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3 드라쿨레아 (6)
바닥을 굴러다니는 놈의 머리통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머리만 남은 흡혈귀라.
…흠.
갑자기 시간을 멈춘다거나 하진 않겠지.
“네노옴….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냐…? 이럴 순 없다….”
머리통을 든 채 잠시 생각에 빠졌더니,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섭리를 거스를 순 없다…. 아무리 네놈이 천재라고 해도, 어찌 그 정도의 힘을…!”
놈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대로라면, 재생하지도 못 하고 죽어버리게 된다.
“우리 세 가문의 불사성은 ‘진조’로부터 내려받은 은혜다…. 그것을 네놈이 어떻게….”
꾸물꾸물. 어떻게든 재생하기 위해, 내가 날려버린 목 아래 단면에서부터 살점이 꿈틀대곤 있다만.
놈이 짐작한대로, 절대 재생되지 않을 거다.
나는 빙긋 웃으며, 놈에게 잔혹한 진실을 얘기해주기로 했다.
“진조가 내려준 은혜라면, 그것을 거두어 갈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명백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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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조(SS)」
2. 「혈귀」 특성을 지닌 개체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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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에게 불사성을 부여한 게 진조라면, 반대로 그 불사성을 빼앗을 수 있는 것 역시 진조 뿐일테니.
루펭의 눈이 부릅떠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인 눈이 부르르 떨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몇 번이고 부정하며, 마치 이것이 꿈이길 바란다는 듯 제 혀를 깨물던 놈이, 몇 번이고 피를 줄줄 흘려대며 혀를 재생한 다음에는.
“어째서, 어째서 네놈이란 말이냐…!”
내게 원망과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더, 내가 더 어울릴텐데! 내가 너 따위보다 훨씬 진조에 걸맞는 자일텐데, 어째서 네놈이냐…! 왜, 왜 항상 나보다…!”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지켜봤더니.
그저 열등감에 절어 내뱉는 지리멸렬한 말 뿐이다.
나보다 자기가 더 잘 어울릴 거라느니.
왜 한참이나 어린 놈이 과분한 힘을 갖느냐느니.
그러더니 이제는 왜 하필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태어나 자기를 이렇게 만드냐는 소리까지.
정신이 나가버린 자가, 제멋대로 나오는대로 내뱉기만 할 뿐.
더 이상 들어줄 것도 없었다.
콰득─!
“으큭….”
손아귀가 놈의 두개골을 으스러뜨렸다. 놈의 재생력을 빼앗은 건 어디까지나 목 아래였으므로, 으스러진 두개골은 순식간에 재생했다.
“조용히 해.”
다만 어디까지나 정신이 나간 듯 주절거리는 놈의 입을 다물기 위한 행동이었으므로, 놈이 조용해졌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됐다.
“내가 묻는 것에 대답만 해. 그러려고 살려둔 거니까.”
“…내가, 순순히 따를 것 같나…?”
순순히 따를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래.”
놈의 몸에 깃든 피를 깨운다.
진조의 힘을 쓴다. 놈의 몸에서 불사성을 앗아갔던 것처럼, 놈에게 강제력을 부여한다.
“크으으….”
놈이 저항하려 하지만.
애초에 머리밖에 남지 않은 놈이다. 남은 피도 얼마 없는 녀석이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윽고 놈이 완전히 나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선, 두 눈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이봐.”
“…네.”
좋아. 확실히 놈의 제어권이 들어왔다.
“드레쿨레아의 다른 원로들은 어딨지? 본 적이 없는데.”
“전부 숙청했습니다….”
허.
“왜 그랬지?”
“위대한 드레쿨레아가 체페슈에게 고개를 숙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로들을 모두 숙청해?
전대 가주였을, 자신의 부모까지?
상상 이상으로 정신 나간 짓거리에 혀를 내두르다, 문득 나 역시 기억을 잃기 전에 이 몸의 부모를 직접 살해했다는 것을 떠올리곤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그럼 남은 드라쿨레아는 너 하나 뿐인가?”
“그렇습니다….”
이걸 어떡하지.
잠깐 고민하다가, 놈의 머리통을 들고 올라갔다.
“힉….”
“허억…!”
성에서 일하고 있던 엘프 메이드들이, 머리통밖에 남지 않은 주인의 몰골을 보곤 기겁하며 도망갔다.
주인님의 원수랍시고 덤벼드는 것도 아니고.
도망가면서 나를 노려보지도 않고.
오히려 두 눈엔 희미하게나마 기쁨이 깃들어 있던 것 같은데.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골통을 부술 때 알아봤지만, 이 녀석 인망이라곤 전혀 없는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가문의 원로까지 싸그리 죽여버리고 혼자 남았겠지.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도망가기 바쁜 메이드와 집사들을 지나서, 누님과 데이지가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덜컹.
“스칼렛? 왔… 손에 그건 뭐니?”
문이 열리고, 내가 들어오자 환히 웃으며 반기던 누님이, 내 손에 들린 루펭의 머리통에 안색을 굳혔다.
정확히는, 웬 쓰레기를 본 것마냥 정색을 했다.
“그런 걸 왜 손에 들고 다녀. 손 더러워지게.”
“맞아요. 얼른 버리고 오세요.”
으엑. 뒤에서 이쪽을 흘깃 내다본 데이지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엄청 질색하네.
