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상행은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애초에 호르미아라는 대도시 근처에 있는 영지인 만큼 가는 길목의 치안이 안 좋을 리가 없지. 덕분에 이틀 동안 운디네와 시에라랑 캠핑 느낌으로 밤하늘 구경도 하고 낮엔 호수에서 물장구도 치고 즐겁게 지냈다.
“나리 도착했습니다.”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지쳐 잠든 우리를 깨우는 마부의 목소리에 부스스- 깨어난 시에라는 재빨리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피곤 마차에서 내렸다. 말의 목을 쓰다듬던 마부는 시에라가 내리자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대기하고 있겠다고 말한 뒤 조용히 떠났다.
“끄으, 저긴가요?”
한적한 시골처럼 보이는 영지 안에 들어선 우리는 힐끔힐끔 쳐다보는 농부들의 시선을 흘리며 저 멀리 들어선 저택을 바라봤다. 여전히 우리 뒤에 서 있는 짐 마차를 흘겨본 시에라는 고개를 끄덕이곤 용병들에게 손짓해 따라오라 일렀다.
터벅- 터벅- 잠이 덜 깼는지 머리를 꾸벅꾸벅 떨어트리는 운디네와 함께 나란히 걷던 나는 점점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굳는 시에라를 보고 그녀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왁- 하고 그녀를 놀라게 하며 끌어안았다.
“아악! 뭐야, 뭐에요!”
“너무 긴장하고 있는 거 같아서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뭐래요! 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신경 꺼요...!”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시에라를 보니 진담인 게 느껴졌다. 긴장한 줄 알았던 나는 괜히 뻘쭘해 머리를 긁으며 슬쩍 시에라와 거리를 벌렸다. 화장실이 급했는지 내 장난에 얼굴색이 변한 시에라는 조급한 얼굴로 배를 살짝 끌어안고 터벅터벅 빠른 걸음으로 저택을 향해 다가갔다.
“정지, 휘슬 남작님의 저택엔 무슨 볼일입니까?”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시에라를 척- 막아선 경비병이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에게 대답을 종용했다. 살짝 안색이 편안해진 시에라는 싱긋 웃으며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건네준 뒤 척척 설명했다.
“이번에 남작님께 월광석을 납품하기로 한 로필라상단의 시에라에요.”
“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뒤에 사람들은...?”
꾸벅 묵례한 경비병이 양피지를 말아 품에 넣고 신호를 줬다. 저택 안 대문을 지키던 다른 경비들이 분주히 움직이자 끼이익- 창살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일행과 용병들이에요. 용병들은 월광석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니 짐 마차와 함께 창고로 가시면 됩니다.”
“아, 안 그래도 오늘 인원이 적었는데... 시에라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뭘요, 그럼 이만 남작님을 뵈러 가볼게요.”
“잠시만요, 빈델!”
그냥 경비인 줄 알았는데 대장인가? 일사불란하게 경비병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즘 그의 목청 좋은 소리에 한 청년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로필라 상단주이신 시에라 아가씨입니까?”
“아가씨는 됐고 상단주면 됩니다.”
시에라의 까칠한 대답에 하하-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은 밤색 머리 청년은 경비대장이 건네주는 양피지를 건네받고 읽은 뒤 똑같이 품에 넣고는 분주하게 창고로 이동하는 짐 마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차가 세 대나 되는군요, 전부 월광석입니까?”
“네, 남작님의 요청으로 다른 물량도 준비 중이에요.”
“알겠습니다, 일단 저택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적어 창고에 제가 직접 가봐야 하기에...”
“잠깐! 빈델, 걱정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요!”
삐질삐질 땀을 흘려가며 움직이는 빈델을 제지하는 활달한 목소리에 움직이던 사용인과 용병들 전부 걸음을 멈췄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워, 워- 후후, 잘했어요. 로망, 날이 갈수록 영리해지는 거 같네요!”
히히힝- 투레질을 하며 우는 백마의 위에 앉아있던 젊은 여인이 홱- 몸을 돌리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탁- 집사인 빈델의 옆에 가지런히 선 여인은 쓰고 있던 승마모자를 벗고 땀에 젖은 금발을 홱- 털고 뒤로 넘기고는 우리를 바라봤다.
