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3.강한자가 마음대로 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호위전사 에루카
[카사노-!]
광장 구석에 선체로 기다리다 다가오는 날 발견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볼을 부풀린체 노려보는 운디네, 밤새 밖에 나돌게 했으니 화날만도 하지, 나는 운디네의 목과 허리를 끌어안고 그녀를 안아들었다.
[우왓!]
가볍게 들린 운디네는 내 품에 안긴체 나를 노려보다가 결국 내 목덜미에 뺨을 부비며 칭얼거렸다.
[얼마나 심심했는데에~]
“미안해, 오늘은 쭉 같이 있자, 응?”
-쪼옥
칭얼거리는 운디네의 뺨에 가볍게 입맞춰주자 운디네의 얼굴이 보란 듯이 활짝 펴졌다. 미소지은 운디네는 내 목을 끌어안은체 다리로 허리를 감고 코알라처럼 매달려 방방 날뛰었다.
[조오아- 어디가는데? 응?]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뜬 운디네는 내 목을 붙잡고 짤짤 흔들며 물었다. 붙들고 이렇게 흔들어대니 약간 추궁당하는 피고인의 심정이 들었다.
“여기에 구하러 온 달부르미라는 꽃 오늘 확인하러 가기로 했거든.”
[아아- 그래!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그지~?]
운디네는 사실 뭘 보든 상관없고 그저 나와 같이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한 듯 애교부리는 강아지처럼 내 목덜미에 연신 뺨을 부비며 달라붙었다.
“근데 다른 사람도 같이 갈거야 괜찮지?”
[으으응...? 다른 사람...?]
“에루카라고 어제 본 은색 머리 수인족 있잖아, 그사람이랑 같이 가야된데.”
[으으윽... 그사람 싫은데...]
볼을 부풀린 운디네는 칭얼대며 턱을 내밀었다. 나는 운디네의 턱을 살살 쓰다듬으며 달랜후 목책 입구로 향했다. 둥둥 떠다니며 따라오는 운디네는 아직도 에루카와 함께한다는 사실에 심통이 났는지 뚱한 얼굴이었다.
[어제 카사노한테 막 뭐라고 하고- 어제도 나 보내고 그사람이랑 보내구-]
-말캉
운디네의 차가운 뺨을 주무르며 볼에 공기를 빼주었다. 쭈욱- 입술을 내밀고 바람을 뺀 운디네는 돌연 손가락을 뻗어 앞을 가리켰다.
[저기있다- 기다리고 있었나보네.]
운디네의 말대로 목책 한켠에 꼿꼿이 서있는 에루카가 눈에 보였다. 커다란 대검을 등에 매고 매끈해보이는 검은색 가죽갑옷을 갖춰입은 에루카는 올려 묶은 포니테일을 찰랑이며 주변을 살피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팍 고개를 숙였다.
“일찍 왔네?”
“그, 그렇다.”
“츠루카한테 얘기는 들었지? 어딘지는 알고?”
“드, 들었다.”
“나는 모르니까 네가 안내 좀 해줘.”
“아, 알겠다.”
뭐지 이 숨막히는 단답은? 아무래도 밤에 있던 일 때문에 껄끄럽기도 하고 부끄러운 듯 한데 이렇게 짜증나게 구니 괜히 괴롭히고 싶었다.
-콰악
양볼을 붙잡고 올려다보게 한뒤 목소리를 깔고 에루카를 꾸짖었다.
“반말은 해도 되는데, 답답하게는 굴지말자 응?”
“미,미앙하다... 마을에서망큼은... 보능 눈도 있고...”
볼이 짓눌려 발음이 샌 에루카는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눈치와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오가는 마을 주민들과 경비병들이 우리 둘을 힐끔 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각도로는 내가 에루카를 덮고 있어 그녀의 볼을 붙잡는게 보이지 않은 듯 했다.
-툭
에루카의 볼을 놔주고 밖으로 손짓했다. 내 손짓을 본 에루카는 내 눈치를 살피고 큼큼 헛기침 한후 마을 밖으로 나섰다.
“그럼 안내하겠다. 멀지 않은 곳이니 금방 갈거다...”
“그래, 빨리빨리 다녀오자고.”
[출발-]
뜨거운 햇빛을 쬐며 나무 그늘 아래를 걸었다. 아직 이른 낮이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와 얼굴을 적시며 향긋한 풀내음을 풍겨왔다. 기분 좋은 날씨에 들뜬 운디네는 하늘에서 빙빙 돌며 꺄르륵 웃어댔다.
[아- 날씨 좋다아- 카사노도 기분 좋지?]
“그렇네, 어제도 이렇다고 갑자기 더워지던데.”
