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가 챙겨준 옷을 갖춰 입은 나는 지금 그녀의 방 앞에 서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여자의 꾸밈은 끝이 없다던가? 화장을 고친다던가 악세사리를 고민하는 둥 시간을 잡아먹던 시에라는 이윽고 나를 쫓아내곤 새로운 드레스를 갈아입고 있었다.
-똑 똑 똑
“이러다 늦는 거 아니에요?”
한창 옷 갈아입기 바쁠 시에라를 부르며 재촉하자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문 너머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푹 쏘아졌다.
[기다려욧!]
[이미 이쁘던데 왜 안 나오는 걸까?]
스르륵- 귀신처럼 벽 너머에서 튀어나온 운디네는 내 머리 위를 빙빙 돌며 푸념했다. 저녁 식사를 구경하고 싶다길래 내가 건넨 제안대로 항상 입던 원피스의 형상을 페리샤가 입던 드레스처럼 꾸민 운디네는 드레스 밑단을 쥐고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더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가 봐.”
[그런 거 안 해도 카사노는 이쁘다고 해줄 거지?]
소녀와 처녀 중간을 오가는 몸매에 착 달라붙은 연하늘빛 드레스를 쓰다듬던 운디네는 귀여운 프릴이 살랑거리는 드레스를 살랑이며 폭-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말캉이는 운디네의 피부를 머리로 느끼며 차가운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디네는 항상 이쁘지, 너무 이뻐 죽겠어.”
-쪽 쪽 쪽
[헤헤-]
인형 같은 모습의 운디네가 애교부리는 모습에 말캉이는 볼에 몇 번 입을 맞췄다. 입술에 닿는 젤리 같은 감촉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때쯤 벌컥- 문이 열리며 지친 모습의 시에라가 방에서 나왔다.
“헤엑- 후우, 준비가 됐으니 이만 가볼까요.”
기다란 갈색 머리를 틀어 올려 묶은 시에라는 찰랑거리는 금귀걸이를 흘겨보고 내게 말했다. 볼과 눈가에 엿보이는 옅은 화장과 진한 붉은색 립스틱은 시에라를 한층 더 고혹적으로 만들었다. 풍성한 프릴이 계단처럼 주르륵 이어진 붉은 드레스 밑단을 손끝으로 쥐고 사뿐사뿐 다가온 시에라는 빙글- 한 바퀴 돌며 내게 감상을 물었다.
“어때요?”
오르골 장식처럼 빙글빙글 도는 시에라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파격적이었다. 움푹 파인 드레스는 허리 전체를 드러냈고 거미줄처럼 엮인 끈들이 드레스를 붙잡아 주고 있었다. 한층 도드라진 시에라의 몸매를 음흉하게 훑어본 나는 검지 끝을 살짝 핥으며 바라보는 시에라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고개를 살짝 눕히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쮸웁, 후음, 하웃, 후읏....”
툭- 힘없이 뻗어온 손이 내 가슴을 밀어 쮸읍- 부드러운 시에라의 입술을 한 번 더 빨고 그대로 놔줬다. 살짝 번진 립스틱을 손등으로 닦아낸 시에라는 불만스러운 눈빛과 만족스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손거울을 꺼내 립스틱을 다시 바르기 시작했다.
[치사해- 나도-]
“이리와.”
[쬬옥... 하움, 후으, 후훗...]
주륵- 앙증맞은 운디네의 입술에서 입을 떼자 늘어나는 투명한 실, 복도에서 적나라한 입맞춤을 나누기 시작한 우리는 슬슬 시간이 됐다며 사용인이 마중을 올 때까지 계속해서 혀를 섞었다.
**
“아, 왔군.”
사용인이 열어준 문을 넘어 넓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카펫처럼 주르륵 펼쳐진 넓은 식탁에 빼곡히 차려진 각양각색의 요리였다. 식탁 중앙을 차지한 커다란 칠면조와 각자 자리에 놓인 흰색 접시 위엔 그릴 자국이 남은 스테이크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침 준비가 끝났네. 자리에 앉지.”
샐러드가 담긴 그릇을 품에 안은 사용인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남작과 남작 부인의 접시에 샐러드를 한 움큼 얹었다. 남작의 안내에 따라 앉자마자 눈앞에 버터를 잔뜩 끼얹은 이름 모를 생선이 노릇노릇 익어서 풍기는 향이 식욕을 자극해 모두를 즐겁게 만들어줬다.
“식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작님.”
사용인이 빼준 의자에 앉은 시에라가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남작을 바라봤다. 이후 고개를 든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나서야 나도 시에라를 따라 어설프게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들게. 일행은 전부 온 건가?”
남작의 안부에 나는 천장을 날아다니며 손가락을 입에 문 운디네를 바라봤다. 열기와 향기를 내뿜는 각양각색의 음식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눈빛에 나는 시에라에게 신호를 보내고 슬쩍 손을 들어 남작에게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일행을 소개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아, 물론이지. 골치 아픈 부탁을 들어준 은인에게 뭔들 못할까.”
