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 영애의 남동생이 되었다-16화 (16/140)

EP.16 레티시아 (4)

레티시아 체페슈는 마치 세상이 멈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 좋은 말만 한 가득이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녀가 마음을 홀가분 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밤마다, 상스럽게도…, 만약 동생이 알게 된다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두려울만한 짓을 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아마 계속 할 테지만.

오히려 그런 관계로도 만족할만큼, 레티시아는 그녀의 동생을 사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만족하지 못하겠지. 너무너무 사랑하기에, 어찌 해도 욕망이 마구 솟아오른다. 불만족이다. 당장이라도 동생이 깨어 있을 때에 마구 키스하고 싶었다.

다만, 동생의 옆자리라도 좋다. 아예 동생과 멀어지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감히 허락 되지 않을 자리였다. 용서 받지 못할 관계였다. 그러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누님을 좋아해도 될까.”

정말 뭘까.

그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가슴이 벅차올라서ㅡ, 레티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저 동생의 곁에 있기만 해도 좋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의 최대치란 동생의 옆자리였으니까.

스칼렛이 그녀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품에 안더라도, 그 여자에게 자신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던 사랑을 속삭이더라도 괜찮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행복이었으니까.

그랬는데.

“누님을 내 여자로 삼기로 했어.”

이건.

ㅡ. 벅차올랐던 가슴을 진정시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동생이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으니까.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로해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하니까.

레티시아는 동생이 조금씩 읊조리는, 아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을 진심에 마주했다.

자신이 몰랐던, 고민하고 또 고민해 오늘에서야 스스로 결론을 내린 듯 한, 어느새 또 한 걸음 훌쩍 성장해버린 동생.

가슴이 아팠다.

사랑스런 그가 그토록 괴로워함에도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자신이 자책하면 동생이 슬퍼할테지. 그렇게나 상냥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래서 이번에 헤일리 영지에서 또 새로운 여자가 생긴 걸까.

누군지는 몰라도,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 했다. 질투가 났다.

그래도. 그것보다 더욱 행복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동생의 진심이란 이렇게나, 사랑스럽고, …가슴을 간질거리게 했다.

“누님은 언제나 날 위해 헌신했는데, 난 나만 생각했지.”

누구보다 그녀를 생각해주던 동생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왜?

레티시아는 알 수 없었다. 왜 그가 사과하는 걸까.

나는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서, 진정하려 해도 도저히 되지 않아서, 터질 것만 같은데ㅡ.

손을 뻗었다. 고개 숙인 그가 보였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참아야지. 동생에겐, 웃는 얼굴만 보여주어야 하니까.

떨리는 손으로 스칼렛의 뺨을 감쌌다.

고개 든 동생과 눈을 마주했다.

그의 두 눈에, 그녀의 얼굴이 담겼다. 꼴사나워. 울고 있잖아.

레티시아는 웃었다.

바보 같은 동생. 사과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이다지도 나는 행복한데, 어째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네가 사과하는걸까.

아까도 말했으면서.

너로 인해 행복해진 사람이 있었다고.

너는 알고 있을까.

그 여자보다 내가 먼저, 훨씬 더 먼저, 너에게 구원 받은 여자라는 걸.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멋대로 얘기를 시작했다. 잠자코 들으라며 동생을 야단치기도 했다. 손가락에 닿은 동생의 입술은 참으로 야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그야, 사랑하는 남자가 누구보다 솔직하게 먼저 얘기해주었는걸.

그녀도 솔직해지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동생에게도.

꿈 꾸듯 과거를 얘기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동생조차 사랑스러웠다.

좋았다.

무척 숨 가쁜 해방감이었다. 꼭 알몸이 된 기분이었다. 부끄럽고, …하지만 동생 앞이라서 좋았다는 점이 같았다.

동생에게 욕정하는 누나라니, 얘기하면서도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었다.

레티시아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 말하면서 아래가 젖었음을 느꼈을 땐 그녀는 스스로가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서 밤에 널 재워놓고….”

그녀의 가장 큰 죄. 잠든 동생을 탐했던 수치스러운 과거.

그마저도 뉘우치지 못 하고, 앞으로 평생토록 반복하려 했던, 추잡한 욕망의 실체를 고백할 때, 레티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와서도 뻔뻔할 순 없었다.

솔직함이 언제나 미덕이 될 순 없는 법이니까.

“미안해.”

그래서 사과했다. 아까 스칼렛이 사과 했을 때 자신이 어쨌더라, 따위의 생각조차 않고,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랬더니.

“레티 누님.”

아마, 영악한 그녀는 이마저도 내심 기대했을지 모른다. 스칼렛이라면 용서해줄거야ㅡ. 같은.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커다란 두려움이 있었다.

버림 받으면 어떡하지.

아주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그것은 그녀에게 커다란 두려움이 됐다.

아까까지만 해도 벅차 오르던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얼어붙었다. 그래야만 날카로운 송곳에 찔려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경멸 대신 따스한 부름이었다.

레티 누님.

애칭이었다. 이렇게 불린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심장이 단숨에 녹아내렸기에.

단숨에 봄이 찾아와 꽃이 피듯, 식었던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기에.

“그게 아니잖아.”

무, 뭐가?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없었다.

“내가 먼저 한다.”

…아.

“그게 아니잖아”라고. 아마, 미안하다고 말한 내 말에 대한 답….

그럼, 뭘 먼저….

“잠깐만. 너야말로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으면서….”

동생은, 스칼렛은 들은 척도 않았다. 다만 진지한 얼굴로, 세상 누구보다도 따스한 온기를 담은 미소를 짓고ㅡ,

“좋아해.”

세상이 멈추었다.

정말로.

단 둘만 남아버린 세상에서, 심장이 터질 듯 사랑하는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홀린 듯 그녀 역시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손이, 부드럽게 얽힌다.

“나랑 사귀어 주세요.”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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