타났다. 찡긋 눈웃음을 건넨 운디네가 사라진 후 홀로 방에 남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겨우 정리해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꾸욱-

웅- 웅- 손바닥 너머로 마나를 흘리자 곧바로 반응하는 목걸이에 눈을 꾹 감은 나는 떨림이 멎으며 들려오는 나른한 목소리에 헛기침하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어머- 주인님이 나한테 무슨 일이실까아-]

나른하면서도 귓가를 핥는 듯한 끈적한 목소리에 살짝 어깨를 떤 나는 눈을 뜨고 손바닥에 놓인 붉은색 보석을 노려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시에라한테 전할 말도 있고 해서요. 혹시 근처에 있나요?”

[흐응- 서운하네요오, 연락은 저한테 하고 정작 찾는 건 아가씨라니-]

끈적한 목소리에 얽힌 장난기를 읽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톡- 톡- 보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여기서 미네르바의 장난기를 꺾지 않으며 시에라에게 건네주기 전까지 그녀에게 휘둘릴게 뻔했기에 주도권을 뺏어야 했다.

목걸이를 움켜쥐고 입가 바로 앞에 놓은 나는 미네르바가 뭐라 말하기 전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명령했다.

“돌아가면 개 같이 따먹어줄 테니까, 바꿔.”

[흐응......]

야릇한 비음과 함께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미네르바는 톡- 톡- 톡- 책상 두드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드륵- 의자 미는 소리와 함께 젖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후후- 운디네가 찾아올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정작 목소리 들으니까 괜히 몸이 달아오르네요-]

저벅- 저벅- 보석 너머로 들리는 발소리와 함께 작지만 시끌벅적한 마을 사람들의 소리가 하나씩 들려왔다. 별일 없나보네- 안심과 함께 미네르바의 걸음 소리가 멎을 무렵 자그마한 그녀의 목소리가 보석 너머로 들려왔다.

[바꿔드릴 테니까 약속 지키세요오-?]

[네? 뭐라고 하셨나요?]

미네르바의 속삭임이 자신을 향한 말인 줄 알았는지 시에라가 말을 걸기 시작했지만 미네르바는 귀여운 코웃음을 내곤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니예요오- 천천히 돌려주셔도 되니까 여유롭게 즐기세요-]

[이게 뭔데-]

“아, 아- 시에라, 들려요?”

[우왓!]

툭-

화들짝 놀란 시에라의 목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전해졌다. 보석 너머 광경이 훤히 들여다보인 나는 웃음을 참으며 시에라가 말 걸기 까지 기다렸고 이윽고 잔뜩 놀란 시에라가 재빠르게 말을 내뱉으며 내게 불만을 토로 했다.

[뭐야, 이런 거였으면 진작 말을 해 줘야지- 환청이 들리나 깜짝 놀랐잖아요! 미네르바님도 그래, 그냥 건네주기만 하구, 이게 뭔지-]

“잘지냈어요? 목소리 듣고 싶어서 부탁한거예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귀를 두들기는 시에라의 목소리가 잠깐 멎었다, 이윽고 큼큼- 헛기침으로 목을 푼 시에라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래요? ...당신이 보기엔 잘 지냈을 거 같아요?]

미약하게 들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기고 시에라의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입 앞 가까이 목걸이를 들고 조잘조잘 떠드는 시에라의 모습을 상상한 나는 괜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쿡-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잘지낸거 같은데요? 아, 얼른 돌아와요, 남작이 시킨 일은 거의 다 끝난 거 같으니까요.”

내 대답에 흐으- 숨 들이키는 소리를 낸 시에라가 소곤소곤 물었다.

[정말요? 솔직히 기대도 안 했는데- 누구인거 같아요?]

기대도 안 했다니- 솔직한 대답에 눈썹을 찌푸린 나는 혀를 굴리며 대답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만에 하나를 생각해 혀끝에 걸린 이름을 다시 삼킨후 적당히 둘러댔다.

“아직 확실하진 않아서- 일단 확실해지면 한 번 더 말해 줄게요. 얼른 돌아오기나 해요.”

[뭐야- 싱겁게... 알았어요. 후후, 제가 보고 싶은가요?]

내 대답이 불만스러웠는지 살짝 불퉁해진 목소리였지만 돌아오란 말에 다시 기분이 풀린 듯, 들뜬 목소리로 내게 물어오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고 싶죠. 언제 올건데요?”

[내일 출발할거예요. 기다려요.]

“네, 빨리 보고 싶다-”

대답하면서도 시에라와 직접 만나 페리샤에 대한 이야기해아하나 고민이 든 나는 시에라에게 빨리 오라는 둥 보고 싶다는 둥 재촉하며 언제 이야기를 꺼낼지 머리를 굴렸다.

일단 지금은 아니지- 라는 생각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찰나 차가운 목소리가 목걸이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당신, 손댔지?]

날름- 나도 모르게 혀를 뻗어 입술을 핥았다. 가뭄이 들어 쩍쩍 갈라진 밭처럼 메마른 입술의 감촉에 꾸욱, 앞니로 살짝 깨물며 뭐라 대답할까 고민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

오싹한 침묵에 이를 부딪치며 마른 입술을 깨물다가 뚝- 껍질이 뜯기며 살짝 피가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나는 아무렇게나 되는 데로 내뱉으며 목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니, 손댄건 아니고... 그냥 여러 이야기를 좀.”

[운디네는 아무런 말도 없던데, 당신이 입단속 시킨 거?]

