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 영애의 남동생이 되었다-129화 (129/140)

EP.129 드라쿨레아 (2)

“스칼렛!”

“주인님.”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누님과 데이지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본다며 반갑게 나를 와락 끌어안은 누님과, 한 발짝 뒤에서 허리를 꾸벅 숙인 데이지.

누님이 반가워 하는 것처럼, 나 역시 오랜만에 본 두 사람이 무척 반가웠다.

“오랜만이다, 둘 다.”

“으으응.”

부비적. 내 품에 뺨을 부빈 누님이 어린애처럼 칭얼댔다.

“보고싶었어.”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애교가 늘었네. 나는 누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데이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도요.”

침착하게 대답하는 데이지. 나는 볼 수 있었다. 데이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별꼴이라는 듯 누님이 데이지를 흘겨보곤 내게 속삭였다.

“쟤 지금 참는 거야. 마음 같아선 당장 나처럼 스칼렛한테 안기구 싶을걸?”

“아가씨….”

데이지가 끙, 앓는 소리를 흘렸다. 뺨이 살짝 붉어진 모습이다.

나는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아냐? 데이지는 나한테 안길 필요 없어?”

“앗. 그럼 여긴 나 혼자 쓴다?”

맞장구를 치듯 나를 꼭 끌어안는 누님. 괜히 남매가 아니라는 듯 궁합이 잘 맞았다.

…꾸욱.

“그치? 나 혼자 써도 되지?”

…왜 누님은 장난이 아닌 것 같지?

아무튼.

거기까지 하고 나니, 데이지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 알면서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심술궂어요.”

그리곤 총총 다가와선, 어깨로 누님을 살짝 밀어내곤 내 품에 폭 안겼다.

“어머. 얘 좀 봐.”

졸지에 메이드한테 밀려버린 누님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지만. 기분이 크게 나쁜 것 같진 않았다.

“데이지니까 봐주는 거야.”

“네.”

선심 쓴다는 듯 중얼거린 누님과 그걸 받아들인 데이지. 두 사람이 사이 좋게 내 품에 안겼다.

그런데 데이지니까 봐준다는 건 데이지가 아니면 봐주지 않는다는 걸까.

물어봤다간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오랜만에 맡는 동생의 향기….”

“아가씨 좀 변태 같아요.”

“무, 뭐?”

데이지의 말에 나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누님은 화들짝 놀란 얼굴이다. 화들짝 놀란 시점에서 변명의 여지 없이 변태가 맞는 것 같은데.

“입 밖으로 안 냈다 뿐이지 너도 똑같잖니!”

“입 밖으로 내고 안 내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데요.”

무뚝뚝하게 답변하며 나를 꼬옥 끌어안는 데이지.

확실히 입 밖으로 말하고 말하지 않고의 차이가 크긴 하지.

크긴 한데.

나는 품에 안긴 데이지를 내려다 봤다.

오랜만에 보는 분홍빛 머리카락. 물씬 풍기는 향기로운 꽃향기.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부정은 안 하네?”

“….”

입을 다문 데이지. 고개를 아예 폭 파묻는다. 뭉클거리는 감촉이 묵직했다. 나더러 더 말하지 말라고 가슴으로 유혹하는 건가.

확실히 뭉클거리는 게 효과적이긴 한데.

반대로 이렇게 귀엽게 굴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기도 하는 법.

좀 더 괴롭혀볼까 싶어 입을 열 때였다.

“그만 괴롭혀주실래요…? 분명 아가씨를 몰아가는 분위기였는데 왜 절 괴롭히는 게 됐냐구요….”

울먹거리듯 떨리는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고개를 내리니, 귀까지 빨개진 데이지가 울상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이거 보니까 우리 집 찐따 같은 데이지 맞네.

“으…. 웃지 마세요….”

푸흣. 듣고 있던 누님까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게, 웃지 말란 말을 하면 더 웃고 싶어진단 말이야.

“웃지 말라구요…!”

*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해후를 끝내고, 지체 없이 목적지인 드라쿨레아의 영토로 향하기 위해 라비타를 빠져나왔다.

워프 게이트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인간과의 교류를 차단한 그들의 영토에는 아무래도 워프 게이트가 없으니까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라비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온갖 주술과 마법으로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게 워낙 꽁꽁 숨겨져 있어서 그렇지, 직선상 거리만 따지면 걸어서 이틀이면 도달할 거리였다.

“으.”

한참을 걸으니 누님이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럴 만도 했다.

수풀이 우거지다 못해 정글처럼 변해가고 있었으니까.

찌르르, 찌르르. 벌레 우는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인간과 교류를 하지 않으니, 굳이 인간들과 교류할 길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하여튼 자기들이 왕인 줄 알고 으스대는 놈들이라 그런지, 마음에 안 들어!”

누님은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야 설정으로만 접했던 것 말곤 기억하는 것도 없으니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저도 좀….”

뒤따라 오던 데이지가, 땀으로 젖어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내며 말했다.

