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187)

난 나직이 한숨을 내쉬곤 폰을 두드렸다.

[나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건, 서래마을에서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구조하려 하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특임대원들도 그래서 원전에 찾아온 거고요.]

남편은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로 나와 폰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니 원인을 알아야 책임을 묻고 사태를 해결할거 아닙니까. 사람들 구조하는 건 좋습니다만 대통령이나 정부가 아무 상관 없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겁니까?]

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표정이 필사적이다.

이 사태를 누군가가 어떻게든 좀 해결해주길 바라는 얼굴이다.

말 그대로 벼랑끝으로 몰린 인간이 지을 수 있을만한 그런 표정이다.

그래서 믿은건가.

그런 하찮은 음모론 따위를.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걸 내가 알면 진작 해결했겠지.

난 고개를 젓고는 메세지를 입력했다.

[지금은 살아남는게 먼저요. 다들 살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당신도 그런 음모론 같은것에 심취하지 말고, 아내와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내 메세지를 확인한 남편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마누라가 자기 옆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있으니 그렇겠지.

남편은 나와 마누라, 그리고 자기 애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 쪽은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난 내 옆에 앉은 유부녀에게 메세지를 보여주었다.

[잠깐 쉬었다가 나갑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있어요. 가능하면 조용히 계시고.]

유부녀가 내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왔다.

애도 지금 상황이 심각한걸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기 입을 틀어막고 나를 힐끔거리며 올려다보고 있다.

난 마주 끄덕여주곤 폰을 들어 특임대 단톡을 열었다.

[원전 지금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금방 대답해왔다.

[성훈씨. 거긴 괜찮습니까? 어디 다치신데는요?]

[전 괜찮습니다. 원전은 어때요?]

[방금 치누크가 왔습니다. 폭탄을 엄청나게 싣고 왔어요. 좀 과장해서 1톤 정도는 갖고 온 것 같습니다.]

오오.

그거 반가운 소식인걸.

내 옆에서 내 폰을 함께 들여다 본 유부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난 미소지으며 답장했다.

[폭탄 좋네요.]

[네. 성훈씨는 안전합니까? 톡 할 정도면 괜찮다고 여겨도 되는거겠지요? 저희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난 고개를 들어 잠시 생각해봤다.

밖에는 짐승들이 있다.

많다.

특히 반달곰은, 내 공격횟수를 다시 다 쏟아부어도 제대로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에, 폭탄.

난 미소지었다.

[합동작전 한 번 하죠.]

내 메세지를 본 특임대장 성규혁이 답장해왔다.

[합동작전이라고 한다면... 괴물곰 말이군요.]

아, 젠장.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 떵떵 쳐놨는데. 좀 자존심 구기는걸.

난 입술을 구기며 소리없이 웃고는 답장했다.

[네.]

[마침내 성훈씨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게 있다는걸 인정하셨군요.]

그러며 웃는 이모티콘.

으...젠장.

자존심 상해.

난 웃고는 답장했다.

[여기서 생존자를 찾아냈어요.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세명입니다.]

이번엔 답장이 없다.

놀란 모양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아니라, 성가연이 톡을 해왔다.

[생존자를요? 요전번에 다 구해오지 않으셨어요? 그땐 왜 안 나오고, 지금 거기 엄청 위험할텐데.]

난 내 옆에 앉은 유부녀를 힐끗 돌아봤다.

단톡을 옆에서 보고있던 유부녀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쓱 목례해왔다. 죄송하다는 뜻같다.

난 미소지어주곤 단톡방에 메세지를 입력했다.

[좀 사정이 있어서. 자세한건 나중에 얘기하죠.]

특임대장 성규혁이 답장해왔다.

[뭔가 못나올 이유가 있었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괴물과 폭탄의 조합은 언제나 옳지.

난 즐거운 기분을 느끼며 폰의 자판을 두드렸다.

[치누크가 싣고 왔다는 폭탄 그거 도로에다 좀 깔아주면 좋겠는데요.]

잠깐, 겨우 몇초일 뿐이었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 잠깐이 지나 특임대장 성규혁이 톡을 해왔다.

[좋은 생각입니다. 지금 즉시 대원들 시켜서 폭탄 설치하겠습니다.]

[밖에까지 나가야 될텐데 어때요? 짐승들 나오지 않습니까?]