[그건 그래! 더워지기전에 빨리 돌아왔음 좋겠네.]
“운디네는 딱히 상관없지 않아?”
어제 찜통에 쪄죽을 때 운디네는 그렇게 크게 힘들어하지않았다. 내 질문에 운디네는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며 당연한걸 왜 묻냐는 듯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카사노가 힘들잖아? 어제도 더워서 나한테 막 안겼으면서-]
“시원하니까 그렇지. 이리와-”
양팔을 쭉 벌리며 운디네를 불렀다. 내 부름에 에루카의 눈치를 살핀 운디네는 슝 하고 날아와 내 품에 안겼다. 코알라 모드로 꽉 달라붙은 운디네의 엉덩이를 받치며 터벅터벅 걷는데 앞에서 걷던 에루카가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그... 물어볼게 있다.”
“뭔데?”
단답으로 되묻자 에루카는 우물쭈물 말을 꺼내지 못하다 결국 입을 뗐다.
“아까부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거 같은데... 혹시... 환청인가?”
“뭐?”
“예전 미혹의 숲으로 향하는 길.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환청에 홀리는 일이 잦았다. 혹시...”
[환청이라니!]
내 품에 안겨있던 운디네가 왁! 하고 떨어지며 에루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약간 불투명해 보이던 운디네가 확연히 짙어진걸 보니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듯 했다.
“이건...!”
운디네와 눈이 마주친 에루카는 크게 뜬 눈으로 운디네를 흝더니 손을 모으고 감탄을 흘렸다.
“정령이로군. 놀랍다. 당신이 이런 정령과 같이 지내다니.”
[이런 정령이라니-!]
“칭찬이다. 매우 정순한 마나로군. 스스로 드러내기까지 있는줄도 몰랐다.”
감탄한 에루카는 운디네를 관찰하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에루카의 칭찬과 관심에 운디네는 내심 기분 좋았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바라봤다. 뭐야 그 어때 나? 같은 당당한 태도.
“나와 계약한 정령 운디네야. 운디네 이쪽은 에루카.”
[아까 설명해줬잖아! 안까먹었어.]
“...서로는 처음 보니까 다시 한번 소개해주는거야.”
[아하!]
몰랐다는 듯 손을 입에 모으고 O모양으로 벌린 운디네는 이내 에루카의 주변을 빙빙 돌며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조잘조잘 질문하며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뒤를 따랐다.
[어제 밤에 카사노랑 뭐했어-?]
“뭐, 뭣?!”
[카사노랑 같이 자려구 했는데 너가 찾아와서 나는 쫓겨났는걸-]
잠시 나가달라는 양해에 수락해놓고선, 짓궂게 에루카를 향해 되묻는 운디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황한 에루카는 어버버하며 말을 잇지못하다가 대뜸 운디네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그, 주인을 뺏거나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흐응-]
-말캉
“흐읏?!”
[카사노의 생명력 느껴지는걸. 너두 카사노의 정액 받았구나?]
“저,정액?!”
순진한 운디네의 입에서 나온 정액이란 단어에 에루카는 발작하듯 반응했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정령과도 그런 일을 하는건가! 다,당신은 정말 파렴치하군...!”
내 눈치를 살피던 에루카였지만 이번만큼은 못참겠다는 듯 나를 꾸짖었다. 이세계 현지인들은 정령과 한다는 발상을 못하는건가? 외눈박이 세계에 떨어진 두눈인간의 심정으로 나는 어깨를 으쓱인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카사노한테 뭐라고 하지마아!]
“뭐,뭐라고 따지는건 아니었다. 미안하다.”
[그러면 됐어. 너 뭔가 별루였는데 생각보다 착할지도-]
허리에 양손을 얹고 에루카를 내려다보던 운디네는 천천히 내려와 에루카와 눈높이를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그거 고맙군... 왜, 별로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디네의 칭찬에 에루카는 떨떠름한 얼굴로 감사해왔다.
둘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길을 걸었다. 약간 소외된 느낌에 섭섭했지만 마을에 오고 난뒤 제대로 된 친구가 생겨 기쁜 듯한 운디네의 미소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에루카의 인도에 몇십분을 걷자 검은머리의 수인족이 지키고 있는 울타리가 보였다. 창을 든체 경계하던 그녀는 에루카를 발견하고 경례하듯 손을 올렸다.
“오셨습니까!”
“그래.”
가볍게 인사를 받은 에루카는 수인족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며 울타리를 직접 열었다. 슬쩍 나를 가리킨 에루카는 수인족에게 당부를 전했다.
“마을의 은인...이시니 달부르미를 살피고 몇송이 수확하고 나올수도 있으니 주변을 잘 경계하도록.”
“알겠습니다!”
