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187)

놈이 일어서고 있었다.

건물의 상당부분을 대가리를 휘저어 무너뜨리며, 그대로 돌파해 활주로로 뛰어들고 있었다.

군인들이 우르르 피해 뛰어간다.

미니건을 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괴물 멧돼지가 다시 관사를 들이받았다.

무너진다.

귀퉁이가 다시 무너진다.

저러면 내려앉는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살아날 방법도 없다.

바람에 밀려 숨조차 쉬기 힘들다.

땅이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고 나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일말의 돌파구라도 혹여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그림자전사] [레벨 - MAX.]

[호칭 - 다재다능한]

스테이터스

[체력 - 100/100] [감각 - 100/100]

[힘 - 100/100] [민첩 - 12/12]

[정신 - 100/100]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3]

스킬

[패시브 - 혼의 문신 LV. 3]

[패시브 - 회복]

[패시브 - 한계달성]

[액티브 - 잔영] (자동시전 중)

[액티브 - 적중] (자동시전 중)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그림자 전사 레벨을 최고치로 올렸어!

괴물 멧돼지에게 난사했기 때문인가!

나는 자유낙하중인 괴물 박쥐의 굵은 털을 꽉 움켜쥐고, 그림자 전사를 눌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 시간조정자 (MAX.)

ㅡ. 생존전문가 (MAX.)

ㅡ. 야생사냥꾼 (MAX.)

ㅡ. 그림자전사 (MAX.)

1. 공간탐색자

2. ??? (선택 불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공간탐색자.

나는 지체없이 1번을 골랐다.

바람이 너무 강하다.

눈을 뜨기가 힘들다.

제대로 누른건지 모르겠다.

눈 앞에 메세지창이 떴다.

[새로운 전문화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얻었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상태!"

스킬.

새로운 스킬!

[액티브 - 공간발톱]

고, 공간발톱?!

자, 잠깐.

이건 왜 자동시전이 아니지?

아니, 그건 지금 중요하지가 않아!

난 공간발톱을 눌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액티브 - 공간발톱

일정 범위 내에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을 움켜쥡니다.

그리고, 해당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이동시 발생하는 충격에 면역됩니다.

민첩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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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충격 면역?!

난 고개를 내려 땅을 내려봤다.

바닥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이젠 몇 초 남지도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쓰는건데!

어떻게!

크루루룽!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괴물 멧돼지가 건물을 들이받아 무너뜨리며 내 쪽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시간이 없다.

지체할 수가 없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손을 내뻗었다.

바로 아래에 있는 괴물 멧돼지의 등을 향해.

불과 몇십미터.

찰나의 순간.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제발!

다음 순간, 괴물 멧돼지의 등이 번개치듯 확대되었다.

내 발에, 무릎에, 그리고, 주먹에.

뭔가가 닿았다는 느낌이 올라온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우우웅-

귀가 먹먹하다.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저, 온 몸이 따뜻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희미한, 뭔가가 빛에 반짝이고 있다.

...피와 근육.

그리고, 내 주위에 몰려있는, 수많은 두개골들.

고통스러운 얼굴들.

절규하는 표정들.

난 소스라치며 고개를 들었다.

...밝다!

햇살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괴물 멧돼지를...

...뼈채 뚫고 내려간거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폭탄이 터진 것같다.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깨지고 박살나고 헤집어져, 정말로 내부에서부터 터져버린 것처럼 되어있다.

찌륵, 찌르륵.

피와 살점과 내장이 내 주위에서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고요하다.

-훈씨! 성훈씨이!

소리가 들린다.

여자 목소리.

...성가연?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돌아온다.

연기.

내 몸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마치 장갑으로 손상된 검을 쥐었을 때처럼, 내 몸에서도 하얀 연기가 그렇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발에 닿는 느낌이 질퍽거린다.

가슴이 아프다.

배가 아프다.

그러나, 아물고 있다.

천천히.

느릿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찢어진 티셔츠 안으로 드러난 상처가 점점 모여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스스슷-

나는 온 몸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거였나.

내 몸에 문신.

혼의 문신이 내게 주었던 것은.

그리고...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모르겠다.

나는 살아있을 수 없다.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살아있는건,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생물로써 반칙이다.

...공간발톱.

...이게... 공간탐색자의 능력.

공간을 움켜쥐어, 그 곳으로 이동하는 능력.

"...후우."

나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괴물 멧돼지의 몸 속에서, 희미하게 새어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 검.

어디로 갔지?

공중에서 어쩌다 놓쳐버렸나본데.

...몰라.

하나는 남아있다.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성훈씨! 성훈씨이!"

...시끄러워, 성가연.

소리 좀 그만질러.

"하아..."

나는 검을 내밀어, 눈 앞에 보이는 살과 두개골과 가죽을 힘껏 베어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괴물 멧돼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햇살.

밝다.

온 몸에 피와 찐득한 그 무언가를 뒤집어 쓴 채.

하얀 연기를 온 몸에서 내뿜으며, 나는 놈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도대체 저게 무슨 표정들인지, 난 짐작도 못 하겠다.

"성훈씨!"

성가연이 달려온다.

아아, 그래.

와서 나 좀 부축해줘라.

희끗희끗 멀어지려는 정신줄을 붙잡아 보지만, 눈 앞이 새카매지는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다리가 풀린다.

아, 씨발.

쪽팔리게.

타악.

누가 나를 붙잡는다.

...부드러운데.

성가연이겠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모르겠고, 좀 쉬자.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JESUS CHRIST."

몰라 임마.

영어 하지마.

이에에에에엑!

느닷없는 괴성.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개인화기를 들어올린다.

순간적으로 의식이 확 돌아온다.

등줄기가 쭈뼛하다.

시야가 선명해진다.

난 성가연의 어깨를 움켜쥐고 반사적으로 뒤돌아봤다.

거대한 괴물 멧돼지 시체.

그 너머, 강가.

강가에 날개 한 짝을 담그고 있는, 반토막난 괴물 박쥐가 뇌수를 흩뿌리며 몸부림을 쳐대고 있었다.

"쏴!"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타타타타!

주위사방에서 총포화기가 화염을 뿜는다.

탄환이 빗발치듯 괴물박쥐의 몸에 들이박혔다.

끼에에에에엑!

괴물박쥐가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발광하더니, 강 속으로 곧장 몸을 집어던졌다.

둔한 굉음과 함께 물보라가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괴물 박쥐는 강 속으로 사라졌다.

"제기랄, 계속 쏴! 쏴!"

성규혁이 외치며 강을 향해 전진했다.

그러며 방아쇠를 계속 당긴다.

수십명의 특임대원과 특작대원들, 미군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며, 탄창을 갈아끼워가며 강을 향해 탄환을 난사했다.

쐐애애애액!

반쯤 무너져버린 관사 지붕.

누군가 대전차 로켓을 강 속으로 쏴넣었다.

두쿵!

둔탁한 드럼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치솟아 오른다.

그러나 괴물박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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