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 영애의 남동생이 되었다-99화 (99/140)

EP.99 용의 산맥 (4)

몸이 타오르는 듯 했다.

나는 지금 나의 심상세계 속이었다.

‘최초’를 모두 마셨기 때문인지, 육체는 그 제어권을 잃고서 침잠했으나, 심상세계에서 의식을 차린 나는, 또렷하게 내 몸의 상태를 관조할 수 있었다.

내 몸에 들어온 ‘최초’는 흔히들 표현하기에 영약이라 불리는 것들 중 최고로 치는 것이었다.

흔히 저주의 해주나 치명상의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엘릭서임에도 그러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엘릭서와 ‘최초’는 그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천사가 직접 빚어냈기 때문인지.

나는 내 몸 안에 스며든 ‘최초’의 기운을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축복’과도 같아서, 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만 해도 그저 하나의 거대한 마력덩어리였던 것이, 어느샌가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잃었던 나의 힘을 천천히 되살려내고 있었다.

마왕의 권능에 당한 후유증으로 영구적으로 잃었을, 과거의 흔적이나 다름 없는 것을 되돌려 내는 기적에 나는 탄성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누나를 먹이려다, 꾀에 당해 내가 먹게 되어 당황하긴 했지만, 이렇게 그 효과를 체감하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

스칼렛 체페슈

근력▶ 211

민첩▶ 264

체력▶ 215

내구▶ 232

마력▶ 451

긍정 특성: 「진조(SS)」 「공空(SS)」 「가주(S+)」 「아크 메이지(S+)」

부정 특성: 「기억 상실(B)」 「천칭의 시련(SS)」

고유 특성: 「부여(S)」 「연결(S)」 「조율(S)」

+++++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할 정도로 스펙이 올라왔다.

게다가 급격하게 올라간 마력수치 덕에 S랭크이던 「아크메이지」가 S+랭크가 되었다.

다만 부족한 마법 지식 탓에 승격은 실패한 듯 했다. 앞으로도 아마 부족한 지식을 메꾸지 않으면 승격은 요원할테지만.

기억을 되찾으면 저절로 그 지식까지도 되돌아올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도합 500에 가까운 스탯의 상승. 절로 탄성이 나온다.

설령 엘릭서의 원액을 수십 수백 병을 들이켜도 이런 효과는 나오지 않을 텐데, 양보다는 질이라는 걸까.

나는 육체가 기절해 있는 사이, 좀 더 내 몸을 살펴보기로 했다.

현재의 스펙이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따위를 가늠한다.

우선 누님과 순수하게 육체 스펙만 비교하면 나의 우위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근소한 차이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이 정도로 스펙이 올라온 나와 비교될 정도로 누님의 스탯이 높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누님의 성장세도 급격히 가파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지난 백 년동안의 성취와, 최근 몇 달 사이의 성취가 비견될 정도였다.

나와의 관계가, 누님이 다시 한 차례 벽을 넘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달라진 게 없으니까.

백 년 가까이 정체 되어 있던 누님의 경지가 한 계단 올랐다.

현재로선 대륙에 단 한 명 존재하는, 북부의 대공과도 같은 ‘그랜드 마스터’까지, 또 가까워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해봤자 누님은 ‘그러는 자기는 이미 그랜드까지 돼 봤으면서.’라고 투덜거릴 것이지만.

아무튼 누님이 강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기왕이면 누님이 ‘그랜드’의 벽을 넘었으면 좋겠다.

나도, 누나도, 우리 둘이 기억하는 모든 역사에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가 모르는 역사를, 누님이 새롭게 만들어내길 바랐다.

….

그나저나, 언제 깨어나는 거지?

*

루나와 아이리스는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스칼렛을 내려다 봤다.

편안히 눈을 감은 채 새근거리는 모습이 가히 그녀들의 심장을 쿵쿵 두들겨 댔으나, 딱히 내색하진 않았다.

내색하기엔 서로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최초’를 드셨다구요?”

“네….”

일단 어색했다.

초면인 상대가 보는 앞에서, 주책을 부릴 정도로 두 사람이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둘은 스칼렛이 어서 일어나기를 바랐다.

‘언제 일어나냐고….’

‘오빠… 어색해 죽을 것 같아요….’

아주 잠깐의 침묵.

둘은 그 시간마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이대로 단 둘이 같은 공간에 있다간 아주 미칠지도 모르겠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차라도 좀 내올까요?”

“아, 네, 언니….”

