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운디네 시점] (16/395)



〈 16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운디네 시점]

운디네는 공중을 날아가면서 슬쩍 아래에 있는 인간, 카사노를 살펴봤다.

오늘은 고블린들의 창고랑 군락으로 향하는걸로 보이는 길목을 살펴봤는데 생각외로 많은게 있었다. 창고에서 세인에게 줄 검도 하나 챙겼고, 계단 밑을 살펴보니 고블린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열 마리는 넘어보여서 카사노가 다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검을 뽑은 카사노는 순식간에 고블린들을 물리쳤다! 이제 제대로 해도 되겠다고 말하는걸 들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물어보진 않았다.

고블린들을 살펴보니 마석도 4개나 얻을수 있어서 이대로면 금방 다 모을거같아서 기분이 들떴다.

문득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같은 마을에서 같이 여행을 떠난 정령과 소년, 운명같은 만남에 계약까지 하다니, 인간들이 읽는 동화에 나올법한 이야기라 두근거렸다.


‘세인 분명히 기뻐하겠지...’


다리를 다친뒤로 세인은 조금 무서워졌다. 옛날에도 마을에서 떠난뒤로 좀 무섭던 세인이었을때가 있는데 내가 울면서 그런 세인은 싫다고 가출한적이 있었다.


다음날 여관 주변을 떠돌며 세인이  찾으려나-? 하고 살펴봤는데  발견한 세인은 허겁지겁 나한테 달려오더니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울면서 나를 끌어안아줬다.


마치 가족처럼, 아니 연인처럼 나를 아껴주겠다고 맹세한다는 세인의 말에 나는 그때부터 세인과 계약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인에게는 마나가 없었다. 알고보니 인간들은 마나를 쓰기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돈을 모아서 배워야지 겨우 마나를 모을수 있다고 했다.

마나없이 할수있는 계약에 관해서는 어느 정령에게도 들은것도, 배운것도 없어서 상심이 컸다. 그러다가 나쁜 인간들이 세인을 끌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상단?이라는 인간 무리였는데 세인은 거기서도 잡일을 하며 무시당했다.


그러다 어느 키큰 인간이 새로 왔는데 세인은 밤에 그 인간이 제법 강하고 착한 인간인거 같다며, 옆에서  잘보이면 마나를 모으는법을 알려줄거같다고 나한테 말했다.
그렇게 착해보이는 인간은 아닌데- 내가 말했지만 세인은 들은체도 안해서 섭섭한 마음에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다음날, 세인은 그 인간에게 붙어서 게속 같이 지냈는데, 세인의 말대로 착하긴 한지 세인에게 엄청 잘해줬다. 그래서 그런지 세인은 더욱 그 인간한테 달라 붙었고 덕분에 나랑 얘기하거나 같이 있는 시간이 하나도 없어졌다.

얄미운 인간!


그래도 그 얄미운 인간덕에 고블린한테서 나오는 마석에서 마나를 뽑아내면 세인과 계약할수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래서 슬쩍 둘러볼 때 발견했던 고블린들이 잔뜩있는곳을 세인에게 알려줬다. 그러자 세인을 뛸 듯이 기뻐했다. 헤헤 나랑 계약하는게 그렇게 좋은가-? 싶었다.

그런데 인간들을 데리고 고블린들도 만났는데, 뭔가 잘못됐다. 엄청나게 큰 고블린과 엄청 쎈 고블린이 나오더니 우리를 마구 공격했다. 얄미운 인간이 계속 세인을 도와줬지만 엄청 쎈 고블린탓에 제대로 못싸우는거 같았다.


결국 얄미운 인간은 마석을 사용하라고 세인에게 소리쳤다. 아아 세인이랑 계약할 때 쓰고싶었는데-! 하지만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이라 결국 마나를 뽑아내 어떻게든 싸웠다. 얄미운 인간치곤 꽤나 똑똑하구나!

모든게 잘 끝난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서 살펴보니 세인이 크게 다쳐서, 울면서 아파하고 있었다. 저렇게 아파하다니, 아무것도 해줄수 없어서 슬펐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하는 세인만 바라보고 있는데 얄미운 인간, 카사노가 뭔갈 뚝딱뚝딱하더니 세인의 입을 막아버리곤 치료같은걸 해줬다. 너무 과격한거 아니야? 그래도 제대로 해준건지 세인의 표정이 아까보단 괜찮아졌다.

바닥만 바라보며 슬픈 목소리로 사과하는 세인이 안쓰러워서 위로라도 해주기로 결심했다.

[세인... 사과 안해도 돼! 동료잖아!]

사실, 아파하는 세인에게 아무것도 해줄수 없어서, 보고만 있던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어차피 내 말을 들을수 있는건 세인뿐이라 세인을 위로해주려고 막 얘기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사과는 해야지. 일이 이렇게 됐는데.”


카사노는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나는 여태껏 내 목소리를 들을수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또 듣고 있는데 저런 말을 해버린게 조금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버렸다.

[뭐?! 나쁜 인간! 세인이 크게 다쳤는데!]


사실 나쁜것도 없는데, 계속 도와준건 카사노인데... 내가 아무것도 못할 때 세인에게 큰 도움을 준 카사노가 조금 얄미웠었다. 이러다 세인이 쓸모없는 정령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그런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쁜 태도로 계속 대답해버렸다.

