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 영애의 남동생이 되었다-121화 (121/140)

EP.121 시간 신전 (2)

「침입자. 셋.」

가디언의 눈이 우리를 훑었다. 안광이 형형히 빛나며, 높게 검을 치켜든다.

「격퇴한다.」

콰아아…!

적어도 수백에서 수천년은 묵었을, 신화 시대적부터 이곳을 지켰을 게 분명한 체고 수십 미터의 골렘이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기만 할 뿐인데도대기가 비명을 지른다.

“피해.”

막을 순 있다.

일행 하나하나가 성체급 드래곤 정돈 쉽게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수십 미터 씩이나 되는 압도적인 체격에서 나오는 단순무식한 강력함이 경이로울 뿐, 상대하고자 한다면 못할 건 없다.

다만.

피할 순 있는데 굳이 피하지 않고 막을 필요도 없으니.

나는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누나는 옵시디안의 공간 박리 결계를 통해 회피한 것 같고, 아이리스는 그냥 빠르게 도약해서 피한 듯 했다.

굳이 오더를 내릴 것도 없이, 혼자 가디언의 시야에 남아 표적이 된 아이리스가 어그로를 끌었다.

「인간. 마스터. 위험하다.」

시야에서 사라진 나와 누나 대신, 아이리스를 스캔한 가디언이 그녀를 우선 목표로 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렘이 방패와 검을 들어올린다. 중구난방이 아닌 체계가 잡힌 듯 한 검술.

처음 검을 대충 휘둘렀던 때와는 대조적이게도, 아이리스를 위험으로 인식한 듯 했다.

“후.”

잠시 숨을 고른 아이리스가, 전신에 신성력을 둘렀다. 나는 가디언이 그녀의 신성력을 보고 비켜주진 않을까 기대를 품고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그런 기색은 없었다.

「적. 신성력 사용. 신을 참칭한 자. 단죄한다.」

빛나던 안광이 한층 활활 타오르듯 발광하는 걸 보니 괜히 더 자극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며, 놈을 쓰러뜨릴 대마법을 준비했다.

마력의 소모는 줄이고, 위력은 높이고, 범위를 좁히는 대신 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칼리아의 영역에서 보낸 나날들이 나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긴 했는지, 머리가 조금 아프긴 해도 무리 없이 술식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이제 겨우 아크메이지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렇게 내가 그림자 속에서 기회를 노리는 사이, 아이리스가 골렘의 발목을 노렸다.

「불경한 자…!」

골렘이 빠르게 방패를 내려찍는다. 아이리스는 굳이 방어하지 않았다.

키이이이잉─!!

옵시디안의 배리어가, 아이리스를 지켰다. 골렘의 방패는 배리어를 크게 흔들었지만 깨뜨리지 못했다.

배리어의 너머에서, 아이리스를 보조하는 누나가 보였다.

「…!」

골렘이 당황한 듯 안광이 깜빡거렸다.

그 사이, 아이리스의 손에 들린 성검이 빛을 발한다.

찬란히 빛나는 빛의 형상을 한 오러. 오직 여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에게만 허락된 찬란한 태양의 오러다.

그것이 점차 그 크기를 불려나간다.

성검의 힘이, 오러를 증폭시켰다.

체고 수십미터의 골렘에게 우리가 휘두르는 검의 사이즈라고 해봤자 사람 몸에 이쑤시개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어느덧 크기를 불린 성검은, 일검에 골렘의 발목을 나무 벌목하듯 베어낼 수 있을 정도의 오러를 내뿜고 있었다.

가히 골렘이 들고 있는 검과 맞먹는 크기.

‘대단한데.’

솔직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성검이 힘이 있었다지만, 저 정도 크기의 오러를 만들어 내 유지하는 시점에서, 오히려 아이리스가 누구보다 용사에 걸맞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흐읍!”

아이리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만한 크기의 오러다. 상상 이상의 질량을 두 팔로 굳건히 들고선, 움직인다.

그리고 가속한다.

들고 있는 것조차 벅차 보일 정도로 거대하던 검이다. 휘두르긴커녕, 들고 있기만 해 거의 정지한 것과 다를 것 없던 검이, 순식간에 휘둘러진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신속하게.

아르카디아 제국칠검

제 삼검(第 三劍) 땅 긋기

섬광이 지나갔다.

저 거대한 검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골렘의 발목을 절단했다.

대각선으로 휘둘러, 한 쪽 다리는 무릎 위, 나머지는 무릎 아래가 비스듬하게 잘려 제대로 균형을 맞추기 힘들게끔 깔끔하게.

저것이 자기완성을 이룬 오러 마스터에게 허락 된 작은 권능이다.

섭리와 법칙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힘.

개인에게 허락된 힘 그 이상을 발휘해, 가능한 이상의 힘을 부리는 것.

“윽….”

