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3.강한자가 마음대로 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호위전사 에루카 (28/395)



〈 28화 〉3.강한자가 마음대로 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호위전사 에루카

[서둘러!]하고 재촉하는 운디네의 뒤를 따라 전력으로 달렸다. 소리의 원인이 탐험중인 모험가들이라면 정보 공유도 하고 빚도 하나 챙겨가니 좋고 만약 아인종이라면 더더욱 좋으니까.

[아까  개랑 엄청 커다란 벌레들이 잔뜩있어!]

머리 위를 날며 눈을 감고 뿌려둔 물방울로 주변을 비쳐본 운디네는 내게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나무가 겹겹이 쌓여있는 곳 앞에서 수많은 검치호와 벌레들이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 그 누군가가 일단 사람이라는거에서 도울 이유는 충분했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달리니 조금씩 고함소리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나는 더 발빠르게 움직였다.


-챙챙!


“뒤로 돌아! 머리를 자르면 되잖아!”

“카투마카는 머리가 잘려도 움직이니까 다리부터 잘라야돼!”

“다른 입구도 공격받고 있다고!”

운디네가 설명한 나무가 겹겹이 쌓여있다는건 목책을 말한거였다. 도착한곳에선 목책입구와 목책 너머에서 수많은 검치호와 벌레들이 뒤섞여 목책을 침범하기위해 밀고 들어오는 광경이 보였다. 입구에는 검치호들과 벌레들을 썰어대며 자기들끼리 등을 맞댄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의 외향이 조금 특이했다. 뼈와 가죽을 덧대 몸에 달라붙어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흔히 말하는 원시인 패션의 옷을 입은 여자들뿐이었고 하나같이 동물의 귀와 꼬리를 달고있었다.


“수인족이네?”

운이 좋군. 이라는 말이 떠오를정도로 얘기가 쉽게 흘러간다. 그렇게 보기 힘들다던 수인족을 하루만에 발견하다니, 일단 나중에 기뻐하기로 하고 나는 서둘러 수인족들이 등을 맞댄체 입구를 보호하고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그르르...캥!

무방비하게 눈앞의 적만 바라보며 그르렁거리던 검치호의 머리통을 그대로 관통했다. 두개골을 관통한 롱소드를 빠르게 뽑아내며 날개짓하는 파리같은 벌레를 그대로 일직선으로 가르니 체액이 사방에 튀었다.

“게헥!”


“끄읏!”


어쩌다보니 맞은편에 있던 수인족들이 모조리 뒤집어 쓴듯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목책 입구쪽에 몰려 난장판으로 만드는 검치호들을 서둘러 처리하러갔다.
땀나게 뛰며 사방을 돕기위해 나서서 한 마리 한 마리 확실하게 머리를 꿰뚫거나 목을 베었다. 차근차근 정리되는 전장에 처음엔 상황파악이 덜됐는지 나를 경계하던 수인족들도 어느새 착실하게 나를 도우며 침범한 괴물들을 정리해나갔다.

-서걱

혀를 내빼물고 숨고르던 한 수인족의 등에 달려들던 검치호의 주둥이를 그대로 일직선으로 갈랐다. 그녀는 깔끔하게 베여 시체가 털푸덕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살펴보며 수줍게 내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고마워.”

“별말씀을.”

속옷까지 땀에 젖은게 아닌가 착각이 들정도로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도운 결과, 목책 근처에 포진되어있던 검치호나 벌레들은 모조리 짓이겨지거나 사지가 잘린체로 나뒹굴고 있었다. 목책 입구가 열리며 안쪽을 수비하던 인원들이 뛰쳐나와 시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와 운디네는 그걸 한켠에서 지켜보며 서있었는데 처음에 검치호와 맞딱드려 등을 맞대고 있던 수인족 세명이 나에게 다가와 감사인사를 건네왔다.


“고마워 인간, 덕분에 쉽게 막았어.”


“다른쪽도 위험했는데, 순식간에 정리했네?”

“제법 강하던데...”

조잘조잘 신나게 떠드는 그녀들의 모습에 나는 롱소드를 허리춤에 다시 집어넣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습니다. 안그래도 도움을 청할게 있어 수인족들을 찾고있었거든요.”


 말에 자기들끼리 마주보며 쑥덕거리던 수인족들은 이내 뭔가 깨달았다는 듯 얘기했다.

“너, 말끔하게 생겼는데 은근히 밝히는구나...?”

“간혹있지, 수인족의 맛을 보고싶다고 찾아나서는 녀석들.”


“대부분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는데 용케도 왔네.”

여기까지 오지 못한다? 운디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오래걸린것도 아닌데, 그녀들의 말이 뭔가 꺼림칙해 곰곰이 생각하는데 이내 한명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움켜쥐며 살짝 끌어당겼다.

“정지!”

그때 멀리서 검치호와 벌레 시체를 정리하던 인원들이 보폭을 맞춘체 척척 내게 다가왔다. 나는 손목을 슬며시 빼고 양손을 머리위로 들어 항복의사를 보이며 천천히 다가갔다.