“반가워요, 저는 휘슬 남작가의 장녀 페리샤 휘슬이랍니다. 당신이 시에라님인가요?”
땀에 젖었는지 번들거리는 오뚝한 콧날과 젖살이 빠져가는 통통한 볼살, 앙증맞아 보이는 촉촉한 입술을 끌어올리며 짓는 호의 어린 미소는 소녀와 처녀 사이를 오가는 페리샤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저희 집사가 바빠 보이는 응접실까지 제가 안내해드리겠어요, 사양할 필요 없답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연 하늘빛 눈동자가 우리를 지긋이 응시했다. 페리샤의 에너지에 압도된 시에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붕붕붕 손을 흔들던 페리샤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사과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이런! 제가 승마를 즐기다 온 탓에 손님을 맞이할 복장이 아니었네요.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확실히 페리샤가 입은 옷은 남작가의 아가씨가 손님을 응대할 때 입는 옷가지완 거리가 멀었다.
길쭉한 다리에 착 달라붙은 흰 승마바지와 검은색 부츠, 풍만한 가슴을 덮은 남청색 재킷과 땀에 젖어 색이 변한 흰색 셔츠, 제법 더웠는지 셔츠를 펄럭이며 바람을 쐬던 페리샤는 내 시선에 턱- 셔츠를 놓고 한걸음 물러섰다.
“물론입니다, 아가씨께서 응대해주신다면 저희로서 더 감사한 일입니다.”
툭-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두들기는 시에라의 신호에 환한 미소를 지은 나도 거기에 동참했다.
“안 그래도 다른 분들이 바빠 보여 곤란한 참이었습니다. 아가씨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카사노도 이럴 때 보면 말을 참 잘하는구나.]
평소엔 못한다는 건가? 의문스러운 운디네의 말을 흘려들은 나는 우리의 대답을 듣고 환한 미소를 짓는 페리샤를 바라봤다.
“후훗!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영광스럽네요. 그럼 빈델, 제가 손님들을 아버님께 안내해드릴 테니 당신은 그만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꾸벅- 허리를 굽힌 빈델이 한걸음 물러나 다시 우리에게까지 인사를 건네고 그대로 짐 마차와 함께 창고로 향했다. 빈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던 페리샤는 홱 몸을 돌리고는 해맑은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그럼 가볼까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네요!”
터벅 터벅 터벅- 힐끔 나를 흘겨보는 페리샤를한발짝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쉴 새 없이 페리샤와 대화를 주고받는 시에라를 바라봤다. 활달한 페리샤는 생긴 대로 논다는 말처럼 대문에서 저택 안으로 들어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쉬지 않고 쫑알쫑알 종달새처럼 지저귀었다.
“시에라님도 아버님의 일을 물려받은 거군요. 대단하네요!”
“별거 아닙니다. 아직 많이 모자란걸요.”
“아니에요! 휘슬 남작가는 호르미아를 다스리는 행밀 백작님의 최측근,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아요!”
“그런, 그런가요.”
제법 낯짝이 두껍다고 할 수 있는 시에라조차 페리샤의 활달함이 감당이 안 됐는지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며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상단주로서 일하는 시에라를 제치고 남작가의 장녀와 떠들 수는 없는 법.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은 나는 길쭉한 복도에 걸린 그림과 동상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동안 즐겁게 이야기하던 페리샤는 딱 봐도 화려해 보이는 문 앞까지 오고 나서야 이야기를 멈추고 우리를 돌아봤다.
“저는 이런 복장으로 아버님을 뵙긴 그러니 이만 돌아가 보겠어요. 시에라님 대화 너무 즐거웠답니다...!”
정말 즐거웠는지 축 처진 시에라의 손을 붙잡고 붕붕 흔들며 해맑은 미소를 보이는 페리샤, 그런 페리샤를거부하기 그랬는지 똑같이 미소를 지은 시에라는 자신의 손을 덮은 페리샤의 손을 꽉 움켜쥐고 온기를 전해주고는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헤헤...! 아, 뒤에 계신 기사님도 고생하셨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페리샤의 요청에 옆에 서 있는 시에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시에라의 신호에 나는 방긋 웃으며 페리샤에게 대답했다.
“시에라 상단주의 호위인 카사노라고 합니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 아니에요! 어차피 오후 일정은 전부 끝났으니까요! 그럼 아버님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만!”
