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 검을 계속 휘두른 이유
다음 날.
약속했던대로, 언제나의 장소에 나와 서 있는 공작과, 하룻밤만에 상처를 모두 치료하고 돌아온 리하르트가 다시 대치했다.
이번에야말로.
마음을 굳게 먹은 리하르트가 체페슈 공작을 노려보았다.
“눈빛 하나는 변함 없구나.”
당연하지.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겨우 재능의 벽 따위에 좌절하지 않고 노력해서,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어드렸노라고.
당당해지고 싶었다.
그러니 리하르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되려 잔디처럼 짓밟을수록 활활 타오르는 것이다.
고귀한 황자에게 어울리는 성정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못내 즐거웠는지, 공작은 피식피식 웃어댔다.
그마저도 한 폭의 그림이 될 것 같은 풍경이라, 괜시리 짜증이 치밀은 리하르트가 검을 고쳐쥐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성급하게 덤벼들면 안 됐다.
그랬다간 겨우 얻은 기회를 날려먹을 뿐이다.
리하르트는 검을 다루는 재능이 없을 뿐, 눈치가 없진 않았다. 오히려 상황 파악 능력은 꽤 뛰어나서, 조심스럽게 자리를 지켰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공작은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리하르트가 먼저 선공을 취하더라도 방어만 할 뿐, 가급적 반격조차 잘 하지 않고 소년을 관찰하듯 지켜보곤 했다.
그렇다면 몇 번 정도는 공격 찬스가 있을 터.
그 틈을 노린.
“아.”
망연자실한 목소리.
리하르트의 눈을, 얼굴을, 몸을, 거대한 그림자가 덮었다.
아버지의 알현실에서 보았던, 바로 그 거인.
실내가 아닌 밖이었기에, 허리를 굽히지 않고 똑바로 선 그것이 그제야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거인에게 눈동자는 없었다. 존재의 ‘격’을, 그림자를 통해 인위적으로 형태를 갖춰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리하르트는 마치 거인이 자신을 내려다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는 저기, 오연하게 서 있는 공작의 시선이 닿았을 뿐인데.
….
아.
아.
그렇구나.
“이건, 이건.”
착각한 게 아니었다. 거인이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은, 환각 따위가 아니었다.
다만, 그 격(格)을 숨기지 않은 채 공작이 쳐다 본 것 뿐이었다.
그것 뿐.
다른 어떤 수작조차 없이, ‘존재의 격’을 숨기지 않았을 뿐. 그저 그 상태로 공작의 시선이 닿은 것만으로, 리하르트는 자신의 영혼이 숨 막히게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이런.
이런 것을.
왜.
“왜…!”
“음?”
처음엔 공포였다.
이만한 존재다. 아버지가 이렇게 대놓고 격을 드러낸 적은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더 거대하고 위대한 격일 것 같진 않았다.
그런 존재의 시야 안이라는 것은, 언제든 자신을 뭉개어 버릴 수 있는 거인의 손아귀 안이라는 것과 별반 뜻이 다르지 않았다.
리하르트는 이제 십대 중반의 나이로, 아무리 단련에 단련을 거듭해 나름 거칠게 몸을 굴려왔다한들 제국의 황자였다.
온실 속 화초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경험이었다.
죽음의 공포에 소년은 떨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은, 절망도 체념도, 그리고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아니었다.
“이럴 거면 왜 불렀습니까…!”
분노였다.
감히 신에게 분노하는 인간의 위치였기에, 둘 사이의 간극을 깨달은 소년의 태도는 무의식적인 영역에서부터 극진하게 바뀌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소년 황자가 분노한 사실이 바뀌진 않았다.
리하르트가 울분에 차 소리 쳤다.
그 말인즉, 무의식적인 영역에서부터,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서열이 정리 당해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존재에게, 소년은 감히 분노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표출해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생명체의 본능이자 본질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공작이, 비스듬하게 웃었다.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
“…무슨.”
그저 공작을 감싼 채, 올곧게 서 있을 뿐이던 거인의 팔이 움직였다.
쿠구구구궁.
