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3 시험 중 (3)
시험 시간이 다가왔다.
수 많은 종류의, 랜덤으로 배치 된 마물과, 온갖 종류의 마법을 한데 엮어 만들어 낸 시험장의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면, 배정된 마물에 따라, 마물이 주로 서식하는 서식지가 시험장 안에 전개 된다.
호명하는 생도들이 하나씩 입장하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누님에게 말했다.
“누님.”
“응?”
“지금 과목이 ‘마물의 생태와 습성’이잖아.”
“응.”
“그럼 이 과목에서 보고자 하는 건 배정 된 마물의 습성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처리하는지겠지?”
“아무래두.”
“근데 만약 내가 그런 거 없이 일격에 죽이면 어떻게 돼?”
“만점일걸?”
“그런가?”
음.
그야 물론 능력주의로 따지자면, 어떤 마물이 배정 되든 일격에 죽일 수 있다면 만점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과목명이 있는데 그래도 되나?
“모르겠어. 나두 1학년 때 필기 시험 본 게 다라서.”
“누님도 잘 몰라?”
“나도 이 과목은 이번이 첫 실기야.”
그렇구만.
나는 뒷쪽에 서서 생도들의 입장을 지켜보던 조교를 불렀다.
“부, 부르셨습니까?”
“그렇게 겁 먹진 마시고요.”
식은땀을 흘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딱히 패악질을 부린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겁을 먹었지.
“히익. 아, 그, 죄송합니다. 네.”
“아, 예…. 질문할 게 한 가지 있어서 불렀습니다만.”
어쩐지 진정을 못 하고 있는 조교에게 의문 사항을 전달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조교는, 교수에게 물어보고 올테니 잠깐만 기다려달라 빌고는 자리를 떴다.
“뭘 저렇게 겁을 먹고 있담.”
“…그러게?”
누님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다급하게 뛰어가는 조교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누님?”
“…아, 응. 글쎄. 그냥 지레 겁 먹은 거 아닐까?”
“그런가.”
하긴. 체페슈가 어디 보통 귀족 가문도 아니고.
눈 앞에 가주랑 그 누나가 학생이랍시고 있으면 겁 날 수도 있지.
이해한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아까의 조교가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그, 교수님께서, 일격으로 마물을 쓰러뜨린 경우에는 다른 마물로 두 번 더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기신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한 번은 운이거나 상성을 탄 경우일 수도 있으니, 다른 마물이라도 일격에 죽일 수준인지 두 번 더 테스트 해본다는 뜻인 것 같다.
이 정도면 공정하다고 볼 수 있나?
“아,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하비다, 감사합니다.”
혀 깨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되돌아가는 조교의 등 뒤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으니,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왜?”
“아니. 그냥….”
왜 당기느냐는 눈으로 누님을 보니, 되려 내 시선을 피한다.
우물쭈물.
계속 눈치를 주자 나를 흘긋 보며 입을 오물거리다, 작게 내뱉는다.
“…나 좀 보고 있으라구. 밤새 크리스티나 예뻐해주고 왔잖니.”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보는 눈이 많으니 덮칠 수도 없고.
아니지.
“덮칠까?”
“무무무무슨 소리를.”
“마침 야외네.”
“야!”
시끄러워라.
양산을 든 손을 빼고 나머지 한 쪽 손으로 내 가슴팍을 투닥거리며 화내는 누님을 달랬다.
“그러게 누가 꼴리게 하래?”
“내가 언제 그랬니!”
달래는 게 아닌가?
아무튼.
누님과 한참을 투닥거리고 있으니, 곧 누님을 호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 서 있던 생도들의 시선이 은근히 쏠렸다.
선망, 경외, 그런 부류의 감정들이 눈빛을 타고 느껴졌다.
지난 1년간, 그리고 함께 2학년을 보내 온 그들에게, 레티시아 체페슈라는 여인은 경외의 대상인 듯 했다.
애초에 질투나 시기 따위를 하기엔 너무나도 드높은 곳에 있다는 듯 한 시선들을 누님은 여유롭게 받아냈다.
시험장 입구로 걸어 간 누님이 날 향해 슬쩍 돌아보았다.
“네게 보여주긴 좀 부끄럽지만. 잘 보고 있으렴.”
누님은 시험장에 입장했다.
곧바로 나타난 마물은 오거.
약점이라곤 없는, 상급으로 치는 마물인 오거를 보고서도 누님은 여유로웠다.
오거가 누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한 손에 거대한 혈창(血槍)을 들고서.
레티시아 전용기.
적창(赤槍), 거인 죽이기.
콰앙!
마치 운석이라도 내리 꽂히는 듯한 강렬한 굉음.
거대한 창을 들고서 단 일격으로 꿰뚫고는, 시험장 밖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나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와. 일격이야. 역시 레티시아 님….”
“다음 마물은 뭘까?”
“뭐든 일격이시겠지.”
그런 누님의 활약에, 역시는 역시라며 혀를 내두르는 2학년 생도들.
나는 미묘하게 신경이 거슬리는 것을 느꼈다.
‘누구 마음대로 누님 이름을 입에 담아?’
아니.
쪼잔한가?
존나 쪼잔한 거 같긴 한데.
그냥 괜히 좀.
쪼잔한 거 같아서 뭐라고 말은 못 하겠는 게 더 신경에 거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누님은 잇따라 등장한 트롤 세 마리와, 드레이크 한 마리를 연달아 일격에 분쇄시키며 당당히 만점을 얻어냈다.
“세상에. 드레이크까지.”
“트롤은 어떻고? 세 마리를 동시에 베어내셨잖아.”