타다다다닷- 기다란 복도를 순식간에 벗어나는 페리샤의 뒷모습을 쫓아보던 우리는 적막이 가라앉은 복도에 잠시 서 있다가 문득 서로를 마주 보고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아니, 보통 손님을 데려왔다고 말하고 가지 않나요?”
“그렇... 죠? 그래도 착한 아가씨잖아요?”
내 질문에 페리샤를변호하던 시에라는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다가 헤후- 한숨을 내쉬곤 손을 뻗어 똑 똑- 문을 두들겼다. 남작의 대답이 들리기 전 목을 가다듬은 시에라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방문 예정이 있던 로필라 상단의 상단주 시에라입니다. 안내를 받고 왔습니다만.”
[들어오시게.]
끼이이익- 남작의 허락에 곧바로 열리는 문, 희끄무리한 머리를 가지런히 넘긴 노년의 집사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응접실 소파에 앉아있는 휘슬 남작을 향해 손짓했다.
“들어가시지요.”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시에라를 뒤따른 나도 노년의 집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빙글- 하늘을 돌며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운디네를 뒤로하고 남작의 맞은편에 앉은 시에라의 뒤에 서서 자리를 지켰다.
“청년은 앉지 않는 건가?”
대뜸 인사보다 시에라의 뒤에 선 내게 말을 거는 남작의 행동에 나는 슬쩍 시에라의 안색을 살피고 곧바로 대답했다.
“호위입니다, 서 있는 편이 더 편합니다.”
“흐음, 그런가? 워낙 격식 없어 보이는 사이라 물었네.”
응접실 앞에서 나눈 대화를 들은 건가? 멋쩍음에 손을 꽉 쥐자 집사가 따라놓은 차를 홀짝인 휘슬 남작이 마찬가지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딸내미가 많이 천방지축이네. 간만에 손님이 와서 많이 들뜬 모양이니 용서해주게.”
“아닙니다, 아가씨 덕에 아무 문제 없이 남작님을 찾아뵙게 됐습니다.”
무릎에 양손을 얹은 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시에라, 나긋나긋하지만 뭔가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대뜸 남작이 수염을 들썩거리며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자네 아비를 똑 닮았군.”
“아비...요?”
“내가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상단에 연락해 마차 세대 분량의 월광석을 매입했겠나?”
“그건...”
이곳을 떠나기 전 귀족들 사이에 유행이 번지고 있는 월광석에 대해 당당하게 떠들던 시에라를 떠올렸다. 새하얀 피부가 빨개진걸 보니 시에라는 순전히 운으로 잡은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상단주의 아비인 그레고릭과는 몇 번이나 만난 사이였지. 나름 유망 있는 상단주면서 제 발로 뛰어가며 안면을 트는 방법이 제법 흥미로웠다네.”
“아...”
몇 번 들은 적 있지만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에 시에라는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경청했다. 남작은 호르미아를 오갈 때마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그레고릭을 귀찮아하면서도 그의 열정을 좋아했고 몇 번 일을 맡기거나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러 물건을 매입했단 사실을 꾸밈없이 설명했다.
“부친의 부고 소식은 안타깝게 됐네. 영지를 재단장하는 동안 호르미아에 들리지 않는 사이 그런 일이 벌어졌을 줄이야.”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버님의 의지를 이었으니 아무 문제없습니다.”
“호쾌한 면까지 그레고릭을 닮았군. 내친김에 월광석을 매입한 이유까지 설명해야겠군.”
호로록- 차를 들이킨 휘슬 남작은 수염에 묻은 차를 털어내고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올곧게 허리를 편 시에라를 응시하는 그는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몽환의 밀림에 로필라 상단이 자리 잡았단 사실을 들었네. 그래서 지속적인 구매를 하고 싶단 말이야.”
“그건 저희도 환영입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지.”
시에라의 질문에 탁- 자신의 무릎을 두들긴 남작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다.
“알다시피 행밀 백작님의 측근으로 지내기에 그분이 제국 수도에 보내는 물품이나 선물들을 내가 챙기는 경우도 있다네. 그런데 요즘 들어 창고에 물건이 하나씩 빈다거나 수량이 안 맞는단 말이지.”
“...”