빠릿빠릿한 대답에 에루카는 옅은 미소를 짓고 그녀의 어깨를 마저 두들겼다. 울타리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에루카를 따라 그녀에게 가볍게 목레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상관에게 깍듯이 군 수인족의 태도에 자신감이 붙은 듯 꼬리가 붕붕 흔들리는 에루카의 모습에 나는 그녀의 뒤에서 달려들어 목을 끌어안고 어깨동무를 했다.
“흐읏!?”
“기분 좋아보이네? 응?”
-주물주물
목에 감은 손을 내려 가죽갑옷 너머의 에루카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매끈한 가죽감촉과 주무르는 힘에 따라 물컹이는 가슴을 즐기며 에루카의 귀를 핥았다.
에루카를 괴롭히는 내 모습에 심통난듯한 운디네는 흥 하고 하늘에 떠올라 우리를 구경했다. 그 모습에 나는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에루카의 귀와 가슴을 괴롭혔다.
“그마한...”
달뜬 숨소리를 뱉으며 운디네의 눈치를 살핀 에루카는 힘이 전혀 없는 팔로 내 상체를 밀었다. 파들거리는 팔과 달리 솔직한 에루카의 머리는 그새 내 목덜미에 달라붙어 내 체취를 맡기 시작했다.
“흐응... 헤응...”
눈을 감고 부르르 몸을 떠는 에루카의 모습에 나는 목에 두른 팔을 풀고 품에서 밀어냈다. 한창 눈을 감고 체취를 맡던 에루카는 뚝 떨어진체 당황한 얼굴로 눈을 꿈뻑꿈뻑 뜨며 나를 바라봤다.
“그만하라길래.”
내 대답에 입을 몇 번 달싹이던 에루카는 결국 꾹 입을 앙다물고 휙 돌았다.
“을겠드아...”
꽉 물었네. 나는 하늘에 떠있는 운디네를 손짓으로 부르고 부루퉁한 입술을 붙잡고 짤짤 흔들었다.
[우웅웃!!]
-찹찹찹
내 손길에 따라 흔들리던 운디네의 머리는 결국 홱 하고 빠져나갔다. 나를 노려보던 운디네는 흥 하고 앞으로 날아가 이미 앞에 나서서 걷고 있는 에루카에게 달라붙었다.
“크크큭”
뻔히 보이는 둘의 태도에 나는 기분좋게 웃으며 에루카의 보폭을 따라잡았다.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에루카와 운디네 둘에게 번갈아가며 장난을 친 나는 달부르미 앞에 도착한 후에야 장난을 멈췄다.
“이게 달부르미다. 당신이 찾고 있는게 맞겠지?”
“들었던 생김새는 확실한데... 맞는지는 모르겠네.”
“무엇 때문에 달부르미를 찾은거지? 이건 인간들중에서도 아는 인간은 조금 적을텐데.”
“글쎄... 나도 의뢰를 받은거라 잘. 듣기로는 약재나 식사에도 쓰는 기호품이라던데.”
내 대답에 에루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정도 달부르미에 대해 아는 인간인가보군. 다른 쓰임새가 있긴 하지만 그게 보통이다.”
“지금 핀건 이게 전부인가?”
나무 울타리에 감싸인 달부르미는 두송이가 곱게 펴있었다. 하늘색 초승달 꽃송이는 고개를 푹 숙인체 피어있었고 햇빛을 머금은 꽃잎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다른 재배지에도 있을거다. 오늘은 일단 이 두송이를 뽑아 가면 되겠군.”
[이쁘다아- 남 주기엔 너무 아깝다.]
“조금 더 들어가면 다른 재배지도 있으니 살펴봐도 좋다.”
“그래, 그럼...”
-호오오오옹
에루카와 대화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울리는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숲에서 고동소리가 왜 들리는거지? 의아한 얼굴로 에루카를 살폈는데 에루카는 뭘 보냐는 듯 의아한 얼굴로 귀를 쫑긋이며 날 바라봤다.
“에루카.”
안들리는거냐고 되물으려는 순간 하늘에 떠있던 운디네가 큰소리를 냈다.
[아앗-!]
귀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 운디네는 이내 눈을 감고 귀를 쫑긋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응응. 으응- 뭔가 교신받은 교인처럼 한동안 고개를 까닥이는 운디네와 그걸 지켜보는 우리 둘. 그 광경은 운디네의 눈이 뜨이고서야 끝을 맺었다.
[카사노- 카사노도 들었지?]
-호오오오옹
“혹시 저 소리?”
[응 저 말소리- 나를 부르고 있어- 말하는거 다 들었지?]
“무슨 소리말인가?”
“나는 호오옹 소리밖에 안들리던데?”
[으으응?]
