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187)

"내일 봅시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어깨를 한 번 툭 쳐주고, 나는 서래마을을 나섰다.

대형마트 건물로 돌아와 돌개바람에서 내려 소환을 해제했다.

감탄사가 들려온다.

고개 들어보니 2층에서 한태가 뭘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창문 밖으로 나를 보고있었다.

"형, 그거 진짜 끝내줘요. 볼때마다 부럽다 진짜. 어떻게 그렇게 되는거예요?"

설명해줄 생각은 없다.

난 피식 웃고는 물었다.

"문이나 열어."

잠시 기다리자 드르르륵 하며 셔터가 올라갔다.

한태가 오물거리는걸 보면서 난 웃고말았다.

"뭐 먹냐 너?"

"도넛 좀 튀겨봤어요. 아이싱 하고싶었는데 없어서 그냥 딸기잼이랑 설탕 뿌렸거든요. 누나들이랑 형들이 맛있대요. 성훈이 형도 좀 드릴까요?"

그러며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게 내민다.

딸기잼이랑 설탕 범벅이 되어 찐득한 도넛이다.

개별포장같은건 요즘은 사치지.

"진짜 맛있냐 이거?"

"넴."

그러며 손에 든 도넛을 입에 우겨넣는다.

난 손을 대충 옷에 닦아내곤 찐득한 도넛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고소한 풍미와 달콤한 딸기향이 입 안에 부드럽게 씹힌다.

맛있네 이거.

난 우물거리며 말했다.

"좀 더 남았냐?"

"넴."

"그럼 있다 예은이 방에 몇개 좀 갖다줘라. 오늘 저녁밥은 이걸로 때우련다."

한태가 찐득한 손을 들어 내게 엄지손가락을 척, 올린다.

나도 엄지를 올려줬다.

서로 우물거리며 찐득한 엄지 들고 있는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않다만, 그래도 공로 하나는 인정해줘야 되는게 한태가 빵을 계속 구워댄 통에 먹는 기쁨 하나는 보장되고 있는 셈이다.

난 고개를 끄덕여주곤 도넛을 씹으며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띵-

마침 엘리베이터가 내려선다.

오오, 잘 됐...

엘리베이터에서 내린건 산부인과 의사와 특임대원 둘, 9층에서 살던 새로 들어온 여자들.

그리고, 성가연이었다.

성가연이 나를 보자마자 눈을 힘껏 부라린다.

난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넛을 가능한 천천히 우물거리며 성가연을 바라봤다.

...뭔가를 좀 지나치게 들은거다.

무슨 얘길 들었지?

산부인과 의사 아줌마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제 병원은 이제 괜찮은가요?"

난 볼을 도넛으로 부풀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산부인과 의사 아줌마가 안쓰러운 얼굴로 여자들을 힐끗 돌아보더니 말했다.

"이제 안전하다니 다행이군요. 이 분들 좀 데려갈려고 하는데 괜찮겠죠?"

...병원.

...여자들을 데려간다.

...수술하려는거네.

난 여자들을 돌아봤다.

우울한, 슬픈, 화나는, 그밖에 여러 감정들이 얼굴에 섞여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넛을 볼에 밀어넣고 그렇게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 아줌마가 내게 끄덕여 보이곤, 특임대원들과 여자들에게 눈짓했다.

특임대원 둘이 내게 가볍게 목례하고는 여자들을 에스코트하며 산부인과 의사를 따라 나간다.

그리고, 성가연이 내게 다가왔다.

...왔다.

난 지체없이 손에 들고있던 도넛을 입에 우겨넣었다.

두 뺨이 복어처럼 부풀어버렸다.

성가연이 나를 힘껏 노려보며 말했다.

"욕심쟁이!"

"우읍, 업."

한국말 몰라요우.

그런 얼굴로, 나는 내 입과 볼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별로 기분 안좋은건 알겠는데,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모르겠고, 나는 말할수도 없다고.

성가연이 멀어지는 일행들을 힐끗 바라보곤 나를 향해 낮게 윽박질렀다.

"세명이라구요? 세명이나? 욕심쟁이!"

수현이, 예은이, 은서랑 이름 모르는 여자까지 사실은 네명인데, 정정해주지는 말자.

난 눈을 굴리며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제스쳐를 보였다.

