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대충 눈을 붙이고 간단하게 몸을 풀고있으니 세인이 일어났다, 허공에 떠다니던 운디네도 세인이 눈뜨자 곧장 옆으로 붙어 조잘조잘 떠들며 시간을 떼웠다.
간단한 보존식으로 끼니를 떼우고 이제 슬슬 군락 안을 살펴볼때가 됐다, 세인에게는 어젯밤에도 일렀던 얘기를 한번 더 해주었고, 고통도 어느정도 가라앉고 침착해지니 운디네와 같이 움직이는데 큰 불만이 없는 듯 했다.
세인의 설득은 어렵지않게 끝났지만 운디네는 달랐다.
[싫어어어! 내가 왜 너랑 다녀야하는건데!]
“약초도 찾았으니 너없이도 편하게 쉴수있으니까, 우리는 출구를 찾아야지.”
[그냥 길목을 지키면서 고블린도 잡고 세인이랑 계약하는게 더 빠르겠다!]
“말이 쉽지, 고블린이 없을수도 있고 고블린을 잡을거면 길을 찾으면서 잡으면 더 쉬운데 왜 그걸 안하려고해?”
[몰라! 얘기 안할래! 세인이 아픈데 너까지 따라가면 세인은 외로워서 어떡해!]
[나도 연못에 혼자서 계속 외롭게 있어봐서 알아, 외로운건 힘든거야!]
떼스는 운디네 좀 말려보라고 세인을 쳐다봤지만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기도 어쩔수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다리까지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세인을 홀로두기 꺼려하는거 같았다. 근데 저새끼는 지가 같이 다녀와 하면 끝날거같은데 입 꾹닫고있네.
“빨리 길을 뚫어서 안전한 곳들을 만들어 놔야 세인이 더 안전해져, 안전해질수록 우리랑 안떨어져 있어도 된다고!”
[으으으... 그래도...]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세인을 바라보는 운디네, 내 눈치를 살피던 세인은 이내 운디네에게 손짓해 자신의 곁으로 불렀다.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길도 찾고 마석도 모아야지, 믿을게 운디네.”
[믿는다니... 으으응... 알았어...]
시무룩해진 운디네는 비실비실 흘러내리며 나에게 왔다, 떨어져봤자 얼마나 오래 떨어져있는다고 저러는지 참 극성이었다. 세인은 저런 운디네의 태도에 안심했는지 어제보다는 침착했다.
[세이이인... 다녀올게...!]
“운디네, 형님 조심하세요!”
“그래, 아 상단에서 준 마나구슬 좀 잘 살펴봐줘, 혹시라도 반응이 올수도 있으니까, 4번 꾹 눌렀다가 떼면 구조 신호니까...”
“아, 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를 박박갈면서 도시로 향했을게 분명했다, 안그래도 손해가 생겼는데 용병 3명까지 탈주했으니 꽤나 화났을텐데... 도시로 복귀했을 때 용병길드에서 무슨 소리를 들을지 뻔했다.
시체로 쌓은 벽을 허물고 빠져나온뒤 다시 틀어 막았다, 통로는 어제보다는 어두웠다, 아마도 샤먼이 죽고는 벽에 걸린 횃불들이 전부 꺼진 듯 했다. 그래도 내부는 크게 어둡지 않아 충분히 걸을만 했다.
[하아... 얄미운 인간하고 같이 다니라니~~~]
“내가 얄밉다니, 별로 한것도 없는데.”
[꼬박꼬박 뭐라하고 나랑 세인을 떨어트리려고 하고! 얄미운 인간이야!]
아직도 앙금이 남은 운디네의 태도에 쓴웃음이 절로나왔다, 말괄량이에 아이같은 면모가 짙었다. 그래도 하는짓이 귀여워서 아직까지는 짜증이 덜났다.
[세인은 뭐하고 있을까... 혼자 심심하겠지...]
“뭐라도 하겠지, 세인도 다 큰 어른이라고.”
[세인이 어른...?]
갸우뚱 하는 운디네, 그모습이 귀여워 볼을 쭉 잡았다. 약간 딸려오는 물덩이가 어릴 때 만져본 슬라임을 늘리는 듯한 감촉이었다, 갑작스런 터치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안간힘을 쓰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함부로 만지지마!]
“그냥 만져봤는데 만져지네?”
[아직 마석의 잔재가 남아서 그래, 아아 세인하고 마음껏 놀고싶었는데~]
흥하고 내 앞을 지나쳐 나아가는 운디네, 말은 까칠하게 하지만 앞질러가놓고 제대로 따라오고는 있는지 계속 나를 살피는 모습을 보니 본성은 착하다는걸 알수있었다.
통로의 끝은 보이지않았고 갈림길도 보이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는 전진에 지쳐갈때쯤 운디네의 뒷태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중급정령치고는 정말 인간과 흡사한 형상을 가지고 있어 몸의 굴곡도 성인 여성 그자체였다.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큼지막한게 박기좋은 몸이라해야하나.
