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5 외전. 데이지 (1)
데이지 블랙우드.
그녀는 블랙우드 내부에서도 특별했다.
구성원 대부분이 체페슈에 충성하는 이들이긴하나, 개중 몇명.
진심이다 못해 맹목적이기까지 한 이들.
흔히 블랙우드 내부에서도 ‘진짜’라 불리는 그들은 대개 방계 출신인 경우가 많다.
승계권 따위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으며, 잘 해봐야 영지 내 행정 관료나 기사가 한계인 그들이니만큼,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체페슈’의 선택과 부름이 본가의 사람들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데이지가 특별한 것은, 그녀는 본가의, 현 가주의 차녀임에도 그 ‘진짜’라고 불리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주장하기론 어렸을 적에 체페슈 공작을 만난 적이 있다곤 하는데, 그것을 믿는 블랙우드의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정도의 이유가 아니라면 데이지가 어린 시절부터 보여준 체페슈를 향한, 특히 현 체페슈의 가주인 스칼렛 체페슈에 대한 충성심을 설명하기도 어렵기도 했다.
블랙우드는 명문의 무가(武家)이다.
가주의 승계권 역시, 본가의 자제들 중 가장 일신의 무력이 드높은 자에게 돌아간다.
데이지는 자신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먼저 승계권을 포기했다.
데이지가 아무리 체페슈에 기이할 정도로 애정을 보인다고 해도, 가주 승계권까지 포기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블랙우드는 뒤집히고 말았다.
블랙우드 백작과 백작부인, 기사단장, 가신들이 달라붙어 데이지를 설득했다.
“영주 되면 체페슈에 못 가잖아요! 안 할래!”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설득하던 집안의 어른들을 모두 뿌리친 데이지가 뒤이어 말했다.
“수련 다 했으니까 이제 메이드 교육 받아도 되죠?”
그랬다.
체페슈로 가 스칼렛 체페슈의 수발을 들겠다는 차녀의 응석에, “공작 전하의 곁에서 수발을 들기 위해선 응당 그에 걸맞는 무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가주가 말했기 때문에, 데이지는 검을 들었던 것이다.
“~♪”
그렇게.
황망해 하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데이지는 정말로 메이드장에게 메이드 교육을 받으러 가버렸다.
그랬던 데이지 블랙우드는 결국 끝내 소원했던대로 체페슈의 가신이 되었다.
동경해 마지 않던 스칼렛 체페슈의 최측근으로써, 24시간 중 스칼렛의 옆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길어질 정도.
데이지는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출근 첫 날.
드디어 재회하게 된 주인님은 비록 그녀에 대해 잊고 말았지만, 데이지는 개의치 않았다.
기억을 잃으셨다한들 그녀의 마음은 변치 않으니까.
첫 날 주인님의 손길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인님의 다정한 손길은, 무척 따스하고, 또, 야해서.
그녀는 그간 갈고 닦았던 메이드의 봉사 정신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 했다.
메이드장은 이런 거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머리가 번쩍번쩍 하고, 새하얗게 물들어버리고, 허리가 벌벌 떨리는.
그런 건. 배운 적 없는데.
메이드장은 거짓말쟁이. 남자는, 손으로 만져주고, 그, 입으로 해주면 만족한다고 했는데.
물론 주인님이 바라신다면, 손이든 입이든, 아니면 그간 지켜왔던 순결조차 바칠 생각이었지만.
그랬지만.
애초에 그럴 틈조차 없었다.
주인님께 봉사하기도 전에, 한낱 암컷으로 전락해, 부끄럽게 아양이나 떨며 주인님의 손길을 갈구하기나 했다.
그런, 메이드 실격스러운 모습.
데이지는 수치스러웠다.
그 날의 데이지는 주인님의 손길에 교성을 내뱉는 한 마리 암컷일 뿐이었다.
다음 날.
메이드답게 굴지 못 했다는 굴욕감에 이불을 뻥뻥 차면서도, 데이지는 내심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주인님이야.’
메이드장에게 성교육 전반을 받은 데이지는, 비록 경험은 전무하나 일반적인 남성이 다들 그렇게 절륜하지 못 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아직 처녀였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녀의 주인님이야말로 어느 남자보다 우월한, 진정한 ‘남성’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우쭐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가 되기에 타당한 이유인가는 둘째치고서라도.
데이지는 그런 완벽한 ‘남성’인 주인님의, 완벽한 메이드가 되어야 했기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오늘 밤에는 정말 제대로 봉사해드려야지.’
비록 감히 블랙우드의 차녀에게 아무리 모형 따위라도 보여드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든 메이드장에게 이론으로밖에 전수 받지 못 한 그녀였으나, 데이지는 자신 있었다.
자신 있었다.
