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 영애의 남동생이 되었다-43화 (43/140)

EP.43 대수림 (4)

악마에 대한 사실은 적당히 마족으로 바꿔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 학장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출석으로 인정되는 2주짜리 휴학을 받아내고서, 나는 체페슈의 본성으로 돌아왔다.

지하감옥에 가둬둔 놈을 심문해 정보를 얻어낼 셈이었는데….

“…왜 이런 꼴이야?”

“끄으윽. 끄윽….”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살아있다고? 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쟤가 조절을 잘못 했나봐….”

먼저 가서, 놈의 상태를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던 누님이 내 눈을 피했다.

나는 간수를 시켰던 까마귀를 슬쩍 쳐다봤다.

“….”

묵묵부답.

나는 다시 누님을 바라보았다.

누님의 상태창에 새로 생긴, 「고문기술자(C)」라는 단어가 무척 선명했다.

“…충성심이 깊어 그랬다 생각하겠다.”

누님을 타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님이 시키는대로 했었을 까마귀에게 벌을 줄 수도 없어서, 묻고 넘어가기로 했다.

씁.

뭐지?

깨워선 안 될 걸 깨워버린 것 같은데.

“놈에게서 얻은 정보는?”

“모두 기록해두었습니다.”

나는 까마귀가 내민 종이다발을 받았다. 놈이 심문 과정에서 말했던 것들이 모두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그 내용물을 눈으로 슥 훑어보다, 누님을 슬쩍 바라봤다.

“왜, 왜?”

“아니.”

살가죽을 얇게 벗기고, 복부를 갈라내서 내장에 벗긴 살가죽을 걸어 묶어버린 다음….

‘음.’

이 부분은 넘기자.

내 옆에서 눈치 보며 땀 흘리는 사랑스런 누님이 무슨 짓을 했을 지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충 놈이 뱉은 정보들을 취합한 뒤, 이미 죽어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몰골인 놈에게 다가갔다.

툭─.

그림자가 스르륵 일어서, 놈의 머리통을 끌어올려 나와 눈을 마주 보게 했다.

“아직 미치지는 않았나.”

이렇게 끔찍한 꼴이 되고 나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놈이 무척 뛰어난 정신력의 소유자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부알이 네게 이런 미래를 알려주진 않았나보지.”

“…!”

악마와 계약한 덕분이거나.

이 경우엔 아마 후자일테지. 놈의 정신력이 그토록 강하다곤 생각할 수 없다.

정확히는, 악마와의 계약으로 인해 이미 어느 정도 정신이 맛이 가버린 상태가 되었다는 표현이 옳다.

이미 미쳐버렸기에, 미치지 않는다.

놈은 그런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내가 악마의 이름을 담으니,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 증오가 깃들었다.

“네, 놈! 네노옴! 스칼렛 체페슈─!”

걸레짝이 된 몸으로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그마저도 제 목숨을 담보로 악마에게서 받아온 힘일테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가 그리 화가 나는 지 모르겠군. 결투를 제안한 건 내가 아니라 너잖나.”

“네놈 때문에! 내 계획이! 내 계획이이이─!”

“쯧. 어미가 자식 교육을 잘못한 모양이야.”

내 불꽃 패드립에 누님이 뒤에서 숨을 들이키는 것 같았지만, 뭐, 어차피 친부모도 죽여버린 몸이라지 않은가.

그야 말로 이제와서다.

“더러운, 더러운 흡혈귀 놈이, 어머니를 입에 담아?! 죽여버리겠다…!”

“그런 놈이 제 어미가 일군 왕국을 망치려 했는가.”

“필요한 일이었다!”

완전히 광신도나 다름 없었다.

나는 귀찮음을 느꼈다. 얻어낼 정보는 누님이 얼추 모두 얻어냈으니, 이제 놈은 더 필요 없었다.

악마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는 이유만 아니었다면, 진즉 모가지를 쳐냈겠지.

“부알을 불러내라.”

“내가, 내가 그럴 것 같으냐? 내가 부르고 싶다한들 쉬이 응답해주시는 분도 아니──.”

서걱.

고문으로 지쳤던 놈의 눈에 생기가 도는 듯 했기에, 나는 그것을 짓밟아줄 요량으로, 놈의 귀를 잘랐다.

전조조차 없었던 그림자의 암습에 귀를 잃은 놈이 발광했다.

“끄아아악!”

“내 누님이 나보다 두려운가.”

나는 웃었다.

누님의 손으로 고문 당했기에, 누님에게는 고분고분 구는 듯 하더니, 정작 내게는 바락바락 대드는 꼴이 우스웠다.

“악마와 계약해서 타락해버린 엘프의 재생력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네 몸으로 시험해주길 바라나?”

“끄윽, 끄으윽.”

스륵.

그림자가 움직였다. 녀석에게 보란 듯 느릿하게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보곤, 놈의 동공이 떨렸다.

“장담하마. 누님처럼 능숙히 네 몸을 해체하지는 못할지언정, 나는 네가 죽지 않고서 네 몸 안의 장기가 낱낱히 해체되는 꼴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주겠다.”

“무, 뭐? 스칼렛. 누나는 딱히 그런 거에 능숙하지 않은뎃?”

뒤에서 빽 지르는 고음이 들려왔지만 무시한 채,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놈은 잠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전부 말하마….”

놈이 굴복했다.

“스칼렛! 스칼렛? 누나 말 안 들어주니? 야!”

시끄럽구만.

*

프레이르 대수림.

체페슈를 등에 업은 여왕과, 궁전 내의 실권을 잡은 귀족들의 대립이 고조되고 있던 때.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왕자를 마족과 계약하도록 유혹한 못된 귀족들」─.

