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9 상급 정령, 코나 (2)
칼리아는 순순히 우리의 방문을 맞이해줬다.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당장이라도 잠들 듯 눈이 끔뻑거리곤 있었지만, 그거야 나이 든 드래곤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것이기도 하니.
우리가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다는 듯, 늙은 용이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의 심장이 필요한 거겠지…?」
“아니. 나는 코나라는 애랑 계약이 하고 싶은….”
“그래.”
우물쭈물 제 용건을 말하는 누나 대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는 거야?’ 하고, 항의하는 누나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를 받으면, 겸사겸사 코나와의 계약도 성사할 수 있을테니까.
누나는 상급정령과의 계약이 우선이겠지만, 반대로 나는 드래곤 하트 쪽이 더 중요했다.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드래곤들이 자신의 육신에 크게 미련이 없다지만, 완전히 남남인 내게 선뜻 내어주기 쉬울 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늙은 백룡은 들을 얘기를 들었다는 듯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겠지…. 내 살아 생전 말로만 듣던 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건만….」
칼리아가 얕은 숨을 내쉰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뱉어내는 숨결인데도, 한 없이 작고 미약했다.
「허나…. 그대와 나의 만남이…, 커다란 흐름의 안배를… 받은 것이라고… 한들….」
“맨 입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
늙은 용의 눈이 껌뻑였다. 긍정의 뜻이었다.
이해했다. 내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드래곤 하트였으니까. 산맥의 주인이 남기고 간 드래곤 하트를, 산맥에 사는 것도 아니고, 드래곤도 아닌 내가 받아가는 데에 아무 조건도 없을 리는 없지.
「내가 자식처럼 아끼는 아이가 있다네.」
백룡이 말을 이었다. 어느새 잠기운을 꽤 벗었는지, 잠결에 느릿하던 말투가 돌아와 있었다.
그의 자식은 아니고, 부모 없이 자란 헤츨링 하나를 가엾게 여겨 거두었다고. 레드라고 했다. 나는 칼리아의 설명에, 펠그리온에게 잡아먹힌 새끼 화룡을 떠올렸다.
마침 내 생각을 눈치 채었는지, 칼리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다른 아이라네. 하지만 그 아이가 생각 나 화가 치밀기는 하더군….」
그런가.
그럼 펠그리온에게 잡아먹힌 헤츨링의 부모는?
「안 그래도 영맥을 통해 전언을 보내두었네. 그대들에게 사례를 하러 올 게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들에게 은혜를 입히긴 했으나, 그렇다고 의도한 게 아니니 받지 않겠다고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잠깐 다른 곳으로 샜던 얘기가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칼리아의 용건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자식처럼 아끼는, 부모 잃은 레드 드래곤 헤츨링이 있는데, 얘가 안 그래도 레드라 성격이 더럽고 다혈질인데 부모 없이 자란 탓에 그것을 잡아줄 성체 드래곤이 없단다.
칼리아 본인이 나서기엔 당장 몸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수명을 깎아먹는, 곧 있으면 자연으로 돌아갈 몸이라 그것도 어렵고.
이번에 자식을 잃은 레드 드래곤에게 보호자 역할을 맡기고 싶긴 하지만, 일단 그 전까지라도 그 헤츨링을 잠깐 교육해주지 않겠냐는 거였다.
간단히 말해, 싸가지가 없으니까 버릇을 좀 고쳐달라는 거였다.
“그러지 뭐.”
아이리스한테 실력 점검도 시킬 겸 맡기면 되겠다.
“네? 헤츨링 교육이요? 저 그런 거 못 해요!”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아이리스에게 얘기하자, 화들짝 놀라서는 팔을 내뻗고 휘적휘적 젓는다. 못 하겠다는 완강한 표현이었다.
“못 해? 왜?”
“왜냐니. 당연히….”
부루퉁하게 말하려던 아이리스의 입이 달싹거렸다. 정작 자기가 생각해도 안 될 이유가 없을테니까.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던 아이리스는 되려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어…?”
“당장 고룡급이랑도 맞상대를 했는데, 헤츨링 버릇 좀 고쳐달라는 게 뭐가 어려워?”
내 말에 아이리스도 ‘그런가…?’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이번에 마스터 됐지?”
“네에….”
“실력 점검해야지. 어린 화룡 정도면 적당할 거야.”
여기서 적당하다는 건 적당히 상대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적당한 샌드백이라는 뜻이다.
“그래요? 으음. 해볼게요 그럼!”
그렇게.
「뭐야 니들?」
싸가지 없게 우리를 흘겨보는 헤츨링과 만나게 되었다.
“와. 헤츨링도 엄청 크네요.”
“폴리모프 하라고 할까?”
「누구냐니까?」
“에이. 뭘 폴리모프 씩이나요.”
“그래?”
아이리스가 웃으며 답했다.
일단 혼 좀 나면 알아서 폴리모프 하지 않을까요?
그렇군.
「인간 주제에!」
물론 다 들으라고 나눈 대화였기에, 열이 뻗친 새끼 용이 아이리스에게 덤벼들었다.
척 보니 나는 건들면 안 되겠다 싶었나보지. 눈치는 빠른 놈이었다.
카가가각!
아이리스가 성검 대신 내가 가문의 비고에서 꺼내온 검을 든 채 화룡의 공격을 빗겨냈다.