그러며 입을 우물거렸다.

"우음, 오옵."

"으이구!"

성가연이 내 볼을 잡고 꾹 눌렀다.

가짜로 부풀린거 아닌데.

후회할걸.

입술이 저절로 벌어지며, 입 안에 든게 오로록 튀어나온다.

성가연이 기겁하며 떨어졌다.

"으악! 더러워, 진짜."

성가연은 몇걸음 떨어져서 나를 힘껏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저으며 나를 째려봤다.

"욕심쟁이! 벌 받아요, 진짜."

뭐 어쩌라고.

종말인데.

일부일처제 같은건 이젠 전설 비스무리하게 되어버렸다고.

한 때 그런 제도가 있었지 라고 후대에 전해질지도 모르지.

후대가 있다면 말이지만.

라는 내용을 담은 항의를, 입에서 나온걸 도로 넣으며, 우물거리며,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성가연은 내 제스쳐를 알아들은건지 어쩐건지 고개를 홱 돌리곤 특임대원들을 쫓아 뛰어갔다.

훤칠한 미녀가 화내니 꽤나 매력적인데.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나다.

피식 웃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0층에 올라가니 복도 끝 창가에 수현이와 예은이, 은서가 모여서 웃으며 뭔가 얘기하고 있다.

아.

나를 봤다.

세 여자가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그러더니 웃으며 동시에 말했다.

"욕심쟁이!"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르르 웃는다.

...으음.

당분간 이렇게 불리겠는걸.

* * *

이튿날 아침, 서래마을의 모텔 앞.

특임대원들이 모여있었다.

이번 작전에 나가는 것도 2팀과 3팀이었다.

4,5팀은 애초부터 연료와 지원팀으로 구성되어 이번에도 현장에는 출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대통령 민정우가 특임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 작전, 이번 작전, 그리고 앞으로 있을 작전들 모두가 우리들에게, 나아가선 인류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작전들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대통령 민정우가 말했다.

"지난 작전은 여러분 모두가 합심하여 너무나 훌륭하게 완수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꼭 말해두고 싶군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작전의 성공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이 무사히 귀환해 돌아오는 것입니다."

대통령 민정우는 내게서 시선을 돌려, 특임대원들 하나 하나를 돌아보며 힘주어 말했다.

"괴물들은 수가 많고, 우리는 수가 적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 귀중하다는 것을 우선 스스로가 자각하고, 꼭 무사히 돌아와주길 바랍니다."

대통령 민정우의 뒤에는 비서실장 안준규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어지럽게 모여 서있었다.

대통령 민정우는 뒤를 힐끗 돌아보곤 특임대원들에게 말했다.

"우리 모두, 여러분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대원들에게 나가 한 사람 한 사람씩 손을 잡아주었다.

내게도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유달리 힘주어 내 손을 쥐는 것같다.

대통령 민정우가 내게 몸을 기울여 귓속말했다.

"이번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대원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난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 민정우가 대원들의 손을 하나씩 잡아주고는 자리로 돌아가 섰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힘주어 말했다.

"차렷. 대통령께 경례."

일제히 손을 올린다.

그리고, 대통령도 이마에 손을 대어 화답했다.

...다시 봐도 멋지단 말이야.

손을 내리고 대원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가 담긴 소리와 손짓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사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정비사, 송규태 중사였다.

가슴에 탄창벨트와 소총띠를 목에 메고있는걸 보니, 작전에 나가는 차림새다.

"송중사도 가는군요?"

키가 살짝 작은 송규태 중사.

그가 나를 힐끗 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원자력 발전소 출동하는데 정비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나."

난 고개를 갸웃했다.

"원자력 발전소도 정비할 줄 압니까?"

송중사가 피식 웃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냥 자동차나 헬기에 대고 나사나 조이던 놈인데. 그래도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며 비서실장님이 저도 작전팀에 끼워넣더라고요."

...으음.

꽤 난처하겠는걸.

송중사가 말했다.

"그래도 지난 며칠간 웬만한건 다 해놨으니 다행이죠. 항공연료도 많이 만들어놨고, 혹시 제가 죽어도 당분간은 괜찮을겁니다."

난 미소지으며 송중사의 어깨를 짚었다.

"안 죽어요. 염려 마."

