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단련, 대련 (2)
내 고유특성「부여」는, 내 특성이자 마력속성인「공空」과 무척 잘 어울리는 고유특성이다.=
부여 대상 A를 지정 후, B라는 속성을 정해 부여할 수 있다.
심플하면서도 활용도가 무척 높은 이 고유특성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 마력을 무한하게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예를 들어.
「관통」이라는 속성을 부여한다면, 사용하는 마력의 정도에 따라 어떤 방어라도 단숨에 뚫어버릴 수 있겠지.
특성에「관통」을 가지고 있는 자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지금에야 능숙하지 않아서 하나의 속성밖에 부여하지 못하지만, 만약 두 개 이상의 속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면?
「관통」에「출혈」을 더한다거나,「감염」이라던가, 혹은「마비」따위를 더 해서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서.
손 끝에 작은 점이 맺힌다. 흑점黑点. 손가락을 죽 긋자, 흑점이 길게 늘어지며 선이 되었다. 고유특성「연결」의 효과다.
손 끝에 다시 흑점을 맺고, 마력탄을 쏘듯 흑점을 날리자, 작은 구체가 날아가는 대신 그 궤적에 검은 선이 죽 남는다.
「부여」와 마찬가지로 아직 점을 선으로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능숙해지면 면, 넘어서 공간 자체를 집어삼키는 것도 가능하겠지.
원래 점, 구체의 형태로밖에 만들지 못하는 허무 속성의 마력이, 고유특성「연결」을 만나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해진 것이다.
애시당초 구체의 형태라는 것도, 실상은 1차원의 점이지만 그것이 너무 커져서 주변의 공간을 왜곡함으로써 입체적인 형태로 주변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 뿐이다.
응용하자면 이런 것도 되겠지.
“이렇게….”
단련장 한 쪽에 서 있는 목각 허수아비를 향해 '점'을 조준하고, 그것에「속박」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을 쏘아내면, 선을 그리며 쏘아진 마력탄이 허수아비를 맞추고 마치 구속하듯 휘감았다.
만약 저것이 밧줄이라면 엉성하기 그지 없는 구속이다. 아니, 아예 구속조차 하지 못할테지. 허수아비에 닿지도 않은 채, 빙 둘러싸듯 원을 그리고만 있으니.
하지만「속박」이 부여 되었기 때문에 한 번 적중했다면 그 이후 접촉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
저렇게 빙 두르고만 있어도, 움직임이 제한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특히 점이 아니라 선이기때문에 저것은 무엇보다 단단하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마법저항으로 끊어내지 않는 한 끊어지지 않겠지.
이래서「연결」이란 고유특성 좋은 것이다. 원래부터 선, 면, 입체적인 형태를 갖춘 마법은 정해진 대로의 위력밖에 내지 못한다.
마력포 같은 굵은 선 형태의 마법은, 애초부터 그 마법식이 굵은 선을 상정한 채 만들어진 것이다. '점'에서 출발해 그것을 무한히 연결시켜 만든 것이 아니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점'에 불과한 허무의 마력을, 무한하게 연결시켜 선의 형태로 만들어낸 나의 마법은, 상상 이상의 결속력과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
‘이건 마왕도 다르지 않아. 허무 속성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이건 무엇보다 큰 메리트였다.
마왕조차 허무의 마력을 입체적으로 다룰 순 없었다. 작은 점을 만들거나, 아주 큰 점을 만들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압도적으로 강한 육체능력으로 밀어붙이던가, 마기를 이용한 권능을 사용하던가다.
그래서 나도 내 고유특성들이 이렇게 활용된다는 걸 알았을 땐 깜짝 놀랐다.
해도해도 너무 사기 아닌가 이건.
처음에 몰랐을 땐 누님이랑 붙으면 비슷하거나 지겠다 싶었는데 고유특성이 어떤 건지 보고나니 정상 컨디션 땐 내가 지는 게 이상할 수준이었다.
물론 전투 센스가 받쳐준다는 전제 하에서.
아니 근데 이런 캐릭터가 진짜 왜 안 나왔지. 얼굴도 잘 생겼겠다 그냥 남주로 나왔어도 됐을 것 같은데.
내 몸인데 아는 게 좆도 없으니까 너무 불편하다. 분명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알 방법이 없다.
아무튼.
마지막「조율」은….
가장 별 거 없으면서 가장 중요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펙 때문에 내가 과부하 당해 죽거나, 스스로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일을 막는 역할이다.
점과 점을 무한하게「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무한한 처리 과정을「조율」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 외에도 없진 않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내 생명줄이라는 것.
아무튼 이렇게 고유특성들을 점검하며 단련을 끝내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마침 시간이 꽤 늦었기 때문에 곧장 데이지를 불렀다. 어제도 걸렀으니, 오늘은 이틀치만큼 예뻐해주었다.