단순히 팔을 움직였을 뿐인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뒤흔들렸다. 리하르트는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소년은 경악했다.
따로 마나를 부린 것도 아니고, 미리 걸어둔 술식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는데.
형체 없이 존재하는 격에다, 잠시 겉껍데기만을 씌웠을 뿐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실체를 주는 것과는 다르다. 그저 타인의 눈에 보일 수 있게, 흐릿한 환상만을 부여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물리적인 실체를 갖춘 것도 아닌 것이, 단순히 팔을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지진이 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본 리하르트가 아연해졌다.
그런 소년에게, 공작이 말했다.
“벽을 넘는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쿵.
거인의 손바닥이 리하르트의 머리 위를 가렸다. 순식간에 그들을 어둠이 감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소년은 반짝이는 공작의 붉은 눈만을 볼 수 있었다.
“크윽.”
소년은 침음을 삼켰다. 형형히 빛나는 공작의 눈동자는,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무척 아름다운 눈이라고 생각했던 그 눈이 두려웠다.
루비를 녹여 섬세히 조각한 듯한 눈동자라고.
아.
그는 새삼 깨달았다.
어찌 존재의 눈동자가, 그저 아름답게 빛나기만 할 뿐인 보석과도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어찌, 살아 숨 쉬는 일반적인 생물의 눈이란 말인가.
“이제야 좀 알겠나.”
소년의 숨통을 조이던 기세가 걷혔다.
“벽을 넘어, 초월존재에 한 발짝 다가간 이들을, 어찌 초인(超人)이라 부르는지.”
스스로(自)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內) 뿐 아니라 타인(外)과, 한층 더 넘어서 세계(全)에 간섭하는 존재.
마치 천계의 신과도 같은, 초월존재로 거듭해 나가는 수행자.
그들을 일컬어, 오러 마스터와 아크 메이지라 부른다.
“네가 알량한 인정 욕구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
리하르트의 입이 다물렸다. 부정하고 싶었다. 알량한 인정욕구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아버지의 바람을 이뤄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인정 받고자 했다.
하지만 그게 어째서 잘못이란 말인가.
“잘못이다.”
공작의 말이 소년의 가슴을 찔렀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경지를 노리면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도 못 하고 있지.”
사실이었다. 자신의 한계가 겨우 이 정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라면, 노력한다면 분명 벽을 넘어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노력하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온전히 인지하는 것조차 못하는데, 거기에 타자의 욕망과 비원을 스스로에게 옮겨담기까지 했지.”
그런 놈이 어찌 자신을 완성시키겠느냔 말이다.
심드렁히 폐부를 찌르는 목소리였다.
허나 소년은 반박할 수 없었다.
다만, 쥐어짜내듯.
한 마디를 뱉었다.
“그럼.”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를 왜, 칭찬하셨던, 겁니까?”
아까, 분노에 차 했던 질문과 비슷한 것이었다. 왜 불렀느냐고, 이럴 거라면. 왜 칭찬했느냐고. 이렇게, 소년의 꿈을 짓밟을 것이라면.
“왜냐니.”
공작이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어찌 그것이 잘못이라 하는가.”
“뭐라고요.”
“네 기감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태도부터 틀려먹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오늘 여기 부른 것이다.”
다만.
공작이 말을 덧붙였다.
“오늘 너를 부른 것은 기회를 주고자 함이 아니라, 네게 현실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화악.
그림자로 뒤덮였던 장소에 햇빛이 스며들었다. 거인이 그 형체를 다시 버리고 그의 주인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환한 빛에 소년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현실 말입니까? 저는 뭘 해도 벽을 넘지 못하리라는 현실 말입니까?”
“배배 꼬아서 말하기는.”
황자의 적대적인 모습에도 공작은 별반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네 아비 속 좀 그만 썩이라는 뜻이다.”
“…예?”
“늙은이의 소원 하나 들어주겠다고, 아들이 다른 재능은 썩히며 검만 휘두르고 있는데 그럼 그 노인네 기분이 좋겠나?”
