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두근두근 MT기간
* * *
한창 고기를 구우면서 다들 떠들고 있던 학생들 중 한 명이 술을 찾았다.
“야! 술은 안 가지고 왔어?”
“교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잖아. 걸리면 어떡하려고.”
“취할 정도로 마실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안 된다니까?”
“괜찮아!”
밥을 먹고 난 이후 물에 들어가야 해서 술을 먹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 학생은 오늘 곧 죽어도 술을 먹고 싶은지.
혼자 술이 모여 있는 아이스박스로 달려가 병맥주를 두 개 들고 왔다.
“술 마실 사람!”
“나!”
“나도!”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는지 한 명이 먹는다고 말하자 득달같이 아이스박스로 달려가 술을 꺼내왔다.
“크으! 역시 바비큐에는 술이지!”
“아우, 좋다!”
하는 짓 보니까 딱 봐도 취할 때까지 마실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아까 술 먹는 걸 걱정한 남자애가 술 마시는 애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네 정말 괜찮겠어?”
“안 죽어 안 죽어.”
“에휴...네들 알아서 해라.”
이미 술이 들어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을 것 같자. 말리던 애도 자리를 피해 고기를 먹으러 갔다.
서로들 잘 어울리며 고기와 구운 야채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한예령이 어디있는지 찾았다.
‘뭐하고 있으려나.’
주변에서 분위기 좋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으니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자 저 멀리 펜션 입구 앞 계단에 혼자 앉아있는 한예령을 볼 수 있었다.
혼자 떨어져 아무것도 먹지 않는 그녀를 보고 같이 먹을 겸 접시에 고기와 야채를 담고 있는데.
옆에서 한 남자애가 고기가 든 접시를 들고 한예령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남자는 꽤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한예령에게 다가가 고기가 든 접시를 내밀며 말을 하자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한 나는 그쪽으로 신경을 기울였다.
“여기서 혼자 뭐하고 계세요?”
“…….”
이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한예령은 그가 들고 있는 접시를 보더니 말했다.
“혼자 생각할 게 있어서요.”
당신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돌려 말하는 말이었지만 남자애는 얼굴이 두꺼운 건지 알아듣지 못한 건지 자신이 들고 있는 접시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들 먹고 있는데 이것 좀 드세요.”
남자가 내민 접시를 잠시 바라보던 한예령은 내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내가 접시에 고기와 야채를 담고 있자 그 모습을 보고 거절했다.
“저는 괜찮아요, 먹고 싶을 때 가서 먹을 게요.”
설마 자신의 호의가 거절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남자는 잠깐 자세가 굳었다.
“에이, 그래도 한 번 드셔보세요. 엄청 맛있어요.”
한 번의 거절에도 물러갈 생각이 없는지 남자애는 한 번 더 권유를 했고.
그런 꼴을 보고 있던 나는 놈과 똑같이 고기와 야채가 담긴 접시를 가지고 한예령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어요?”
멀리서 들었던 남자와 똑같은 말을 꺼내 과연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 하며 기다리자.
내 얼굴을 한 번 바라본 한예령은 아까 전 남자와는 다른 대답을 말해줬다.
“저런 분위기는 좀 어색해서요.”
옆에서 그 대답을 들은 남자애는 아까 전 혼자 생각할 게 있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표정을 고친 남자애가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나를 보고 자신과 비교해 볼 생각인지 인사를 한 번 건넨 뒤 이리저리 훑어보는 시선을 보이자.
생판 처음 본 사람을 재려는 행동에 불편해 그냥 대놓고 말했다.
“처음 본 사람을 그런 눈으로 봐요?”
“네? 제가 뭘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침이 떼는 놈을 보자 더 대화해봤자 답이 없을 것 같아
의도적으로 놈을 무시하고 계단에 앉아 있는 한예령의 옆에 접시를 든 채 털썩 앉았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예령이 나를 빤히 바라봤고 옆에 있던 남자애는 덥석 자신이 찜해둔
자리를 내가 털썩 앉아버리자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슬쩍 곁눈질로 나를 노려봤다.
“여기 앉아도 괜찮죠?”
“네, 괜찮아요.”
이미 앉아놓고 웃으며 허락을 구하자 한예령은 슬쩍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대놓고 허락도 받았겠다. 방금 그릴에서 꺼내와 따끈따끈한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으음...”
그릴에 숯으로 구워서 그런지 물씬 나는 직화의 냄새와 알맞게 잘 익은 고기의 육즙을 느끼면서 고기를 먹자.
옆에서 한예령이 그런 내 모습을 빤히 쳐다봤고 그런 그녀의 시선에 나는 미리 챙겨온 젓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음, 맛있는데 하나 먹어볼래요?”
“네, 잘 먹을게요.”
내가 먹고 있는 고기가 꽤 맛있어 보였는지 한예령은 아까 거절했던 것과는 달리 젓가락을 받아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으음...맛있네요.”
한예령은 고기를 입에 넣고 씹은 후 맛있다는 말을 하며 고기를 한 점 더 집어 먹었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애는 얼굴을 구기며 자신이 든 접시를 바라보다 조용히 물러갔다.
‘백년은 이르다 이놈아.’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패배한 놈의 뒷모습을 보며 꼬시다 생각한
나는 옆에서 조용히 계속 고기를 집어 먹고 있는 한예령에게 말을 걸었다.
“점심 다 먹고 수상레저 하러 간다는데 갈 거예요?”
내 질문에 입안에 들은 고기를 씹어 삼킨 한예령이 입을 열었다.
