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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21/395)



〈 21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운디네랑 계약하면 뭐부터 하고싶어?”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세인에게 물었다.

갑작스런 내 질문에 멍때리던 세인은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얼버무리다가 이내 담담히 말했다.

“아무래도 용병일을 계속 해야겠죠, 먹고 살길이 그것뿐이니까...”

“그래? 그래도 운디네 정도되는 정령이랑 계약하면 돈은 어떻게든 벌수 있어,”

내 말에 세인은 탁한 눈동자를 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젊은데 돈버는것보단 여행같은것도 나쁘지않지.  멀리 스라덴왕국에 유명한 해변가나 몰가 설산에서만 볼 수 있는 정령 오로라라던가...”

내딴에는 나름 둘러볼만한 곳을 설명해줬는데 세인은 듣기 싫었는지 내말을 끊으며 자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죠, 저는 당장 먹고살기도 바빠요.”

[으응- 나는 여행, 가보고 싶은데...]

“너무 철없는 소리야, 가진것도 없는데 여행이라니...”

[응...]

누가봐도 풀이 죽은 운디네,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는 세인은 이젠 운디네를 케어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기운이라도 차리게 도와줄까-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인체 모닥불만 빤히 바라보는 운디네에게 되물었다.

“운디네 너는 따로 하고 싶은거 없어?”

[나는 여행도 다니고 싶고 한번도 못본 여러 풍경들을 보고싶어-]

“원래 가려던 푸르카성 근처에 엄청 큰 호수가 있다던데.”

[호수~? 얼마나 크길래?]

대충 들었던 크기를 가늠한 나는 비교할만한 대상이 생각나지않아 설명하기가 좀 그랬다.

“몰라, 아무튼 아침 일출이 뜰 때 그 호수가 그렇게 아름답데, 나중에 보면 되겠다.”

[내가 살던 연못도 해가 뜰때면 주황색으로 이쁘게 물들었어!]

“원래 여행은 가까운곳부터 천천히 시작하는거야.”

[세인- 우리 여기서 나가면 호수부터 보러가자~ 응?]

“......”

[세인...?]

입술을 꾹 닫은체 운디네를 응시하던 세인은 이내 재촉하듯 호명당하자 이내 운디네 몰래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대답했다.

“그러자.. 여기서 나가면 말이야.”

[...응.]

운디네또한 아주 눈치없는 정령은 아니었다, 누가봐도 세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걸 알수있었다, 세인이 창낸덕에 공동은 다시 침묵이 들어섰다.

나는 유지되는 침묵을 억지로 깨고싶진않았다. 바닥에 널부러진 나뭇가지로 애꿏은 모닥불만 들쑤시며 불길을 유지했다.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응시하는 운디네는 침울한 모양새였다. 그 활달한 운디네가, 세인의 눈치를 살피며 기죽은 모습은 꽤 보기 안쓰러웠다.

굳이 운디네를 위로한다거나 운디네의 기운을 복돋기 위해 더 뭔갈 할필요는 없기에 계속 조용히 있었지만, 저 좆만한 애새끼 하나 눈치보자고 조용히 있자니 그건 또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소리내며 나뭇가지를 내려놨다, 그덕에 운디네와 세인의 이목이 내게 집중됐고 나는 침묵속에서 조용히 한마디 꺼냈다.

“세인.”
“...네.”

“너무 그러지마.”

“....”

염치가 있는 녀석이라면 조용히  대답하거나 넘어가겠지만, 부아가 치미는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는지 벽에 기댄체 움직이지도 못하는 세인은 눈에 힘을 주며 내게 되물었다.

“뭘 그러지마라는지 모르겠네요.”

 새끼 깐족거리긴... 슬쩍 옆을 보니 안절부절 못하는 운디네가 보였다. 그래, 애상대로 뭐하는거냐. 순간 짜증이 올라와 혼낼까 싶었지만 어느정도 올려둔 운디네의 호감을 까먹긴 싫었다.

