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2.내가 먼저 만났는데... 중급 정령 운디네
세인은 나와 둘이서 설거지했던 장소에 도착하고는 당당하게 나서더니 앞장서서 군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운디네가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뒤돌아 이쪽인거같습니다, 흔적이 보입니다 한마디씩 덧붙여 좆밥 용병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숲 안으로 계속 파고드니 세인의 말대로 자그마한 동굴 입구가 보였고 약탈한 갑옷을 어설프게 걸치고 있는 고블린 두 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는 꼴을 보니 고블린 군락이 확실했다. 뭐 운디네가 안내하는게 눈에 보여서 의심하진 않았지만 칭찬을 바라는 듯 나를 크게 뜬눈으로 바라보기에 세인의 어깨를 몇 번 두들겨줬다.
“잘했어, 떠나기 바빴는데 언제 군락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데?”
내 지적에 일순간 당황했는지 눈을 굴리며 얼버무리던 세인은 이내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 숨어있던 고블린들이 이쪽으로 도망치는걸 봤거든요, 헤헤”
누가봐도 허술한 변명. 하지만 계속 파고들면 경계할테니 대충 넘어가주기로 했다. 풀숲 뒤편에 몸을 숨기고 좆밥 용병과 세인에게 손으로 지시했다, 현재 보초서는 고블린은 두 마리. 한 마리는 내가 맡고 둘이서 한 마리를 맡으면 충분할거다.
손가락을 접어 삼초를 셌다. 꿀꺽, 긴장했는지 침을 삼키는 좆밥 용병과 세인은 내 손가락만 뚫어져라 보고있었다. 3, 2, 1. 손가락을 전부 접고 순식간에 뛰쳐 나갔다, 부스럭 소리에 고개를 트는 고블린, 정면을 보며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그대로 고블린의 모가지를 썰어버렸다, 반동으로 날아간 머리통은 축구공처럼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크윽...!”
숏소드를 양손으로 덧대 고블린의 롱소드를 밀어내며 버티는 세인, 성공적으로 힘겨루기하는 동안 좆밥 용병이 들고있던 롱소드를 크게 휘둘렀다, 어설픈 궤적을 그린 검은 간신히 고블린의 목을 갈랐다. 덜렁이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고블린을 뒤로하고 둘에게 다시 조용히 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슬쩍 살핀 동굴안은 적막했다. 어두웠지만 자그마한 불빛이 보이는걸로 보아 안에 분명 뭔가 있었다. 숨죽인체 고블린을 갈무리한 둘은 내 등에 찰싹 붙어 같이 동굴 안을 살폈다.
“최대한 소리내지말고, 가자.”
조금 어두운 동굴안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어느정도 나아갔을까? 긴 통로가 끝나고 꺾이는 코너가 보였다, 그리고 코너 너머 벽면에는 횃불이 걸려 통로를 밝혀주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껴 일행을 뒤로 잠시 물러나게하고 말했다.
“벽면에 횃불이 걸려있는걸 보니 단순한 군락이 아니야. 물러나자.”
좆밥 용병이 세인의 앞으로 나서며 항의했다.
“뭘봐서 그런말을 하는거요?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얼른 갑시다.”
“고블린들은 횃불이 있어도 들고다니지 저렇게 안걸어둬, 정찰은 성공했으니 돌아가서 다시 얘기해봐야지.”
“아니 은등급이나 되는 양반이 꼬리 말고있구만. 기껏해봤자 고블린 새끼들이지, 그렇게 도망치쇼.”
“설치지말고 내말 듣지? 괜히 대가리 으깨지지말고 따라나와.”
“예예, 엉덩이 대주고 용병되서 그런지 겁도 많구만. 나는 한몫 챙겨서 갈테니 먼저 가쇼~”
좆밥 용병은 코웃음치더니 냉큼 일어나 당당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꼭 한명씩 있다, 경고를 좆으로 알아듣고 멋대로 구는 새끼들이... 횃불을 벽에 걸어두고 보초까지 제대로 장비를 걸쳐 세워뒀다는건 어느정도 지능이 있다는 뜻이다, 홉고블린보다 상위의 고블린이 있을게 분명했다.
고블린 샤먼같은거라도 나오면 짐덩이 둘 데리고는 절대 잡을수 없었다. 그런데 알아서 목숨을 희생하겠다니 붙잡을 생각도 들지않았다. 머뭇거리는 세인에게 손짓해 나가자하니 쭈뼛거리며 다가오지않았다.
“형님, 그러지말고 데리고 나가죠, 뭔가 불안해요...”
지끈거리는 두통에 눈을 덮고 한숨을 내쉬었다. 말해줘도 좆도 안듣는 꼴통이랑 오지랖부리는 애새끼, 그냥 다 냅두고 돌아가고 싶다. 손가락을 벌려 슬쩍 보니 세인 옆에 운디네는 세인의 얼굴을 끌어안으며 장하다~ 칭찬해주고 있었다. 같잖네...