“외부에서 온 인간인가? 무슨 목적이지?”
“찾는게 있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딱히 나쁜 목적은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판단한다. 지금처럼 가만히 손든체로 있어라. 잠시 수색이 있겠다.”


잿빛 머리칼을 길게 기른 늑대귀의 수인이 창을 한손에 움켜쥔체 천천히 다가왔다. 가볍게 한손을 뻗어 허리춤 허벅지 등을 어루만지다가 그대로 바지안이나 가슴팍 안까지 손을 집어넣었다.

“딱히 위험한건... 허리춤의 칼을 빼고...”


그런데 수색을 할수록 수인의 말이 점점 끊기며 손길도 뭔가 야릇해졌다. 의문스러워 슬쩍 안색을 살폈는데  품속을 뒤지면서 벌어진 옷틈 사이로 코를 가까이 댄체 킁킁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아... 위험해... 더,  살펴봐야겠어...”

“저... 끝난거 아닙니까? 다 뒤져본거 같은데.”

“무,무슨소리지? 더 냄새를, 아니 수색해야한다! 가만히 있어라.”

슬쩍 벗어나려고하니 내 손목을 움켜쥐며 자리에 고정시켰다. 이걸 어쩌지? 주변을 둘러보며 도움의 시선을 보냈는데, 다른 수인들과 나에게 말을 걸어온 세명까지도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터엉!

“인간에게서 떨어져라 루델라! 이제 내가 심문하겠다. 인간 너는 누구지?”

그런데 뭉쳐있는 수인들을 가로지르며 키큰 수인족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정도 작은 키에 은색 머리칼을 묶어올려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낸 그녀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파이어같이 푸른 눈을 빛내며 내게 질문해왔다.

“저는 호르미아에서 온 인간 용병입니다. 밀림에 의뢰를 맡아 오게 됐습니다.”
“용병? 아아 심부름하는 잔챙이 인간들말인가. 들은적 있다.”

잔챙이라. 초면에 무시하는 꼴이 꽤 신선했다. 하는 행동도 당당하고 잡는 폼이나 말투도 아주 굳세시다. 이런년들이 한번 꺾이면 되돌릴수 없을 정도로 부숴지기 쉽긴 하지. 시덥잖은 상상을 하며 다음말을 기다리는데 꽤 어이없는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졌다.


“알았다. 이만 돌아가라.”


“...? 돌아가라는 말은?”


“뭐하는 놈인지 알았으니 됐단 말이다. 말을 못알아듣나?”

이년이... 점점 차오르는 짜증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이년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돌아가지 않는거지?" 하고 되묻고 있었다.


그런데 갈라져 통로를 만들어둔 수인족들 사이로 또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뭐하는짓입니까 에루카, 마을을 구해주신 손님에게!”

“츠,츠루카 언니. 아니 제사장님...!”

“마을을 구해주신 손님을 모시고 오라 부탁했거늘, 왜 마음대로 쫓아내고 있는거죠?”

“...위험한 인간같습니다. 마수들을 그럽게 쉽게 잡고...”

“그럼 더더욱 귀하게 모셔야지요! 마을 안으로 돌아가세요! 제가 손님을 모시겠습니다.”


탐탁지않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에루카라는 개년은 이내 츠루카라는 수인족에게 목례한뒤 마을 안으로 쓸쓸히 걸음을 옮겼다.


“실례했사옵니다. 저는 초라하게나마 이 마을의 제사장을 맡고 있는 츠루카라고 하옵니다...”

가볍게 손을 배에 모은체 꾸벅 인사해오는 츠루카, 탐스러운 금빛 머리칼은 굽힌 허리를 타고 스륵 흘러내려 땅에 닿일 듯 말 듯 흘러내렸다.


-스으윽


천천히 허리를 피고 눈이 마주쳤다. 노을같은 황금빛 머리칼에 요사스러운 붉은눈. 도톰한 분홍빛 입술에 앙증맞게 튀어나온 송곳니는 오히려 귀여움을 보여줬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아름다움과 귀여움이 공존하는 그런 외모에 나는 잠시 넋이 나가 츠루카의 얼굴만 바라봤다.

“쿡쿡... 많이 지치셨을텐테, 마을로 들어가시지요. 손님으로 모셔 대접해드리겠사옵니다.”


“정말...입니까?”

“방금 그녀는 제 호위전사인 에루카인데... 보시다시피 좀 거친 성품입니다, 부디 저를 보고 한번 더 용서해주시지요...”

천천히 허리를 굽히는 츠루카에게 나는 손사레치며 말렸다.

“외부인이니 경계하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히려 대접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겸손하셔라...”

마을에 모시겠습니다- 사뿐히 등을 돌리며 내게 길안내를 해주는 츠루카의 옆에 붙은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밀착하며 슬쩍 반응을 살펴봤다.

웃는 얼굴로 실눈을  츠루카는 내쪽을 슬며시 바라보며 천천히 티안나게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한참동안 숨을 들이쉬다 후- 하고 숨을 내뱉었는데 츠루카의 얼굴은 옅은 홍조가 올라와있었다.


