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5.포식자를 노리는 포식자, 두 딸의 어머니 하루나 (71/395)



〈 71화 〉5.포식자를 노리는 포식자, 두 딸의 어머니 하루나



연무장 안으로 들어서니 무복을 갖춰입고 진중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하루나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목례하며 하루나의 앞으로 다가가니 팔짱을 낀체 서있던 하루나가 팔짱을 풀며 허리에 손을 얹고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내게 물었다.

“그녀석과 만났겠지?”

“아 전에 패죽여놨던 놈이요?”

하루나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일부러 세게 표현했음에도 하루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래, 혹시 그대보고 뭐라고 하던가?”

나는 하루나에게 순순히 말할지 아니면 숨길지 잠시 고민했지만 뭐가 이쁘다고 숨겨줘야하나 싶어 그놈이 했던 얘기를 그대로 말해줬다.

“흐음... 그런가. 미안하다 테브라 마을에서 가르칠 적부터 오냐오냐 한탓에 저렇게 오만하게 자라버렸군.”

“하루나님 성격에 오냐오냐 가르치는게 가능합니까?”

“뭣?”


짓궂은 농담을 던졌더니 도끼눈을 뜬체 노려보는 하루나,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이라고 덧붙이니 그제서야 픽- 웃으며 한숨을 내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비를 잃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에 응석받아주며 키웠더니 저렇게 됐군.”


나도 딸들을 내버려두고 떠났던 때라- 하고 슬픈 눈으로 설명을 덧붙이는 하루나의 모습은 조금 쓸쓸해보였다. 딸들과 재회했음에도 벌어진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는지 셋은 아직도 서먹하게 지내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줄겁니다.”

어줍잖게 하루나나 츠루카의 편을 들어주는것보단 낫겠다 싶어 툭 던지듯 말했는데 왠지 퉁명스럽게 얘기한것만 같아 찝찝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내 조언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나는 진한 미소와 함께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런가. 고맙다.”


“얼른 끝내고  쉽시다. 내일 고생할 예정인데 미리 쉬어야 할거 아닙니까?”


괜히 멋쩍어 말을 돌리니 하루나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한걸음 더 내게 다가왔다. 딱 달라붙은 무복을 걸친 하루나는 손을 뻗어  복부에 얹은뒤 눈을 감고 마나를 두르기 시작했다.

“호오...”

손만 댔을뿐인데 성취를 눈치챘는지 눈을 뜬 하루나는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단하군. 보름만에 이정도라니.”

“알고 계셨습니까?”

“미네르바한테 찾아갔다면 용건은 하나뿐이지.”


그러고보니 미네르바와 어느정도 아느사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하루나는 첫날 미네르바에게 다녀왔다는걸 알아챈 순간부터 내가 마나의 응용을 배우러 갔다는걸 알았다는건데.

“음흉하시군요.”


“그대만하겠나.”


모른척 물으며 간보다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넘긴 주제에 음흉하게 내색하지 않은 하루나를 힐난하자 쓰게 웃은 하루나도 아무렇지않게 받아쳤다.


“흐음... 그럼 마지막 단련을 시작해볼까.”


잠시 찾아온 침묵을 넘긴 하루나는 가볍게 몸을 풀며 내게 말했다.  또한 몸을 꺾으며 걸쳤던 외투를 벗고 주변에 대충 걸어놓고 왔다.

“잘부탁드립니다.”

“내가 잘부탁하지.”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하루나는 분홍빛 설육으로 입술을 축이며 자세를 낮췄다. 떠나기  마지막 매듭을 짓기위한 단련이 시작됐다.


**


-퍼억! 퍼어억!


하루나의 주먹에 복부를 얻어맞은 나는 그대로 땅에 튕기며 날아갔다. 정신을 붙들어매도 물수제비마냥 땅을 튕기는 움직이메 기가 찬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땅을 짚고 겨우 일어났다.


“후우... 생각보다 훨씬 힘들군.”

너덜너덜한 무복 사이로 뽀얀 하루나의 살결이 드러났지만 하루나는 노출따위 신경쓰지않고 도약하듯 날아오며 발을 내리찍었다. 머리통을 짓밟으려는 발을 피하며 구른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일어나 반탄력으로 주먹을 뻗었지만 하루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후웅!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피해낸 하루나는 텅빈 내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어떻게든 팔을 뻗어 막았지만 팔을 밀어내는 묵직한 각력에 나는 막지 못했다는걸 깨닫고 눈을 감으며 포기했다.


-뻐어억!

뼈가 울리는 고통과 함께 날아간 나는 그대로 연무장을 구르다 쓰러졌다. 하도 얻어맞아 정신은 멀쩡했지만 온몸이 쑤셨다. 무리하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운디네의 치료수를 알고 난뒤 하루나는 손속을 봐주는일이 없었다.


“고생했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하루나도 꽤 무리했는지 흠뻑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함께 너덜거리는 무복을 붙잡고 부욱 찢었다. 탄탄한 복부와 출렁이는 젖가슴이 시야를 가렸지만 너무 힘들어 죽을거같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우우...!”