송중사가 나를 힐끗 돌아본다.

"지난 작전에서 성훈씨가 대단했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번엔 직접 보겠군요."

난 대답없이 피식 웃었다.

반포 종합운동장 한가운데에 늠름하게 자리잡고 앉아있는 치누크.

박대위와 김대위는 이미 조종석에 탑승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누크에 오른 대원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성가연은 내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나를 째려보더니 고개를 홱 돌린다.

아, 이거 왜 재밌지?

괜히 웃겨서 고개 숙이고 키득거리며 웃는데, 김대위가 뒤돌아보며 크게 말했다.

"벨트 착용해! 뜬다!"

철컥, 철컥.

벨트를 착용하고, 이미 착용한 사람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기이이이잉-

치누크의 엔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난 길게 숨을 들이키며 치누크의 천장을 쳐다봤다.

가자.

원자력 발전소로.

한시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던 평택과는 확실히 다르다.

치누크는 한참을 날아도 목적지에 도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가연, 송중사와 나를 포함한 11명의 인원이 조종석 가까운 좌석에 나란히 앉아있다.

그리고 꼬리 쪽으로 군용 덮개를 씌워놓은 네모난 덩어리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난 내 옆에 앉은 송중사의 어깨를 툭툭 치곤 큰 소리로 물었다.

"저 상자는 다 뭡니까? 폭탄?"

원전을 폭파시킬 작정은 아니겠지?

송중사가 내게 뭐라고 말했다.

안 들린다.

미군이 쓰던 군용 수송헬기라고 내부가 조용하진 않다. 프로펠러가 둘이라 귀를 더 괴롭히는 느낌이다.

난 내가 쓰고있는 헬멧의 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송중사가 크게 말했다.

"연료요, 연료! 울진까지 한 번에 왕복 못합니다! 저거 다 항공연룝니다!"

...울진?

난 고개를 끄덕이곤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다.

그리곤, 품에서 폰을 꺼내 울진을 검색해봤다.

어디야 울진이?

강원도?

아아, 경북이었군.

우리나라의 원전 분포지역을 검색해보니 그나마 울진이 제일 가깝다.

나머지는 전남과 경남에 위치해 있는데, 말 그대로 최남단이다.

그냥 무조건 가까운 곳으로 목표를 잡은거군.

난 원자력 발전소 분포지도를 바라보며 나직이 이를 악물었다.

"...후우."

고향에 돌아가는 날이 언제일지.

한반도 지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괴로워진다.

난 폰을 웃옷 주머니에 도로 넣어두곤 창 밖을 내다봤다.

먼 아래에 지나가는 논들, 밭들, 산과 도시들.

치누크는 세시간가량을 날아 해안에 이르러서야 속도를 늦추었다.

창 아래로 보이는건 기묘한 형태의 방파제.

ㄱ과 ㄴ이 교차하는 듯한 묘한 방파제가 감싸고 있는 해안으로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커다란 건물과 돔들이 보였다.

김대위의 목소리가 헬멧 헤드셋으로 들려왔다.

"울진의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도착했습니다. 방파제 위에 착륙합니다. 대기 바랍니다."

방파제 위라고?

난 성가연의 옆에 앉아있는 특임대장 성규혁을 바라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바로 옆이 산입니다."

...아아.

...산.

안되지.

산 속에서 뭐가 기어나올지 모른다.

혹시라도 멧돼지 같은 놈이 또 있어서 출몰하면, 그래서 미군 관사 때처럼 들이받기 시작하면 아무리 치누크라도 버틸 수 없을거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착륙을 기다렸다.

타타타타!

굉음을 뒤로하고 치누크에서 내리니, 바로 몇미터 앞이 파도치는 낭떠러지다.

송규태 중사가 헬멧을 그대로 쓰고 내린다.

난 송중사의 어깨를 두드려 머리를 가리켰다.

송중사는 그제야 아차하며 헬멧을 벗어다 치누크 안으로 던져넣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특임대장 성규혁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의 뒤로 특임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뒤따른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강풍을 얻어맞으며 방파제를 걸어갔다.

잠시 걷다보니 바람도, 프로펠러 소리도 사라졌다.

"후우."

앞서 걷던 성규혁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번엔 치누크가 대기할겁니다. 원전을 완전히 확보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전엔 누구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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