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8 외전. 레티시아 (1)
레티시아 체페슈.
체페슈의 딸이자, 가주 스칼렛 체페슈의 누나.
그리고, 기억 잃은 동생을 사랑하게 돼 버린 여자.
그 날.
언제나 고귀하고, 당당하고, 그럼에도 레티시아에게는 다정했던 그녀의 동생이 갑작스런 고열로 쓰러졌다 깨어난 그 날.
동생이 눈을 뜨기를 옆에서 기다리던 레티시아에게, 깨어난 동생이 초췌해진 채 처음 뱉었던 그 말.
“누구…?”
그 날을, 그 말을 레티시아는 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그 시선. 그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금 떠올려 봐도 가슴이 꾹, 조이듯 아파오는 그 시선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하리라.
다행이게도 기억을 잃었어도 동생의 명석한 머리는 그대로인지,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누나로 인식해준 점은, 동생에게도 레티시아에게도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정말로.
스칼렛이, 그 두 눈으로 그녀를 낯선 사람 보듯 며칠을 더 대했다간, 레티시아는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레티시아에게 스칼렛은 그 정도의 존재였다.
지금은, 괜찮았다.
비록 아직 기억을 되찾지도, 몸을 다 회복하지도 못했지만, 스칼렛은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녀가 동생의 옆을 지키며, 보살펴주면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 언제나처럼의 듬직하고 멋진 가주로 돌아와줄 것이다….
….
레티시아는 알 수 없는 가슴의 욱신거림을 무시하고, 동생의 회복을 위한 혈액을 담은 유리잔을 들고서 스칼렛의 방을 찾아갔다.
똑똑.
문 앞에 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면, 몇 초 뒤 대답이 돌아온다.
“들어와.”
약해진 목소리에 가슴이 아파오는 걸 느끼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은은하게 커튼 너머로 비치는 달빛, 침대 옆에 놓인 등불과, 얇은 가운을 걸친 채 힘 없이 그녀를 맞이하는 스칼렛.
“누님.”
희미한 미소를 그린 그녀의 동생이, 이리 오라는 듯 침대의 옆 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뭐 하고 있었니?”
약해질대로 약해져, 방 안에서만 지내는 동생이었다. 온종일 방 안에서 지내는 동생이 갑갑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간 뭐 하며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했던 그녀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조심히 물었다.
“음.”
곤란한 듯, 잠깐 입을 다문 스칼렛이다. 레티시아는 그 모습에마저 과거의 동생을 떠올리고 만다. 아니. 과거의 동생과 닮은 모습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이든, 결국 그녀는 동생을 잊을 수 없겠지.
그것은 하나의 상처였다.
“…기억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했지.”
“심심하진 않아?”
“심심하다고 하면 어쩌려고. 더 자주 찾아올 셈이야?”
“스칼렛이 바란다면.”
그 말이 우습다는 듯 스칼렛이 픽 웃었다.
“나 대신 할 일도 많으면서.”
“그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레티시아가 반박하기도 전에, 스칼렛이 먼저 말을 이었다.
“미안해.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자조적인 음색이었다. 정말로, 그렇게나 약해진 동생을 보자, 레티시아는 가슴이 꽈악 조이는 듯 한 느낌이었다.
고통이었다.
“…괜찮아.”
어쩐지 목이 매여서, 그녀는 그런 말밖에 하지 못 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없었다. 그저 이따금 눈이 맞을 때마다,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동생과의 대화를 끝내고 그의 방을 나선 레티시아는, 쭉 고통스럽게 조이던 가슴팍을 손으로 꾹 눌렀다.
아팠다.
….
미묘한, 고통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지만.
레티시아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원래라면 깊은 잠에 빠져있어야 했을 레티시아가 눈을 떴다.
스칼렛을 대신하기 위해, 지난 며칠간 가주 대리로 활동한 그녀였다. 미칠 듯 몰려오는 피로를 억지로 털어내, 몸단장을 마친 그녀가 집무실로 향했다.
가주 대리는 지금껏 몇 번이나 해왔었다. 스칼렛이 몇 달씩 자리를 비운 적은 종종 있었으니까.
그때마다 성실하게 가주 대리를 맡아 충실히 수행했던 그녀였다.
“….”
구울 메이드 몇 명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집무실.
숨 막힐 정도로 조용한 그곳에서 펜촉을 놀리던 레티시아는, 그만 펜을 놓고 말았다.
분명 몇 번이나 해왔던 일인텐데도.
언젠가 돌아올 동생의 대신이라는 것과, 기억을 잃어버린 동생의 대신이라는 것.
그 차이가, 레티시아로 하여금 모두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했다.