서로 셋은 맞물리지않는 톱니바퀴처럼 엇나간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운디네의 선언에 대화는 끝을 맺었다.
[아무튼 지금 누군가 나를 불렀어. 가봐야할거같은 느낌-!]
“뭐야, 혹시 이런일 있었어?”
“아니, 난생 처음이다. 다른 마을 주민도, 언니도 그런적 없었는데...”
[그럼 다녀올테니까, 에루카랑 카사노는 혹시라도 안오면 먼저 돌아가-! 계속 부르네 안녕!]
-호오오오오오오옹
[간다구!]
속사포로 말을 내뱉던 운디네는 마지막 고동소리와 함께 하늘로 치솟아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파도가 쓸고간 모래성처럼 고요해진 지금 이 순간. 뭔가 멋쩍어 머리를 긁으니 에루카 또한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그럼 달부르미를 캐고 돌아가도록 할까? 언니도 기다리시릴테고...”
“그러자고.”
나는 울타리 너머로 건너가 달부르미 꽃을 살폈다. 에루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나는 손을 뻗어 줄기를 손톱으로 짓누르고 뚝 꺾었다. 어릴 때 많이 따던 민들레의 감촉같았다.
“그,그런! 그렇게 하면 안된다!”
뜯어낸 달부르미를 쥐고 에루카를 돌아본 순간 그녀는 손을 뻗어내 나를 막으며 큰소리를 외쳤다. 뭐가 잘못됐나?
“달부르미는 뿌리채 캐야한다. 그렇게 짓이기면 제, 제대로 사용할수 없다.”
당황한듯한 에루카는 나에게 천천히 떨어지며 설명했다.
“왜 사용할수 없는데? 그리고 왜그리 떨어져?”
“그, 그건... 아무튼 그건 올바르게 쓸수 없다. 다른걸 캐고 다른 재배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자를 달래는 사육사처럼, 손을 뻗고 내게서 멀어지는 에루카를 보니 딱봐도 손에 쥐고있는 달부르미를 두려워하고있다는게 눈에 보였다. 나는 목소리를 깔고 싸늘하게 에루카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해.”
“으그읏...!”
단호한 내 태도에 에루카는 꼬리를 말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쭈뼛쭈뼛 다가오던 에루카는 결국 이실직고 말했다.
“다, 달부르미는 짓이겨지면 미약한 독성을 띈다. 먹으면 저릿저릿하면서 일순간 마비되고, 바르면 부위가 민감해지고오...”
왜 말을 안했는지 알겠구만. 눈을 빛내며 에루카에게 다가가자 체념한 듯 허벅지에 손을 딱 붙인 에루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다. 그,그렇지만 여기선 곤란하다. 얼른-”
“벗어.”
-꿀꺽
고요한 숲에 에루카가 넘기는 침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초승달처럼 휜 내 눈꼬리가 느껴졌다. 운디네도 마침 없고, 잠시 즐거운 일탈을 즐길 시간은 충분했다.
“흐으으...”
꼬리를 만체 달달 떨던 에루카는 천천히 가죽갑옷에 손을 얹었다. 떨리는 눈동자와 말라가는 입술을 축이는 붉은 혀, 겁먹은듯한 행동과 다르게 미약한 홍조를 띄는 얼굴은 일말의 기대감이 엿보였다.
“벗으라고.”
-사라락
매끈한 검은 가죽갑옷 상의를 푼 에루카는 천천히 바닥에 떨어트렸다. 갑옷 안에는 어제 밤에 봤던 검은 광택의 내의가 눈에 잡혔다. 이윽고 내려간 손은 딱 달라붙은 가죽갑옷 하의를 내렸다. 가죽이 구겨지는 모습과 함께 발목까지 단숨에 내려간 하의는 바닥에 털썩 내팽겨쳤다.
탄탄한 몸매를 전부 드러내는 쫙 달라붙은 검은색 내의. 에루카는 달달 손을 떨면서도 쭉 잡아당겼다. 밑단을 잡고 만세를 해 윗옷을 벗었다. 옷들과 대비되는 순백의 속옷이 에루카의 풍만한 가슴을 붙잡고 있었다.
“흐에에...”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달달 떠는 에루카는 결국 하의에도 손을 얹었다. 떨리는 손과 함께 내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똑같이 발목까지 내려간 내의, 탄탄한 엉덩이를 조이는 하얀 팬티는 마치 언제라도 터질듯한 폭탄같은 모양새였다.
“하아아...”
달뜬 한숨을 내뱉은 에루카는 결국 팬티에도 손가락을 걸었다. 달달 떨리는 가느다란 손가락과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같은 팬티끈. 일촉즉발의 상황에, 에루카는 매우 붉은얼굴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