오늘도 누님이 보고 있을까.
*
그 날 이후 매일매일 지하로 내려가 특성을 단련했다. 신체 단련은, 적당히 순발력만 키우는 정도로만.
어차피 마법사 타입인 내가 기사인 누님을 근접전에서 이기는 건 힘들었다. 게다가 누님은 특성까지 물리 전투 위주니까.
다만 혈통이 어디 가진 않아서, 신체능력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썩히는 게 바보인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제로 아카데미 졸업생이라면─기사 학과 기준─, 상급 기사와 비슷한데,아카데미 졸업생 평균이 60 가량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나랑 누님이 혈통빨을 너무 잘 받은 탓도 있었다.
아무튼 누님의 도움을 받아 기초 검술 정도는 익혀두기로 했다.
누님은 내가 기억을 잃기 전 기초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기사보다도 검술이 뛰어났다며 의욕적으로 내게 검을 가르쳤다.
듣기론 누님은 검 창 가리지 않는, 거의 모든 무기를 다룰 줄 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창이 제일이라고.
솔직히 한 번쯤 보고 싶었으나, 대련이 코 앞이니 비밀이라며 누님이 숨기는 바람에 창 쓰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조금 아쉬웠다. 보고싶었는데.
그래도 다음엔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착실하게 누님이 가르쳐준 대로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몸에 기억이 남아 있는지 금방금방 적응하는 게 신기했다.
누님이 만들어준 혈액 골렘과 대련하다 보면 종종,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검이 휘둘러지곤 했다.
그럴 때면 아주 깔끔하게 갈라져서 골렘을 쓰러뜨리곤 했는데, 아무래도 몸에 익은 기억이 자연스럽게검로를 이어준 것이라고 누님이 말했다.
이것만 보면 스칼렛도 재능충인 것 같은데, 그보다 더 한 누님은 도대체 어느 수준인가 싶어서 상태창을 열었다.
+++++
레티시아 체페슈
호감도: 69
근력 ▶ 144
민첩 ▶ 157
체력 ▶ 125
내구 ▶ 142
마력 ▶ 135
+++++
그새 스탯이 또 올랐다.
밑으로 더 내리자, 특성과 고유 특성창이 나왔다.
+++++
특성:「혈귀」「형形」「기사」
고유특성:「팔방미인」「경국지색」「헌신」「웨폰 마스터」
+++++
우선「가주」가 내게 넘어왔으므로, 그것 대신「기사」특성이 생겨나 있었다. 스탯도 조금씩 올랐고.
게다가 고유특성에는 만능에 가까운 재능을 뜻하는「팔방미인」에다, 비가시 스탯 '매력'과 그 외 스탯 숙련도 보정치 100%라는 사기 특성「경국지색」, 거기에 이름만 들어도 사기인 「웨폰 마스터」까지.
괜히 체페슈 남매가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본편에서도 트롤링만 안 했으면. 황자 쫓아다닐 시간에 단련했으면, 누님이 본편 네임드 누구보다 강했을텐데도.
쩝.
게다가「헌신」? 겉보기엔 좋아보이지만, 누님이 황자를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내 입장에서는 치가 떨린다.
왜 이렇게 착하고 귀엽고 아름다운 누님이 본편에서 그렇게 나오나 했더니 저거 때문인가보다. 그 정도면 헌신이 아니라 집착이나 광기 아닌가.
혀를 차면서도, 단련을 이어갔다.
어쨌든 나한테는 사기 특성이 있으니까, 실전 경험은 없어도 털리진 않겠지 싶었지만.
그거랑 별개로 누님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으니까.
*
대련 날이 되었다. 처음 말을 꺼내고 일주일만이었다.
더 단련하고 나서 해도 되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더 해봤자 나아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니까. 남은 건 실전이고, 그렇다고 저택 밖으로까지 나가며 피 튀기며 실전을 겪어보는 것도 귀찮았다.
평범한 도적이나 산적 무리 같은 게 실전경험을 쌓게 해줄리도 없고, 어디 가서 상대를 구한단 말인가?
가장 적합한 상대가 한 집에 사는데 밖을 나가는 것도 미련한 짓이다.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우습게 당하지는 않을 정도로는.
“준비는 다 했어?”
“누님은.”
“난 언제든.”
“좋아. 나도.”
누님은 내 대답에 씩 웃었다. 누님은 평소 입던 고딕 풍 드레스가 아니라, 검은색 전신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솔직히 존나 야해서 꼴렸다. 여기가 지하가 아니었으면 꼬시는 건 줄 알고 덮쳤을지도.
그에 반해 나는 무난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마법사니까. 길이는 별로 안 길지만. 지팡이도 없는데 마법사라고 해도 되나 모르겠다.
“뭘 그리 봐?”
“그냥. 원래 그렇게 입나, 다들?”