[조용합니다. 곧 해 떨어질테니 서둘러야 되겠군요. 다 설치하고 나면 연락하겠습니다.]

내 톡을 옆에서 끝까지 지켜본 유부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난 그런 유부녀에게 메세지를 작성해 내밀어 보여줬다.

[폭탄 설치 끝날 때까지만 여기에 있어봅시다. 일단 원전까지만 가면 그 다음엔 군인들이 지켜줄 겁니다.]

유부녀는 나를 완전히 믿는 눈치였다.

그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걸 남편이 보고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을 구기며 한숨을 내쉰다.

음모론을 믿는 것까지야 당신 마음이다만, 그렇다고 그게 니 인생의 1순위가 되면 곤란하지.

가족이 있는 인간이 이 상황에 이러면 어떡하자는거냐.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론 대통령 민정우가 유튜브로 방송하기 전엔 아마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고립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혼자 고립되어 있으면 머리가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음모론에 노출되면 빠져들게 되는거겠지.

난 삐져버린 남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는, 메세지를 작성해 그에게 내밀었다.

[지금 원전에서 군인들이 폭탄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아마 한시간쯤 걸릴 것 같은데, 폭탄설치가 끝나면 여기서 나갑니다.]

남편은 내 메세지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폭탄이라는 단어에 놀란 것 같지만, 대답은 없다.

난 유부녀를 힐끗 돌아보곤 다시 메세지를 작성했다.

[안 간다는 사람 강제로 데려갈 생각은 없습니다. 가겠다는 사람만 데려갑니다. 어떻게 할겁니까?]

내가 메세지를 작성할 때 마누라는 다 보고있었다. 그녀는 내가 남편에게 폰을 내밀기도 전에 내게 고개를 끄덕여 왔다.

난 마주 끄덕여주곤 남편에게 폰을 내밀었다.

내 폰을 본 남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쉰다.

방금 마누라가 고개를 끄덕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는 마누라와 애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주눅든 태도로 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내민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침대에 편히 기대 앉았다.

이제 더이상 할 말은 없다.

어차피 이 남자와 말 섞어봐야 음모론을 떠들어대거나 내가 모르는 것만 줄창 물어댈 테니 딱히 대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나저나 참 여기 남의 집 냄새 심하네.

몇달간 이불빨래도 옷빨래도 못한게 틀림없다.

환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전부 들어내서 빨고 닦아내야 될 지경이다.

그 정도니 밖에 짐승들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거겠지.

밖에선 쥐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따금 문을 박박 긁거나 하긴 했지만, 안에 뭐가 있는걸 알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시간여가 지났을 무렵.

특임대장 성규혁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진동조차 꺼버려 깜빡이며 화면이 커질 뿐인 메세지 알림.

[폭탄 설치 완료되었습니다.]

[다친 사람은요?]

[다들 무사합니다.]

짐승들은 확실히 거의 다 나를 따라 온 모양이다. 도로까지 나가야 했을텐데 폭탄을 설치하면서도 위기는 없었나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침대에 기대어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유부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쳐다본다.

그러자 남편도 내게 시선을 돌린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됐습니다.

내가 일어나자 유부녀와 남편도 같이 일어났다.

애는 한시간동안 조용히 있는게 힘들었는지 반쯤 잠들어 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애를 건네받아 품에 안고는 나를 바라본다.

결심을 굳힌 얼굴이다.

난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대어보이곤, 침대를 살며시 들어 옆으로 옮겨놓았다.

체력업적 스킬 덕에 매트리스 두툼한 침대 정도는 그냥 생수 한 병 든 것처럼 느껴진다.

소리내지 않게 옆으로 침대를 옮기곤,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문을 살짝 열었다.

타타탁, 타타타탁.

쥐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아까보단 확연히 수가 줄어든 것같다.

난 조심스레 검을 문 밖으로 내밀어, 손을 놔버렸다.

슈확!

그림자 전사가 튀어나와 검을 움켜쥔다.

내 명령을 들은 그림자 전사가 집 안을 휘몰아치며 짐승들을 도륙해 나아간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난 문을 열고 조심스레 밖을 내다봤다.

피와 살점과 내장으로 데코레이션 된 가정집.

피냄새가 불쾌한 냄새와 뒤섞여 확 밀려들어 온다.

집 안을 정리한 그림자 전사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난 그림자 전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일단 대기. 나를 호위해.