“네, 갈 생각이에요.”
“그럼 출발할 때 저랑 같이 갈래요?”
“같이요?”
“네.”
레저가 있는 곳이 이곳 펜션과 꽤 거리가 떨어져 있어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야했는데.
학교에서 준비한 버스가 없는 걸로 보아하니 아마 개별적으로 가야하는 것 같아 한예령에게 권유했다.
“학교에서 버스가 오지 않을까요?”
“아마 없을 걸요? 있었으면 저희도 버스 타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요?”
“아...”
“학생들끼리 개인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 같은데 저 혼자 차 몰고 가기는 좀 심심해서 그런데 같이 어떠세요?”
내 말에 한예령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좋아요.”
그렇게 함께 가자는 약속을 잡고 대화를 끝낸 한예령은 내가 가지고 온 고기들을 다시 한 점씩 입에 넣기 시작했다.
‘맛있어.’
맛있는 바비큐 고기를 먹으면서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가 내뿜는 강렬한 냄새가 기분 좋게 느껴지자 한예령은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었다.
서로 말 없이 같이 고기만 집어 먹자 접시 위에 있는 고기는 금방 사라졌다.
빈 접시를 보고 고기를 다시 가지러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예령도 옆에서 일어났다.
“고기 가지러 가시는 거죠?”
“네,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이동해 고기를 다시 가지러 오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모두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부럽다, 부러워.’
남자와 여자 가리지 않고 부러워하는 시선과 몇몇 시기하는 시선을 느낀
나는 우월한 기분을 느끼며 고기를 잔뜩 가져와 다시 펜션 앞 계단에 앉았다.
즐거운 바비큐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즈음 사라졌던 조교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다들 이제 그만 정리하고 강으로 갈 준비해주세요.”
조교의 말에 우리는 슬슬 자리를 정리할 준비를 하려 할 때 테이블 위로 보이는 맥주병을 본 조교가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술 먹은 학생들은 갈 수 없으니 펜션으로 들어가 계세요.”
“네?! 저희 많이 마시지는 않았는데요?”
“교수님께서 술 마신 사람들은 혹시 모르니까 안전상 절대 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조교의 단호한 말에 술을 마신 사람들은 그의 앞에 가 사정을 했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조교는 입을 꾹 다물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사정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말 잘 듣고 가서 놀고 온 다음 마시지 그랬어요.”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은 조교의 태도에 술을 마신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취한 나는 사람들은 앓는 소리를 냈다.
술을 마셔 갈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은 조교는 이후 어떻게 도착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그곳에 버스를 주차할만한 공간이 없어 저희가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야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조교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한 남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조교님 개인적으로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차를 가지고 왔으면 타고 가도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레저에서 봅시다.”
조교가 모든 말을 끝마친 뒤 다시 펜션을 나가자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학생들이 가지고 온 학생들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야! 너 차 가지고 왔지? 같이 가자.”
“우리 좀 태워줄 수 있을까...?”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들 차를 가진 사람들에게 달려가 부탁하는 모습을 보던 나는 옆에 있는 한예령에게 말했다.
“짐 다 챙기면 아까 주차한 곳으로 와요.”
“네. 금방 갈게요.”
“아! 혹시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연락하게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건네주며 번호를 물어보자 한예령은 별 거리낌 없이 내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줬다.
“이건 내 번호에요.”
한예령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한 번 건 후 그녀와 헤어진 내가 곧장 짐을 챙기기 위해 펜션으로 올라가려 할 때.
“저기요! 아까 차 가지고 오신 것 같던데 저희 좀 태워주실 수 있나요?”
저번에 나에게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던 못생긴 여자애 삼인방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우 볼 때마다 놀라네.’
한예령이 내 옆에서 떠나자마자 말을 건 그녀들을 보며 고민도 할 필요 없이 대답했다.
“이미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그건 힘들겠네요.”
그래도 냅다 꺼지라고는 할 수 없어서 부드럽게 거절했다.
하지만 이년들은 눈치를 지들끼리 처먹어버렸는지 내 완곡한 거절에도 밀어붙였다.
“아까 보니까 한 명인 것 같던데 한 명이 조수석에 타도 뒷자리가 남지 않아요?”
“저희는 뒷자리에 타고 갈게요. 태워주세요!”
“괜찮죠?”
뒷자리가 남아있다고 꽥꽥거리는 말에 다시 한 번 인내심을 발휘한 뒤 차분히 그녀들에게 대답해줬다.
‘안타깝게도 뒷좌석에는 제 개인적인 짐이 들어있어서요. 좁아서 힘들 것 같네요.’
“아 좀 그냥 꺼지라고.”
“…….”
[사용자님?]
‘잘못 말했다...’
갑작스런 내 욕에 주위는 조용해졌고 시스템마저 놀랐는지 나를 불렀다.
태워주기 싫은 걸 한 번 참아서 말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한 못생긴 새끼들이 뒷좌석을 나불거리며
꿀꿀거리는 행태가 마음속으로 너무 깊이 혐오했는지 생각과 말이 반대로 나가버렸다.
‘어떡하냐...’
속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막나가기로 했다.
“돌려 말해줬으면 알아서 눈치채고 그냥 가야지 왜 자꾸 들러붙어 짜증나게.”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생 엮이는 일 없도록 한 번 더 폭언을 해주자 또 폭언을 할 줄 몰랐는지
벙쪄 있는 그녀들을 무시한 채 나는 뒤로 돌아 펜션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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