부들거리는 팔에 어떻게든 힘을 주고 땅을 짚고 일어났다. 사실 이대로 드러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숙소에 있는 운디네를 찾아가 치료한뒤 잠드는게 제일이었다.


“그럼 돌아가볼까.”

-물컹

갑자기 갈비뼈쪽에 물컹이는 촉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니 내 팔 사이로 들어와 어깨동무한 하루나가 찰싹 달라붙어 커다란 젖가슴이 몸에 닿고 있었다. 괜히 쑥스러워 벗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을 들어주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편해 그냥 포기하고 하루나에게 기댔다.


“안무겁습니까?”

하루나보다 키도 크고 무게도 나가는데 전혀 힘든기색 없는 하루나를 보며 물었다.


“가볍기만 하군.”

내색하지않을뿐 힘들텐데, 하도 얻어맞아서 마음이 한풀 꺾였는지 하루나에게 미안함이 자꾸 솟구쳤다. 괜히 입밖으로 꺼낼까봐 입을 다문 나는 조금이라도 스스로 걸으며 하루나에게 기댄체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나에게 풍기는 진한 암컷향기를 맡으며 같이 걷는동안 하루나도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사이좋게 서로의 냄새를 맡은 우리는 멋쩍은 웃음을 나누며 하염없이 걸었고 마중나온 츠루카가 뛰어오고 나서야 떨어질수 있었다.

“서방님...!”

상대적으로 완전 너덜너덜한 나를 챙긴 츠루카는 하루나를 한번 째려본뒤 나를 안아들었다. 끙차-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나를 안아든 츠루카는 하루나를 지나치고 그대로 쿵쿵쿵- 내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끼이익

[카사노- 왔어헛?!]

“어휴- 내일 결투라면서 미련하게 뭐하는짓이에요!”


-찰싹!


“아파...”


가벼운 잔소리를 던지는 츠루카에게 대충 대답한 나는 손을 까딱여 운디네를 불렀다. 너덜 너덜한 내 몰골을 확인한 운디네는 울상을 지으며 내게 손가락을 뻗어왔다. 촉촉하고 말랑한 젤리같은 손가락을 입에 문 나는 운디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이구- 잘한다 잘해-]


“왜 사서 고생을 해요 네?”

교대로 잔소리를 꽂는 둘을 흘겨본 나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않고 입안에 꼴꼴- 흐르는 운디네의 치료수를 넘기며 눈을 감았다. 삼킬때마다 화악- 온몸을 휘감는 청량감에 집중하며 운디네가 손가락을 빼낼때까지 치료수를 받아먹은 나는 한참을 츠루카와 운디네의 잔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다됐어! 흥!]

삐졌다는 듯 팔짱끼고 몸을 돌리는 운디네, 걱정되는 마음에 그러는걸 안 나는 팔을 뻗어 운디네를 끌어안고 남는 팔로 츠루카를 끌어안아 침대에 누우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그래도 별거 아니었어.”
“걸레보다 더 너덜너덜하게 돌아와놓고 뭐가 별거 아니에욧!”

[그러니까 말이얏!]

“서로 진심을 확인한거야. 오늘 싸움이 하루나의 전력이였어.”

어떻게든 받아쳐도 더 빠르게 접근하는 하루나, 어떻게든 덤벼들어도 가볍게 흘리며 반격하는 하루나. 짧은 그 순간 나는 단 한번도 하루나를 이기지 못했다.

“그럼 내일도 똑같다는거잖아요...”

고풍스러운 말투도 잊은 츠루카가 걱정스럽다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운디네도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난데없는 쌍둥이의 걱정에 나는 피식- 웃고 침대를 뒹굴며 말했다.

“아니야... 나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이만 잘게. 도와주느라 고생했어.”

괜히 말해봤자 심란해질거같아 대화를 끊고 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는 운디네와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는 츠루카, 이내 단념했는지 운디네의 손을 잡은 츠루카는 나가기전까지 나를 걱정하며 방을 나섰다.


“서방님을 믿지만,  조심하세요...”

[힘내 카사노!]


삐진것도 잊고 활기차게 응원하는 운디네의 인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모든 진심을 선보인 하루나의 싸움을 복기하기 위해 눈을 감은 나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을 느끼며 생각의 바다에 스르르 잠겼다.

**


-똑똑


“서방님,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깨우는 츠루카의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방안을 비추는 햇살과 살풋 열린 창틈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아침 공기. 약속의 날이 밝았다는게 체감이 된 나는 온몸을 조이는 긴장감과 설렘을 털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응, 일어났어.”

-끼익

“어머, 후훗... 식사 준비 다 해놨습니다.”

츠루카의 시선이 고간에 잠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매번 아침마다 일어나는 자연현상이기에 내색하지않은 나는 뒤돌아 엉덩이를 살랑이며 계단을 내려가려는 츠루카를 끌어안으며 달라붙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


“후훗, 저 말고 음식 냄새를 맡으셔야죠.”

