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진짜 겁나 빨리 나가네.
아, 맞아.
"소리? 무슨 소리?"
난 옆을 돌아보며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얼마 되지 않는 놈들이 시체에 걸려 엎어지고 넘어지느라 가속도 필요없을 지경이다.
드르르륵.
"무슨, 누가 합창하는 것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드문드문 막, 갑자기 뜬금없이 노래하는 것같은."
...뭔 개소리지 이건?
"합창? 여러사람이 노래하는 그거?"
"네. 갑자기 들렸어요. 어디서 혼선됐나? 거기서 누가 스피커로 노래 틀었어요?"
...뭔 소린지.
"아니. 노래 같은거 아무도 안 틀었어요. 잠깐만."
지금은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어울려주고 싶지가 않다.
죽이는데 집중하고 싶다고.
드르륵, 드륵.
근처에 있는 놈들은 다 죽였다.
멀리서 망둥어처럼 팔딱이다 느릿하게 일어나는 놈들 몇 뿐.
[레벨이 3 올랐습니다.]
...오.
대충 150마리 넘게 죽인 모양인데...
...응?
아닌데?
난 주위를 빠르게 둘러봤다.
엎어져있는 좀비들.
지금까지 수천마리를 사냥해 온 경험상, 눈대중으로 대충은 셀 수 있게 됐다.
이거 100마리 안 돼.
...설마?
난 죽어 엎어진 고양이를 돌아봤다.
...저것 때문인가.
저거 한마리가 대충 50마리랑 동급이란 소린가본데.
...아.
그도 그렇군.
저 놈 몸 안에있던 대가리들.
하나 하나가 다 킬카운트 되는거니.
그렇다면 저 놈은 대충 좀비 50여마리쯤 잡아먹은 놈이라는 뜻이다.
...가만.
그러면, 다른 짐승은?
...백마리 넘게 잡아먹은 놈도 있을까?
수백마리, 아니, 천마리를 잡아먹은 놈은?
...그런 놈이 과연 세상에 없을까?
난 주위를 돌아봤다.
고양이 이외의 짐승은 안 보인다.
...안돼.
지금은 스텟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지금 뭐가 나오면 곤란하다.
그 순간이었다.
등줄기가 섬칫하다.
나는 옆을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다.
마을을 밝히고 있는, 드문드문 가로등.
그리고 그 너머, 암흑.
달이라도 떠 있으면 뭐라도 보일텐데, 없다.
기분나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멀리 암흑 속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빛이다.
보였다.
분명히, 저기에 있다.
다시, 빛.
두 개의 빛.
붉은 눈이다.
그리고, 단독주택의 좌우로.
여러 단독주택들 너머의 암흑 속에서.
붉은 눈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마린지 셀수도 없다.
손등이 간지럽다.
뭔가가 내려가는...
땀인가.
나는 우뚝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다.
죽이는게 신나서 가속을 너무 남발했다.
남은 스텟이 얼마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세네번.
세네번으로...
저 놈들의 범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터억.
걸음소리.
가로등 불빛이 하얀 털을 비추었다.
그것은, 온 몸이 하얀 털로 뒤덮인, 주둥이가 기다란 짐승이었다.
개처럼 생겼지만, 저렇게 큰 개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늑대도 저거에 비하면 봉제인형 수준이다.
거의 집채만하다.
멀리 떨어져있다.
그럼에도, 나는 놈을 올려다봐야 했다.
놈이 나를 내려다본다.
나도 놈을 올려다봤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우리는 눈싸움을 시작했다.
귀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알고싶지도 않다.
지금은 그런걸 신경쓸 때가 아니다.
눈싸움을 하고있던 어느 시점.
하얀 짐승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우우우우-
...하울링.
주위사방에서 동시에 하울링이 터졌다.
엄청난 소리다.
고막이 터질 것같다.
그저 하이피치의 소리가 아니라 고막이 흔들려 지직대는 느낌마저 든다.
으드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견뎌.
참아!
이 놈들은 날 공격하는게 아니다.
그저 짖을 뿐이다.
하울링이 멎었다.
터억, 턱.
하얀 짐승 건너편.
갈색의 개.