따라올 때만 해도 들뜬 얼굴이었는데, 어느새 또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처음에는 좀 지쳐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데이지도 드라쿨레아한테 난색을 표하는 걸 보니 있긴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왜?”

결국 궁금함을 찾지 못하고 묻자, 누님이 “흥” 콧바람을 내며 입을 열었다.

“왜 체페슈랑 드라쿨레아, 노스페라투가 삼대 혈귀인지 알아?”

이건 알고 있다.

최초의 「진조」의 혈통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진조 이전의 흡혈귀와 달리, 현대의 흡혈귀는 진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완전히 다른 계통수의 종족이니 모두가 진조의 혈통이라 할 수 있지만.

“셋은 특별해.”

진조의 유일한 권속인 드라쿨레아.

진조가 최초로 흡혈을 통해 만들어낸 동족인 노스페라투.

그리고.

“진조의 분신이자 후손인 우리 체페슈.”

자신의 피와 육신, 그리고 권능을 빚어 만들어 낸 체페슈까지.

“그러니까 세 가문 중에서도 체페슈의 영향력이 가장 크고, 강한 거야.”

후계자나 다름 없으니까.

“최초의 진조 이후 새로운 진조가 나타나진 않아서 그 정통성도 많이 약해졌다가, 우리 조부님 때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고. …그걸 또 우리 부모님이 말아먹을 뻔 했지만.”

누님이 나를 슬쩍 올려다 봤다.

“그건 스칼렛이 잘 해결했으니까”

“현대의 세 가문에도 그 영향은 짙게 남아있어요.”

데이지가 말을 받았다.

“진조는 흡혈귀이면서 동시에 정령. 드라쿨레아는 정령에, 노스페라투는 흡혈귀의 성질이 더 강해요.”

“체페슈는?”

“비등비등하다고 봐요. 게다가 가주인 주인님이 이미 진조로 각성하셨으니까, 체페슈는 이제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봐요.”

고개를 끄덕이자, 데이지가 말을 이었다.

“하던 말을 마저 하자면…. 노스페라투는 흡혈을 통해 동족을 늘리는 것을 선호하고, 드라쿨레아는 엘프나 드워프, 웨어울프 같은 이종족과 교류를 선호해요. 각자 흡혈귀의 방식, 정령의 방식이란 거죠.”

“노스페라투나 드라쿨레아나 거기서 거기야.”

누님이 투덜거렸다.

“노스페라투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동족을 하인으로 부려먹어. 애초에 ‘순혈’이라 할 만한 흡혈귀는 거의 없는데, ‘순혈’이 아니면 자기들과 같은 흡혈귀로 취급조차 않지.”

쯧, 누님이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혀를 찼다.

“드라쿨레아는?”

“크게 다르지 않아. 단순히 착취의 대상이 동족에서 엘프, 드워프, 웨어울프로 바뀐 것 뿐이야.”

대수림에서 살지 않거나, 대수림에서 뛰쳐 나온 엘프들.

부족, 부락 단위로 생활하던 드워프들.

무리 짓지 않고 단독행동을 하는 웨어울프.

그들 모두가 드라쿨레아의 눈에는 부려 먹기 좋은 열등종에 가깝다, 라고 누님이 설명했다.

눈이 좋고 숲의 정령의 도움을 받는 엘프는 드라쿨레아의 영토 외곽을 지키는 파수꾼.

땅의 정령의 도움을 받는 드워프는 영토를 개발하고, 저택을 짓고, 그들이 바라는 물건들을 만들어 바치는 장인.

개개인의 전투력이 월등하고 바람의 정령에게 가호를 받는 웨어울프는 영토 내부를 지키는 경비.

드라쿨레아의 흡혈귀들은 그들을 착취하며,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만을 수확해 갈 뿐.

“마음에 안 들어.”

“동감이에요.”

말을 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는지, 두 사람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누님이야 그렇다 치고, 데이지도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었나.

기억이 없으니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꾸욱.

손가락을 뻗어 두 사람의 이마를 살짝 눌렀다.

“읏.”

“윽.”

찡그렸던 미간이 펴지고, 두 사람이 나를 올려다 봤다.

“인상 펴. 예쁜 얼굴 상할라.”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데이지.”

“네?”

의아한 얼굴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하면 네가 싫어할 건 알지만, 드라쿨레아에 안 좋은 기억이 있다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

데이지의 성격상, 이제 와 돌아가라고 하면 서운해 할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를 많이 따르고 좋아하니까. 이번에 산맥을 넘어 시간 신전으로 갔을 때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누님이랑 같이 나한테 엄청 서운해 했었고.

내가 걱정 돼서 하는 말이라지만, 데이지가 섭섭하게 듣지 않을까 싶었다.

“음.”

데이지는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서운해 한다기보단, ‘뭐라고 말해야 하지?’ 같은 느낌의.

그러다, 슬쩍 그녀의 머리를 고정시키던 핀을 손가락으로 만져보곤.

“…괜찮아요.”

저벅, 저벅. 데이지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와선, 내 가슴에 이마를 콩 기댔다.

“주인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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