깔끔하게 공격을 흘려낸 그녀가 감탄하며 나를 돌아봤다.
“이 검 되게 좋아요! 이런 거 막 주셔도 돼요?”
“빌려주는 거야.”
“치.”
「이 새끼가아아─!!」
자신을 눈 앞에 두고 등을 보였다는 게 화가 났는지, 새끼 용의 눈이 뒤집어졌다. 불꽃을 전신으로 피우며, 숨결을 들이마신다.
스으읍─!
브레스의 전조였다.
이글거리는 불꽃의 마력이 용의 폐에 들이찼다. 이윽고, 자신이 무시당했음에 격노한 새끼용이 숨결을 토해내기 직전─.
아르카디아 제국칠검.
제 일검(第 一劍) 구름 베기.
촤악!
정확히, 용의 어깨부터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참격.
「끄아악!」
단단한 용의 비늘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간단히 그 살갗을 베어내는 섬뜩한 검날에 새끼용은 그만 들이키던 숨을 뱉어내지도 못 하고 그 열덩이리를 흩어버리고 말았다.
“어, 어라? 미안해! 살살 한다는 게 그만!”
정작 그 짓을 해버린 아이리스는, 깜짝 놀라서는 순간 날카롭게 떴던 눈을 풀곤 어쩔 줄 몰라하며 새끼용을 걱정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
아이리스 아르카디아
근력▶ 121
민첩▶ 144
체력▶ 124
내구▶ 102
마력(신성력)▶251
특성: 「오러 마스터(S)」 「천부적 전투감각(A)」 「황실의 꽃(A)」 「신성력(S)」
고유 특성: 「용사(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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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스탯이 오른 건 둘째 치고, 벽을 넘어 마스터가 된 아이리스는 그 전의 그녀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평균적으로 50 수준의 스탯을 지닌 마스터와, 평균적으로 150 정도의 스탯을 지닌 마스터가 아닌 자가 싸울 경우.
100의 90 정도는 마스터인 사람이 압살하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헤츨링이더라도 드래곤인 저 레드 드래곤을, 이렇게 갖고 놀 듯이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이이이익…!!」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듯 한 새끼용이 발버둥을 쳤다. 육중한 몸으로, 빠르게 움직여 압박함에도, 아이리스는 부드럽게 그 모든 공격을 흘려내곤.
“힘이 너무 들어갔어.”
라거나.
“내가 드래곤은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원래 그렇게 하는 게 맞아?”
라든가.
꼭 아이를 훈계하는 선생님 모드가 돼서는, 거의 농락하고 있었다.
자기 수준이 눈 앞의 헤츨링과는 격이 다르단 걸 깨달은 이후로는 반격조차 하지 않고, 하나하나 상대의 움직임을 지적해주고 있었다.
다만.
“나였으면 그렇게 안 했을텐데.”
…말하는 게 좀.
싸가지 없는 드래곤을 교육하는데 정작 교육자가 싸가지가 없다니.
거울치료라는 건가 이게?
「씨발…!」
아이리스의 도발 아닌 도발에도, 유효타 한 대를 못 맞추니 반쯤 눈이 까뒤집힌 새끼용이 기어코 폴리모프를 했다.
파앗! 환한 빛이 꺼지고, 붉은 머리의, 십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소녀가 전신에 불을 피우고 아이리스에게 덤벼들었다.
「크아아─!」
헤츨링이라 그런가.
드래곤이라 마법을 쓰긴 쓰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마법 수준에 비해 활용도는 모자라다 못해 바닥이고.
육탄전도 아이리스한테 한참 모자라고.
그런데도 자존심은 강해서 포기 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덤빈다라.
아이리스의 실력을 점검하기에 이만한 샌드백이 또 어딨을까?
“왜! 왜! 왜 못 이기는 거야!”
아이리스도 어느샌가 진지하게 새끼용의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부탁 받은 건 이 용의 성질머리를 고쳐주는 거였으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악의 없는 도발이라면 모를까, 진지하게 마음을 푹푹 쑤시는 말들은 아이리스에게 힘들테니까.
“왜 못 이기는지 궁금한가?”
“뭐?!”
아이리스에게 덤벼들다가, 내게 고개를 돌리는 새끼용.
나는 혀를 쯧 찼다. 보란 듯, 거만하고, 또 경멸 어린 얼굴이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다른 종족도 아니고 레드 드래곤의 성질을 조금 죽여놓으려면 자존심을 한 번 박살낼 필요가 있었다.
그 다음에 케어를 한다면 모를까.
“지금 너 한 번 죽었다.”
“그게 무슨─.”
서걱.
아이리스의 검이, 새끼용의 어깨 위를 스쳐지나갔다.
“윽!”
누가 봐도 목 대신 어깨로 봐주었다는 게 명백한 상황. 새끼용이 다시 다급히 아이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구 마음대로 눈을 돌려도 된댔어?”
“뭐?”
차갑게 굳은 아이리스의 입이 열렸다.
어느새 눈 앞의 화룡의 교육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몰입한 듯 했다.
단호한 모습을 보니 아까 아이리스 혼자서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던 것을 고쳐먹었다.
저 정도면 내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럼 화룡을 가르치는 건 아이리스에게 맡기고, 누나가 코나랑 얘기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보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