이것도 벌써 며칠이나 반복되는 중이다.
아침에 기계적으로 일어나, 몸단장을 한 후, 고요한 집무실로 와 동생의 일을 대신 하다, 극심한 무력감에 펜을 놓아버린다.
그러고 나면.
“해야지….”
동생에게 부끄러운 누나이고 싶지 않으니까.
눈가를 찡그린 그녀가 다시 펜을 들었다.
그런 식의 반복을, 며칠째 이어가는 중이었다.
“후으으읏─.”
지루한 서류 작업을 끝내고 나면, 가볍게 기지개를 켠다.
으그그─, 하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나면, 보통은 별 다른 일이 없을 경우 낮잠을 잔다. 이른 아침에 일어났으니, 피로를 좀 더 풀기 위해서이리라.
이렇게 낮에 한숨 자둬야, 밤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보러 갈 수 있으니까.
레티시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곧장 침대에 누워서는 잠을 청했다.
*
잠에서 깬 레티시아는 간단히 목욕을 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얇은 슬립 위 가디건을 걸치고, 어제와 같이 혈액을 담은 유리잔을 들고서 동생의 방을 찾아갔다.
똑똑.
“들어와.”
언제나와 같은 노크와, 언제나와 같은 대답.
레티시아는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괜히 살풋 웃었다.
….
웃었다?
“…읏.”
순간, 표정을 굳히고 화들짝 놀란 레티시아가, 잠깐의 동요로 떨어뜨릴 뻔 한 유리잔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기억을 잃고 약해진 동생.
그런 동생을 매일 밤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누나.
그런 관계에, 저도 모르게 지어버린 미소.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던 동생이, 나약해진 모습을 가련히 여겼다.
‘그런데.’
왜 나는 웃어버린 걸까.
그렇게 그녀가 문 앞에서 굳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더니, 의아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누님?”
걱정이 담긴 목소리.
“…들어갈게.”
동생의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자.
아직 가슴 속이 술렁거렸으나, 레티시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안 그래도 아픈 동생을 더욱 고생하게 둘 순 없었다.
“무슨 일 있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걱정하는 목소리.
레티시아는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기분이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자. 마시렴.”
평소처럼. 동생의 옆자리에 걸터앉아서, 동생에게 유리잔을 건넨다. 처음 눈을 떴을 땐 꺼리던 혈액도 이제는 잘 마시게 된 동생을 옆에서 지켜본다.
꼴깍, 꼴깍.
혈액을 넘기는 목울대를, 어쩐지 멍하게 지켜보게 된다.
새하얀 목, 꼴딱꼴딱 넘길 때마다 움직이는, 목울대, 그리고 쇄골. 레티시아의 눈이 잠시 몽롱해졌다.
“다 마셨어. 자.”
“….”
“누님?”
“어, 어? 으응. 잘 했어.”
잠시 넋을 놓았던 레티시아가, 저를 부르는 동생의 부름에 깜짝 놀란다. 그리곤 유리잔을 받아, 옆의 서랍 위에 올려두곤 동생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들켰나?’
그녀 자신도 왜 그렇게 정신을 놓았는지 모를 일이나, 아무튼 저도 모르게 동생의 목이며 쇄골을 훔쳐본 것은 사실.
들켰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이게도 스칼렛은 모르는 눈치였기에,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쉰 레티시아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려고 했다.
이 이상 있었다간 또 무슨 바보 같은 일을 벌일지 모르는 일이니까.
“벌써 가게? 좀 더 있다 가지.”
그러나 그런 그녀를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동생이었다.
레티시아가 그것을 거절할 수 있을리 없었다. 그녀는 감히 난처한 체도 하지 못 하고, “그럴까?” 하고 웃으며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힘들지? 나 때문에.”
그리고 곧바로 찔러들어온 직구.
레티시아는 입을 잠깐 다물고 오물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지?”
“응.”
이런 건 변하지 않았구나. 원래 천성이란 걸까.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다가도, 그녀가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괜찮아.”
“…내가 뭔가 해주지 않아도 돼?”
꾹꾹.
괜한 소리를 한다는 것처럼, 손가락을 뻗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런 몸으로?”
“윽. 그래도. 자잘한 거라도.”
“으응. 그럼─.”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뭔가 사소한 거라도 부탁할까.
그렇게 해야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내지 않을까─.
….
살짝 가슴이, 꼬옥 아픈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스칼렛을 위한 거니까.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무엇을 부탁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레티시아가, 이윽고 떠올렸다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누나, 어깨가 결리는데. 마사지 해주지 않을래?”
“…. 아, 그럴까?”