오히려 세인의 행동에 운디네가 조금씩 감정이 식어가는게 눈에 보여서 차라리 그쪽을 유도하는게 나아보였다.

“기죽잖아, 하고싶은게 얼마나 많겠어. 어렸을때부터 같이 다녔다며, 응?”

[그만해- 세인은 피곤해서 그래, 그만 자자 응? 내일도 탐사해야지-]

“어렸을 때, 하... 고작 3-4년이 뭐 얼마나 길다고.”

[세인...?]

“확실히 피곤한가보네, 환자를 너무 붙잡았나보다. 먼저 자.”

급발진하는 세인의 입에서 삐뚜름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충격받은  눈이 흔들리는 운디네를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뇨, 괜찮아요.”

“아니. 넌 지금 피곤해, 네가 무슨말 하는지도 모를거야.”

“충분히 무슨 말하는지 아는데요? 자꾸 운디네를 싸고 도니까 그러잖아요.”

운디네를 언급하는 세인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녀석은 내 침묵을 기회로 삼았는지 입을 떠벌이며 불만을 내뱉었다.

“지금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사람 속도 모르고 떠들고, 지금 다리 병신이 됐는데...”

“세인.”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벽에 기댄체 떠벌이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눈동자 너머를 들여다봤다. 탁한 눈동자는 이미 총기를 잃고 광기에 잡아먹힌것처럼 악독하게 번들거렸다.

나는 운디네가 눈치 채지 못할정도로만 살기를 흘려보냈다. 뭐 말이 살기지 이 씹새끼한테 올라오는 짜증에 대한 화를 내비치는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

나와 눈싸움하듯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우리는 세인이 고개를 늘어뜨리며 마무리 지었다. 꽉 움켜쥔 주먹을 무릎위에 댄체 부들거리는게 어지간히 분한가보다.

“운디네, 세인 잠들때까지 옆에서 도와줘. 주변 잠시 둘러보고 와서 불침번 설테니까.”

[...응.]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노출된 운디네는 원래 파란 얼굴이었지만 안색이  파리해진  했다. 하긴 세상물정 모르는 운디네가 이런 기싸움이나 분위기를 겪여보진 않았을거같다.

나는 허리춤의 롱소드를 한번 착 소리 나게 움켜쥐며 길을 나섰다. 공동을 나서고 통로에 들어선뒤 벽에 기대고 오감을 귀에 집중했다.

스윽 슥 천이 스치는 소리가 얼핏 들렀다, 아마도 벽에 기댄 세인의 자세를 고쳐주며 눕히는거겠지. 싸늘한 분위기에 운디네도 얘기할 기분이 아닌지 조용히 천이 스치는 소리만이 계속 들렀다.

철없는 애새끼, 아무래도 뭔가 의심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행동으로 봐서는 운디네가 나한테 뭔갈 당했다고 얘기한거 같지도 않고, 운디네 또한  낌새가 없었기에 세인의 일방적 의심인  했다.

새끼, 그렇게 눈치가 좋으면 운디네나 위로해주던가 편들어주지.  감정에 치우쳐 멋대로 떠드는걸 보면 애새끼는 애새끼였다.

운디네도 어느정도 넘어온거같고 결정적인 한수만 있으면 후딱 끝마칠수 있을 거같은데- 처음엔 세인에게 큰 감정은 없었지만 본인이 날 적으로 인식하고 저렇게 날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당해주는게 호구아닌가?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칭얼거리는 세인과 운디네를 자신이 왜 돌봐줬겠나, 당연히 운디네를 채갈려고 한거지. 나도 사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군락에 갇힌 동안에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햇빛을 못보니까 사람이 사나워지는거같다.

[...어. ...야!]

상념에 잠겨 잡생각을 하다 귀에 때리듯 퍼지는 운디네의 목소리가 얼핏 들렀다.

