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하며 액셀을 당기는데, 뒤에서 괴성이 터졌다.
누오오오어얽!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
우르릉!
천둥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돌개바람을 몰아달리며 뒤돌아보니, 괴물곰이 푸른색으로 데코되어 있는 홍보관을 들이받으며 엎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두툼한 살덩이.
놈의 앞발이다.
그림자전사에 의해, 앞발 하나가 통째로 썰려나간거다.
난 미소지었다.
놈은 나를 쫓아 코너를 돌다가 앞발이며 뒷발이며 온갖 관절이 검에 찔리고 베였다. 그걸로도 모자라 백수십여발의 총알을 약점에 뒤집어쓰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아마 눈도 당해버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우르릉, 콰르릉!
홍보관 입구와 건물을 지탱하던 기둥이 박살나며 건물 한귀퉁이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난 미소짓고는 돌개바람을 비틀어 도로를 긁으며 세웠다.
크르르르륵!
"...후우."
숨을 가다듬으며 괴물곰을 바라본다.
괴물곰은 수십톤의 콘크리트와 철근을 뒤집어 썼다. 생물이라면 당연히 깔려죽어야 정상이다.
코끼리라도 저 수십톤의 무게를 견디진 못할거다.
그러나 놈은 괴물곰이다.
겨우 저 정도로 죽을 놈이 아니다.
난 검을 옆으로 뿌려 피를 빼냈다.
촤악!
"후우, 하."
좀비 같은건 이젠 내게 그 어떤 긴장도 주지 못한다. 그저 거기 있다가 내 손에 죽을 뿐이다.
하지만 괴물짐승.
놈들은 다르다.
매번 긴장되고, 또 오싹오싹하다.
또, 매번 새롭다.
그래서 즐겁다.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난 웃는 얼굴로 검을 집어넣고는, 허리에서 활과 화살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활에 화살을 매겨 시위를 당겼다.
"...어이... 아직 죽지 말라고. 이제부터 시작인데, 왜 그래?"
빠아아아-
투명한 원형이 활 끝, 화살촉 부근에서 에서 피어오른다.
건물 잔해에 깔려있는 거대한 괴물곰.
난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 괴물새끼야. 좆밥처럼 굴지 말자. 쪽팔리게."
그리고 시위를 놨다.
핏.
쒸우웃-
부서진 콘크리트 바위와 돌더미 틈새로 화살이 들어갔다.
거대하게 쌓인 잔해가 움찔 떨린다.
와르르, 하며 작은 돌멩이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린다.
난 화살을 다시 꺼내 활에 매겨 당겼다.
"안 죽었잖아. 왜 죽은 척 해? 죽은 척하고 있다고 우리 싸움이 여기서 끝날 것같냐? 일어나."
핏.
쒸우웃!
쏜살이 된 화살이 잔해 틈새로 들어간다.
우르르, 와르르.
바위가 움찔거리며 떨린다.
콘크리트 바위들, 방해되네.
내가 가서 치우고 쑤실 수도 없고.
안 죽은 거 안다.
스스로 일어나라.
그래서 내 손에 죽어라.
난 다시 화살을 활에 매겨 당겼다.
"일어나라고."
핏.
쒸웃!
화살이 틈새로 들이박혔다.
그리고 그 때.
바위가 움직였다.
우르릉, 콰르르릉.
난 미소짓고는 화살을 활에 매겼다.
"그래. 이제 일어나..."
내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빠르게 사라졌다.
분명히 저 곳엔 놈의 앞발이 있었다.
내 그림자 전사가 통째로 잘라내버린 놈의 앞발.
바위 틈새에서 기어나와 허공을 움켜쥐려 드는 것. 그건 놈의 앞발이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여러명의 남녀가 서로 뒤엉키고 꼬인, 서로 붙어있거나 있을 수 없는 각도로 뒤틀려있는, 인간으로 구성된 기둥.
그것이 놈의 잘려나간 앞발을 대신해 튀어나와 있었다.
만세를 부르고 있는 남녀 여럿이 발가락을 대신하고 있다.
그 발이, 땅을 짚었다.
콰쾅!
그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놈의 앞발이.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아아악! 아파, 아파아아!"
놈의 앞발에서 튀어나온, 아니, 매달려 있는, 꿈에 나올까 싶을 정도로 기괴한 인간의 덩어리들이, 땅에 짓물리며 뭉개져 고통에 젖어 비명을 지른다.
울며 소리지른다.
뭐야 저거.
어떻게 저런게 있을 수 있지?
난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놈의 앞발에 있는 잔혹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때, 바위가 다시 움직였다.
콰직, 콰드득!
그리고, 폭탄이 터지듯한 굉음과 함께 바위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날라간 바위들이 홍보관의 남은 부분에 부딪히고, 콘크리트 도로에 떨어진다.
유리창이 박살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반짝인다.
순간적으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먼지구름 속으로, 인간기둥이 쑤욱 들어갔다.
그리고 놈이 포효했다.
우오오오오오!
콰창창!
그나마 남아있던 홍보관의 유리가 모조리 터져나갔다.
은가루를 뿌린 것마냥 사방으로 유리조각이 반짝이며 날아간다.
그리고, 먼지구름이 소리에 밀린 듯 확 벗겨졌다.
그 곳에, 놈이 서 있었다.
폭탄과 검과 탄환에 의해 헤집어지고 난도질되어 반쯤 벗겨진 가죽.