소문을 들은 귀족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체페슈의 지원을 받은 여왕을 함부로 손 댈 수는 없어도, 대부분의 실권을 빼앗은 그들이, 왕국 내에서 그들을 욕하는 소문이 퍼질 때까지 눈치 채지 못 할 린 없었기에.

그들은 이것이 그들 중 한명이 배신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네놈이 배신자냐!”

“그렇게 말하는 네놈이야말로 우리를 배신한 놈이렷다!”

그렇게.

귀족들이 엎치락뒤치락 서로의 등에 칼을 꽂으려 할 때.

급한 전보가 전달 되었다.

「체페슈의 까마귀 무리가, 대수림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귀족들은 내전을 멈췄다. 이미 꽤 많은 수의 동포들이 죽었지만, 그 일은 일단 묻어두기로 했다.

항거할 수 없는 폭력이 다가오는 중이었기에.

“막아라! 이건 내정 간섭이다! 어떻게든 막아─!”

“지, 지금이라도 여왕에게 항복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다고 살 수 있을 것 같나? 어떻게든 항전해야하네─!”

“밤의 주인이 온다! 우리들의 영원한 주인이 온다─!”

“이 배신자놈!”

다만 아무리 단결하려한들, 한 번 내전으로 분열되었던 그들이다. 쉽사리 의견이 하나로 모일 리 없었다.

결국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몇몇 귀족들이 자신들의 사병을 긁어모아 대비하고,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의 살 길을 찾아나섰다.

“숲 속은 우리의 영역이다! 제아무리 체페슈의 까마귀라고 해도, 숲에서 우리를 이기진 못한다!”

그렇게 귀족들이 나름의 만반의 준비를 갖춘 날, 밤.

─대수림의 밤을 밝히던 모든 빛이, 일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왔다! 까마귀가 왔다─!”

어둠 속에서, 한 엘프 장교가 소리 쳤다.

그 외침은 메아리처럼 숲 속에 울려퍼졌다.

“…왜, 왜 아무도 답이 없지?”

엘프 장교는 불안해졌다. 그의 외침을 들은 동포가 있다면, 대답을 돌려주었을텐데. 그것도 아니라면, 까마귀와의 전투로 발생하는 소음이라도 생겨야 정상이지 않은가─?

“어, 어이! 아무도 없나? 누구라도 대답해보게!”

…….

침묵 속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엘프는 그것이 동포의 대답이라 생각하며 반색했다.

그럼 그렇지! 멀리 있어서 잘 안 들린 모양이었구만! …이라고 생각하기에, 아까 전에 그가 외친 소리가 얼마나 숲 속에 잘 메아리 쳤는지, 그는 잊지 못했다.

“…이, 이런 씨발! 누구라도 대답해주게!”

「─고개를 조아려라.」

숲 속의 어둠 너머에서, 작게, 그러나 귓가에 때려박듯 선명한 속삭임이 전해져왔다.

「숲과 달의 자식들은 듣거라.」

「한때 달 아래 적법한 군주였던, 그대들의 주인이 돌아왔느니. 그대들이 정녕 달의 자식을 자처한다면.」

「굴복하라.」

“시끄럽다, 빌어먹을 까마귀 새끼들! 어찌 흡혈귀 따위가 우리 엘프의 주인을 자처하느냐…!”

어느덧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모든 불빛이 사라지고, 어둠밖에 남지 않은 칠흑 속에서부터.

「복종하라.」

사신의 종소리와도 같이.

“제발, 제발! 꺼져라! 이 숲에서 꺼져!”

엘프는 온 몸이 흠뻑 땀에 젖은 것을 느꼈다. 짠 맛이 났다. 그것이 눈물인지 땀인지, 엘프는 알 수 없었다.

눈이 미친 듯이 떨렸다. 저, 저것들이다. 한때 그들의 주인이었던….

혹자들은 말한다.

웨어울프도, 엘프도, 드워프도, 흡혈귀도─ 모두 달 아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종족이다.

허나 낮시간에 약해지는 종족은 흡혈귀 뿐이다.

웨어울프는 낮에도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이 있다. 그들은 다만 달 아래 특히나 뛰어난 재생력을 가질 뿐이다.

엘프는 낮에도 뛰어난 활솜씨와 정령술을 부릴 수 있다. 그들은 다만 달 아래에서 마력 회복력이 더욱 높아질 뿐이다.

드워프는 낮에도 훌륭한 야장이다. 그들은 다만 달 아래에서 달의 정기를 받아 더욱 훌륭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흡혈귀는?

밤에는 누구보다 강할지 몰라도, 태양 아래에 섰을 때 어느 누구보다 나약한 것이 바로 그들 흡혈귀였다.

그런데 어찌 흡혈귀가 그들을 대표하는 인외종이며, 가장 고귀한 대접을 받는가?

「경외하라.」

진조(眞祖).

태양조차 완전히 극복했던, 그들의 왕이 있었기에.

왕의 힘을 나눠받은 흡혈귀들이, 더 이상 낮에도 약하지 않게 되었기에.

「경배하라.」

“흐억! 흐어억!”

엘프는 이제 기절할 지경이었다.

어찌, 어찌!

「받들어라.」

그들이 한낱 흡혈귀의 시종이 되었던 먼 옛날이 떠올랐다. 이제는 대수림의 내전에서조차 살아남은 원로들밖에 기억하지 못 하는, 엘프 장교는 늙은이들의 옛날 얘기로밖에 듣지 못했던─.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그들의 왕이.

「그 이름은 체페슈.」

어찌 지금 여기에 재림했단 말인가──!

「너희의 왕이 돌아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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