“둘 다 맛있어 보여서 그래.”


“정말, 이렇게 신나신걸 보니 걱정 안해도 되겠사옵니다.”

짓궂은 아들을 훈계하듯 흘겨본 츠루카는 푹신한 엉덩이를 살랑이며 고간에 비볐다. 내 여인의 달콤한 살내음을 맡으며 식당으로 내려간 나는 하루나가 없는걸 알아채고 의문어린 눈빛으로 츠루카를 바라봤다. 그런데 대답은 에루카의 입에서 나왔다.


“어머님이라면 부하들과 같이 계실거다.”

“그래? 인사라도 하려고 했더니.”


“아마 테브라마을의 중책들을 이끌고 광장에서 기다리고 계실거다.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야한다.”

“준비할게 따로 있어?”

“이런...”


아무것도 모르냐는 듯 힐난하는 눈빛의 에루카. 나는 들은게 없어 억울한 표정으로 에루카와 츠루카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손으로 뺨을 받친체 어쩔수 없다는 표정의 츠루카가 짧게 설명했다.

“어쨌든 서방님이 지금 히네라마을의 족장이니, 제대로 된 의복을 갖춰입을 준비를 해야한다  소리옵니다.”


“그냥 저렇게 말하면 될걸...”

안타깝다는 눈으로 에루카를 흘겨보자 얼굴을 붉힌 에루카가 빼액 소리쳤다.

“저렇게 조곤조곤 말할수 없으니까 그런거다! 에잇, 됐으니 빨리 식사나 끝내라!”

먼저 식사를 끝냈는지 샐러드나 빵 등을  쪽으로 밀어준 에루카가 툴툴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신경써주는 에루카가 대견해 챙겨준 음식들을 챙겨 덜어먹은 나는 식사를 서둘렀다.

“의복은 챙겨뒀으니 천천히 드시지요.”


츠루카가 타이르듯 천천히 먹으라 했지만 이미 모두 입에 털어 넣은 나는 꿀꺽- 남은 음식을 삼키고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일어나기 무섭게 에루카가 똑같이 일어나며 내 팔을 붙잡고 츠루카의 집무실로 쿵쿵- 발소리를 내며 나를 데려갔다.

-촤라라락!

옷장에 걸린 여러 옷들을 넘기며 무언가를 찾는 에루카, 중간 중간 야릇한 속옷과 짧은 치마등이 눈에 보였지만 애써 모른척 하며 얼굴을 붉히는 츠루카를 보고 나도 못본척했다.

[우와- 이건 엉덩이가 다 드러나겠다!]


“여기, 이걸 입어라.”


=사르륵

천 스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무복같은걸 꺼낸 에루카, 옛날 태권도 다닐 때 본듯한 도복의 디자인과 빼닮았다. 하루나가 입던 무복은 민소매의 만화에서나 보던 무복이었는데-


-촤악!

내 옷을 벗기듯 잡아당기는 에루카, 늘어나는 옷자락에 기겁한 나는 머리를 빼내 스스로 벗으며 성격 급한 에루카를 나무랬다.

“내가 입는다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괜한 소리를 듣지 않는다! 서둘러!”

엄격한 조교처럼 명령하는 에루카의 모습에 웃은 나는 시킨대로 서둘러 갈아입었다. 이게  족장의 복장인지 모르겠지만 전통이면 전통이겠지- 내 옷맵시를 살펴본 에루카는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OK사인을 내렸다. 허가도 받았겠다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호기롭게 집밖으로 나섰다.

“힘내세요!”

“힘내요!”


“대장님 남편 파이팅!”

츠루카,에루카를 옆에 끼고 광장으로 향하자 이른 아침임에도 구경나온 마을 주민들이 활기차게 응원을 던졌다. 나는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고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운디네의 턱을 긁으며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하루나에게 향했다.


-웅성웅성웅성

시끄럽게 떠들며 광장을 둘러싼 인파들이 다가오는 우리들을 눈치채고 길을 만들어줬다. 터놓은  사이로 걸어간 나는 호의섞인 눈빛과 적의가 가득한 시선을 즐기며 중앙에서 팔짱을 낀체 기다리고 있는 하루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새하얀 민소매 무복을 걸친 하루나는 회색 꼬리를 살랑이며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딱 달라붙는 순백색 바지에 드러나는 다리 라인이 무척 이뻤지만 애써 못본척 하며 하루나의 맞은편에 섰다.

“왔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루나의 뒤편에 선 차기 족장이란 놈이 나를 노려보는 꼴을 무시하며 하루나에게 사과했다.

“아직 약속시간까지 20분이나 멀었다. 준비는 됐나?”

“긴장되는군요.”

“나 역시.”

우리는 짧게 대답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이미 수없이 몸을 섞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정도는 알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미소를 보이며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둘러싼 인파들이 뒤로 물러서며 넓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길고 긴 하루나와의 인연의 매듭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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