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 영애의 남동생이 되었다-81화 (81/140)

EP.81 리하르트 (2)

결투장.

리하르트와 애런이 서로를 마주 본 채,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참관인으로 선 사람은 스칼렛과 아이리스, 거기에 에드윈과 아놀드 네 명이었다.

황실의 일원끼리 결투하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순 없다는 이유였다.

리하르트가 말했다.

“네가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태연할 수 있단 말이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형님.”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매섭게 애런을 노려보는 리하르트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할 뿐인 애런.

리하르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당장에라도, 이 분노를 터뜨리며 눈 앞의 짐승과도 같은, 동생이라고도 부르기 아까운 놈을 벌하고 싶었으나, 그는 알았다.

그렇게 이성을 잃은 채 싸웠다간, 이길 싸움도 지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 심호흡을 하고, 분노를 가라앉힌다.

평생 검을 휘둘러 온 리하르트는, 책만 붙잡고 살아온 애런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이다지도 진지하게 임해야 했다.

리하르트는 그렇게 믿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는 없다고.

실제로 그러한가, 아닌가는 제쳐두고서라도.

누가 상대라도, 진지하게 싸워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그는 아무에게도 이길 수 없다고.

리하르트는 그렇게 믿었다.

그럼에도 리하르트는 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검을 놓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무슨 소리십니까, 그게?”

훗.

입꼬리를 올리고, 리하르트가 웃었다.

“검을 놓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직접 너를 벌할 수 없게 됐지 않았겠느냐.”

일말의 재능조차 없기에, 한탄하고 좌절해 검을 옛적에 놓아버렸다면, 그랬다면 아마 애런에게조차 이기지 못하고, 애런의 죄를 단죄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껏 일천한 재능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검을 잡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겠느냐고.

리하르트는 당당히 말했다.

“…거,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순간, 애런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일찌감치 자신에게 무예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학자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째서 지금 이렇게 검을 들고 형과 결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평생 검을 휘두르시던 분이, 저 따위와 결투하시는 게 뭐가 그리 좋으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의 죄를 벌하겠다던 리하르트의 의도를, 약한 동생을 핍박하는 형님으로 깎아내린다.

실제로도, 두 사람이 결투를 한다면, 십중팔구 리하르트의 승리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평생을 수양에 힘쓰던 사람이, 책만 든 사람에게 질 리는 없으니까.

나머지 경우의 수는, 애런이 함정을 판다든가, 꼼수를 부린다든가 하였을 경우일테고.

애런의 입장에선 결국 승자가 정해진 결투인 것이다.

하지만 도망갈 수도 없다. 아무것도 모른 척 하고 있지만, 실제론 리하르트에게 결투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일련의 상황을 모두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도망가버렸다간, 정말로 그의 죄가 모두 까발려지게 된다.

이기면.

결투에서 이기면,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하르트 형님이라면….’

결투에서 자신이 이겼으니, 장부를 자신에게 돌려주고 앞으로 그 일에 대해 함구하라고 말할 경우 들어줄지도 모른다.

결투의 패자는 승자의 말에 따른다.

그 원칙을, 리하르트는 아마 지켜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애런이 생각하는 최선의 경우이다.

실제로 리하르트가 만일 결투에서 진다고한들, 그는 애런의 죄에 대해서는 모두 황제에게 전달할 생각이었으니까.

겨우 자신의 결투 결과만으로, 지금껏 동생에게 고통 받은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리하르트가 검을 고쳐 들었다.

애런 역시, 난감한 얼굴을 하면서도 속내로는 어떻게든 리하르트를 이기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서로가 다른 목표를 가진 채, 서로를 노려본다.

그리고, 격돌.

빠르게 접근하는 리하르트를 보고, 애런이 당황했다. 분명 거리가 있어 보였는데, 눈을 깜빡하고 나니 눈 앞으로 리하르트가 접근한 게 아닌가.

“이익…!”

그때 애런은 생각했다. 착한 형님이라면, 자신이 몸을 들이밀었을 때 오히려 검을 뒤로 빼버리지 않겠는가, 하고.

그런, 망상에 불과한 상상을 하면서, 애런은 되려 몸을 가까이 붙이며 검을 내질렀다.

카앙!

맞부딪힌 검신, 리하르트가 애런이 무작정 내지른 검을 부드럽게 흘려보내고, 육중한 검의 무게에 중심을 잃은 애런의 가슴팍을 베어냈다.

촤악!

“크아악─!”

그렇게 허무하게 갈린 승부.

당연하게도, 승자는 리하르트였다.

애런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가슴팍을 내어줘 깊게 베이고 말았다. 결투가 시작된 지 30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애시당초 결투를 지켜보던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다. 애런은, 리하르트가 일말의 자비심을 보여 검을 휘두르는 데에 망설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듯 했지만.

피를 뿌리며 쓰러진 애런과, 그런 그를 내려다 보는 리하르트.

그대로 애런의 숨통을 끊어버릴 작정인 듯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가, 미처 그것을 내리치지 못 하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리하르트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듯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이내 검을 내려버렸다.

그리곤, 손에 쥐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후, 심란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쉰다.

“일단 애런의 치료를… 부탁하겠네.”

죗값을 치루려면, 벌써 죽어버려서는 안 되겠지.

그런 뒷말을 덧붙이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리하르트는 자리를 떴다.

“그럼.”

적막한 가운데.

스칼렛이 입을 열었다.

“정리부터 하지.”