세인의 눈빛을 보니 쉽게 물러날 기세는 아니었다, 내버려두고 가는걸 계산해봤다. 좆밥을 버리고 가면 세인과 운디네는 나한테 적개심을 가질거같았고, 상단에서도 일행을 내버려두고 왔다는거에 난색을 표할거다. 차라리 죽었다고 하면 편하겠지만 저놈이 가만히 입다물고 있을거같진 않았다.
“하아... 나도 챙겨줄 여유없다. 농담 아니야.”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노려보며 얘기했다, 포기할줄도 알아야지, 애새끼들 뒤치다꺼리는 질색이었다. 죄여오는 분위기에 세인은 눈치보면서도 끝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네! 제, 제몸은 제가 챙길게요!”
말은 잘한다, 괘씸해서 대가리에 꿀밤 한번 갈겨주고 벽에 붙은 채 전진했다. 눈물을 찔끔 흘린 세인은 내게 딱 붙은 채 따라왔다. 코너를 돌고 계속 나아가니 조금 떨어진곳에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좆밥 용병이 싸우고 있는게 분명했다.
걸음을 서두르니 고블린 네 마리에게 둘러쌓인체 이곳저곳 베여 생채기 투성이인 좆밥이 보였다, 왼팔에 걸어둔 방패는 장식인가 보다, 이리저리 달려들며 단검을 휘두르는 고블린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뛰어오르는 고블린에게 그대로 박차고 달려가 사선으로 베었다.
-쉐엑
파공음과 함께 고블린의 상반신은 그대로 쪼개졌다. 철퍽 바닥에 떨어진 고블린의 시신을 걷어차고 그대로 달려나가 또 한번 뛰어드는 고블린의 안면에 건틀렛을 먹여줬다, 달려든 반동으로 방향을 틀지 못한 고블린은 건틀렛에 코가 내려앉았다. 손에 쥔 단검을 놓치고 바닥에 구르며 자기 코를 부여잡고 있었다.
“끄에엑!!! 끼윽 끼윽...”
고블린의 머리통을 그대로 밟고 심장을 내질렀다. 솟구치는 핏줄기가 바닥을 적셨다, 남은 두 마리도 정리하기위해 몸을 틀었는데, 한 마리는 좆밥이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마무리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세인과 엎치락뒤치락 하고있었다.
“크윽...!”
단검을 쳐내며 최대한 방어하던 세인은 고블린의 팔이 크게 튕기는 순간 숏소드를 뻗었으나 실수를 하고 말았다, 목덜미를 찌르던 궤적이 삐끗하며 머리통을 향했고 그대로 눈을 찔렀다, 시야를 잃고 잔뜩 흥분한 고블린은 쥐고 있는 단검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단 한번도 유효타는 없었지만 실린 힘은 진짜였다,
“끼끼긱, 끄에에엑!!!”
접근하지 못한 세인은 생채기가 하나씩 늘어났다. 옷이 해지고 팔에서 피가 흐르는 꼴에 놔두면 더 크게 다칠거같아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뒤로 내팽겨치고 광분한 고블린의 목을 쳐냈다.
“끼에에엑!!!”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 소음을 듣고 다른 고블린들이 몰려올수도 있었다. 하지만 좆밥 용병은 신나서 고블린 시체를 갈무리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던 세인도 눈치보다 갈무리를 돕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씨발, 지금이라도 나가야지, 준비 안해? 미쳤냐?”
“아니 형씨도 왔는데 더 들어가야지, 보쇼! 별거 없잖아.”
좆밥은 매고있던 망토를 풀고 고블린의 귀를 잘라 얹었다, 그리고 명치에 칼을 넣고 그대로 가르더니 폐부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적이다 크게 웃더니 쭈욱 손을 꺼냈다. 손에는 작은 마석이 쥐어져있었다.
차라리 죽이고 싶은 마음에 계속 보고있자니 자기몫을 갈무리한 세인이 내게 다가왔다.
“죄, 죄송합니다.”
“됐어.”
[뭐야 이녀석! 모처럼 세인이 사과하는데 속 좁긴!]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며 깐족거리는게 여간 얄미웠다,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어디까지 하는지 지켜보려고 좆밥을 보고있는데 좆밥이 머리통을 주우러 간곳에서 심상치않은게 느껴졌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뜨거움에 나는 세인의 머리통을 꾹누르며 엎드리게 하고 소리쳤다.
“조심해!!!”
“또 뭔소릴 하려ㄱ...”
-퍼어엉!
허리에 손을 얹고 폼잡던 좆밥의 뒤편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오더니 불꽃은 온몸을 휘감고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마력의 불꽃은 순식간에 온몸에 달라붙어 뼛속까지 불길을 뻗어내는거같았다.