귀에 신경을 집중하고 좀더 공동쪽으로 몸을 기울여 이야기를 엿들었다.

[무슨말 하는지 모르겠어... 응?]

“그새끼랑 뭐하고 오는거냐고, 요즘 들고 오는 마석도 얼마 없고. 갈수록 줄잖아!”

[마주치는 고블린들이 얼마 없다구 얘기했잖아... 화내지말고 내 말 들어줘...]

울먹이듯 대답하는 운디네, 그와중에 내가 없다고 그새끼라 칭하는 세인의 인성에 또 열불뻗쳤다. 저런 새끼가 어떻게 성질 죽이고 참았는지 이해가 잘 안갔다. 첫 만남만 해도 싹싹하고 화도 낼줄 모르는 순진한 앤줄 알았는데 깜빡 속았다.

“벌써 5일이 넘었어, 이대로면 다리도 덧나고 평생 병신으로 사는거 아니냐고...”
뭐, 무슨 불안감인지는 이해된다. 한쪽 팔이 병신이 되도 나머지 팔 하나로 어떻게든 살아남을수 있지만 두 다리가 병신이다?

‘오우... 끔찍한데.’

성당에서 치료나 축복을 받는다면 또 몰랐지만 그정도 즈음 되면 부르는게 값이다. 사실 나도 운디네의 치료수라는게 저정도 다리를 치료할수 있다는게 믿기지는 않았다.

[아니야, 계약하고 모든 마나를 정제해서 모으면 아마 고칠수 있을 거야, 정말루...]

“아마라니, 나는 그 아마만 믿고 기다린다고...!”

[...세인 많이 힘든가봐, 조금 쉬어...]

“그놈의 힘들다...! 씨발 그새끼도 그렇고 너까지 말이 닮아가네?”

-타악!

[꺄앗...!]

뭔가 뭉툭한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후속타로 툭툭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마도 돌을 던진거 같았다. 이새끼가 하다하다 돌팔매짓까지? 이젠 화보다 어이가 없었다. 아까부터 급발진이 몇 번짼지...

[지금 뭐하는거야...!]

“나랑 계약하겠다며, 같이 지내자며...! 지금 나를 보라고!”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면! 나도 답답해...! 얼른 너 고쳐주고 싶고 걱정도 되는데 왜그렇게 이기적이야!]

“이기적? 하 씨... 씨발 내가 이기적이야?”

[욕하지마!!!]

“욕이 안나오게 하던가 아 씨발 진짜... 너도 결국 갈아타는거지?”

[뭐??? 갈아타?!]

오우, 운디네는 참지만은 않았다. 같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계속 들으며 구경하는것도 나쁘진 않지만 저렇게 감정소모를 하며 갈라서는건 너무 아쉽지. 나는 땅에 뻗는 발에 힘을 주며 크게 발소리를 냈다.

-터벅 터벅

묵직한 부츠가 울리는 소리에 잡아먹을 듯 소리치던 둘의 외침이 조금씩 사그라 들었다. 대놓고 싸우는게 추하다는걸 알긴 아는지 멈춘건지, 아니면 내 앞에서 소리치며 싸우는게 내 기분을 거스르게 하는거라 생각했는지 알 도리는 없었다.

“얼핏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넌지시 물어보자 시선을 돌리는 운디네와 내 눈을 피하지않고 분노를 드러내는 세인. 내가 생각한 답 두 개 다 아닌 모양이네, 분을 못삭히는 세인의 태도에 나는 피식 웃으며 메고있던 롱소드를 허리춤에서 빼낸뒤 검집 채로 손에 쥐었다.

“아직 화가 좀 많이 났나보네, 그래 무슨 기분인지는 알아.”

“...모를걸요.”

