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2 시점─루나 테일러 (2)
호기롭게 말하기는 했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루나 테일러는 어린 소녀였다. 정신 연령과는 별개로, 여리고 어린 소녀의 육체는 가혹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스칼렛이 가급적 배려해주었음에도 그랬다. 21세기의 현대를 기억하는, 거기에 다시 태어난 뒤로는 조금 가난할지언정 귀족의 딸로 자란 그녀였기에, 혹독한 대륙의 오지를 다니기엔 소녀의 몸도 마음도 너무나도 약했다.
그럼에도 루나 테일러가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동생이 언제고 옆에 있어줬기 때문이다.
제국의 일곱 공작인 동생이었다.
사실, 이런 변두리 영지의 어린 귀족 소녀 따위는 만날 일조차 없어야 정상인 상대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보기 위해 꾸준히 시간을 내 만나러 와줬다.
그리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여행을 떠날 때면, 며칠이고 함께 할 수 있었다.
찬란히 빛나는 동생을 볼 때면 그 어느때보다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아무리 몸이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두려워도, 옆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동생을 보자면 그런 불만들이 녹아내린다.
소녀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래도 티 내지 않았다. 동생 역시 어느 정도 눈치 챈 것 같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루나는 선을 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루나 테일러의 외형의 아직 어린 소녀의 그것과도 같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어린 소녀에게 가슴이 두근 거릴 일은 없었을테니까. 실제로 동생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미숙한 소녀가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호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되려 그런 동생이 보내주는 도움의 손길에 정작 루나 본인이 두근거리고 말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여기에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가족이니까.
이건 다른 마음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전생의 인연이자, 유일한 가족이라 그런 거라고.
루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 어린 열세살의, 감수성 어린 꼬마 여자아이의 몸이라, 괜히 감정적이게 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동생이 내밀어준 손을 붙잡을 수 있었다.
험난한 산길을 걸으며, 지쳐 헥헥 댈 때, 잡으라며 동생이 슬쩍 내어준 손을, 괜한 생각은 접어두고 어린 아이답게 웃으며 마주 잡을 수 있었다.
변해버렸어도 역시 내 동생이야.
아니. 오히려 더 착해진 건 아닐까? 전생에선 엄청 싸가지 없었잖아.
음.
역시 지금이 더 착해진 것 같기도 하고. 오래 살면서 철이라도 들었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던 날이었다.
“어이 형씨! 가진 거 다 내놓고 가! 거기 옆에 꼬맹이는 두고 가고!”
“형님. 꼬맹이는 왜요?”
“저기 후드 밑에 턱선 안 보이냐? 적당히 팔아버려도 엄청나게 값을 쳐줄걸?”
산적이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서 녹이 슬었거나, 아니면 아예 새 것처럼 깔끔한, 극과 극으로 나뉘어지는 칼들.
추잡하고 천박한 말을 뱉으며 제 몸을 핥아보는 끈적한 시선에 루나는 어깨를 떨었다.
혐오스러웠다.
“역겨워….”
그때였다.
한 발짝, 저도 모르게 물러선 루나의 어깨를, 스칼렛이 잡아 세웠다.
“…뭐야?”
“죽여라.”
루나는 순간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야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다니며 수행한지도 일 년이 좀 안 되었다. 전생의 기억 탓에 마력을 감응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려서 그렇지, 본디 대정령술사의 적성을 타고난 몸이었다.
마력조차 쓸 줄 모르는 듯 보이는 산적 떼거리 따위 몰살할 수도 있었다.
특히 근거리도 원거리도 모두 커버 가능한 정령사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미 하급 정령 셋과, 중급 정령 하나와 계약한 루나에게, 이 정도 산적이라면 5분 안에 그 숨통을 끊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는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루나는 지난 생은 물론이고 이번 생에서조차 사람을 죽인 적이 없었다.
아니. 시체조차 본 일이 드물었다. 영지 내에서는 당연하고, 여행 중에서도 대륙 구석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진 히든피스를 탐색했기에 그랬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조차 겨우 하는 소녀였다.
“…무슨 소리야?”
겨우, 말이 나왔다.
“죽이라고 했다. 모두 죽일 필욘 없으니, 한 명만이라도 좋아.”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얘들아, 가서 남자는 죽여!”
떨리는 루나의 목소리에도 스칼렛의 대답은 덤덤했다. 무기질적인 붉은 눈에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 점이 루나를 두렵게 했다.
그들이 순순히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산적 무리가 칼을 높게 치들었다.
“쯧.”
스칼렛의 표정에 짜증이 서렸다. 시끄럽다는 듯, 손을 휘젓는다.
그것만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됏다.
이쪽을 향해 슬금슬금 칼을 빼들고 다가오던 산적들의 다리가 굳어서, 덫이라도 걸린 양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어? …어?”
산적들은 당황했다. 보아하니 애초에 화전마을을 형성해 농사 짓고 살다가 지나가는 행인을 터는 놈들이었다.