내 시선이 꽂힌 걸 느꼈는지 누님이 묻자, 나도 솔직한 감상 겸 질문을 던졌다.
“아…. 어ㅡ, 어쩔 수 없어. 나는 피로 무기랑 갑옷을 만드니까….”
자기도 좀 부끄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다급히 설명하는 누님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매번 싸울 때마다 피로 온 몸을 감싸고 무기를 만들어내니, 그 때마다 뭘 입든간에 흠뻑 젖어 더러워지는 게 문제라고.
그리고 기왕 만드는 김에 외부에서의 충격이나 침입은 완전히 차단하면서, 내부에서 밖으로의 배출은 자유로워지는 소재로 옷을 만들어 피를 사용하기 용이하게 했는데 그 결과로 만들어진 전용 전투복이라고….
솔직히 나는 저거 입을 바에는 그냥 매번 새 옷 입고 만다.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거야 내가 남자라 그런 거고, 누님 같은 미인이 전신 타이즈라니 오히려 보기 좋기만 했다.
누님이야 부끄러워 하는 것 같지만. 정작 본인도 안 입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흠.
“누님.”
“으응……. 왜? 누나 좀 부끄러운데. 부끄러운 질문이야?”
“그건 아니고.”
“그럼 뭔데?”
“다른 남자한테 그거 입은 모습 보여주지 마.”
“….”
침묵.
누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시체처럼 하얗던 얼굴이 저 정도로 빨개질 수 있구나ㅡ,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빤히 보던 누님이, 기어코.
“…어, 어어? 뭐라구?”
모른 척을 했다.
다 들어놓고. 얼굴까지 그렇게 새빨개져선 모른 척이라니 괘씸해져서, 나는 되려 배에 힘을 주고 아주 크게 말했다.
“다른 남자한테 그 모습 보여주지 말라고.”
“힉.”
내 목소리에 되려 놀란 듯 움찔거린 누님이, 그제야 모른 척 할 수 없단 걸 깨달았는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댔다.
“…그러니까…. 어, 왜…?”
평소 같았으면,“누님이 걱정돼서 그러는구나? 우리 동생 착해.” 같은 대답이나 할 누님이 저렇게 부끄러워하니, 뭔가 신이 나서인지 나는 더 당당하게 배짱을 부렸다.
“질투나니까.”
“…!”
누님은 또 말 없이 끓는 주전자마냥 삐이이이익 소리를 냈다. 저거 터지는 건 아닌가 몰라.
그나저나 이대로라면 계속 만담이나 할 것 같아서, 나는 자세를 잡았다. 누님이야 아직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만, 먼저 선공을 하면 알아서 정신을 차리겠지.
“간다.”
“으. …뭐, 뭘?”
쾅!
「폭발」이 부여 된 흑점이 쏘아졌다. 「연결」대신, 흑점을 허공에 다발로 만들어 무차별하게 탄환처럼 발사했다.
“앗!”
그제야 놀란 누님이 순식간에 제 전신을 혈액으로 뒤덮어쓰곤, 마찬가지로 피로 만들어진 방패를 들어 폭발을 막았다.
뒤이어서, 쾅! 쾅! 방패에 부딪쳐 터지는 흑점들 뿐 아니라, 다발로 뿌린 덕에 광범위하게 폭발이 일어났으나, 폭발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붉은 인영이 그 속에서 팟 하고 뛰쳐나왔다.
“너어. 비겁하게!”
“누가 정신 놓고 있으래?”
누님은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를 날개처럼 펼쳐, 허공에서 자세를 잡고 검붉은 마상창을 들었다. 피와 그림자를 조종하는 혈귀 특성과 마력에 형태를 부여하는 특성「형形」의 완벽한 조화였다.
나도 어느 정돈 따라할 수 있을테지만, 저렇게 갑옷이며 창을 만들기는 어렵겠지. 만든다 하더라도 누님의 완성도를 따라가긴 어려울 것이다.
“각오해!”
누님이 단단히 삐친 듯 했다. 손에 든 마상창에 응집되는 마력량이 장난 수준은 아니었다. 대련을 하려했더니 서로 한대씩 주고받고 끝나게 생긴 마당이다.
나도 손 끝에 흑점을 집중했다.
누님이 투창하듯 자세를 잡고, 나도 흑점에「상쇄」를 부여했다.
흑점이 점점 커져서, 내 주먹보다 커졌을 때, 누님이 창을 던졌다. 나 역시 손 끝에서 흑점을 방출했다.
쾅!
터지듯 나온 소리가, 누님이 창을 던져서 나온 소리인지, 내가 흑점을 방출해서 나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
누님의 창과 내 흑점이 만났을 때는, 아무 소리 없이 둘 다 상쇄되어 사라지고 말았고.
“….”
잔뜩 삐친 듯 나를 노려보는 누님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