하지만 성기가 구현되지않은건 참 아쉬웠다, 만들어낼수는 있을까? 여러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다 뭉클 뭔가가 얼굴에 부딪히며 걸음이 저지됐다, 앞을 살펴보니 탱글한 운디네의 엉덩이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고블린이야!]
인간 여성으로 치면 둔덕에 얼굴을 박은 느낌이라 그런가, 운디네는 뭔가 부끄러워하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일단 보이는건 3마리뿐이네.]
“계속 살펴만 봐줘.”
[흥! 말안해도 그럴거거든!]
슝하고 고블린 뒤편으로 날아가는 운디네, 고블린들 시야에는 보이지않는지 머리위로 운디네가 스치듯 날아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멀리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몽둥이나 검을 땅에 끌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끼에에엑!!!”
수적으로 유리하다는걸 확실하게 인지했는지 고블린들의 돌격은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전위에 있던 고블린이 내 허리춤까지 뛰어들어 달려들었다. 롱소드도 뽑지않은 나는 그대로 다리를 뻗어 스파르탄처럼 걷어차냈다.
-뻐억
가벼운 무게는 아니었지만 힘을 실은 발길질에 달려든 고블린은 맥없이 날아가 동료들에게 부딪혔다. 쿠당탕 동굴 바닥에 드러누운체 낑낑거리는 녀석들은 자세를 쉽사리 가다듬지 못해 나 죽여줍쇼하고 목을 내밀고 있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리춤에서 롱소드를 뽑아내고 동굴바닥을 더듬으며 일어나는 고블린들의 모가지를 모자리 잘라냈다, 피를 뿜는 몸뚱이를 뒤척이며 갈무리를 하려는데 운디네가 나에게 날아오며 제지했다.
[마석의 기운은 안느껴져, 허탕이네.]
“뭐야, 마석탐지도 할수있었어?”
[마력이 남아있을때만! 그러니까 남아있을 때 빨리 가자구!]
옷깃을 잡아당기며 재촉하는 운디네의 행동에 불구하고 나는 온갖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옛날 용병단에 있을 때 정령사와 계약한 정령들은 그런 능력들을 보여준적이 없었다. 숨긴건지 운디네가 특별한건지 도통 알수없었다.
그렇다고 운디네에게 직접 물어보자니 본인의 특별한 능력이라면 입방정 간수를 못해 돌아가서 세인에게 쫑알쫑알 떠들어댈게 분명했다.
옆에서 세인을 보고싶니마니, 빨리 마석을 잔뜩 찾아내고 싶다는 둥 쫑알쫑알 떠드는걸 뒤로하고 걸음을 계속 옮겼다. 적당히 맞장구 쳐주니 운디네는 옳다구나 하며 더 떠들어댔다.
[너, 얄미운 인간치고는 착할지도!]
“내가?”
[응! 세인은 내가 얘기를 많이 하는걸 안좋아해.]
“용병단에 있을땐 주위 시선이 신경쓰이니까 그렇겠지.”
[우웅... 나는 그냥 세인하고 얘기하고 싶을뿐인데.]
“정령은 귀해서 그래. 걱정하는거겠지.”
운디네는 방긋웃으며 뭐야~ 그런거였어? 난 또~ 떠드는걸 싫어하는줄알고~ 조그마한 입술을 마구 떠벌이며 세인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내뱉었다.
마을에서 만나고 쓸쓸해하는 자기에게 계속 만나러 와줬다에서 계약할 수 있는 방법만 알게된다면 계약해서 둘이서 여행을 떠나자고, 세인과 같이 마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고싶다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전부 들려줬다.
“그런데 계약도 안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형체를 유지할수 있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희한하게도 운디네의 시선이 이리저리 요동치며 목소리도 흔들렸다.
[그, 글쎄? 모르겠네에~ 자아가 생겼을때부터 그랬을지도?]
“그럼 계약은 왜 안한거야? 마석으로 계약할수 있으면 진작 했을텐데.”
[나도 어제 처음 알았어!!! 정말 나쁜 인간들! 그놈들 때문이야!]
“나쁜 인간들?”
씩씩거리며 발을 구르던 운디네는 생각할수록 열받는지 이를 잘근거리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세인을 부려먹는 나쁜 인간들이 세인한테 잡일만 시켰어!]
“몬스터를 처음 잡아봤구나.”
[고향 마을에서 떠나고 용병단으로 찾아가고 나서는 세인은 냄새나는 빨랫더미에 깔린체 살았어...]
불쌍한 세인, 하고 읊조리며 훌쩍이는 운디네를 보니 코웃음이 나왔다.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계속 뿜어대길래 뭔가 일이 있거니 싶었는데, 용병단 말단으로 온갖 잡일을 해온게 불만이었나보다.
꼭 그런 새끼들이 있었다, 시골마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서 나한테 나도 모르는 재능이 있을거야, 용병이 돼서 돈을 쓸어담는거야 하고 망상을 부풀리는 철없는 애새끼들이 온 도시의 용병단에는 가득했다.
‘아마 운디네를 만나고 그런 생각이 더 들었겠지.’
[? 뭘봐!]