리하르트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는 아직 소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렸다. 꾸준히 단련한 덕에 키도 꽤 크고, 몸도 단련한 흔적이 남아 슬슬 청년에 가까워지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리하르트는 어렸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보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소원을 위해 노력하고자 마음 먹을 줄은 알아도, 그런 자기 자신의 시도 자체가 또 아버지를 속상하게 하리라는 것은 생각한 적 없었다.
“하, 하지만 저는 아직 젊습니다. 아니, 아직 어립니다! 겨우 검을 좀 오래 잡았다고 해도, 아직 스물이 되기도 전인데, 아버지께서 그런 걱정을….”
“스물이 되기도 전이니까, 걱정하는 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공작이 리하르트의 말을 끊었다. 당황한 소년 황자의 얼굴이 공작의 동공에 맺혔다. 그러고보면, 아까의 위압적인 모습은 어디 가고, 공작은 한층 부드럽게 황자를 대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전생에서 나름 마음에 들어했던 캐릭터에 대한 미미한 호감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 목소리에 자신을 배려하는 듯 한 호감이 서려있다는 것 정도는, 리하르트도 알 수 있었다.
“네가 차라리 성인이라면 상관 없다. 황실의 지원을 받는다면, 뭘 해도 놀고 먹으며 살 수 있을테니.”
“허면.”
“지금의 너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할 나이다. 부모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녀는,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있어서일 뿐이다. 부모의 유언이라거나,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라거나.
적어도 제국의 황자가 그래서는 안 된다.
제국의 황제가 되어서, 자식이 제 꿈을 찾는 대신 아비의 소원을 이뤄주는 게 꿈이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나.”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던 공작이, 목소리를 낮췄다.
“황태자는 에드윈이 될 거다.”
“예? 형님은….”
“그래. 재능이 없지. 그러니 말이 많이 나올 거다. 그걸 위해 네 아비가 나를 부른 거고.”
이해가 됐다. 그 누구도 아닌 체페슈 공작이 지지해준다면, 어떤 결격 사유가 있어도 한 번의 기회는 주어질 것이었다.
“왜 에드윈인지 알겠나?”
“그건.”
“너 때문이다. 너와 같은 아이들 때문.”
그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황제가, 계승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황제의 자질이자 덕목인 여신의 총애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서, 괜히 리하르트처럼 재능을 썩히고 골몰하는 아이가 없게 하기 위해, 수백 년 아르카디아의 역사상 유례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공작의 설명에, 리하르트의 안색이 굳었다.
“말했을테지. 너는 재능이 있다. 그게 무예의 재능은 아닐 뿐이야. 마탑으로 가 학자의 길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타고난 기감은 유물 따위를 다루거나 복잡한 회로를 다루는 데에 도움이 되니까.”
“….”
“꼭 그것만이 아니어도 좋다. 차라리 네가 나이를 먹을대로 먹고서, 이것저것 손을 대 본 뒤, 그럼에도 아비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다면, 나도 말리지 않으마. 그것이 가능한가는 뒤로 두고서 말이야.”
아.
거기까지 들으니, 소년은, 지금까지의 기억이 파도처럼 스쳐지나갔다.
자신을 보고 실망한 듯 중얼거리던 아버지의 목소리.
자신이 재능이 없어 실망하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문득, 다섯 째인 애런이 무예에 재능이 없다고, 대신 펜을 들겠다고 했을 때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다음엔, 여섯 째인 카트린마저, 생일날 검술시연회 때 결국 재능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아버지께 혼날까 울어버렸던 것이.
그리고 아버지가 그 날 밤 홀로 눈물을 훔치시던 것을, 우연스럽게 봤던 기억까지.
….
리하르트는, 손에 쥐었던 목검을, 다시 바짝 쥐었다.
“…알겠습니다.”
“정말인가? 그래. 그 노인네도 좋아할 거다.”
“계속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뭐라?”
순간, 잘못 들었다는 듯 공작의 안색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 사실에 묘한 유쾌함을 느끼며, 리하르트가 상쾌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려는 게 아닙니다.”
“허면?”
“제가 검을 휘두르는 게 좋아섭니다.”
“…그걸 믿으란 말인가?”
흠.