아니, 괴물짐승이 걸어나왔다.
놈은, 작다.
아니, 하얀 짐승에 비해 작다.
그러나 집채만한건 마찬가지다.
갈색 괴물이 고양이의 사체로 다가간다.
아가리를 쩌억 벌린다.
...이빨이...
수백개는 돋아난 것 같다.
모든 이빨이 송곳니인 것처럼 아래위로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다.
놈은 고양이의 사체를 입에 물고, 하얀 짐승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암흑 너머로, 터벅대며 걸어간다.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얀 짐승이 몸을 돌린다.
놈도 암흑 속으로 걸어간다.
사방에서 붉은 눈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잠시 후, 섬칫한 느낌이 사라졌다.
"...하아, 후우."
미친.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턱으로 툭툭 떨어져 내린다.
식은땀인가 이거?
종말 시작되고, 좀비들을 그렇게 숱하게 사냥해 오면서도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아본다.
압도되는 느낌.
하얀 털 괴물, 언듯 보기에 진돗개처럼 생겼던데.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가 않다.
난 주위를 둘러봤다.
멀리.
강 너머, 어둠 속에서 더욱 어두운 벽.
그렇게 보이는 커다란 산.
거기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으드득, 콰드득, 으적으적.
먹고있다.
고양이를.
강에서 기어올라오던 좀비들도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 근처에 있는 놈들, 강 속에서 기어올라오던 놈들, 전부 잡아먹은거다.
놈들이 먹은건 도대체 몇마리지?
머리 뚫려 죽은 시체를 먹어도 축적되는건가?
설마?
...아니길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고스란히 놈들한테 먹이를 갖다바친 셈이다.
"후우, 하아..."
공터에 널려있는 시체들.
...아니겠지.
만약 시체를 먹어도 축적되는거면, 이 수십구의 시체들을 그냥 놔두고 갔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고양이를 먹는 다른 이유가 있는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고요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기분나쁜 느낌도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시골마을은 정적을 되찾았다.
"...후우."
나는 잉그램의 탄창을 천천히 새것으로 갈아끼웠다.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 둬야지.
갈아끼운 후, 허벅지에 꽂아두고 활과 더플백을 챙겼다.
어쨋든, 알겠어.
짐승들이 어떤 놈들이길래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는지도 알겠고,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도 알겠다.
"저, 젊은이. 괘, 괜찮으이?"
멀리 단독주택.
빼꼼 열린 창문에서 할배가 눈만 내놓고 있다.
난 손을 한 번 들어보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다 간 것 같네요."
"고, 고마워. 고마워, 젊은이. 용감하구만."
...용감하기는 뭘...
개떼랑 마주치고 얼어버렸는데.
젠장.
개떼, 위압적이었어.
"전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러고 걸어가는데, 단독주택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요."
"고마워, 총각."
"고맙습니다."
...다 봤나본데.
그림자 전사도 봤나?
...쯥.
몰라 씨발.
난 손을 들어보이곤, 마을을 빠져나와 시내로 돌아갔다.
도착했을땐 자정무렵이었다.
특임대원들이 대기중인 건물.
엘리베이터를 눌러놓고 말했다.
"지금 돌아왔어. 올라갑니다."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톡톡 두드려본다.
...배터리 나갔구만.
띵-
빼다가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상태."
방금 얻은 3점.
민첩에 넣어 12를 만들었다.
레벨은 97.
...앞으로 3렙 남았다.
"후우..."
최상층을 눌러놓고 벽에 기댔다.
"...안 되겠는데..."
내 머릿속에 있는건 개떼들.
놈들, 적어도 열마리 이상이다.
놈들이 덤벼들면 나 혼자선 아무래도 무리다.
...동료들의 힘을 좀...
...아니.
우리 특임대원들만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주민들은 당연히 큰 도움 안 될 거고.
미군 지휘관을 다시 한 번 만나봐야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성훈씨!"
대원들은 아무도 잠들지 않고 있었다.
성가연이 벌떡 일어나 내게 달려왔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덴 없어요?"
"아, 네. 괜찮아요."
대원들이 모두 내게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난 적당히 대답해주곤 신발을 벗었다.
꽤 피곤한걸.