물론 모든 마스터가, 원하는만큼 억지로 섭리와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섭리에 거스르는만큼, 그 반동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성검을 쥔 아이리스의 두 손이 떨렸다. 성검이 빠르게 치유해주고 있지만, 반동으로 잠시동안 쓰지 못 할 것처럼 보였다.

뭐.

두 다리를 잃어 기동력을 잃은 골렘이라면, 충분했다.

나는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마침 준비가 끝난 술식을 펼친다. 허공에 수십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펠그리온이 펼쳤던 마법진의 형성 방식을 베꼈다. 모두 독자적인 마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하나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대마법.

「침입자… 격… 퇴….」

가디언이 일어서려 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당히 여신의 인도를 받고 찾아온 손님인 우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공격한 시점에서, 가디언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

봐줄 이유는 없었다.

차르륵,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마법진을 그린 마나가 격렬히 타오르는 것처럼 회전했다. 유기적으로

콰앙! 포격이 쏟아졌다. 수십 미터의 골렘조차 뒤덮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포격.

“윽. 살살 좀 해!”

포격에 의한 흔들림에 비틀거리던 누나가 나를 향해 화를 냈다.

아이리스가 뻣뻣한 팔을 뻗어 누나를 받쳤다.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벌하게 틱틱대던 두 사람이었는데.

아까 배리어로 아이리스가 전력을 낼 수 있게 도와준 것도 그렇고.

함께 힘을 합쳐 싸우고 나니 화해한 게 아닐까?

그때였다.

쿵.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포격에 너덜너덜 해져 안광이 꺼진 가디언이 몸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후우. 아무튼 크게 위험한 건 없었네.”

“그러게요. 어쩌면 여신님이 말씀하신 위험한 게 없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

누나가 숨을 돌리며 한 말에 맞장구를 친 아이리스의 대답.

내가 대답 없이 물끄러미 보자 아이리스가 고개를 슥 돌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았나보다.

“아무튼 이제 성물을….”

쿠웅.

우리 셋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뱉었다.

아이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검을 든 수호자. 당했다. 침입자. 강하다.」

창을 든 골렘.

「하나씩 맡는다.」

활을 든 골렘.

「방심하지. 않는다.」

한 손에 석장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거대한 책을 든 골렘.

총 세 기의 가디언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미트라한테 욕해도 돼?”

“어….”

고민하던 아이리스가, 소심하게 대답했다.

“네….”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저것들부터 잡고 고민할까.”

세 기의 가디언이 안광을 빛냈다.

망가진 팔을 모두 회복시킨 아이리스가 성검을 다잡았다. 누나는 애초에 거의 소모가 없었다. 나는….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할 만 했다.

“이거만 잡으면 끝이냐고 좀 물어볼래?”

“…네에. 그렇다구 하셔요. 여신님이 미안하시다구….”

“됐고.”

아무튼 저 셋만 잡으면 된다 이거지.

하여튼 쉽게 가는 법이 없었다.

*

「침입자…. 강하다….」

쿵.

가디언이 쓰러졌다.

일부러 놈이 쓰는 마법을 분석하기 위해 시간을 끌며 상대했더니, 내가 상대한 마법사 가디언이 가장 마지막으로 쓰러지는 놈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활쟁이 가디언을 쓰러뜨리고 그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누나가 보였다.

“존나 빡세네….”

비흡연자 주제 꼭 담배 마렵다는 얼굴이었다.

철저하게 후방에서 정령을 부리며 싸우는 정령사답게 육체적인 상해는 없는 것 같지만, 나름 정령에 속하는 몸으로 정령사인 누나의 몸을 들여다보니 속이 많이 상한 게 보였다.

게다가 누나가 멀쩡한만큼, 거의 모든 공격을 받아냈을 옵시디안의 영체가 많이 흐릿해진 상태였다.

코나는 진즉 역소환 당했고.

일대 일로 어지간한 성체급 드래곤 두 개체 이상의 힘을 부리는 가디언을 맞상대 하니 멀쩡한 게 더 이상하지.

“으.”

아이리스는 주저 앉은 채 쉬고 있었다.

“여신님… 불경한 생각이지만… 여신님이 조금 미워지려 그래요….”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제복 덕에 심한 내상은 피한 것 같지만, 성검의 가호로 몸을 치료했음에도 몸에 잔상처가 잔뜩 남은 시점에서 얼마나 격렬했는지 보인다.

“…너는 왜 멀쩡하냐?”

상처 없는 내 모습에 괜히 누나가 시비를 걸었다.

그랬다.

나는 아주 멀쩡했다.

“밤이잖아.”

달빛 아래에서는 완전 불사. 꼭 달빛을 받는 상태가 아니어도, 달이 뜬 시간대면 거의 불사나 다름 없는 몸이니까.

“…그래?”

내 대답에 할 말이 궁해진 누나가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시비를 거는 것보다도 회복에 전념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일단 좀 쉬자.”

나도 일단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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