“끄아아아악!!! 끄으, 살려저, 살려저!!!”
곧바로 땅바닥을 구르며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듯 했다. 쥐고있던 방패와 롱소드를 집어던지며 살려달라 몸부림 쳤지만 불은 꺼질 기세를 보이긴커녕 더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깔아둔 망토를 집어 용병의 몸에 최대한 내리쳤다, 당장 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이게 최선책이었다.
“수통! 수통 들고와!”
세인을 돌아보며 소리쳤지만 세인은 불타는 용병을 보며 헛구역질 하고있었다, 애새끼답게 끔찍한 장면에 패닉이 와서 상황판단을 하지 못했다.
[세인! 마석을 나한테 줘! 빨리!]
옆에서 운디네도 세인을 보챘지만 한창 속을 개워내는 중인 녀석은 듣지 못한듯했다, 망토를 한창 휘두르다 아까보다는 덜한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망토를 놓고 옆으로 굴렀다.
-퍼엉!
날아온 불덩이는 벽면을 맞추고 바위를 조각냈다, 파편들이 튀고 돌이 바닥에 가득 떨어져 일어난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먼 통로에서 뭔가가 다가왔다.
-저벅 저벅
“키르륵... 인...간...”
늑대가죽을 허리와 어깨에 두르고 인간의 두개골을 엮어 목걸이로 만들어 걸치고있는 모습, 손에 쥐인 지팡이는 딱봐도 평범한게 아니었다. 인간의 두개골을 모으고 공용어를 서투르게라도 할줄아는 고블린은 하나밖에 없었다.
고블린 샤먼이 나타났다, 옆에는 호위로 끌고다니는 홉고블린 하나가 침을 흘리며 여길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마차를 털던 홉고블린보다 덩치가 크고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가득했다. 아마도 샤먼이 걸어둔 주술이 분명했다.
나는 최대한 포복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가까이 접근한 순간 전력을 내면 한 마리는 바로 죽일수 있으니, 그뒤로 어떻게든 나머지 한 마리만 정리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뒤편을 보니 헛구역질을 마친 세인은 주머니를 뒤지며 마석을 찾고있는 모양새였다, 간절한 눈으로 보는 운디네를 보니 마석으로 잠깐이라도 힘을 낼수있는 듯 했다. 하지만 세인은 마석을 찾지 못했는지 절망어린 눈으로 잔뜩 헤집어둔 주머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불타죽은 용병 시체 근처에 떨어져있는 마석을 보고 세인에게 손짓했다, 내 손짓에 눈이 마주친 세인은 내가 가르키는 곳을 보더니 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씨발 그거말고 마석을 보라니까
고블린 샤먼과 홉고블린은 아주 가까워졌다. 놈들은 헛구역질하는 세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망설이면 한 마리도 못데려갈게 뻔하다, 지금!
나는 순식간에 뛰쳐올라 뽑아낸 롱소드를 고블린 샤먼의 목덜미에 휘둘렀다. 거의 직전까지 뻗어나간 롱소드는 닿이기 직전 뻗어온 큰 몽둥이에 가로막혀 궤적이 흐트러졌다,
-퍼억
롱소드는 몽둥이의 절반까지 박혀들어가다 힘을 잃었다. 내 살기를 읽었는지 홉고블린은 숨을 몰아쉬며 나를 벽쪽으로 쭉 밀어냈다. 몸의 중심을 잡지못해 조금씩 벽면으로 밀려나는데 뒤편에서 고블린 사면이 눈을 빛내며 캐스팅하고 있는게 보였다.
나는 최대한 강하게 눌러찍어 한순간 홉고블린의 자세를 흐트러지게했다, 순간 강하게 눌려서 당황했는지 자세가 움츠러진 그 순간 나는 곧바로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단단한 건틀렛이 홉고블린의 코를 완전히 으스러뜨렸다.
-우드득
“끼에에에엑!!!”
한손으로 얼굴을 부여잡는 홉고블린, 곧바로 몽둥이에서 롱소드를 뽑아내고 사선으로 베어냈다, 벤건 고블린의 손목, 존나 큰 몽둥이는 손목과 함께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멈추지않고 한번 더 목을 베려고 했는데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가득 채웠다,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옆으로 구르니 홉고블린의 머리통을 스치고 파이어볼 하나가 날아와 벽면을 강타했다.
-후두둑
입가를 가려 흙먼지를 잠시 차단하고 얼타고있는 세인에게 소리쳤다.
“빨리 마석 찾아서 먹여!!! 씨발 네몸은 네가 챙긴다며!”
얼타던 세인은 내 호통에 숙인 고개를 번쩍 들더니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닥을 기며 전진했다, 죽은 용병의 방패와 롱소드를 챙기고 바닥을 흝으며 서둘러 마석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