그림자 전사는 내 명령에 호응하듯 검을 허공에 한 번 내리치고는 한 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

난 뒤돌아보곤 나직이 말했다.

"일단 1층까지 내려갑시다. 그리고 원전에 갑니다."

남편이 긴장되는지 문 밖을 힐끗 내다보며 물었다.

"워, 원전까지 꽤 먼데 어떻게 갑니까? 1층까지 후우, 괜찮을까요?"

그거야 해봐야지.

1층까지 내려가는 것과, 원전까지 가는 것.

두 개 모두 해결하기 난감한 과제다.

나 혼자면 아무 문제 없다.

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지가 문제지.

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들키지 않게 머리 숙이시고, 혹시 들키더라도 제 곁을 떠나지 않도록 하세요. 패닉해서 아무데나 도망치면 죽습니다."

두 사람이 긴장과 두려움을 담은 얼굴로 내게 고개를 끄덕여 왔다.

두려울거다.

수개월을 집구석에 박혀 지내다가 이제 밖에 나가려 하는데 괴물들이 바글바글한 상황이니.

난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죽은 쥐 시체들.

대략 십여마리가 사지가 도륙나 죽어 엎어져있다.

"흐윽."

피와 내장이 천장에서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는 광경을 마주한 유부녀가 숨막히는 소리를 냈다.

뒤돌아보니, 스스로 두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고 나를 바라본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아파트 문으로 다가가 문을 잡고 천천히 열었다.

베란다쪽에 서있던 그림자 전사가 아랫쪽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 사이에 우리는 아파트를 나와 복도로 들어섰다.

돌아와.

내 지시를 들은 그림자 전사가 곧장 튀어와 내 앞에 섰다.

"흐읍."

남편과 아내가 동시에 놀라며 그림자 전사를 바라본다. 코 앞에서 본 건 처음이라 그런가, 공포가 눈에 어려있다.

난 침착하게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갖다댔다.

조용히.

부부는 그림자 전사와 나를 번갈아 보며 바들바들 떨면서도 곧장 고개를 끄덕여왔다.

난 몸을 숙이곤 계단을 향해 걸었다.

투슛-

허리에서 활과 화살 몇발을 꺼내든다.

계단 아래에 뭐가 있을지, 계단 위에는 뭐가 있을지 모른다.

따다닥, 따닥.

복도 바닥을 긁듯이 두드리는 소리.

계단 근처에서 들려오고 있다.

"...후우..."

난 숨을 가다듬으며, 화살 한 발을 활에 매겼다.

그리고 조심스레 계단으로 걸어갔다.

내 지시를 들은 그림자 전사가 계단으로 달려가 윗층으로 올라간다.

쑤컥, 퍼걱!

뭐가 있긴 있었구나.

그림자 전사의 검에 썰리고 베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계단의 층간을 붙잡고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크르르르- 흐르르륽-

밑에도 있네.

하지만 길은 하나다.

여길 내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나 혼자였으면 그냥 뛰어내렸겠지만 이 사람들은 4층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

아, 귀찮아 씨발.

난 영웅 따위가 아니래도.

성가연!

그렇게 생각하며, 화살매긴 활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빠아아아-

계단 아래.

뭔가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크지는 않다.

...개?

고양이?

짐승들이 괴물이 되면서 털이 빠지고 모양이 이상해져 궁둥이만 봐선 도무지 분간이 안된다.

뭐가 됐든, 저걸 죽여야 나갈 수 있다.

난 아랫층에 웅크리고 있는 짐승의 뒷발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 때 계단 윗쪽을 정리한 그림자 전사가 내 곁으로 돌아와 섰다.

타이밍 좋네.

난 미소짓고는, 시위를 놓았다.

핏.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림자 전사가 튀어나갔다.

퍽!

화살이 박혔다.

캐애앵!

짐승이 놀라며 번쩍 튀어오른다.

그 짐승을 향해 그림자 전사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깨애-애--액----

짐승이 놀라 울부짖는 소리.

소스라치는 부부의 숨소리.

깜짝 놀란 아이가 보채는 소리가 동시에 늘어진다.

난 즉시 밑으로 내려가 공중에서 느릿하게 유영하는 짐승을 향해 화살을 박아넣었다.

핏, 핏, 핏, 핏!

활을 떠난 화살들이 느릿하게 허공에서 나아가는 사이, 그림자 전사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놈의 배를 가르고 머리를 쑤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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