이상한가요?
리하르트가 멋쩍게 굴었다.
“포기하는 게 싫습니다.”
“…그래?”
“예. 그리고, 아버지께 보여드리고도 싶고요.”
“무엇을.”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아들놈이 그저 똥고집에 쇠고집을 부린 거니까, 괜한 걱정 마시라고 말입니다.”
허.
공작이 픽 웃었다.
“누가 리하르트 아니랄까봐.”
“예? 그럼 제가 리하르트지 누굽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공작이 손을 휘저었다.
유쾌한 기억이었다.
지금의 리하르트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기억.
다시 만난 체페슈공은 어쩐지 그때와 다르게 그를 대했으나, 리하르트는 그 은혜를 잊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번엔, 그의 검을, 미약하게나마 인정해주지 않았는가.
비록 형님을 상대하는 수준일 뿐이라 해도.
리하르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체페슈 공작이, 그를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유쾌한 기분이 들곤 했다.
지금도.
리하르트의 검이, 쇄도해 오는 에드윈의 검을 흘려냈다. 카가가각, 검과 주먹이 부딪쳤는데도, 그토록 살벌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리하르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유쾌한 것이던가.
리하르트는 다시 한 번 뻗어오는 주먹을 응시했다.
형님.
〈리하르트으으으으──!!〉
아마 나도 형님과 같았을지도 모르겠군.
다시 한 번, 흘려내고서.
〈죽어! 죽어라! 죽어라 리하르트─!〉
그 때의, 그 날의 기억이 없었다면, 나 역시 어릴 적의 망집에 사로잡혀서,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드리겠단 목표와, 그걸 위해 나를 성장시켜 언젠가 벽을 넘겠다는 수단이, 뒤바뀌어 버려서.
지금의 형님과 같은 몰골을 했을지도 모르겠어.
〈왜 웃는 거냐! 왜! 뭐가 그리 좋단 말이냐─!! 나는, 나는 모든 것을 잃었는데…!!〉
그리고.
그 날 검을 놓지 않기로 한 것도 정말 잘 한 일인 것 같소.
〈왜 너는 모든 걸 얻었단 표정을 하느냔 말이야─!!!〉
내가 검을 쥐었던 이유는 아버지를 위해서였지.
내가 검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나를 위해서였어.
아니. 반대인가?
아무튼.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검을 휘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네.
〈제발, 제발! 죽어라! 제발 죽어다오! 네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
이제까지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일격.
그럼에도 리하르트는 웃었다.
검 끝에 아지랑이가 피었다.
주먹이 쇄도했고, 그대로 흘러내져서, 몸의 균형이 무너진 에드윈의 몸뚱이를.
촤악──.
아지랑이 핀 검이, 베어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형님.
형님을 막기 위해, 나는 오늘까지 검을 휘둘렀나보오.
이제 편히 쉬어.
…….
….
다 끝났구나.
그렇게 생각한 리하르트가, 순간 몸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았다.
그 다음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에드윈의 상반신이 하반신 없이 벌떡 일어서서, 힘이 풀린 리하르트에게 주먹을 내질렀고.
푹.
“네가.”
“아.”
국보.
명검, 유스티아를 든 노년의 오러 마스터가, 그 앞에 당도했다.
마지막 발악처럼 내질렀던 에드윈의 주먹은 노인의 검에 막혔다.
잠깐 오러가 불안정하게 일렁였던 리하르트의 그것과 달리, 활활 타오르듯 피어오른 오러가 유스티아의 검신을 휘감았다.
노인이, 먹먹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전했다. 아들의 사십 년 인생동안 한 번도 건네준 적 없던.
“자랑스럽다. 나의 아들이라.”
한 마디를.
“아,”
“아, 아버.”
“감, 사, 감사합.”
말 끝이 흔들렸다. 리하르트의 목소리가 매였다.
아니다. 감사 인사는 아니었다. 여기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 그렇지.
이거지.
그렇게 입을 벌렸더니, 목이 매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년의 기사는,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선.
“저야말로, 아버지의 아들이라, 자랑스럽습니다…!”
울면서, 그리 외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