“역시 레티시아 님.”
누님이 시험장에서 나오자, 조교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제국의 일곱 기둥이시자 적법한 체페슈 공작령의 주인이시고, 영원불멸 제국의 밤을 평화케 하시는 밤의 지배자이신 스칼렛 체페슈 공작 전하 입장하시겠습니다!”
음.
사실 체페슈 영지에 있을 때에는 저런 수식어를 붙여가며 나를 부를만 한 일도 없었고, 아카데미에서는 자잘한 격식 같은 건 다 생략해서 그런지.
솔직히 조금 오글거린다.
남들은 다들 와 와 하고 동경하는 듯 한 얼굴이지만.
나는 “나 완전 멋있게 말한 듯” 따위를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듯 한 조교를 슬쩍 보고는 시험장으로 입장했다.
흔한 돌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험장에 발을 내딛자, 내 인기척에 반응하듯 순식간에 바닥이 늪지대로 변했다.
일종의 소환 마법인가.
작게 감탄하면서도, 질척한 늪의 감촉에 기분이 나빠져 그림자로 발판을 만들어 위에 올라서자, 이윽고 트윈 헤드 오거가 나타났다.
솔직히.
오거는 일반적으로 딱 정해진 서식지나 약점이 없다.
그냥 존나 튼튼하고, 존나 세다.
그게 다다.
그래서 죽이는 방법도 정공법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누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카데미측에서 일반 생도들을 시험하는 용도로 내기엔 곤란한 것들을 내주는 것 같은데.
이럴 거면 오거 같은 걸 굳이 생포해두지 말든가.
게다가.
“힉.”
“허억. 왕님. 왕님. 어째서 우리 노려본다?”
“형제야. 왕님이 우리를 노려본다.”
“우리가 잘못했다. 살려달라.”
오거라는 놈들이 날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거 참.
어이가 없네.
“내가 왜 너희 왕이냐.”
“왕님은 왕님이다.”
“맞다. 왕님은 왕님이다….”
얘기가 안 통하는군.
그냥 죽이기로 했다.
“사, 살려달라. 뭐든 말 듣겠다.”
“맞다. 제발 우리 살려달라….”
와그작.
그림자를 크게 부풀려, 용의 턱과 같은 형상을 띤 한 그것이 오거를 단숨에 삼켰다.
오거는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절명.
시험장은 일순 조용해졌다가, 이윽고 다시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다음 마물은.
‘와이번이네.’
진짜로 딱히 약점 없고 상대하기 어려운 마물만 내놓는 느낌인데.
그래도 내 입장에선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필중」을 부여한 「선」을 쏴버리면 간단히 목을 따버릴 수 있으니까.
다음은 데스나이트였는데, 이건 진짜가 아니라 환영 마법을 섞어 만들어 낸 더미라고 한다.
진짜로 아카데미 내부에 데스나이트를 반입한 거였으면 어이가 없을 뻔 하긴 했는데.
아닌가. 와이번이랑 트윈 헤드 오거도 만만치 않긴 한데.
아무튼.
데스나이트라.
구울을 부리는 입장에서, 언데드인 데스나이트가 혐오스럽진 않았다.
막말로 까마귀 부대의 구울들을 굳이 분류하자면 데스나이트일테고.
다만 흑마법으로 인해 데스나이트가 됐느냐의 차이일 뿐.
원치 않았을 사후를 겪는 그들에게 조금 애도의 마음을 품고, 간단히 데스 나이트까지도 처리했다.
당연히 결과는 만점.
직접 점수를 들은 건 아니지만, 만점이 아닌 게 이상하니까 만점이겠지 뭐.
별로 힘들이지도 않아서 개운한 기분으로 시험장 밖으로 나와, 누님을 찾았다.
“역시 체페슈이십니다. 공작 전하도, 레티시아 공녀님도 무척 대단….”
“맞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공녀님께 직접 지도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저것들이?
아까 누님을 향해 레티시아 님이니 어쩌니 중얼거리던 놈들이 누님의 곁에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 하고 한 소리 하려던 그 때.
“너희. 내가 귀찮게 굴지 말라고 했을텐데.”
“예?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너, 이름이 뭐지?”
“아, 알렉스입니다. 저번에 알려드렸는데.”
“알 바 아니야. 아무튼 말이야. 왜 너 같은 버러지가 자꾸 나나 스칼렛 옆을 얼씬 거리는 거야? 네가 낄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해?”
“그런 게 아니라….”
“너 때문에 스칼렛 표정이 안 좋아졌었다고. 어떻게 책임 질 거야? 스칼렛이 표정을 찡그릴 정도로 네 목숨의 값어치가 크다고 생각해?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이해가 안 가는걸. 내가 네 이름을 모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
“저번에 말해줬다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의 이름을 내가 왜 기억해야 하지?”
…?
누님?
표독스런 눈빛, 경멸을 담은 목소리. 서리가 인 듯 차가운 말투.
‘악역 영애’를 연상하게 하는 누님의 모습.
결국 누님에게 치근덕 거리던 놈 하나가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
“저희 가문은 유서 깊은 백작가….”
“여기서 네 가문이 왜 나오는 거야? 네가 가주야? 아니지. 네가 가주라고 해서 뭐가 달라져?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 한 건 아니겠지. 체페슈인 나에게?”
“그런 게 아니라….”
“쯧. 버러지 같은 것. 하다 못해 기껏 하는 게 제 가문 들먹이기라니.”
“….”
뒤이어 놈의 옆에서 기회를 엿보던 남자까지, 누님의 경멸 어린 말에 격침 당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