“하지만 창고 정리엔 시종들을 쓰지 않고 믿을만한 사용인들에게 맡긴단 말이네. 그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비는 만큼 행밀 백작님의 물건에 손대는 일까지 벌어진다면 큰일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마침 실력 좋아 보이는 호위도 있겠다, 월광석의 지속적인 매입으로 우리 저택에 머무는 김에 창고를 나도는 쥐새끼를 잡아줬으면 하네. 그리고 다른 부탁도 있고.”
부탁이 참 많네, 남작에게 보이지 않게 손을 움켜쥐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활짝 웃은 남작이 무릎을 두들기며 시에라에게 말했다.
“마침 자네나 우리 딸내미나 동년배인거같은데 머무는 동안 딸과 친하게 지내줬으면 좋겠군. 워낙 영지에만 머물게 해 따로 친한 사람이 없어 많이 외로워하거든...”
호록- 차를 들이킨 남작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시에라를 바라봤다. 꾸욱- 무릎을 움켜쥔 시에라는 남작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속적으로 매입하는 월광석의 수량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들어온 마차 세대 분량이면 준비하는데 얼마나 걸리는가?”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흐음- 침음과 함께 턱을 쓰다듬은 남작이 활짝 웃으며 손을 펼쳤다.
“한 달에 다섯 대 분량 어떤가? 유행이 번지는 지금 그 정도면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귀족들의 유행은 금방 불이 꺼진다, 귀족들 사이의 연회나 다과회에서 흐름을 타고 수도까지 번진다면 모를까 지방 귀족들의 유행으로 월광석이 사용된다면 반년도 엄청 많이 선전한 거다. 마을에 쌓아두는것보단 파는 게 훨씬 이득이기에 계산을 마친 시에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작의 제안을 수락했다.
“매입가는 이번과 동일하게...”
“아니, 내 부탁을 들어주는데 그럴 순 없지 2할은 더 쳐주겠네. 머무는 기간은 이주 정도면 어떤가?”
슬쩍- 남작의 제안에 뒤돌아 나를 바라보는 시에라. 고개를 끄덕이자 안심했는지 미소를 지은 시에라는 서둘러 남작의 제안을 수락했다. 능글맞게 나를 지켜보는 남작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작이 시에라에게 슬쩍 물었다.
“그럼 계약서는 나중에 쓰는 걸로 하고, 창고에 드나드는 쥐새끼를 잡는 덴 저 청년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니 기쁘군요.”
시에라가 내 눈치를 보기 전 나서서 대답하자 살짝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보던 남작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창고 담당인 집사에게 미리 언질을 주겠네. 계약 내용은 전부 기억해뒀나?”
한 달에 월광석 다섯 대 분량을 남작 가에서 매입한다, 가격은 이번에 들고 온 가격의 2할을 더해서 쳐주고 시에라에게 따로 부탁한건 이 주간 머물며 페리샤의 말상대를 해줄 것, 내게 부탁한건 창고를 드나드는 도둑을 잡아줄 것,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남작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푹 쉬도록. 아참, 저녁엔 시간을 비워주게. 손님이니만큼 식사를 대접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거래 감사드립니다. 남작님.”
꾸벅- 허리를 숙이는 시에라를 따라 허리를 굽혔다. 뭘-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물러나는 남작과 곧바로 우리에게 다가온 노년의 집사는 남작의 사인이 남아있는 계약서를 시에라에게 건네주며 나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남작님을 대신해 사업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상단주님과 둘이서 나누고 싶습니다만...”
나를 콕집어 말하기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시에라의 어깨를 토닥이고 그대로 응접실을 나갔다. 뭔가 폭풍처럼 오간 대화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상단주로서 성공을 바라는 시에라를 돕는 게 중요했기에 남작과 나눈 대화는 만족스러웠다.
사실 월광석이 얼마에 매입되고 가격 형성도 어떻게 되는지 몰랐기에 이 거래의 이점에 대해 하나도 몰라 조금 머리가 어지러웠다. 뭐 시에라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다는 생각에 찌뿌둥한 몸을 풀며 창고로 가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커다란 목소리가 왁- 들려왔다.
“아아앗-!”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별다른 장식이 없는 연 하늘빛 드레스를 걸친 페리샤가 성큼 성큼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