하지만 카사노는 그런 나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줬다. 화도 내지않고 그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세인의 곁에서 봐온 인간들이랑 완전 달랐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신나서 이것저것 얘기했다. 카사노는 웃으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듣다가도 궁금한게 있으면 되물어줘서 이야기는 끝날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세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는데. 이야기를 멈추고 세인을 살펴보니 세인은 화가 난  눈썹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싸늘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그냥 너무 슬펐다.

조용해진 골목속에서 카사노가 나를 달래줬다. 세인이 심각하게 다쳐서 많이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너무 상처받지 말라며 내게 잔잔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빨리 낫게 도우면 세인도 나한테 충분히 고마워할거라고 말했다.

서러워 북받쳤던 감정들이 카사노의 얘기를 들으니 가라앉는게 느껴졌다. 다정하게 위로해주는 느낌이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그렇게 세인과 나는 서로 사과하고 셋이서 머리를 맞대 세인의 다리를 고칠 방법을 얘기했다. 사실 계약만 하면 내가 만들 수 있는 치료수로 충분히 치료할수 있었다.


세인에게 치료수얘기를 하니 세인은 처음 들었다는  깜짝 놀라며 만들어 달라고 얘기했다. 예전에도 얘기한적 있는데... 섭섭함을 뒤로하고 계약하고 만든 치료수가 아니면 별 쓸모가 없다고 얘기하니 세인은 절박하게 계약 얘기만 꺼냈다.


나도 세인과 계약하고 싶었지만, 다친 직후의 세인은 뭔가 무서웠다. 계속 계약 얘기만 하고, 아파서 그런거겠지만 서운하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일단 세인을 뒤로하고 아까 엄청 쎈 고블린과 싸우고 남은 마나들을 이용해 근처의 마석을 감지했다.

개수를 세보니 세인과 계약하려면 필요한 마석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세인이 조금의 마나라도 있으면 다른 정령에게 배운 계약법으로 마석이 얼마 없더라도 충분히 계약할수 있을텐데.

카사노가 자신의 주머니에서도 마석을 꺼내 보여줬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개수가 많아서 속으로 좀 놀랬다. 자기 물건일건데 서슴없이 꺼내 보여주는게 어른스럽다 생각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카사노가 우릴 부르고 방법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잡게 만들고 마나를 흘려보냈다. 나는 손을 타고 넘어오는 마나를 느끼며 충족감과 그가 나에게 얘기하려는게 뭔지 알아챘다.

모든 마석을 합치고 조금만 더 모으면, 차라리 카사노와 계약을 하는게 훨씬 빠를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게 분명 정답이겠지만 나는 세인과 처음 만났을때부터 세인과 계약하고 싶었다.

세인이 위급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세인 외의 인간과 계약은 한번도 생각한적 없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거절하려고 입을 열려는데 세인의 호통이 들려왔다.

세인은 악을 쓰며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여기 오기 전에 세인의 저런 모습을 봤다면 그렇게 나랑 계약하고 싶은건가 감동했을텐데.

아까 화를 내던 세인의 모습과 겹치며 악을 쓰며 안된다고 하는 세인의 얼굴은 무서웠다. 그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카사노에게 그건 안된다고 얘기했다. 카사노의 얼굴은 그럴줄 알았다는  평온해보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얘기했다. 마석을 구한다거나 출구를 찾는다거나, 그런 얘기를 꺼낼때마다 카사노는 조곤조곤 대답하며 그렇게 하기 힘든 이유를 알려줬다. 솔직히 머리로는 그와 계약하는게 정답이란걸 알았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수도 있잖아? 고블린을 잡으면 되지않냐 말하니 카사노는 고블린은 어떻게 잡을거냐고 나를 보며 얘기했다.

실실 웃으면서 얘기하는게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알면서 물어본걸 알고 그의 심술이 느껴져 너무 얄미웠다. 이런 장난을 치다니! 심술나서 물을 뿜어 그의 얼굴을 적셨다. 빵 터져 하하 웃고는 얼굴을 슥 닦으며 그는 세인에게 다가갔다.

어른스럽다,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인을 바라보니 그에게 설득을 들으면서도 못마땅한게 눈에 뻔히 보였다. 같이 오래 지낸 내눈에만 보일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의 눈에도 세인의 태도가 보일게 분명했다.


둘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리며 나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맞긴해, 세인을 진짜 생각한다면 얼른 계약해서 아무 뒤탈없게 세인의 다리를 낫게 해주는게 맞지않을까?

그렇지만 세인과 계약하기 위해 연못을 포기하고 같이 떠나왔다. 연못의 정령이었던 나는 물의 정령이 되며 갖고 있던 힘도 많이 잃었다.


그렇지만 꿈을 갖고 눈을 빛내며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던 세인의 어릴적이 계속 생각났다. 이 어린 아이를 챙겨주고 싶다고, 아무것도 없어 슬퍼하는 세인을 돕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삶이 세인의 여유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쭉 지켜보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사납다고 생각했던 세인이 얌전해졌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나보다.

불만 어린 눈으로 그에게 계속 대꾸하는 세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계속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나는 세인과 계약하고 싶어 빠져나온거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세인을 위하고 세인과 계약하는게 내가 빠져나온 이유라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