어쩐지 동생의 대답이 늦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어깨에 걸쳤던 가디건을 침대 밑으로 떨어뜨려, 새하얀 어깨와 목덜미를 드러낸 레티시아가 동생의 침대에 엎드려 눕고, 스칼렛에게 훤히 등을 내보였다.
얇은 어깨끈과, 깊게 파인 등으로 훤히 보이는 새하얀 살결과 도드라진 날개뼈.
침대에 엎드리며 뭉개진 채 옆으로 드러난 옆가슴과, 잘록하게 이어지는 허리와 골반까지의 라인. 거기에 큼직한 엉덩이까지.
아무리 남동생이라한들, 아니, 남동생에게 보여주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고 음란한 차림새다.
“으.”
그것을 레티시아도 모르진 않았다. 작게,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후회를 뒤늦게 느끼면서도, 이제와서 물리기란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얌전히 고개를 침대에 폭 파묻었다.
“하아…. …흣.”
움찔.
아직 스칼렛이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레티시아의 몸이 살짝 떨리고 말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들이킨 숨결에 섞인, 극도로 약해진 몸으로 몇 차례 앓은 동안 흘린 땀이 스며든 침대에 고개를 박고 들이쉬는 것으로 묻어난 스칼렛의 체취.
그것은 레티시아에게도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이것이 스칼렛의 체취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것을 맡아서 놀란 것은 이해했지만.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스칼렛의 체취가 달콤한 것도, 어찌어찌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째서 자신의 몸은 이렇게 떨린단 말인가.
“스칼렛, 잠깐만─ 햐윽.”
다급해진 레티시아가 고개를 들어 동생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그의 손길이 그녀의 어깨에 닿은 순간이었다.
꾸욱.
새하얗고 부드러운 어깨를 붙잡혀서, 부드럽게 눌린 레티시아의 입에서 달콤한 숨결이 뱉어졌다.
“아응, 잠깐, 잠, 아윽, 으극. 아파!”
“아파?”
“응, 응. 아파. 그러니까 잠까으으흑!”
아프다는데 왜 안 멈추지.
꾸욱 꾸욱.
새하얀 어깨를, 날개죽지를, 등과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린다. 이건 거의 능욕이었다. 적어도 레티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통과, 그 뒤에 찾아오는 쾌락에 발을 동동 굴린다.
“꺄으윽. 으흑! 아!”
꾸우욱. 발 끝을 쭉 펴서, 이불을 마구 밀어버린다. 허리가 들썩들썩 들리고.
아.
“응, 아! 야! 아프, 아파!”
아프다고. 그렇게 반항하면서, 다리를 파닥파닥 흔들면서도, 레티시아는 느꼈다.
자신의 엉덩이에 닿는 동생의 물건을.
그야 올라타 있으니 닿을테지만. 딱히, 딱딱해진 것 같진 않지만.
아닌가?
그녀가 생각하기로, 살짝 자극 받아 커질 듯 말 듯, 그런 상태인 것 같았다.
‘그, 그런데 이 정도야?’
문제는, 그렇게 어중간한 상태의 물건일텐데도, 그 존재감이 너무나도 거대했다는 것.
이미 고통은 없었다. 그것이 스칼렛의 뛰어난 마사지 실력 덕인지, 레티시아의 육체가 뛰어나서인지는 모를 일이나, 아무튼 그럼에도 레티시아는 계속 해서 아프다며 칭얼거리며 허리를 들썩였다.
꾸욱.
그렇게 허리를 들썩이며, 살짝살짝씩 엉덩이를 동생의 물건에 톡톡 대보며, 레티시아는 점점 조용해졌다.
“응, 응, 응….”
점차 숨소리는 달콤해지고, 칭얼거리던 말 대신 조용히 침대에 코를 박고 동생의 체취를 몰래몰래 들이키고, 엉덩이를 살랑거린다.
그렇게 동생의 마사지를 받다가.
“읏…!”
이러면 안 되는데.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가도, 깊게 패인 등의 고스란히 드러난 하얀 살결을 만지는 동생의 손길과, 몇 번의 자극을 커져 이윽고 단단하게 커져버린 물건의 열기, 단단함, 그런 것 따위를 느끼게 되면,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엉덩이를 살랑거리게 돼 버린다.
동생의 자지가 커져버린 건, 어쩔 수 없이 자극에 반응해버린 생리적 현상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주지시켰다.
게다가 거의 요양하듯 방 안에만 머문 채, 성욕도 해소하지 못 하고 있을테니까. 자극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반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번만, 이번만이야. 마사지 해준다고 한 거니까….’
다만.
동생과는 별개로, 레티시아는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