아놀드가 치료사를 데려와, 애런을 치료시켰다. 본디 요양을 해 마땅하나, 스칼렛의 명령으로 기절한 애런을 끌고 황제의 대전으로 향했다.

궁전대신들이 모여 있는 자리.

리하르트와 애런이 결투를 벌였다는 소식에, 황제를 비롯한 모두가 모인 듯 했다.

정확히는, 분노한 황제의 소집령에 모두가 발 빠르게 모인 것이지만.

클라우디우스 2세가 옥좌에 앉고, 리하르트가 나섰다.

애런과 결투를 벌였던 리하르트를 필두.

그 뒤로는 스칼렛과 아이리스가 섰다.

클라우디우스 2세가 눈가를 작게 떨었다.

늙은 오러 마스터의 분노한 기세에 궁전대신들의 어깨가 떨렸다.

“리하르트. 애런의 죄를 벌하기 위해 결투를 벌였다고 했느냐.”

“예. 아버지.”

“그 죄가 무엇이길래, 짐에게 고하지 않고 스스로 애런을 벌한 것이냐. 그리고 이미 벌했다면 끝난 일인것을, 무엇을 위해 짐에게 또 새롭게 고한단 말인가?”

“그 말은 틀렸습니다, 아버지.”

“뭐라?”

리하르트의 당당한 반박. 황제는 눈을 크게 뜨고선, 더 말해보라는 듯 턱을 까딱 움직였다.

“제가 벌한 것은, 동생이 가족을 음해한 죄를 벌하기 위해서입니다.”

“으음.”

그 말은, 리하르트가 애런에게 결투를 건 이유가, 아이리스에 대한 음해를 퍼뜨렸기 때문이란 뜻이었다.

리하르트의 발언에 궁정대신들이 일순간 술렁였다.

“허면 애런에게 다른 죄가 있다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말해보거라.”

클라우디우스 2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리하르트는 내게서 미리 건네받았던 노트를 품에서 꺼냈다.

“그게 무엇이냐.”

“애런의 죄를 상세히 적어둔 장부입니다.”

“…이리 가져오거라.”

리하르트가 클라우디우스 2세에게 장부를 내밀었다.

이미 장부에 걸려있던 보안 마법이 모두 해체되었음에도, 오랫동안 잔류해있던 마력의 흔적이 그것이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짐작케 했다.

황제 역시 오러 마스터다. 그것을 알아보지 못 할 리 없으니, 장부를 받아든 시점에서 인상을 팍 구겼다.

그리고 장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던 손길이, 뒤로 갈수록 팔랑팔랑 소리를 내며 빨라졌다.

클라우디우스 2세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릴 정도였다.

이윽고,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서 덮은 황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체페슈 공작에게 묻겠다.”

“무엇을?”

“이 내용이 전부 사실인가?”

흠.

황제의 으르렁 거림에 스칼렛이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나도 조작이었으면 좋겠네만.”

“그렇군. 감히 입으로 담기도 두려운 짓거리를, 그놈이 지금까지 나 몰래 저질러왔다는 게지.”

푹.

한숨을 내쉰 황제가 침묵을 지켰다. 대전이 침묵에 잠겨, 황제의 말을 기다렸다.

“판결한다. …애런은 더 이상 황가의 일원이 아니다.”

애런은 황족이기에 벌할 수 없다.

사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고문조차 할 수 없다. 법률상으로 모든 가혹한 처벌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앞으로 황족으로써 받아왔던 모든 권리를 박탈할 것이다. 앞으로 애런 아르카디아는 평민 애런이 될 것임을, 이 자리에서 짐이 선포하겠다.”

즉.

황족의 지위를 박탈 당했다는 말은, 황족이기에 무시할 수 있었던 모든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판결을 내리마. 죄인 애런은.”

황제가 엄숙히 선언했다.

“앞으로 10년간 지하 감옥에서 성국의 ‘정화’ 작업을 받은 뒤, ‘정화’ 작업이 끝나면 사형하도록 하겠다.”

정화 작업이라고 하면 별 거 없어보이지만.

실상은 제국의 형벌 중 가장 잔인한 벌이 바로 ‘정화’였다.

죄인을 처형하기 전, 악업에 물든 육체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벌인데, 그 정화 과정이 매우 잔혹하다.

이미 죄와 악으로 물들어버린 육체이니, 새롭게 태어난다는 명목으로 살점을 조금씩 도려낸다.

그리고 사제의 치유술로 재생시킨다.

배를 수리하기 위해 부품을 하나씩 교체하다 보면, 결국 모든 부품을 교체하고 났을 때의 배가 과연 출항하기 전의 배와 같은 배인가? 하는 물음처럼.

몸을 조금씩 도려내면서, 천천히 육체를 갈아끼우는 것이다.

그 과정을 전신에 행한다.

맨 처음의 신체의 말단부터 피부를 도려내고, 그 다음은 근육, 뼈, 장기까지. 심장과 뇌를 제외한 모든 장기를 새 것으로 갈아끼운다.

잘못 다뤘다간 재생하기도 전에 죽어버릴테니, 이 과정을 수행하는 데에 무척 긴 시간이 소모된다.

애런이 선고받은 10년이면, 아마 ‘정화’가 끝나자마자 처형한다는 뜻일 것이다.

스칼렛은 생각했다.

에드윈이 이제 어떻게 나설까.

설마하니, 애런이 시체를 팔아넘긴 대상이 노스페라투의 일족이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에드윈에게 남은 길은 하나 뿐이었다.

체페슈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노스페라투를 앉힌 뒤, 그의 지지를 업고 황태자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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