어느새 시에라의 말이 짧아졌다. 집요한 추궁에 나는 흐르는 핏방울을 혀로 핥아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시켰다고 조용히 있을 애도 아니잖아. 그냥, 동생 같다며? 어쩌다 보니까...”

[하아...]

내가 말했지만 참 꼴사나운 변명이었지만 시에라는 호통보다 인내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영혼을 끌어모아 내뱉는 한숨 소리를 몇 번이고 들은 나는 입에 고인침을 삼키며 시에라에게 살짝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귀족 아가씨니까 상단 운영에도 도움이 될 거고, 둘이 친해졌잖아. 응?”

[그건 그거고, 이건 다르죠. 하아, 난 몰라. 머리 아파졌어.]

짜증어린 목소리였지만 분기점은 넘겼다. 돌아온 시에라에게 들을 잔소리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걸 체감한 나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떠들며 시에라를 애써 다독였다.

“나중에 벌충할게. 응? 사랑해.”

처음 내뱉기전만 해도 어렵던 단어가 지금은 술술 흘러나왔다. 사랑한단 말에 목걸이 너머 시에라는 한동안 조용해졌고 조금 감정을 추스렸는지 짜증이 없어진 목소리로 내게 고지했다.

[돌아와서 다른 언니들이 뭐라해도 난 신경 안쓸 거예요. 알아서 해요.]

“어차피 용서해줄 거야.”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화낼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히네라 마을에 있는 여자들 전부 최소한의 질투는 보이지만 같이 있는 순간만큼만 제일로 사랑해 달라고 할 뿐 나를 독점하려고 들진 않았다.

[재수 없어.]

우웅- 뚝-

신랄한 비난과 함께 목걸이에서 흐르는 마나가 끊겼다. 시에라가 어떻게 끊었는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큰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내게 굴복한 만큼 저자세로 굴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굴긴 싫었기에 지금 같은 상황의 해결이 만족스러웠다. 노예라고 하지만 정말 노예를 원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흐으...!”

-뚜두둑

노예라는 호칭과 가족이란 존재로 양립하는 여인들을 하나씩 되새긴 나는 목걸이를 품에 넣고 찌뿌둥한 몸을 풀며 나갈 채비를 하나씩 준비했다.

빈델을 잡아내기 위해선 그가 저택을 떠난 지금이 적기였다.

**

-후욱!

미약한 기름 냄새와 함께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활활 타는 횃불을 들고 벽돌로 이루어진 벽을 쓰다듬으며 훑어 봤지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킬뿐 쑥 빠진다거나 움직이는 벽돌은 하나도 없었다.

“후우, 어떻게 여길 나간 거지?”

텁- 텁- 발을 굴려봤지만 단단한 바닥만이 발바닥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쉽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일단 창고안의 물품부터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툭- 툭- 툭-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손으로 두들기거나 열어 보며 살펴봤지만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빈델이 저택에서 사라지자마자 도둑이 들지 않다니, 다시 생각해도 들키지 않은 게 용했다.

-끼익

이제는 익숙해진 광물 냄새에 코를 살짝 찡그린 나는 여전히 뚜껑에 닿일 기세로 솟은 월광석을 보고 다시 덮으려했지만,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에 콰르르- 상자를 뒤집고 그대로 쏟아부었다.

텅- 텅- 텅- 달그락-

힘없이 떨어지는 월광석들과 함께 떨어지는 판자, 얄팍한 속임수에 헛웃음이 절로 나온 나는 바닥에 대충 상자를 던지고 그 안에 월광석을 주워 담았다.

텁- 텁- 텁- 겹겹이 쌓이는 광석의 부피에 이래서 호들갑을 떨어댔구나- 하는 생각과 엎지말고 손만 넣어볼걸 하는 후회를 되새긴 나는 판자를 빼내자 상자 중간높이에도 안 오는 광석을 보고 선반에 놓인 다른 상자들을 열어 봤다.

-달그락달그락

광석들을 헤집으며 손목에 툭툭 긁히는 감촉이 느껴졌지만 지루했던 도둑잡기의 종지부를 엿본 나는 하나도 신경 쓰지않고 광석들을 헤집었다.

아쉽게도 다른 건 더 손대지 않았는지 판자가 잡히지 않았지만 빈델의 수작은 알아차렸다.

“후우... 응?”

횃불을 든 채 바닥에 대충 던져뒀던 상자를 한 손으로 집은 나는 광석을 헤집은 탓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창고임에도 유난히 깨끗한 한곳을 발견했다.

드르륵- 상자를 끌어 선반 근처에 세운 나는 횃불을 바닥 가까이 붙여 흔적을 쫓는 개처럼 바닥을 살폈다.

“오...”

환기를 전혀 하지 않는 창고답게 뭉쳐서 나뒹구는 먼지가 바닥에 수북이 쌓였지만 구석으로 향할 수록 먼지가 없어졌다. 바람이 통하는 통로가 있는 건가? 일정한 간격으로 깨끗한 바닥에 텁- 텁- 발을 구르며 전진했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꾸욱-

춤추듯이 몇 번이고 발을 구르자 결국 꼬리가 밟혔다. 발바닥에서 꾹꾹 느껴지는 감촉에 횃불을 가까이 대보자 아주 살짝 튀어나온 고리가 있었고 그대로 잡아당기자 익숙한 손잡이모양으로 당겨졌다.

“창고에 이런 게 있어?”

-끼이이이이...

소름 끼치는 녹슨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덜렁이는 끈이 보였고 깊어 보이는 계단이 나를 반겼다. 들어가기 전 문을 고정시킨 후 허리에 찬 검을 꽉 동여맨 나는 고민하다 끈을 붙잡고 그대로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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