그 아래로, 무수한 인간의 때거리가 서로 부둥켜 안고, 고통에 젖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근육이 있어야 되는 곳에, 마치 근섬유처럼 인간의 육체가 뒤엉켜 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아으아아, 아파, 아파요, 아파!"
터져나간 머리와, 내 탄환에 의해 뚫린 눈으로도 인간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터진 머리 틈새로 심장이 박동하는 것 같다고 느낀건, 저기서 튀어나오려 하는 인간의 몸뚱이였다.
곰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인간의 덩어리.
내 머릿속에 괴물 멧돼지가 스쳐지나갔다.
놈의 몸을 공간발톱으로 파고들어가 충격파로 주위사방을 터뜨려놨을 때.
그 때 내 주위에 있었던 수많은 얼굴들.
고통에 젖은 얼굴들.
알고 있었다.
괴물짐승들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악물었다.
결국 인간이었다.
변해버려 세상 전체를 집어삼키려 드는건 결국엔 인간이다.
부르짖던, 포효하던 괴물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동시에 괴성도 점점 줄어들어갔다.
내 귓가로 성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이잖아..."
어, 맞아.
괴물이야.
이제와서 놀라지 말자고.
종말이잖아.
괴물이 아닐 리가 있겠냐!
난 이를 악물고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
그 순간, 놈이 나를 봤다.
아니, 놈의 대가리를 이루는 인간이 나를 봤다.
놈의 대가리 속, 무수한 인간의 머리들이, 그 눈들이 일제히 나를 본다.
그리고, 모두가 입을 벌렸다.
고통스러운 듯이, 괴로운 얼굴로 모두가 입을 쩌억 벌렸다.
여자들, 노인들, 아이들과 남자들.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들이 그렇게 입을 벌림과 동시에, 괴물곰도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우오오아아앍!
놈의 인간팔뚝이 콘크리트 바닥을 내리찍는다.
동시에 인간팔뚝을 이루던 인간들이 뭉개지고 부러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놈은 그렇게 나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난 놈을 올려다보며, 시위를 놓았다.
핏.
쒸웃!
그리고, 즉시 화살을 매기며 가속을 발동했다.
[자동 시전 : 가속]
느려진다.
"꺄아-아--아----"
"으아아-아---악-----"
놈의 포효도, 인간의 비명도, 지금도 터지고 있는 지뢰와 크레모어와 대전차포탄의 폭음도.
모든 것이 느려졌다.
난 이를 악물고 놈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활을 들어 겨누었다.
죽을 때까지 죽여야 죽는 놈이 괴물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예상은 하고있었다.
놈의 몸 안에 있는, 혹은 놈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인간들.
저 인간들을 전부 죽여야 비로소 놈을 죽일 수 있는거다.
그래.
그러면.
그 괴물 몸뚱아리 안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느니 차라리.
"다 죽여줄게!"
나는 외쳤다.
핏.
화살이 활을 떠나, 놈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화살 십여발을 쏘고는, 활을 허리의 활집에 집어넣었다.
화살 열발은 쏴놨지만 이 이상 버틸순 없다.
놈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난 곧장 돌개바람의 핸들을 잡고, 뻗어있는 콘크리트 도로를 향해 비틀며 달려나갔다.
동시에 가속이 끝났다.
두두두둑!
화살이 꽂히는 소리.
비명소리.
그리고, 놈의 포효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쿠콰쾅!
뒤에서 마치 폭탄 터진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놈은 나를 쫓아 달려왔다.
콰쾅! 콰쾅! 콰쾅!
땅을 딛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콘크리트 파편과 함께 터져오른다.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린다.
돌개바람을 달려나가며 뒤를 힐끗 돌아봤다.
놈과의 거리는 불과 수십여 미터.
난 검을 뽑아 그대로 놔버렸다.
슈확!
그림자 전사가 튀어나와 검을 잡는다.
난 즉시 명령했다.
놈을, 놈을 이루는 모든걸 다 죽여버려.
내게서 빠르게 멀어져가는 그림자 전사가 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썰어내는 소리. 그리고 놈의 괴성.
모를 수가 없다.
내 그림자 전사, 좀 도와줄까.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난 즉시 허벅지에서 잉그램 두 손으로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탄약이 없다!
언제 150발이나 써버린거지?
남은 탄창은 단 하나.
"쯧."
난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혀를 차고는, 하나 남은 탄창을 놈에게 그대로 갈겼다.
득, 득, 득, 득.
서른발을 쏟아내고는, 활을 잡았다.
마음 속에 갈등이 일어난다.
아까 쐈던 화살.
그리고 잉그램.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활로는 안 돼.
난 활을 잡았던 손을 놓고, 돌개바람에서 대물저격총을 꺼내들었다.
고폭소이철갑탄이 몇발이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걸 다 쓰기 전에 내 적중횟수는 바닥날거라는 거다.
그 전에 놈이 죽어줘야 돼.
고폭소이철갑탄이 놈의 몸 속을 잔뜩 헤집어주길 기대할 수밖에.
난 돌개바람에서 일어서서, 놈을 향해 대물저격총을 겨누었다.
조준경을 보지 않아도 상관 없을 정도의 근거리.
느릿하게 움직이는 목표물.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장약이 터지며 가스가 탄환을 힘차게 밀어낸다.
버텨도 버틸 수 없을 정도의 반동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총구가 내뿜는 화염과 진동의 파동이 공기를 둥글게 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