“그래도 적당히 해. 같은 동룐데... 계속 그런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손에 쥔 롱소드를 벽면 한켠에 세우고 손목을 풀었다. 진짜 여차하면 패는 상황까지 갈거같아 미리 손목을 풀었다. 바닥에 누운체 아득 바득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세인의 모습에 나는 이만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이만 자자, 오늘은 나 혼자 불침번 다 설테니까.”

“...”

“머리 좀 식혀, 이제 마석도 얼마 안남았는데. 응?”

“다 들었네요.”

위로해주려고 꺼낸 마석 얘기였지만 그 말에 세인은 내가  엿들었다는걸 확신한 모양이였다. 들은건 맞지만 그 얘기하려고 마석 얘기 꺼낸건 아닌데... 녀석의 헛발질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싸우는데... 나도 피곤해지네, 자라?”

“,,,네,”

[......]

누운체 억지로 눈을 감는 세인의 눈치를 살피는 운디네, 허공에 뜬체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말을 삼키는 운디네의 모습은 많이 힘들어보였다.

그렇겠지- 세인을 위해 뭐든 해보려는데 당사자는 저런말 하니까 나라도 상처받을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세인의 말은 틀린게 아니었다.

확실히 나한테 속은 운디네는 나랑 붙어먹긴했으니까, 뭐 운디네도 어렴풋이 눈치챘을수도 있지만 아직까진 펠라와 섹스를 정말 도와주는 개념으로 알고있는듯했다.

모닥불을 들여다보며 침묵을 유지했다. 억지로 눈을 감은 세인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공동에 울렸다.

하늘에 떠있는체 우리의 눈치를 살피던 운디네는 결국 조용히 내곁으로 날아왔다. 사뿐히 내려와  옆에 주저앉은 운디네는 무릎을 끌어안고 울먹이고 있었다.

‘훨씬 서운했나보네...’

처음엔 세인의 대한 사랑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말하는 태도나 행동을 계속 관찰하니 내 생각에 운디네는 같이 떠나온 세인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고 결론이 났었다.

그런데 지금의 태도는  좋아하던 아이한테 차인 듯, 못들을 소리 들은것처럼 잔뜩 풀이 죽은 모양새였다.

‘저새끼도 진짜 기회를 걷어차네.’

내가 사이에 껴서 둘의 감정이 상한것도 있겠지만, 세인이 조금만 더 어른스럽게 대처했다면?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운디네를 우선시했다면 내가 끼어들 틈이 있었을까?

결국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수작질도 어느정도 통했고 세인의 삽질도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뭐 나야 운디네만 낚아채면 되니까 이런 흐름은 나에겐 대환영이었다.

한참을 훌쩍이는 운디네, 나는 눈을 찌푸린체 억지로 잠에 들려하는 세인의 모습을 살피며 슬며시 팔을 뻗어 운디네의 어깨를 감쌌다.

살짝 떨려오는 운디네의 어깨를 느꼈지만 나는 강하게 끌어안기보다 팔과 어깨를 두들기며 감정을 안정시키는걸 도와줬다

-토닥토닥

고개를 들썩이면서도 도리질하는 운디네, 아무래도 갈아타냐는 세인의 말을 의식해 붙어오는 나를 세인에게 들키면 어쩔까 싶어서 그러는듯했다.

나는 세인을 슬쩍 봤다. 훌쩍이는 운디네의 울음소리가 거슬리는지 인상만 찌푸리고 있을뿐 실눈을 뜨거나 하진 않았다.

나는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 되뇌이며 그저 운디네를 계속 토닥여주었다.

들썩이던 어깨와 고개는 조금씩 멎었고, 나는 손을 들어 머리에 얹은뒤 한참을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며 불똥을 튀기는 모닥불 너머에 누워있는 세인과 반대편의 우리. 상처입은 운디네는 어느새 어깨를 내게 붙여오며  몸에 기댔다. 완전히 넘어온건 아니겠지만 세인에게 실망해 어느정도 저울은 기울었지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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