주변에 큰 도시도, 해안가도 없이, 그렇다고 엘프나 드워프가 살기 좋게 광산이나 넓은 숲과 산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변두리 촌동네.
그런 놈들이니 마법에 걸렸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 하고, 그저 웬 괴상한 술수에 당했다며 당황하는 것이다.
“…죽이라고?”
루나 역시 그들에게선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제 동생이 한 소리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되묻기만 했다.
“그래.”
대답은 차가웠다. 스칼렛의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읏. 루나는 그만 신음을 삼켰다. 저 눈동자가 이토록 차가웠던가.
“네가 죽여라.”
“…왜?”
루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스칼렛은 되려 고개를 모로 꼬았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왜냐니. 누나는 그럼 저들이 죽을만큼 악한 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는 건가?”
“…그런 게 아니잖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산적치고 어설퍼 보인다 뿐이지, 놈들은 산적이었다. 태연하게 제 동생을 죽이려고 칼을 들이밀고, 자신은 어디 팔아버리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쓰레기들.
산적을 죽이라고 명하는 데에 망설임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내가 죽이는 건…. 다른 문제잖아.”
루나는 망설이며 답했다. 아까 언뜻 본 동생의 서늘한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녀를 그렇게 차갑게 내려다 보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루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런가.”
하지만 스칼렛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듯. 그리곤 움츠러든 루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루나가 슬쩍 고개를 들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서늘하던 얼굴은, 언제나와 같이 평온하게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다.
“그럼….”
“그럼 내가 죽이마.”
“어?”
퍽!
피가 튀었다.
루나의 뺨 위로, 선혈이 묻었다.
“우으으읍─!!”
어느새 입을 여는 것조차 봉쇄 당했는지, 닫힌 입을 억지로 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산적들과, 그 앞에 고꾸라지는 목 없는 시체.
아.
저 시체가, 이 피의 주인이구나.
루나는 일순 멍해졌다.
“잘 봐라.”
멍해진 루나의 귓가에 동생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평소와는 별 다를 것도 없는 목소리인데, 루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스칼렛의 손이 루나의 어깨를 감쌌다.
“잊어선 안 된다.”
퍽!
다시 한 번, 그녀의 눈 앞에서 한 구의 시체가 늘었다.
“우으으읍! 우으읍! 읍! 우읍!”
스칼렛의 검지 손가락이 산적의 머리통을 향했다.
“이 빌어처먹을 세계에선.”
퍽!
손가락이 가리켰을 뿐인데, 한낱 인간의 머리통은 그다지도 쉽게 폭산해버린다.
루나의 시선이 그 모든 것을 담는다.
“적어도 선을 넘은 인간을 대할 때만큼은, 머뭇거려선 안 된다는 것을.”
그 말을 듣고선.
루나는 다시 멍하게 스칼렛을 올려다 봤다. 서로 눈이 마주하자, 선혈의 눈동자가 물끄러미 어린 누나를 품었다.
“내가 밉나.”
왜 그런 걸 묻는 것인지, 루나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광경을 억지로 보여줘 놓고선, 뭐 그리 뻔뻔한 것인지.
하지만 루나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전생의 기억에 따르자면, 그녀의 동생은 방금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머리통을 처참하게 터뜨리는 식으로.
어린 그녀의 눈 앞에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식으로.
그런데도, 괜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녀의 동생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온 걸까.
그녀가 알지 못하는 지난 100년간,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나 변한 것일까.
선혈이 난무하는 시체들의 앞에서 할 법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아니.”
그녀에게 온전한 색채를 보여주는 것은 동생 뿐인 것을.
루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의 안에, 무언가 거뭇한 것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게 느껴졌다.
상관 없었다.
“한 명만 남겨줘.”
동생이 그녀가 없는 동안 미쳐버렸다면.
“…그래.”
그녀 역시 함께 미쳐버리면 되는 일인데.
오직 그만이 그녀의 유일한 세계였으므로.
…그 날 밤.
루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칼렛은 밤새 그녀를 끌어안고, 떨리는 어깨를 보듬었다.
“미안하다.”
“아냐. …괜찮아.”
밤새.
그렇게.
*
루나는 문득 떠오른 과거에, 슬쩍 자신을 품에 안은 동생을 올려다 봤다.
그녀가 기억하던…, 이라고 해도, 이미 20년도 더 전의 기억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생생한 이유는 뭘까.
무뚝뚝하던 얼굴 대신,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는 동생의 모습이다.
“…야.”
아이리스는 다시 새끼 용을 상대해주겠다며 나간 채였다. 앙칼진 게 가르치는 맛이 있어보이긴 했다.
아무튼.
“왜?”
지금은 단 둘이라는 것.
괜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스쳐지나간 기억들에 괜히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듯 했다.
이럴 땐 입을 닥쳐야 했다. 손도 가만히 있어야 했다. 눈 앞의 동생과 함께 여행하며 배운 것이었다.
그러니 입을 다물려 했다.
그런데.
괜히 자신을 물끄러미 보는 동생의 붉은 눈동자에 사로잡혀서, 그만.
“…키스할까?”
입술이 바짝 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