“그냥 죽여?”
“그럼 죽이지, 살리게? 그런 꼴로 만들어놓고?”
누님이 핀잔했다.
하긴. 이 꼴로 만들어놓고 살려두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뜯어낼 거 있음 얼른 뜯어내고 죽이렴.”
살벌한 말이다. 고개를 내려, 두 눈의 초점이 풀린 중년의 머리를 보았다.
뜯어낼 거라.
*
“와아. 우리 이제 부자 된 거네?”
“우린 원래 부자였어.”
크아아─.
루펭의 단말마를 배경 삼아, 누님이 내 어깨에 기댔다.
혹시 주인의 인가가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을까 싶어, 드라쿨레아의 모든 재물을 체페슈에게 양도한다는 가주의 선언을 받아냈다.
드라쿨레아의 가주쯤 되는 이의 선언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법칙에 준하는 구속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할 터.
실제로 루펭의 머리를 소멸시킨 뒤, 드라쿨레아의 비고로 내려갔더니 별다른 절차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확실히 드라쿨레아의 소유권이 내게로 넘어온 게 느껴졌다.
“체페슈의 비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확실히 삼대 가문이라고 불릴 만 하네요….”
뒤따라 들어온 데이지가 내부를 진지한 얼굴로 훑어본다.
“…이건.”
체페슈로 들어와, 메이드장 노릇을 하며 저택 내 서열 3위의 자리를 공고히 다진 데이지가, 이번에 체페슈로 옮길 목록들을 작성하다 우뚝 멈춰 섰다.
뭐를 보았나 싶어 슬쩍 봤더니, 길고 날렵한 검 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겉보기에는 밋밋한, 장식용으로는 꽝에 가까운 검이었지만.
“마음에 들어?”
“네, 네?”
명색이 무가(武家)의 딸인 데이지다. 게다가 누님도 슬쩍 곁눈질을 하더니.
“좋은 검이네.”
라고 말했으니, 어지간한 명검이리라.
“누나는 필요없어, 스칼렛.”
“나도 알아.”
피이, 투덜대는 누님이다. 하지만 정말로 누님은 필요가 없으니까. 자신의 고유 특성으로, 자신에게 제일 걸맞는 무기를 직접 만들어 내는 누님에게 저런 외부 무장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가질래, 데이지?”
“아니, 그, …저는 메이드잖아요.”
“배틀 메이드라도 하면 되겠네.”
무심하게 내 옆에서 대답한 누님. 나 역시, 데이지를 향해 웃으며 무언의 긍정을 보내주었다.
“…저 원래 검에는 별로 관심 없는데.”
그랬나?
하긴, 혼자서 수행하는 모습은 본 적 없긴 했다.
“그런 것치곤 자꾸 눈이 가는 것 같은데.”
“…이건 검 좀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될 거라구요.”
그래? 누님을 보니,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정작 누님은 무기에 구애 받질 않으니 별로 공감은 안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누님은 이런 걸 따질 때 논외로 쳐야 하니까.
“이건, 제가 받기에 너무 과해요. 제가 뭐라구….”
“뭐?”
“아아아, 그런 뜻 아닌 거 아시잖아요!”
내가 표정을 굳히니 기겁한다.
데이지든 누님이든, 아니면 다른 누구든, 내가 공평히 엄하게 대하는 게 있다면 바로 자기비하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곁에 두는 여자다. 그 어느 누구도, 겸손할지언정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생각이다.
메이드라는 직책 때문인지, 묘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내 앞에서 눈치를 살피고 자기를 낮추는 기색이 강한 데이지다.
“씨이. 아무튼요…. 제가 검을 들 일이 뭐 얼마나 있다고 이런 걸 받아요?”
“너 안 주고 비고에 박아두면 그 몇 번조차 없게 될텐데. 그거보단 낫지.”
“아 정말!”
한 번을 안 져주니 그리 얄미운지, 데이지가 나를 흘겨봤다.
“…그래서 뭐 어쩌려구요. 이거 진짜 저 주시게요?”
“응.”
“익…!”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답답해 하는 얼굴로 제 가슴을 쿵쿵 두들기는 데이지. 그렇게 화를 내봤자 출렁거리는 게 보여서 전혀 무섭지 않다.
“너 가져.”
“아, 진짜, 이거 엄청 귀한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너 주는 거잖아. 바보야?”
“….”
데이지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내가 좋고 귀한 거니까 주지, 아무거나 줄 리가 없지 않나?
“…제가 잘못 써서 부러뜨리면요?”
“쓸 일도 별로 없을 거라며.”
“…그, 제가 부주의해서, 한 번 딱 썼는데 부러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그 검이 이상한 거지.”
“아니거든요? 엄청 좋은 검이거든요?”
“그럼 한 번 쓴다고 안 부러져.”
다시 데이지가 입을 다물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 내게 물었다.
“이거 진짜 저 가져요?”
“그래. 가져.”
….
슬쩍, 제 앞머리의 핀을 만지작 대던 데이지가, 나와 검을 한 번씩 보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데이지가 픽 웃었다.
“흐흣. 아 진짜…. 주인님 바보예요…? 이제 난 몰라요…!”
웃음을 꾹꾹 눌러 참다가, 마침내 살짝 터져 나온 듯 한, 그런 작고 귀여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