“으극! 아, 흐읏, 아, 아, 주인, 님. 안 대, 안 댓, 그마냇, 거기 안 대여엇…♡”
그리고 처참하게 털렸다.
이론조차도 완전하지 않은 숫처녀에게, 금발 매료 흡혈귀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집요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주인은, 수 없이 가버려 지칠대로 지친 몸을 놔주지도 않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가 또 다시 절정하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
매일 밤 그녀의 주인이 부르면, 몸 단장 후 주인님의 침실로 찾아가, 온 몸이 녹아내릴 듯 한 쾌락을 몇 번이고 경험한다.
그럼에도 데이지는 아직 처녀였다. 첫날 다짐했던 봉사조차 주인님께 해본 적 없었다.
그럼에도 착실하게 그녀의 몸은 주인님에게 길들여졌다. 굴복하고, 종속되어 갔다.
데이지는 그렇게 체페슈에 자리 잡았다.
그 며칠간 주인님과 아가씨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데이지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체페슈가 둘…!’
따위의 생각을 하고있었다.
빠르고 훌륭하다면 훌륭한 적응력을 가지고, 체페슈에 그녀가 녹아든 뒤.
어느 날.
그녀의 주인이 며칠간 저택을 비우고 돌아온 그 날.
데이지가 생각하기로는, 주인님이 아가씨와 동침한 듯 했다.
단순히 같이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주인님과 아가씨가, 섹스를.
“하읏! 아, 으긋♡ 거기 죠아…♡”
“흐읏, 흣, 하으….”
문 앞을 지키듯이 서서,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가씨의 천박한 신음 소리를 들으며, 데이지는 애닳은 몸을 달래었다.
“응, 응… 주인님… 저도….”
아쉬운 기색이 뒤섞인 신음 소리.
느릿하게 비부를 손가락으로 부비면서, 데이지는 달뜬 숨을 뱉었다.
찌걱.
주인님이 만져주셨을 땐,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기분 좋던 그 감촉이, 어째선지 지금은 가슴이 꼭 죄이듯 애타기만 했다.
“아, 흐아, 주인님….”
“아응, 아! 아… 흑! 으긋, 헤윽…!”
그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데이지는 행복에 젖은, 쾌락에 녹아내린 암컷마냥 부르짖는 아가씨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데이지 여기 있어요.
저도, 저도 범해주세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찌걱찌걱, 손을 놀린다.
“아, 아으, 아… 흣….”
움찔, 움찔.
얕은 자극이 아래서부터 올라온다.
찌릿한, 마치 전기가 통하는 듯 한 느낌에, 허리를 살짝 떨며, 절정에 달하려다.
“…읏.”
멈춘다.
굳은 얼굴로, 손가락을 놀린다.
찌걱, 찌걱….
“흐읏, 읏….”
살살 성감을 자극해서, 오르가즘을 끌어올려 보지만, 끝내 울상을 짓게 된다.
역시 주인님이 아니면 안 돼.
그런 몸이 돼 버렸으니까.
“아. 주인님….”
데이지는 복도에 서서, 작게 중얼거렸다.
*
다음 날.
평소라면 하룻밤 정도는 새도 끄떡 없을 정도로 단련 된 데이지의 눈가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단정히 메이드복을 갖춰 입고, 미리 식당에 가서 주인님을 기다린다.
평소라면 주인님이 방에서 나오실 때까지 방문 앞에서 대기했을테지만.
오늘은.
….
괜히 울적해지는 것 같아, 데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더 생각하지 말자.’
이미 분에 넘치는 애정과 총애를 받고 있으니까,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그러니까. 감히 불경하게도 주인님을 상대로 불순한 생각을 품지 말자.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주인님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아.’
데이지는 깨달았다.
주인님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토록 단단히 다짐했던 게, 순식간에 쓸모가 없어져서.
가슴이 욱신거리고, 꽉 조여와서.
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나는 감히, 주인님을 사랑하고 있구나.
데이지 블랙우드가 주인님께 품은 건 동경도, 충성도 아니라, 스칼렛 체페슈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 뿐이구나.
‘죄송해요.’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감히 주인님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주인님께서 바라신다면 순결을, 육신을 얼마든 내어줄 수 있다.
주인님께서 바라신다면, 주인님의 아이를 잉태할 수도 있다.
그것이 데이지가 주인님께 바치는 충성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완전 반대야.’
주인님에게 순결을 드리고 싶다.
주인님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
왜냐면.
주인님을 사랑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데이지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데이지가, 눈물을──.
“데이지.”
눈물을, 또륵, 흘릴 때.
데이지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정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
“왜 울고 그래.”
뚝.
속삭여주며, 그녀의 눈물을 훔쳐주는, 그녀의 주인님.
곱게 접힌 눈웃음, 부드러운 미소.
아.
나의 주인님.
“오늘 밤에 찾아오렴.”
제 모든 건 당신의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