스칼렛의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리스는 루나를 향해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입에 잘 붙지 않는 듯 말 끝을 흐렸다.

그걸 듣는 루나 역시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스르륵 급하게 방을 나섰다.

기절한 스칼렛을 두고 방 안에 혼자 남게 된 아이리스.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던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네.

속으로 중얼거린 아이리스가 긴장했던 몸을 나른하게 풀곤 등을 기댔다. 마침 한 곳에 모아 포니테일로 묶어둔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으그으─.”

그제야 편안하게 기지개를 쭉 핀 그녀의 손목에서, 빛무리가 깜빡였다. 여신의 호출이었다. 아이리스가 성검과 의식을 연결하기도 전에, 먼저 의식을 이어 온 여신이 호통을 쳤다.

「아이리스!」

“으앗!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여신님…!”

깜짝이야.

의식을 연결 해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이 행위는, 귀를 닫거나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려 의도적으로 말을 흘려 듣는 것조차 불가능하기에, 이렇듯 한쪽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그 외침이 생생하게 들려오게 된다.

아이리스가 불만스럽게 항의하자, 되려 여신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기껏 방에 단 둘이 남았는데, 뭘 팔자 좋다는 듯 기지개를 펴고 있어?」

“네, 네에?”

「저 여자가 너네 오빠랑 방에서 단 둘이 뭘 했을 줄 알고!」

“네에…?”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던 아이리스도, 이어지는 여신의 말을 들으며 점점 표정이 굳었다.

하기사 궁에 있을 때에도 오빠와 단 둘이 방에 있은 적은 많았지만, 딱히 뭔가 한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오빠의 물건을, 그, 좀 만져준 정도?

하지만 그건 궁에는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와 오빠를, 스칼렛을 두고 경쟁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오빠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편하게 즐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금까지 이 방에서, 오빠와, 오빠의 누나라는 루나 씨가 함께 단 둘이 있었다.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초’를 먹은 오빠를 보니 뭔가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자신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루나 언니라면 다르게 생각할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 그 인상부터 봐라! 고양이 같이 생겨서는, 언제 휙 도둑질 해갈지 모를 인상 아니니!」

“그, 그런가?”

아이리스는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말았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은근슬쩍 오빠에게 다가와서, 생선을 보는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며, 그 퇴폐적인 미모로 오빠를 유혹하곤, 아랫입술을 핥으며 슬그머니 몸을 겹치는 루나 테일러의 모습을─.

“안 돼!”

「옳지. 안 되지.」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추임새까지 넣어주는 여신의 목소리까지.

아이리스의 머리에선 아예 여행 중 아이리스를 냅둔 채 오빠를 꾀어내 음란한 짓을 해대는 루나 언니라는 도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천성이 착하고, 또 똑똑한 그녀이니만큼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상상들이 결국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오빠를 뺏길 순 없어요…!”

「그렇지? 그렇지?」

덩달아 신이 나서 부추기는 여신의 탓이 없잖아 있으리라.

아니. 아예 이 여자가 원흉이다. 여신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나름 스칼렛을 자신의 대전사로써 아꼈음에, 그녀의 선택을 받은 용사야말로 그의 진정한 반려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놔뒀다간 진정한 반려는 무슨 어중간하게 아내C쯤 하고 말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여신도 안다.

루나 테일러와 스칼렛 체페슈의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 레티시아 체페슈와 루나 테일러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이해해야 하나? 둘 다 남매 아닌가? 이건 그냥 스칼렛이 근친충이라서 문제인 거 아닐까?

하여튼 천벌 받을 새끼였다.

방금까지 총애하던 대전사라고 생각하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지만, 여신은 개의치 않았다.

꼬우면 자기가 신 하든가!

그러니 여신은 오히려 아이리스를 더 부추겼다.

「나의 용사. 어서 가서 네 낭군님을 덮치렴!」

“네에엑?”

아이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예 목까지 빨개진 채였다. 어찌 그러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신은 멈출 줄 몰랐다. 덮치라고 부추겨야 겨우 가서 성기나 좀 주무를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어서! 이 여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셈이니?」

“아니. 그게.”

아니. 정말로? 덮치라고? 그래도 돼? 여기는 우리 집도 아닌데. 남의 집인데도?

하지만 여신은 막무가내였다. 여기서 확 덮치든가, 아님 낭군님을 뺏기든가 하라는 식이었다.

“할게요….”

아이리스는 결국 울상을 지으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