베에- 하고 혀를 내민 운디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륵 웃으며 주변을 날아다녔다, 아까 정찰조를 만나고 걸은지도 꽤 됐는데 그뒤로는 고블린들이 코빼기도 안보였다, 운디네의 남은 마력도 결국엔 바닥나서 다시 쓸모없는 떠다니는 물풍선이 됐다.
아직까지는 돌아가고싶다고 찡얼거리지 않았지만, 금방 실증내는 운디네의 성격상 이 상황이 유지되면 세인을 보고싶다며 땡깡부릴게 분명했다. 이대로 돌아가기도 아쉬운데... 오늘은 이쯤 할까,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운디네의 목소리가 귓가를 두들겼다.
[아아앗!!! 물이다!]
운디네의 말대로 동굴 한켠에 연못이라 하기엔 작고 웅덩이라 하기엔 큰 물들이 고여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아무래도 지하수인 모양이었다.
오가면서 목마르다면 찡찡거리는 운디네에게 수통의 물을 건네줬지만 찔끔찔끔 맛봐 갈증이 났었는지 물을 발견하고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물속으로 풍덩 달려들었다.
물의 정령이라 그런가, 물에 들어가니 물리력이 생긴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 사방에 물을 튀기며 헤엄칠수는 없을테니까.
튀기는 물에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옷이 젖고 있었다, 한 소리 할까 했지만 무시하고 무릎 꿇은체 물가를 바라봤다, 딱히 눈에 보이는 불순물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운디네에게 물어봤다.
“이거 먹어도 되는거지?”
[응! 안전해 안전~ 얼른 먹어!]
“그리고 물좀 그만 튀겨, 마력도 다 떨어졌다더니 남아있는 모양이네?”
[바보야? 정령은 의체랑 실체 마음대로 드러내는것도 몰라?]
그런거 들은적도 없었다, 그런게 가능하다니, 좆사기 종족이잖아? 목 젖까지 불공평함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가라앉히고 물을 손에 담은체 그대로 운디네에게 뿌렸다.
-촤악
물방울들이 초승달을 그리며 운디네에게 날아갔다, 투두둑 날아가던 물방을들은 그대로 운디네의 몸체에 흡수되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 꺄악 하고 장난스레 비명 지르던 운디네는 이내 반쯤 감았던 눈을 잔뜩 치켜 뜬체로 노려봤다.
[이익! 했다 이거지!]
-풍덩
물가 가운데에서 삽질하듯 손을 쑥 집어넣은 운디네는 고개를 반대로 틀고 나에게 계속 물을 뿌려댔다, 처음엔 망토를 들어서 막아냈지만 갈수록 날아오는 물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푸읍...! 그만...! 그마!!!”
[크크큭 바보같은 인간, 물의 정령한테 싸움을 걸다니!]
“젖어, 다, 다 젖어!!”
[먼저 장난치더니 꼴 좋다구~ 히히! 이정도로 봐줄까나?]
망토를 뚫을 듯이 날아오던 물줄기들이 멎고 흠뻑 젖은 망토를 비틀어 물기를 짜내며 운디네를 노려봤다. 내 눈빛을 느낀 운디네는 히히 하고 장난스레 웃으며 물속에서 헤엄쳤다.
[후아~ 시원해애~~~ 이런데 이렇게 좋은 물이 있다니 다행이다!]
내 주변을 떠다니며 기뻐하는 운디네, 나는 곧바로 손을 뻗어 운디네의 양뺨을 쥐고 마구 흔들었다. 실체였는지 양손에서 물컹한 젤같은 느낌과 혓바닥 위에 얼음을 얹은듯한 차가움이 손바닥을 가득 덮었다.
[우에에에~~ 그마~~ 그마아~~~]
처음 통로를 나설때만 해도 내 손을 벗어나려고 마구 몸부림치던 운디네였지만, 방금 물놀이 이후로 자신 안의 내 호감도가 제법 올랐는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않고 장난스레 웃으며 내 손목을 붙잡고 매달렸다.
어느정도 흔들어 주고 잡아당기던 뺨을 양손으로 쓰다듬으며 한기를 느꼈다.
[으으으...]
내딴에는 애정어린 손길인데, 운디네는 어떻게 느낄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쳐내거나 벗어나지 않는걸 보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이제, 세인한테 돌아가자!]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운디네는 이내 고개를 마구 흔들며 내 손을 뿌리치고 주변을 날아다니며 떠나자고 말했다. 남은 수통에 물도 모조리 떠왔고, 체감상 현재 베이스캠프에서 여기까지 2시간정도 걸렸으니, 이쪽으로 세인을 데려오는게 나아보였다.
아마 지금쯤 베이스캠프는 시체냄새로 가득해 죽을 맛일게 분명했다. 어차피 입구쪽에서는 더 생길만한 적도 없으니 앞으로 전진하면서 캠프를 옮기는게 나아보였다.
뭐, 지금 세우는 계획도 구조신호만 응답온다면 쓸모없는 계획이었다, 상단이 부디 우리를 버리지않고 수색하기를 바라며 나는 얼른 돌아가자고 보채는 운디네를 데리고 다시 세인에게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