유쾌한 농담조로 대답하며 미소를 띠는 남작의 안색을 살핀 나는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운디네에게 손짓했다. 내 손짓에 파도처럼 헤엄쳐 날아온 운디네는 모습을 드러내란 이야기에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방방 뛰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
“와아!”
“페리샤.”
제법 놀랐는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운디네와 나를 번갈아 보는 남작과 정령은 처음인지 잔뜩 들떠 의자에서 튀어 오르듯 튕겨 나온 페리샤, 그리고 그런 페리 샤를 제지하는 남작 부인까지. 모두의 이목이 쏠렸지만 식사에 동참하게 된 운디네는 그 사실만으로 기뻤는지 다른 이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직 미숙해서 식사 문화도 잘 모른답니다, 많이 활달한 아이라 소란이 일어도 혹시 양해를 부탁드려도...”
우아하게 두 손을 모으고 남작에게 정중하게 요청하는 시에라의 모습에 잔뜩 들뜬 운디네도 사뿐히 의자에 앉아 그녀를 따라 양손을 모으고 꿈뻑- 한쪽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눈치를 봤다.
“하하하, 당연하지. 저리 귀여운 정령에게 뭐라 할 순 없지 않은가. 자, 자. 많이들 들게.”
그런 운디네의 모습에 마치 손녀를 보는 할아버지같이 인자한 웃음을 띤 남작이 손을 내저으며 시에라를 말렸다. 식사의 장인 남작이 식기를 들고 식사를 시작하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남작 부인도 식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저녁 만찬의 막이 열렸다.
달그락- 달그락-
식당에는 대화 소리 하나 없이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슬쩍 눈치를 살핀 나는 묵묵히 접시만을 바라보며 식사를 이어가는 시에라를 보고 마찬가지로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도축하는 데에 몰두하기로 했다.
[우와- 부드럼다-]
사용인이 가져다준 여분의 스테이크를 맛있게 우물거리는 운디네가 돌연 큰소리로 감탄했다. 역수로 쥔 나이프를 어설프게 휘둘러 갈기갈기 찢긴 스테이크를 입에다 텁텁 넣어 먹는 운디네의 모습에 식탁에 앉은 모두가 사랑스럽단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운디네, 입에 다 묻히면 어떡해요.”
[어차피 깨끗해진뎁-]
육즙과 소스를 입가에 덕지덕지 묻히며 먹는 운디네의 입가를 닦아준 시에라는 신나서 이것저것 집어먹는 운디네의 접시에 자신 몫의 스테이크를 조금 덜어줬다. 남작이 원래 저런진 모르겠지만 삭막한 식탁의 분위기는 운디네 덕에 가벼워 진듯했다. 편안한 얼굴로 식사를 하던 페리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꾸벅 고개를 숙여왔다.
“그럼, 식사도 전부 마친 것 같으니 일어나지. 그럼 당분간 잘 부탁드리겠소.”
“걱정 마십시오.”
“꼭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냅킨으로 입가를 쓱쓱 닦은 남작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작 식사를 마친 나와 시에라는 동시에 일어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남작에게 꾸벅 인사했다. 남작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난 부인까지 사이좋게 식당을 나가자 식당에 남은 건 나와 시에라, 페리샤와 운디네뿐이었다.
[다 먹었다-]
입가에 묻은 소스를 파란 혀로 낼름거리는 운디네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때 또각또각- 연하늘빛 드레스 양 끝을 붙잡은 페리샤가 기품있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나요?”
당당한 발걸음과 자신 있는 미소에 따라 미소지은 나는 여전히 입맛을 다시는 운디네를 끌어당겨 꾸벅 인사를 하게 만들고 대답했다.
“요 근래 맛본 식사 중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손등으로 입가를 가린페리샤가 호호호- 큰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이죠, 아버님이 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큰 신경 쓰라고 단단히 일러뒀답니다. 만족스러웠다니 다행이군요!”
“아가씨...”
커다란 식당 안이 호호호- 귀여운 웃음소리로 가득 찰때쯤 한 발짝 물러선 사용인이 페리샤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눈썹이 크게 휘며 커다란 눈으로 꿈뻑 꿈뻑 우리를 바라보던 페리샤는 곧바로 꾸벅 고개를 숙이곤 쫓기듯 식당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럼 이만 가볼 테니 나중에 또 찾아뵙도록 하죠!”
“크큭...”
만화나 소설에서 볼법한 호호호- 웃음소리에 꽂힌 내가 계속 웃으며 페리샤를떠나보내자 도끼눈을 뜬 시에라가 쿡- 내 옆구리를 찔러왔다. 제법 따끔한 공격에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붙잡자 불퉁한 목소리가 툭 귓가에 놓였다.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네요.”