아무래도 수인족들은 인간냄새를 좋아하는건가? 나는 땀에 흠뻑 젖은 목부분을 공기가 통하게 들춰내며 따라걸었다. 미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기분은 언제나 좋았다.

“킁킁...” “크응.../” “크흥...”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땀을 식히며 츠루카의 옆에 선체 따라걷는데 옆에서 계속 냄새맡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츠루카의 안색을 살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내가 정면을 보면 내쪽으로 살짝 코를 내밀어 냄새를 맡아왔다.

“저, 혹시 제 냄새가 심한가요?”

“캐행?!!”


커다란 귀를 쫑긋이며 화들짝 놀란 츠루카는 이내 입가를 가리며 손사레쳤다.

“그,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면 향기로운.,. 아 그게 아니라. 원래 저희 수인족들은 냄새로 상대를 파악한다고 할련지요? 귀하신 분을 파악하기 위해  행동이지  혹여나 심려끼쳤다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은 츠루카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손사레치며 그녀를 말렸다.

“아닙니다. 혹시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할까봐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땀이 많이 나서...”


가볍게 상체에 걸친 갑옷의 이음새를 풀어 갑옷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바깥 공기를 만난 내 상반신은 푹 절여진 땀으로 인해 후끈 달아올랐다. 내 행동을 살펴보던 츠루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나는 아까  몸을 수색하던 수인족의 반응이나 츠루카를 보고 대충 짐작이 왔다. 아무래도 땀냄새나 내 냄새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느낌이랄까... 수인족 너무 쉬운 종족 아닌가? 노예제가 폐지되고 제일 안전해진 종족이겠다. 여러 잡생각을 하며 계속 츠루카의 옆을 따라걸었다.


“조촐하지만, 여기가 제가 머무는 집입니다. 마을에 계시는동안 여기서 모시도록 하겠사옵니다.”


“조촐하다니요, 도시의 어느 저택보다도 근사합니다.”


“후후...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제가 여기로 온 이유가 여러분들과 관련이 있어 도움받고 싶은게 있습니다.”


“아아... 손님께서 무언갈 찾고 이곳으로 오신걸 알고있습니다. 성함이 카사노...이신가요?”

말한적도 없는데 상대의 입에서 내이름이 나오는 기분은 생각외로 섬뜩했다. 나는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뻗으면서도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뭘 찾는지도 아시는겁니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다름이 아니라, 손님의 성함을 알게된건 제가 이 마을 근처를 제 능력으로 항상 바라보고 있어 어쩌다보니...”

슬쩍 고개를 들어  머리위에 멀뚱멀뚱 서있는 운디네를 바라보는 츠루카의 모습에 나는 운디네와 부비적거리던게 츠루카의 눈에 보였다는걸 깨달았다. 약간 쑥쓰러워 시선을 돌리면서도 츠루카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접해주시는데 의심이나 하고...”
“아니옵니다- 고개 들어주십시오. 카사노님이 마수들을 정리해줘 다른 목책과 입구가 뚫리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간혹 이런 일이 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수가 많았는데...  자리를 빌어 한번 더 감사드리옵니다.”

-꾸벅

인사를 마친 츠루카는 스르륵  옷소매 안에서 손을 꺼내 내게 내밀어왔다. 의아한 눈으로 츠루카의 고운 손을 바라보니 그녀는 수줍게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아, 안내해드리기 위해 손을 건넸는데... 싫으시다면 괜찮사옵니다.”


“아닙니다. 그럼...”


-덥썩

내 손안에 전부 쥐어지는 작고 고운손, 보드라운 피부를 느끼며 츠루카의 뒤를 따랐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이 마을에 찾아온 목적을 얘기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달부르미라는 꽃을 찾고있습니다. 그런데 수인족들만이 이걸 얻을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사옵니다, 저희가 재배하거나 군락지를 관리해, 저희밖에 모르는 꽃이지요... 달부르미꽃만 가져가면 되시는겁니까?”


“열송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혹시 가능할까요.”

“달부르미 꽃도 사실 저희 마을에서 꽤나 소중한 귀중품... 얻을수 있는 양도 한정되있습니다.”


“하루에 많아도 한송이. 그것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해, 매일 매일 재배지나 군락지를 살펴봐야지요.”


다소 엄하게 대답하는 츠루카의 답변에 나는 살짝 기가 죽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면 줄수없다는거 아닌가?

“그렇지만 손님에게 그정도는 충분히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손님의 시간을 너무 빼았는게 아닐까 염려되옵니다.”


츠루카의 배려어린 걱정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것보단 오래걸려도 얻어가는게 훨씬 좋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수줍게 웃는 츠루카의 미소에 나는 살짝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앞을 바라보며 집안 내가 머무를 방을 안내하던 츠루카는 느껴지는 손아귀의 힘에 나를 바라봤다가 그윽하게 바라보는 내 눈빛에 화들짝 놀라며 다시 앞을 바라보고 걸었다.


살짝 비치는 볼에는 짙은 홍조가 엿보여 말없이 웃으며 츠루카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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