“귀엽잖아요, 시에라도 귀엽고 운디네도 귀여워요.”
[움, 고마어-]
그새를 못참고 식탁에 놓인 빵을 우물우물 먹던 운디네가 자신을 부르자 고맙다고 하곤 다시 고개를 숙여 빵을 먹기 시작했다. 햄스터 같은 빵빵한 볼을 쓰다듬은 나는 불만 어린 시에라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살짝 달아오른 그녀의 귓가를 혀로 톡 건드렸다.
“질투해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식사 내내 아가씨가 당신을 쳐다봤다니까요.”
“무슨 오해를 하는진 알겠지만 그런 건 아닐 거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요.”
“뭐야, 벌써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요?”
눈썹을 꿈틀거리며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시에라, 고혹적인 붉은 입술을 검지로 쓰다듬으며 장난친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괜히 제가 이야기했다고 하진 말고요.”
“제가 그렇게 입이 가벼운 줄 알아요?”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닌 거 알잖아요.”
흥- 콧방귀를 뀐 시에라는 심술 좀 부려봤어요- 라는 사족을 달곤 또각 또각- 도도한 구두소리를 내며 식당에서 벗어났다. 나는 아예 의자에 앉아 남은 빵을 먹기 시작하는 운디네를 끌어안고 그대로 시에라의 뒤를 쫓아 식당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어두워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해가 졌는지 하늘은 검푸른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물들어 있었다.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이 빛나는 하늘 아래 들뜬 걸음의 시에라가 또각- 또각- 나를 바라보며 뒤로 걷고 있었다.
“...당신이랑 만나길 잘했네요.”
“뭐라고 했어요?”
상당히 거리가 있어 시에라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아 되물었다. 화악- 드레스보다 새빨개진 얼굴을 살짝 손으로 덮은 시에라는 눈을 꿈뻑 꿈뻑 감았다가 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내게 말했다.
“추운데 이만 들어갈까요?”
“같이 들어가요.”
-스윽
“아...”
파여있는 시에라의 매끈한 등을 한번 쓰다듬었다. 조금 쌀쌀한 저녁 공기에 차가워진 등이었지만 금방 뜨거운 열기로 데워줄 심산이었다. 야릇한 내 손놀림에 옆에서 지켜보던 운디네는 어깨를 으쓱이곤 정령계로 가는 포탈을 열었다.
[오늘은 시에라한테 양보할게-]
“아니, 운디네! 그런 저는 그럴 생각이...”
-쪼옥
“우움...”
다급하게 변명하는 시에라의 붉은 입술을 그대로 틀어막았다. 반항하는 혀를 그대로 혀끝으로 찍어누르고 낼름 낼름- 혀 위를 핥으며 천천히 혀를 엮었다. 살짝 남은 식사의 맛이 뒤늦게 따라왔지만 이미 눈을 감고 혀를 섞는데 집중하는 시에라에게 실례였기에 좀 더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후음, 그흑, 쬬옵, 쮸우, 후읏...”
내 입에 넘어온 혀를 쭙 빨아당기며 교미하는 뱀처럼 혀를 얽자 흥분한 시에라가 흐응- 뜨거운 콧김과 함께 입술을 문지르며 내게 엉겨 붙었다. 키스에 열중할수록 번지는 립스틱 자국과 쬬옵- 쬬옵- 내 입술을 빨며 혀를 핥는 시에라의 표정에 흥분한 나는 콱- 말캉이는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하응, 쮸웁, 프흐, 밖... 밖이니까 그만 해요...”
소곤소곤- 나비의 날갯짓보다 작은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입을 뗀 후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손등으로 가리며 내 손길을 피하는 시에라의 모습에 나는 말 없이 꽉 쥔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그녀의 음부로 손을 향했다.
-쯔릅 쯔릅 쯔릅
“흐응, 흐으, 후읏, 하악...!”
파여있는 등골에 손을 밀어 넣자 손가락 끝에 걸리는 팬티 끈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바로 그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바닥 전체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살결을 만끽하며 축축한 열기를 잔뜩 내뿜는 음부를 가볍게 손끝으로 훑자 시에라가 조율하는 악기처럼 간드러진 신음을 내뱉었다.
“방으로 갈까요?”
찔걱- 찔걱- 앙다문 보지를 손가락으로 휘저으며 물었다. 꾸욱- 내 옷깃을 움켜쥔 채 애무를 받아들이던 시에라는 내 질문에 붉게 물든 귀를 쓰다듬곤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당신 방으로 가요,”
-쪼옥
입을 삐죽이며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방으로 향하는 내내 흥분 가득한 시에라의 발걸음을 보면 바보라도 그녀가 기대하고 있단 사실을 알 수 있겠지. 조용히 방에 도착한 나와 시에라는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어 서로의 몸을 탐했고 그렇게 남작가에서의 하루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